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지지 못한 남성들

사진 설명 시작. 교복, 군복, 양복이 순서대로 행거에 걸려 있다. 사진 설명 끝.

여성가족부 출범 24년 만에 명칭에서 ‘여성’이 빠졌다. 2025년 10월 1일 여성가족부가 성평등가족부로 개편된 가운데 ‘성형평성기획과’ 신설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성형평성기획과는 청년 남성이 겪는 ‘역차별’을 정책 과제로 발굴한다. 청년 남성의 불만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의지로 읽힌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몇 달 새 ‘남성 역차별’을 세 차례 언급하며 시정을 촉구했다. 대통령의 꾸준한 언급과 성평등가족부 개편을 둘러싸고 여성단체의 날선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명백한 구조적 차별을 외면하고, 존재조차 의문인 역차별을 찾으라는 지시가 성평등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한국사회에서 ‘젠더갈등’이란 말이 수없이 반복되는 동안 정작 ‘젠더’는 청년 남성의 삶을 설명하는 언어가 되지 못했다. 언어의 공백 속 정치권은 ‘역차별’이라는 납작한 단어로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어디서도 제대로 호명되지 못하는 청년 남성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역차별’이란 말의 한계

일각에선 역차별이 청년 남성의 상황을 설명하는 정확한 단어가 아니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역차별이란 기존의 차별을 시정하려고 만든 제도가 다른 집단에 피해를 주는 일을 가리킨다.

그런데 역차별이 아닌 것을 역차별로 일컫는 경우가 왕왕 있다. ‘남성 역차별’의 예로 자주 거론되는 징병제를 살펴보자. 『증명과 변명』을 쓴 안희제 작가는 징병제가 한국전쟁과 분단이라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환경에서 도입돼, 그것이 근대화 과정에서 남성을 국가 발전의 주체로 만든 정책, 제도, 산업 등과 연결돼 작동한 것이지 여성의 권익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므로 역차별로 볼 수 없다고 설명한다. 안 작가는 “청년 남성이 느끼는 억울함을 이야기하는 것과 그것을 ‘역차별’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구분돼야 한다”고 짚었다.

역차별이란 단어로 모두 설명되진 않지만, 청년 남성은 실제로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느낀다. 2020년 여성정책연구원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청년 남성의 51.7%는 ‘한국 사회가 남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응답했다. 이들이 불평등하다고 느낀 이유는 무엇일까. 기자가 만난 청년 남성들은 여러 화두를 꺼냈다.

찬영(가명, 아동소비자 25) 씨는 가장 먼저 군대 이야기를 꺼냈다. “20대 초반에 여러 일을 할 수 있는데 군대 때문에 선택지가 너무 좁혀져요.” 대학생 남성 대다수는 재학 중 군 복무를 한다. 이들은 교환학생이나 인턴십, 창업 준비 등 대학생활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군 복무 이후로 미룬다. 여학생에 비해 졸업이 늦어진다는 부담 때문에, 이런 것들을 아예 선택지에서 지우는 경우도 많다.

군인 월급 인상도 이러한 박탈감을 해소하지는 못한다. 찬영 씨는 1년 반이란 복무 기간에 상응하는 충분한 보상은 여전히 체감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월급이 오르고 있다지만, 기성세대는 ‘우린 한 달에 5만 원 받았는데 너희는 왜 그렇게 많이 받느냐’는 식으로 말하죠. 그게 오히려 더 큰 박탈감으로 다가와요.”

대학생 연석(가명) 씨는 남성만 징병 대상에 포함하는 게 남성에 대한 차별이라 말했다. 여성 군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여성도 문제 없이 병역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게 연석 씨의 주장이다.

교육 기회의 불평등도 거론됐다. 연석 씨는 “일부 여자대학에 로스쿨, 약학과, 의학과 같은 인기 학과 인원을 배정하는 게 문제”라 이야기했다. “여성만 다닐 수 있는 여대가 아닌 남녀공학 대학교에 인기 학과 인원을 배정해야 공평하다”는 것이다.

‘비례대표 여성할당제’도 언급됐다. 찬영 씨는 여성할당제가 선거에서 공정한 경쟁을 저해한다며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빼앗아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고 지적했다. 비례대표 여성할당제가 오히려 수혜자의 능력에 대한 의심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제도의 배경엔 특정 분야에 여성이 턱없이 적은 현실이 있다. 제22대 국회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은 20%이며, 2022년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여성 의사는 전체의 25.5%에 불과하다. 할당제와 여대 의대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남성에 비해 적은 현실은, 적극적 우대 조치*를 필요로 하는 불평등이 실재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기울어진 운동장을 보정하는 조치가, 청년 남성에겐 역차별로 느껴진다.

