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
지난 10월 25일 토요일 오후 5시, 서울 세종로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2014년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이곳은 올해 케이블 방송 씨앤앰 노동자들이 고용승계 등을 요구하며 노숙농성을 벌이던 장소이기도 하다. 5시에 딱 맞춰 도착했지만 이미 분홍, 빨강, 검정 조끼를 입은 노동자들이 파이낸스 빌딩 앞을 꽉 채우고 있었다. 대회 시작에 앞서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래 ‘진짜 사장이 나와라’가 대회장 주변에 울리고 있었다.
진짜 사장이 나와라~
우리의 노동은 가짜 노동이 아냐~
진짜 사장이 나와라~
용역 하청 바지사장 다 걷어치우고 나와~
그 옆에는 경찰들과 ‘이 선을 넘지 마시오’라는 문구가 적힌 폴리스라인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빽빽한 군중 틈을 비집고 들어가 동양시멘트노동조합원들과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원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머뭇거
리며 곁에 앉자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원 아주머니께서 방석을 건네주셨다. 민중의례로 시작된 대회는 ‘이소선 합창단’의 공연 후 연대발언으로 이어졌다.

연대발언자 중에는 전효빈(외교 11) 씨도 있었다. 그는 “2년만 쓰고 헌신짝 버리듯 내버릴 수 있는 비정규직이 없어져야 전체 한국사회의 노동이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 중 “지금 이곳에서 자본의 탄압에 맞서 싸우고 있는 동지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싸우는 여러분들이 우리 청년, 학생들의 가장 강력한 빽”이라는 대목은 참가자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이끌었다. 그 후 여러 비정규노동조합 지부장들의 발언이 계속 이어졌다.
대회가 중반에 이르렀을 무렵, 지방에서 올라온 전국학교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대거 빠져나갔다. 그들에게 비정규직 노동자로서의 고충 이전에 가정주부로서의 고충이 보였다. 분홍 조끼로 대회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그들이 나가자 대회장이 순식간에 휑하니 비었다. 발언마다 그 어떤 노조보다도 활기찬 반응을 보여주던 그들이 떠나자 대회장의 열기도 다소 가라앉았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간부들은 이날 대회에 앞서 삭발식을 가짐으로써 투쟁을 향한 굳센 의지를 보여줬다. 대회가 끝난 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전국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돌입했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접했다. 그들은 명절휴가비 등의 각종 수당을 정규직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받고 있었다. 의지와 상관없이 쉬어야하는 방학 동안 생계도 전혀 보장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최후의 수단을 썼다. 파업 이틀째, 등을 돌리고 있던 교육청이 마침내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과의 교섭에 나섰다.
몸짓공연을 보며 잠시 쉬는 시간에 주변에 앉아있는 노동자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분홍색 조끼를 입고 발언자들에게 연신 함성과 박수를 보내던 어느 아주머니께 인사를 건넸다. 학생자치언론 <서울대저널> 기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며 어떤 계기로 이 대회에 참석했는지 여쭤봤다. 아주머니는 ‘서울대’라는 말에 반가움을 표하더니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이며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 민들레분회장 이연순 씨라고 소개했다. 학내자치언론이지만 이제까지 등잔 밑의 서울대병원 문제를 제대로 취재한 적이 없었다. 이전에 서울대병원 문제를 취재했더라면 민들레분회장 이연순 씨를 단번에 알아봤을 터였다. 그는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이 악질 용역업체와 계약해 단체협약도 승계하지 않고 63세이던 정년을 일방적으로 60세로 바꾸겠다고 했다”며 억울한 마음을 내비쳤다. 그 때문에 내년부터 42명의 청소노동자 중 13명이 갑자기 해고될 운명에 처했다고 한다.
