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지지 못한 남성들
어떻게 ( )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우리 강의실에서 페미니즘 얘기하자

어떻게 ( )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사진설명 시작. 남녀가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다. 왼쪽에는 흰색 셔츠를 입은 여성이 자리한다. 오른쪽에는 손을 잡은 남성이 있다. 남성은 녹색 셔츠를 입고 걸어가고 있다. 사진설명 끝.

2022년 제20대 대선을 기점으로 표심을 가르는 새로운 축인 ‘젠더’가 등장했다. 특히 20대에선 성별에 따라 지지 정당이 극명히 갈렸다. 제21대 대선 역시 대다수 20대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른 후보를 지지했다. 연이은 선거 결과는 정치적 양극화의 중심에 20대 남성과 여성의 젠더갈등이 있음을 시사했다.

갈등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빈번히 발견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4년 연구에 따르면, 성인 응답자의 58.2%가 ‘정치 성향이 다른 이와 연애 및 결혼을 할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어느 세대보다 정치적 성향이 서로 다른 20대 남성과 여성은 어떻게 연애하고 있을까? 2030 남녀 8명의 이야기를 통해 젠더갈등 시대의 연애를 살펴봤다.

인포그래픽 시작. 1번 인터뷰이의 가명은 여름이며 2004년생이다. 2번 인터뷰이의 가명은 가을이며 2002년생이다. 3번 인터뷰이의 가명은 겨울이며 2005년생이다. 4번 인터뷰이의 이름은 나연이며 2002년생이다. 5번 인터뷰이의 이름은 하늘이며 2004년생이다. 1번부터 5번 인터뷰이는 모두 여성, 대학생 인터뷰이다. 5번부터 8번인터뷰이는 남성이다. 6번 인터뷰이의 가명은 준우이며, 2003년생 대학생이다. 7번 인터뷰이의 가명은 민우씨로, 1998년생 직장인이다. 8번 인터뷰이의 가명은 현우, 1993년생 직장인이다. 인포그래픽 끝.

(   )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어

20대 남녀의 연애에서 정치적 견해 차는 얼마나 중요할까? 기자가 만난 청년 8명 가운데 7명은 연애 상대의 정치적 견해를 고려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는 사람마다 달랐다.

연애를 시작하려면 정치적 견해가 맞아야 해

가을(♀)    연애를 시작하기 전부터 상대의 정치적 견해를 적극적으로 확인한다. 평소 정치적 발언을 숨기지 않는 편이기에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상대가 반대 진영을 지지하거나, 내 의견을 수용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애초에 연애를 시작하지 않는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과는 연애를 이어나가기 힘들어

여름(♀)    연애를 시작하기도 전에 정치적 성향부터 파악하지는 않는다. 다만 현재 이슈인 몇몇 사건을 언급하면서 상대가 어떤 성향인지 대략적으로는 확인하고자 한다. 일례로, 지금 남자친구가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전 여자친구가 페미니스트였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남자친구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도 페미니즘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하늘(♀)    민감한 부분이라 직접 묻지는 않는다. 하지만 상대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의당 후보를 지지했다고 말해서 안심하고 사귄 적은 있다. 물론 추측이 매번 맞지는 않아서, 연애를 시작한 뒤에 상대가 나와 완전히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졌다는 걸 알게 된 적도 있다. 사귀기 전에는 보통 상대가 나와 정치적 성향이 비슷하길 기대한다.

중요하지만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어

겨울(♀)   중요하지만 연인을 고르고 연애를 이어가는 데 필수는 아니다. 정치적 성향이 달라도 가치관의 차이가 크지 않다면 괜찮다.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극단적인 의견을 표현하거나 자신의 정치적 견해만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은 원치 않는다.

그렇게 중요하진 않아

준우(♂)    정치적 견해가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다. 평소 너무 극단적인 생각을 내비치지만 않으면 된다. 정치 성향은 굳이 따지자면 6~7순위 정도로 고려한다. 연애 상대를 고를 때는 성격이나 이성적 매력이 훨씬 중요하다.