*적극적 우대 조치: 과거의 차별로 인해 불리한 위치에 있는 소수 집단이나 약자에게 실질적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 대학 입학이나 취업 등에서 가산점이나 특별 전형 등 혜택을 주는 정책. 비례대표 후보자 명부의 홀수번째 순위마다 여성을 추천할 것을 의무화한 ‘비례대표 여성할당제’도 이에 포함된다.

정치는 왜 그들을 불렀을까

정치권은 청년 남성을 어떻게 호명하고 있을까. 2020년대 들어 ‘이대남’, ‘2030 남성 표심’은 선거에서 중요하게 분석됐다. 제20대 대선에서는 ‘병사 월급 200만 원’과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세운 윤석열 당시 후보가 청년 남성의 지지를 받으며 급부상했다. 이후 정치권은 본격적으로 청년 남성을 기성세대 남성과도, 청년 여성과도 구별하기 시작했다.

‘남성 역차별론’이 정치권에서 처음 등장한 건 이준석 현 개혁신당 대표가 2021년 기존 젠더 정책이 ‘역차별’을 조장한다고 주장하면서다. 이 대표는 〈중앙일보〉 기고문에서 ‘2030 세대는 성별에 따른 기회의 불평등을 겪지 않는다’며 ‘과거의 유산인 할당제와 불합리한 가산점제를 재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열광한 2030 남성의 강력한 지지를 기반으로 이 대표는 현재까지 ‘청년 정치인’을 자처한다. 이재명 정부 역시 2026년 총선을 앞두고 ‘역차별’이라는 단어로 다시금 청년 남성을 호명한다.

정치권의 행보를 청년 남성은 어떻게 평가할까. 연석 씨는 이재명 대통령이 “남성 역차별에 대한 조사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는 점을 짚으며 “남녀 모두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신호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존 젠더 정책에서 다루지 않은 청년 남성의 경험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젠더갈등 해소의 실마리가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접근엔 한계가 있다. 페미니즘 단체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의 이한 활동가는 “‘역차별’이라는 단어가 정치인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더 이상 청년 남성의 경험을 설명하기 위한 언어가 아니라 선거 전략을 위한 도구로 바뀐다”고 지적했다. 현 정부의 움직임이 갈등을 조정하긴커녕 되레 청년 남성의 불만을 표심으로 변환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문제의 구조적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자리에서, 정치권은 외려 성차별을 외면하고 여성을 남성의 적으로 설정하고 있다.

중요한 건 청년 남성이 겪는 병역 문제, 고용 불안정, 주거 부담의 원인을 젠더만으로 설명할 수 없단 점이다. 이러한 문제를 ‘역차별’이라는 단어 아래 남성과 여성의 갈등으로 해석할 경우, 청년 남성은 젠더 외에 다른 수단으로 자신의 문제를 표현하기 어려워진다. 당장은 ‘이제야 정치가 우리의 억울함을 대변해 준다’고 느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이 경험한 불합리를 설명할 다양한 언어를 잃게 된다. 이 과정에서 표출하지 못한 불만은 타 집단을 향한 적대로 전환되고, 정작 청년 남성의 삶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국에서 ‘괜찮은 남자’가 된다는 것

청년 남성이 토로하는 어려움은 미래에 대한 막막함과 관련 있다. 군 복무의 부담, 불안정한 고용, 높아진 주거비에서 느끼는 어려움은 종종 ‘괜찮은 남자’가 돼야 한다는 압박에서 온다. 이들이 생각하는 ‘괜찮은 남자’는 어떤 이일까.

청년 남성이 그리는 좋은 삶엔 결혼과 가족이 있다. 2024년 출산·고령사회위원회 조사에서 여성 응답자의 48.2%가 결혼 의향이 있다고 밝힌 데 반해, 남성은 72.0%가 그렇다고 답했다. 한편 결혼을 망설이는 이유로 남성은 여성에 비해 결혼식과 신혼집 마련 등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을 더 많이 꼽았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남성이 자신의 학벌, 연봉 등 ‘스펙’을 늘어놓고 자신이 결혼 상대로서 어떤지 묻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일정한 경제력을 갖추지 않으면 결혼할 수 없고, 결혼에 실패하면 정상적인 삶의 궤도에 들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남성과 여성은 전통적인 성역할을 그대로 답습한다. 2024년 인구보건복지협회 조사에 따르면, 여성이 결혼할 남성에게 갖추길 바라는 조건으로는 전세 자금 마련, 학력, 정규직 등이 있었다. 남성이 여성에게 기대하는 조건으로는 시댁과 가까이 지내기, 육아·가사 참여 등이 나왔다. 직장에서 돈을 벌어 오는 남편과, 육아와 가사에 종사하는 아내. 가부장제가 강요하는 성역할은 결혼을 통해 강화된다. 이들에게 ‘괜찮은 남자’란 곧 좋은 직장에 다니며 아내와 자식을 부양할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사진 설명 시작.

