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을 만나러 간다. 간밤에 내린 눈에 길이 꽁꽁 얼었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며 걸음을 뗐다.
영과는 올해 초 한국어교원 천막농성 투쟁발대식에서 처음 만났다. 소식을 접하고 다음날 오후 카메라를 챙겨 건국대로 향했다. 처음 보는 건물 틈에서 헤매다 어김없이 늦었다. 푸른 조끼를 입은 이들이 바닥에 옹기종기 앉아있었다. 한국어 강사들과 그들에게 배운 학생들이 차례로 마이크를 잡고 발언에 나섰다. 비장한 눈빛과 결연한 표정, 굳게 쥔 주먹이 그날 찍은 사진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학내 배포대에서 교지를 발견해 냉큼 챙겼다. 구석에서 책을 펼치는 내 모습이 영의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그 교지를 만들었다며 영이 말을 걸었다. 투쟁 현장에서 만난 글 쓰는 이들은 서로를 애틋하게 느끼기 마련이다. 우리는 번호를 교환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그리고 한동안 영을 잊고 지냈다. 한 호가 끝나면 다음 호가 시작되는 일정에 바쁘게 몸과 마음을 갈아 넣다 보면 그게 세상의 전부인 것 같다. 책과 영화는 오로지 기사에 영감을 불어넣을 수단이, 휴식과 잠은 사치가 된다. 주변 사람들의 근황에 소홀해진다. 소중한 이들을 떠나보내는 게 익숙해진다. 실은, 생의 아주 많은 부분을 유예하며 두 해를 보냈다.
그러다 아주 가끔 이 모든 업보를 청산하겠다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였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 한국을 떠나 프랑스로 갔다. 하필 프랑스였던 이유는 친구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곁에 서는 일은 때론 가진 걸 모두 털어 날아갈 만큼 중요하다고 누군가 일러줬기 때문이다. 열흘간 여행하며 많은 걸 봤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구름, 무리 지어 날아가는 새들, 당장이라도 별이 쏟아질 듯한 밤하늘, 그리고 죽다 살아난 친구의 얼굴. 고통의 터널에서 막 빠져나온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힘들다고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제 알아. 내가 없으면 영화도 없으니까, 영화를 위해서라도 영화 바깥의 삶은 필요해. 그 애가 최악의 상황에서 내게 최선만 주려고 노력했다는 걸 안다. 우리가 끝내 서로를 구하지 못한다 해도, 지금 이 몸짓이 의미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기자로 활동하는 내내 그런 마음이었다. 기사만 써서는 커다란 변화를 만들거나 누군가를 구원하지 못한다. 보도 덕에 취재원의 삶이 극적으로 나아지는 일은 거의 없다. 여전히 누군가는 해결되지 않는 일로 힘들어한다.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인 현실에 같은 구호를 되풀이하며 싸움을 이어간다. 그렇다 한들 기사 하나를 위해 우리가 분투한 시간이 의미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볼이 붉게 달아오른 한겨울 서로의 체온에 기대 버틴 시간을, 어두운 연습실에 쪼그려 앉아 눈물을 참고 고개를 끄덕이던 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 방법을 모른다.
그러는 동안 친구가 많이 생겼다. 내 일은 그들을 뒤쫓는 게 전부였다. 이전에 그를 압도하던 일이 얼마나 부피를 줄였는지, 삶에 새로 등장한 화두는 무엇인지 묻다가 하루가 갔다. 그들이 말해준 만큼 꼭 내 세상이 된 것 같았다. 그런 일엔 슬프고 아픈 만큼 무엇에도 비할 데 없는 희열이 있었다. 초보 기자의 어설픈 요청에 기꺼이 응해 준 이들을 기억한다. 생각건대, 그들의 삶이 나아지는 것과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도가 나간 뒤 종종 감사 인사를 받았다.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도리어 우리를 수호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건 조금 나중의 일이다.
본래 영과의 약속은 한 달 전이었다. 그러나 감사보고서가 발표되고, 연이은 대응에 도저히 마음 편히 만날 자신이 없어 날짜를 미뤘다. 한 번 불붙은 오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지기는 참 쉬웠다. 끝없이 가라앉던 와중 사방에서 동아줄이 내려왔다. 공동발의자 채팅방에선 시정 요구가 부당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 저널러들도 안타까워하며 힘을 보탰다. 무엇보다 독자분들이 없었다면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평소 잘 읽고 있다는 응원과 함께 하루 만에 모인 백여 장의 연서. 구명줄을 던지고 사라진 이들을 보다 보면 갚을 길 없는 마음이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이것으로 작은 보답이 된다면 우리는 좋은 기사를 쓰자고, 거듭 다짐했다.
사태가 일단락되고 잊었던 원고로 눈을 돌렸다. 꼬박 일주일 밤을 새우고 편집실 창문 밖으로 내리는 함박눈을 봤다. 끝없이 쌓이는 눈을 보며 오래된 약속을 떠올렸다. 고소한 크림 우동을 두고 영과 밀린 안부를 나눴다. 계절이 세 번 바뀌는 동안 우리 둘 모두에게 아주 많은 일이 있었다. 영은 사람들이 웃는 게 좋다고 했다. 아주 많은 사람과 친구가 돼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로 ‘농담곰’을 꼽으며, 평생 농담하면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나 역시 그렇다고 맞장구쳤다.
저널에 있는 동안 울다가 웃고, 절망하다가도 아주 작은 희망에 눈을 밝히는 사람들을 수없이 만났다. 자주 그들의 웃는 얼굴을 상상했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제 몸의 몇 배나 되는 사연을 지고 생을 살아내는 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 전전긍긍했다. 그런 이야기만이 나를 뒤흔든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서라도 지면 밖 삶을 충실히 꾸려야 한다. 그걸 깨닫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이제 어렵게 얻은 배움을 쥐고 지금까지와 다른 곳으로 떠나려 한다. 끊임없는 농담과 왁자한 웃음이 가득한 세계에서 모두를 기다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