현우(♂)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정치적 견해가 뚜렷하지만 않으면 상관없다. 그냥 둥근 사람이면 좋겠다.

나연(♀)    연애하면서 상대의 정치적 성향을 고려하거나 정치적 견해를 물어본 적이 없다. 원래 정치에 큰 관심이 없기도 하지만, 연인과 불편해질 만한 이야기를 굳이 안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정치 성향이 연애나 일상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리, 왜 이렇게 싸우는 거야?

이들은 정치적 견해가 다른 이와 연애하며 갈등을 겪기도 했다. 대화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종종 한계를 마주했고, 갈등을 피하기 위해 침묵하거나 까다로운 주제를 우회하기도 했다. 이들은 무엇 때문에 싸웠고, 그 싸움은 어떻게 끝났을까? 그럼에도 연애를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싸우다 지쳐 헤어졌어

하늘(♀)    사귀는 내내 남자친구와 정치적 이슈나 사회 문제에 대한 입장 차이로 갈등을 겪었다. 동덕여대 사건 때 남자친구와 처음으로 크게 싸웠다. 부당한 공학 전환에 항의하는 동덕여대 학생들의 시위가 정당하다는 내 의견에 남자친구는 여대의 존재 자체가 불공평하다고 응수했다.

이는 성차별에 관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남자친구는 우리 사회에 더 이상 성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차별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에 따라 다르게 대우할 뿐이라는 말이었다. 당시 남자친구가 내 입장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사과하며 언쟁은 일단락됐다. 갈등이 다시 불거진 건 2024년 12.3 내란 때였다. 남자친구가 탄핵 촉구 집회에 가려는 나를 막았다. 굳이 휘말리지 않으면 좋겠다는 남자친구의 말에, 우리의 견해 차를 다시금 실감했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걸 안 후에도 만남을 이어간 이유는 대화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갈등이 지속되자 상대를 바꾸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헤어졌다.

그렇게 싸우면서도 남자친구가 주는 애정이 좋아서 바로 헤어지기 어려웠다. 사귀기 전엔 가르치다 보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도 있음을 안다. 그럼에도 여전히 소통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진설명 시작. 왼쪽에 한 여성이 앉아있다. 그녀의 오른쪽으로 한 남성이 앉아있다. 둘은 정면을 응시하며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 사진설명 끝.

안 싸우려고 대화를 피하기로 했어

겨울(♀)    별 생각 없이 이준석 후보를 뽑았다는 남자친구의 말이 너무 무책임하게 들렸다. 그래서 남자친구를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남자친구는 우리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대통령 선거 결과가 무슨 상관이냐고 항변했다. 토론은 심한 언쟁으로 번졌다. 싸우지 않기 위해 정치적 이야기는 더 이상 안 꺼내기로 합의했다.

어차피 의견은 바뀌지 않는데, 자꾸 말해봐야 싸움만 난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견해 차이가 연인과 헤어질 정도로 중요하지는 않으니까. 연인은 내 하나뿐인 ‘기간제 베스트 프렌드’다.

사실 난 그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어

준우(♂)    연애를 시작하기 전부터 여자친구와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갈등이 불거진 건 대학 진학 후였다. 민감한 사안은 굳이 꺼내지 않던 나와 달리, 여자친구는 모든 걸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여자친구는 윤석열 정권에 대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지만, 나는 별 불만이 없었기에 공감하지 못했다. 그래서 R&D 예산 삭감이나 여성가족부 폐지 같은 정책이 발표될 때면 갈등이 생겼다.

