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이 페미니즘에게로 간다

사진설명 시작.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무대에 올라 초록색 판 위에 빨간 물감으로 엑스 자를 칠하고 있다. 칠판 모양의 판 위에는 글씨가 빼곡히 쓰여있다. 사진설명 끝.

2015년 2월, 한 남고생이 ‘페미니스트가 싫다’며 이슬람 무장단체 IS에 가담한 사건이 알려졌다. 칼럼니스트 김태훈은 이 사건을 빌미로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라는 글을 발표했다. 페미니즘을 테러 조직보다 위험한 것으로 몰아간 선동이었다. 여성혐오에 대한 분노와 공감이 퍼지며, 여성들은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선언했다. ‘페미니즘 리부트’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페미니스트를 향한 낙인과 여성혐오는 여전하지만 그에 대한 문제의식과 페미니즘을 둘러싼 관심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 이 땅의 청소년은 페미니즘이 진전과 퇴보를 거듭하는 격변의 시간 속에 성장했다. 이들은 어디서, 어떻게 페미니즘과 만나고 있을까. 그 과정에서 무엇에 가로막히고, 그럼에도 어떤 의미를 발견했을까. 학교는 청소년과 페미니즘이 가장 역동적으로 만나는 공간이다. 청소년의 생생한 목소리를 가까이서 들어봤다.

사진설명 시작. 인터뷰 참여자에 관한 정보를 표로 정리했다. 채원(가명), 17세, 여, 여자고등학교. 윤서, 16세, 여, 여자고등학교. 한별, 15세, 여, 공학중학교. 성령, 14세, 남, 남자중학교. 수영, 18세, 남, 학교 밖 청소년. 사진설명 끝.

젠더폭력 방치하는 학교

“딥페이크 당해도 괜찮다는 거냐.” 졸업앨범 폐지에 반대한 한별 씨에게 교사가 던진 말이다. 2024년, 학교 안 딥페이크 성범죄의 실상이 드러났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4년 1월부터 11월까지 집계된 피해 학생만 908명이다. 전국 학교에서 ‘소셜미디어에 사진 게시하지 않기’ 등의 지침이 담긴 가정통신문을 보내고, 졸업앨범을 폐지했다.

사진을 내리고 졸업앨범을 없애도, 젠더폭력의 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2024년 9월 84개 여성단체는 성명을 통해 구조적 성차별이 딥페이크 성범죄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여성을 성적 대상이자 놀잇감으로 여기는 여성혐오 문화가 학교와 사회를 위협하는 범죄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학교가 여성 청소년에게 위험한 공간이 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8년 청소년들은 학교 안 성폭력을 고발하는 ‘스쿨미투’ 운동을 전개했다. 이들이 폭로한 건 가해자 몇 명이 아니라 학교에 깊게 뿌리내린 성폭력 문화였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도 매년 100여 건의 교사 성비위 사건이 발생한다.

기자가 만난 청소년들은 성적 대상화가 학교에서 매일같이 반복되는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한다. 성령 씨가 다니는 남중에선 학생들이 컴퓨터실 화면에 여성의 신체 사진을 띄워놓고 품평한다. 중학생 한별 씨의 교실에선 ‘여자라면 일단 날씬하고 예뻐야지’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오간다. 성적 대상화는 일종의 놀이이자 일상적 대화 소재가 됐다.

또래 여성집단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윤서 씨는 여성 친구들에게 ‘남자 같다’는 말을 들은 뒤로 자신의 행동을 신경쓰기 시작했다. 젠더규범의 잣대로 서로를 평가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용모와 행동을 제한하게 되는 것이다. 채원 씨는 “여고 친구들이 성소수자를 ‘징그럽다’거나 ‘비정상’이라 말하는 것을 봤다”며, 또래 여성 사이의 혐오를 증언했다.

차별과 혐오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으며, 학교는 젠더폭력을 양산하는 공간이 됐다. 수영 씨가 규범적 남성성에서 벗어나는 행동이나 외형을 보이면, 곧바로 ‘너 여자냐’, ‘너 게이냐’ 같은 혐오표현이 돌아왔다. 그는 “그런 공간에 있다 보면 누구나 혐오표현을 반복하게 되고,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기 쉬워진다”고 말했다.

그래도 청소년은 페미니즘을 한다

학교는 젠더폭력을 방치하고, 차별과 혐오는 청소년의 일상이 됐다. 그럼에도, 혹은 바로 그렇기에 페미니즘과 만나는 청소년들이 있다. 이들은 언제 어떻게 페미니즘을 접했고, 그 경험이 이들을 어떻게 바꿔놨을까. 자신만의 방식으로 페미니즘을 받아들이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진설명 시작. 성령 활동가가 앞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설명 끝.

페미니즘을 어떻게 처음 접했나.

윤서 초등학생 때, 배우 엠마 왓슨이 ‘HeForShe 캠페인’*을 홍보하며 연설하는 영상을 봤다. 그때 페미니즘을 처음 알았고, 누구나 페미니스트가 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채원 중학생 때부터 사람들이 미디어에서 페미니즘을 두고 싸우는 걸 자주 봤다. 왜 상대를 ‘페미’라고 비난하며 편 갈라 싸우는지 궁금해졌고, 자연스레 페미니즘에 관심이 생겼다.