발언 순서의 말미에는 청년, 여성, 이주, 특수고용 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 중에서도 더 소외된 계층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여성 노동자에 대한 직장 내 성희롱이 통제 및 관리의 수단으로까지 기능하고 있다는 얘기는 충격적이었다. 이전까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방향의 이야기인데 듣고 보니 충분한 개연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대회를 마치는 상징 의식으로 불꽃놀이가 진행됐다. 단순한 유희의 목적이 아니라 ‘비정규직 철폐’라는 간절한 염원이 담긴 불꽃놀이였기에 노동자들은 더욱 조심했고 희망적인 분위기 속에서 대회가 마무리됐다.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
지난 11월 8일 오후 7시부터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44주년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2014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가 열렸다. ‘2014 이용석 가요제’ 대상 수상자 금속노조 삼성전자 서비스지회 ‘밧데리’팀의 공연이 전야제의 시작을 알렸다. 노동해방을 위해 먼저 간 열사들과 세월호 사고로 아깝게 목숨을 잃은 영령을 기리며 묵상이 이어졌다. 북 장단에 맞춰 ‘임을 위한 행진곡’을 힘차게 부른 후 드디어 본격적으로 전야제가 시작됐다.
올해는 홍콩에서 민주화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홍콩노동조합총연맹(홍콩노총)이 전국노동자대회를 앞두고 한국을 방문했다. 홍콩노총의 연대 발언을 시작으로 여러 노래와 몸짓 공연, 그리고 연대 단위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전야제라 그런지 많은 발언보다는 공연을 통해 서로를 위로하며 투쟁 의지를 다지는 모습이었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한참 보고 있었다. 민중가요와 몸짓공연은 언제 봐도 힘차고 흥이 난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공연보다도 오늘의 주 무대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천막인 것 같았다. 어떤 천막에서는 투쟁 선전을 하고 있었고 또 다른 곳에서는 일일주점을 열고 있었다.
대학생들이 열고 있는 어묵 장터도 있다고 해서 찾아가봤다. 학교에서 봤던 사람들의 모습도 언뜻언뜻 보였다. 정성용(사회 10) 씨는 “투쟁을 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학생들은 회비도 많이 내기 힘든 상황이라 투쟁 기금 마련을 위해 나왔다”고 했다. 연대 사업의 경우 후원이 많이 들어오는데 교육 투쟁과 같은 대학생 중심의 투쟁도 해야 하니 기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많이 팔았냐고 묻자 “진짜 많이 팔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떤 분이 인심 좋게 11만 원이나 주시고는 그릇 하나에 알아서 담아달라고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손님들이 학생들 옆에서 일을 도와주고 계시는 아주머니를 알아보고 더 많이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 아주머니는 투쟁현장에 밥을 가져다주는 ‘토닥토닥 밥 차’를 운영해왔기 때문이다. 각박해 보였던 투쟁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인정이 오가는 모습 때문인지, 뜨거운 어묵 국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천막 아래에선 훈훈한 기운이 퍼지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서 정신없이 어묵을 흡입하고 있는데 옆에 앉아 있던 낯선 할아버지 한 분이 밝게 인사를 건넸다. 당황하긴 했지만 맞장구를 치며 어떤 일로 오셨냐고 여쭤봤다. 할아버지가 웃으며 건넨 명함에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전태삼 운영위원’이라고 적혀있었다. 언젠가 <전태일 평전>에서 마주한 기억이 있는 전태일 열사의 동생 이름이었다.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을 위해 모인 자리에서 전태일 열사의 동생을 만난 것은 절묘했다.
전태삼 씨는 열정적인 어조로 현 시국의 문제와 지나온 세월에 대한 이야기를 한 시간 가량이나 했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공약으로 300억을 들여서 ‘전태일 기념관’을 만들어주겠다며 ‘전태일 재단’을 찾았을 때, 필요 없다며 거절한 이야기였다. 전태삼 씨는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이 화해하자며 전태일 재단에 찾아오면서 쌍용차 문제는 외면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뒤통수 맞은 것 같고, 또 명치를 맞은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전국에 있는 노동조합이 모두 ‘전태일 기념관’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40살이 넘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친근하게 대해준 덕분에 쉽게 그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었다. 전태삼 씨는 아직 미공개 상태인 고 문익환 목사의 시라든지 본인이 직접 지은 시를 읽어보라며 건네기도 했다. 그는 “내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하고 다른 이들과 공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을 너무 많이 뺏은 건 아니냐며 다른 것도 많이 보고 취재하라는 인사를 남기고 유유히 길을 떠났다.