가능하면 여자친구와 비슷한 입장인 것처럼 말하려고 노력했다. 실제로 같은 의견이어서가 아니라, 우리와 관계 없는 일로 여자친구와 싸우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 하지만 집회에 함께 참여하자고 말할 때는 답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럴 때는 여자친구 기분이 상하지 않게 거절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결혼 상대라고 생각하면 좀 다르다. 결혼 상대라면 정치적 성향이 다른 걸 그냥 넘기긴 어렵다. 특히 페미니스트는 아니면 좋겠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사람을 사랑해

민우(♂)    나이가 들수록 여자친구와 갈등이 생길 만한 주제는 일부러 피하게 된다. 그래도 페미니스트는 용인하기 어렵다. 페미니스트들의 목표는 너무 이상적이고 극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에야 성차별이 심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현재 여자친구도 나와 지지하는 정당은 다르지만, 페미니스트는 아니다.

연애하면서 감정 소모가 많기도 하고, 싸우면 일상에 영향이 가는 게 힘들기도 하다. 하지만 연인 덕분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발전시키게 된다. 연애에서만 얻을 수 있는 감정이 있다.

여름(♀)    결혼 제도가 주는 안정감이 좋다. 성인이 되고서부턴 연애를 할 때 항상 결혼을 염두에 뒀다. 그런 남자친구와도 갈등을 겪을 때는 있다. 남자친구는 피임을 하지 않을 때 내가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에 온전히 공감하지 못했다. 갈등이 생길 때마다, 그래도 충실하고 신실한 사람이니까 믿을 수 있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나연(♀)   남자친구는 자신이 동의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대화를 피했다. 동덕여대 사건 때도, 관심 없다며 말을 끊는 남자친구에게 속상할 때가 있었다. 그럼에도 연애를 통해 얻는 친밀감과 안정감이 좋다. 내가 무너졌을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쯤 필요하다. 연인은 내게 그런 존재다.

연애 ‘안’ 해요

일부러 연애를 거부하는 이들도 있다. 2022년 인구보건복지협회가 비혼 청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5.5%가 연애를 안 하고 있었다. 이들 중 남성의 61.4%, 여성의 82.5%가 연애를 원하지 않는 ‘자발적 비연애’ 상태였다.

이들은 왜 비연애를 택했을까? 숙명여대 손서희 교수(자유전공학부)의 2024년 논문에 따르면, 개인의 가치관 외에도 사회적 지위나 재산 규모 등 다양한 요인이 2030 남녀의 연애 의사에 영향을 미쳤다. 연애 의사를 결정하는 요인은 성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연애를 주제로 한 좌담회를 담은 〈일다〉 기사에선 성차별적 구조가 연애 의향에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성평등하지 않은 사회에서의 연애는 종종 폭력·불평등·성역할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며 남녀 사이의 불평등을 강화한다. 연인 관계에서 동의 없는 성관계와 데이트폭력을 경험한 비율이 남성보다 여성에서 각각 10.0%p, 8.4%p 높았다는 사실 역시 연애 관계에서 남녀가 다른 수준의 위험을 감수한다는 걸 보여준다. 개인적 이유 외에도 비연애를 택한 여러 구조적 원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진설명 시작. 사진 왼쪽에 한 여성이 앉아있다. 여성은 남성을 바라보며 대화를 건낸다. 오른쪽에 앉은 남성은 여성을 바라보며 웃고 있다. 사진설명 끝.

젠더갈등이 일상이 된 시대에서 우리는 종종 연애를 ‘비슷한 입장을 가진 사람끼리만 가능한 일’로 오해한다. 실제로 정치적 견해의 차이 때문에 연인과 헤어진 이들도 있다. 연애를 안 하는 것은 갈등과 위험을 피하는 한 가지 길이다.

그러나 관계를 포기하는 것만이 방법은 아닐 수 있다. 인터뷰에서 나타난 현실 역시 그보다 조금 더 복잡하고, 동시에 더 희망적이다. 8명의 인터뷰이들은 연인과 생각이 달라 싸우기도, 논쟁이 격해져 대화를 피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타인과 관계를 맺으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중요한 건 어떻게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갈지다. 행복을 위해 특정 입장을 ‘보이콧’하는 것만이 해법은 아니지 않을까. 우선 갈등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과정에서 공존의 가능성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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