“‘남자로 살기 힘들다’고 말할 때, 그냥 남성이어서 살기 힘든 건지 혹은 가부장제 안의 ‘그 남성’이 되기가 힘든 건지 이야기해야 합니다.” 안희제 작가는 우리 사회에서 결혼 제도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고, 남성에게는 가장이 되도록 요구한다고 주장한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엄마, 아빠,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을 이상적이고 보편적인 가족으로 여기는 것. 이성애와 혼인을 기반으로 하며, 남성 중심의 위계와 가사·육아·생계 부양 등 성별에 따른 역할 분담을 강조한다.

아버지 또는 남편이 되는 것 외에 다른 삶의 경로가 제시되지 않을 때, ‘괜찮은 남자’가 될 수 있는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처럼 가부장제는 특정한 조건을 충족한 남성에게만 ‘남자’의 자격을 부여한다. 그러나 정규직 노동자가 줄어들고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희미해지는 요즘,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괜찮은 남자’의 자격 조건을 폐기하지 않는 한, 청년 남성은 계속 불안할 수밖에 없다. 낡은 규범을 뿌리 뽑아야 하는 이유다.

사진 설명 시작. 책가방을 맨 남성의 상상이 두 개의 생각 풍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한 쪽에는 아이와 부인과 함께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다른 한쪽에는 턱시도를 입고 드레스를 입은 여자(부인)과 함께하는 남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사진 설명 끝.

남성에게도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한국사회에서 성평등은 종종 여성만을 위한 것으로 오해된다. 페미니즘을 ‘여성우월주의’나 ‘남성차별’로 여기는 식이다. 그러나 성평등은 훨씬 폭넓은 개념이다. 이한 활동가는 “성평등은 남성도 전통적 남성성에서 벗어나 자기 감정과 삶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한다.

페미니즘 리부트를 거치며, 한국 여성은 여성으로서 겪는 문제를 구조적 틀 안에서 바라볼 수 있는 ‘페미니즘’이란 도구를 얻었다. 내가 처한 상황을 해석할 자원이 주어지면, 대안을 찾기도 쉽다. 청년 여성은 페미니즘을 자기 언어로 받아들이며, 가부장제가 제시한 여성의 역할을 따르지 않는 다른 삶을 그릴 수 있었다.

청년 남성에겐 이런 기회가 없었다. 이한 활동가는 “남성들에게도 젠더라는 언어를 주자”고 말한다. 가부장제가 제시하는 남성의 틀을 벗어나 ‘내가 되고 싶은 남자’를 새롭게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젠더 개념은 청년 남성이 겪는 어려움이 개인의 능력 부족이나 여성과의 ‘불평등’한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남성이라는 이유로 경험한 일을 구조적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젠더 개념이 “남성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이한 활동가는 말한다. 이는 다양한 남성성의 포용으로 이어진다.

사진 설명 시작. 한국 맨엔게이지네트워크 발족식에서 촬영된 기념 사진.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남성이 살기 위해서라도 이 남성성은 해체돼야 한다.” 2025년 7월, ‘한국 맨엔게이지네트워크’ 발족식 토크쇼에서 고상균 남다른성교육연구소 소장은 말했다. 가부장제가 강요하는 ‘남성다움’이 도리어 남성의 삶을 제약한다는 뜻이다. 한국 맨엔게이지네트워크는 ‘맨엔게이지 동맹(MenEngage Global Alliance)’의 한국 지부로, 가부장적 남성성을 성찰하고 젠더 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날 발족식에 모인 이들은 ‘대안적 남성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기존의 남성성은 남성에게 감정 표현을 자제하고, 여성을 욕망하기만 요구한다는 것이다. 안희제 작가는 대안적 남성성을 상상할 때 지금 청년들이 겪는 경제적·사회적 어려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성평등은 이야기의 물꼬를 틀 유일한 방법이다. 청년 남성은 성평등을 제 삶에 끌어올 때, 경쟁과 강인함으로 연결된 기존의 남성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감정 표현·관계 맺기·돌봄과 같은 일을 남성의 것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성평등은 남성에게서 무언가를 빼앗는 것이 아닌, 여성과 남성 모두의 선택지를 넓히는 일이다.

오늘날 청년 남성은 사회와 자신이 지은 남성성의 울타리에 갇혀있다. 그 안에서 청년 남성이 호소하는 어려움은 누구에게도 가닿지 않고 제자리를 맴돈다. 와중에 정치권은 이들의 경험을 ‘역차별’이란 수사로 단순화하고, 표심 잡기에 이용한다. 이 과정에서 일부 청년 남성은 성평등을 남성과 여성의 이권 다툼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청년 남성들이 성평등을 자신의 언어로 받아들인다면, 여태 말해지지 못한 이야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건 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해석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다. 그 과정을 통해서만 청년 남성은 성평등한 사회를 함께 고민할 동료가 될 수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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