긴 대화를 마치고 천막 부스를 구경하러 나섰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의 천막 앞을 지날 때 그 앞에서 ‘쌍용차투쟁 승리를 위한 2,000인 선언’ 서명 동조를 홍보하던 아저씨 한 분이 말을 걸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 김수경 조직부장이었다. 지난 2월 7일 쌍용자동차의 해고가 무효라는 판결이 났는데 11월 13일에는 회사의 상고에 대한 선고가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이기게 되면 엄청난 잔치 분위기가 될 것”이라며 기대에 부푼 모습을 보였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은 공정한 판결이 나게 해달라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2,000배를 해왔고 2,000인 서명도 받으며 쌍용자동차 문제를 알리고 있었다. 2,000이라는 숫자는 11월 11일로 2,000일을 맞는 쌍용차 투쟁을 의미한다. 김수경 씨는 “쌍용자동차 문제가 해결돼야 이 땅에 정의가 바로 설 것”이라며 “11월 13일이 역사적인 날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날 그의 말투에서는 승리에 대한 확신이 느껴졌다.

▲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 김수경 조직부장이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에서 ‘쌍용차투쟁 승리를 위한 2000인 선언’ 서명을 독려하고 있다. ⓒ최서현 촬영기자
김수경 씨와의 만남을 끝으로 전야제 취재를 마무리하며 돌아오는 발길은 가벼웠다. 주점에 모여 서로를 응원하고 밝게 웃는 노동자들의 모습에서 활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며칠 뒤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는 적법했다’는 판결이 나왔다. 신문 기사에서 ‘정리해고자 김수경’이라 적힌 팻말을 든 김수경 씨의 사진을 발견했다. 기대에 부풀어 있던 그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
다음 날인 11월 9일,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4시부터 시작하는 본 대회를 취재하고자 대학로에 갔더니 이미 대오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빼곡하게 줄지어 앉아있었다. 지나고 보니 2시부터 시작한 청계천, 을지로, 종로, 대학로를 거쳐 가는 행진부터 합류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각 단위별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바로 행진인데 그 광경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해 전국노동자대회는 특별히 첫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직선제를 앞두고 선거 홍보 분위기가 뜨거웠다. 직선제 실시는 조합원 손으로 직접 뽑은 지도부를 갖게 된다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고 분위기 쇄신의 기회로도 삼을 수 있는 중요한 일이다. 한편으론 직선제도 중요하지만 너무 선거에만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선거 홍보의 영향으로 이번 대회가 예년에 비해 다소 정적이었다는 평도 들었기 때문이다.
무대에서 하는 발언을 듣다가 집중력이 약간 흐려질 무렵, 옆에 앉아 있던 대학생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눠봤다. 대회 참가를 위해 대전에서 올라온 대학생 신 모 씨는 “나도 미래에는 노동자가 될 것이므로 ‘앞으로 내가 노동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이 대회 속에서 찾아보고자 왔다”고 참가 이유를 밝혔다. 장인하(교육 09) 씨는 “과거 노동자대회에는 이후 투쟁을 힘차게 해보자는 취지로 거리 투쟁이 있었는데 점점 투쟁적인 의미는 사라지고 단순히 전태일 열사를 기념하며 그때를 기억하자는 수준에만 머무르고 있는 것 같다”며 아쉬운 기색을 드러냈다. 그는 “전국에서 모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어렵게 올라와서 집회 한 번 하고 가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많은 사람들이 대학로를 채우며 구호를 외치는 모습에서 변화에 대한 잠재력이 느껴졌다. 이 잠재력을 분출해 약자의 권리를 쟁취해내고 잘못된 사회구조를 바로잡는 것이 바로 전태일 열사가 바라던 바가 아닐까. 전태일 열사의 정신이 노동자들에게 남아있는 한 그들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