수영 2020년 전후로 ‘문재인 정부가 페미니즘에 경도된 탓에 20대 남성들이 민주당을 등졌다’는 식의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그렇지, 너무 경도되면 안 되지’라고 생각하며, 페미니즘은 극단적인 주장이라고 여겼다.

*HeForShe 캠페인: 유엔 여성기구가 2014년에 시작한, 성평등 실현을 위해 남성들의 관심과 참여를 촉구하는 연대 운동

생각이 변한 계기는.

수영 한때는 평등에 대한 요구가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중에 다니며 ‘여자 같다’는 식의 혐오표현을 듣다 보니, 어쩌면 내게 페미니즘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청소년운동에 참여하며 여학생은 흰색 속옷만 입게 하는 식의 복장 규제에 문제의식을 느꼈고, 학교 안 성폭력을 고발하는 스쿨미투 운동을 알게 됐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성차별을 실감했다.

성령 처음엔 유튜브에서 ‘신남성연대’ 같은 반페미니즘 성향의 영상을 보고서, 페미니즘은 ‘남성을 차별하는 나쁜 사상’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청소년운동을 시작하고 페미니즘을 배우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특히,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을 읽고 관점이 크게 바뀌었다. 책에선 군가산점제도를 논의할 때 ‘젠더갈등’의 틀에서 벗어나, 개인에게 선택권 없이 의무만 강요하는 징병제의 비민주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경로로 페미니즘을 접하나.

채원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를 정기 후원하며 활동 소식을 받아 본다. 후원의 밤이나 3·8 여성대회에 참석한 경험도 뜻깊었다. 미디어에선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목소리만 조명되기에 두려움을 느끼기 쉬운데, 밝고 따뜻한 현장 분위기가 큰 힘을 줬다.

윤서 어머니와 여성 문제에 관해 자주 대화한다. 어머니는 내 주변에서 페미니즘을 오롯이 이해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왜곡되는 상황에 대해 함께 고민하기도 한다. 20년 전과 비교해 여성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고, 또 무엇이 여전한지 얘기 나눌 때도 있다.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나.

성령 그렇다. 너무 당연한 걸 말하는 느낌이다. 페미니즘은 곧 성평등주의다. 성에 관계없이 누구나 평등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모두 페미니스트인 셈이다. 그래서 나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게 당당하고 떳떳하다.

한별 그렇지는 않다. 아직 내가 모르는 부분이 많고, 관심을 더 많이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 내는 사람이 많다. 겨우 나 정도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 같다.

페미니즘을 접하고 변한 점은.

한별 주변의 차별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사회가 소수자를 어떻게 배제하는지, 일상에서 어떤 혐오표현이 오가는지 자주 생각하게 됐다. 또 이전보다 외모 강박이 줄었다. 탈코르셋 운동*을 접하고 사회가 여성의 외모에 획일적 기준을 부과하고 있음을 깨달았고, 그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졌다.

수영 페미니즘이라는 ‘언어’가 생겼다. 예전엔 불편함을 느껴도 무엇이 문제인지 설명하기 어려웠다. 이제는 그게 왜 차별인지, 왜 비판해야 하는지 안다. 내 경험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차별의 결과로 얘기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거다.

채원 과거엔 사회문제 앞에서 막연한 무력감을 느꼈다. 혼자선 넘을 수 없는 높은 산 같았다. 하지만 페미니즘을 접하며 연대의 힘을 깨달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함께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구나, 정말로 모이면 힘이 되는구나’ 생각했다. 나도 현장에서 직접 세상과 마주하고 싶다. 이제는 희망을 품고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탈코르셋 운동: 여성에게 강요되는 외적·내적 기준과 획일적 여성다움에 저항하는 실천적 운동

반페미니즘 속에서 페미니즘 (안) 말하기

청소년들은 페미니즘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도, 이를 마음껏 말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곤 한다. ‘페미’가 곧 욕으로 쓰이는 학교에서 이들은 때때로 입을 닫는다. 페미니즘에 낙인을 찍고 혐오를 방치하는 학교에서, 청소년들은 어떻게 페미니즘을 말하거나 말하지 않을까.

사진설명 시작. 수영 활동가가 무대에서 마이크를 쥐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설명 끝.

주변에선 페미니즘을 어떻게 보나.

윤서 페미니즘의 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다. 보통 여성우월주의나 남성혐오라 생각한다.

성령 학교에서 페미니즘은 민감한 주제다. 하루는 외부 강사가 성교육 수업을 했는데, 한 학생이 ‘선생님 페미니스트예요?’라고 물었다. 강사가 ‘그렇다’고 답하자 교실이 술렁였다. 교사들은 페미니즘을 입에 올리지 않고, 학생들은 농담이나 조롱의 소재로 삼는다.

페미니즘에 관해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기도 하나.

채원 여성 대상 범죄처럼 마음 아픈 일이 생기면 꼭 친구들과 얘기한다. 서로 화나는 마음을 나누고 공감하는 시간이 소중하다. 여중에 있을 땐 마음 맞는 친구들이 많았다. 지금도 여고에 다니지만, 공학 중학교를 졸업한 친구에겐 어쩐지 모든 걸 털어놓기 어렵다. 학원엔 남학생도 있고 어른도 있어, 의도치 않게 사회문제를 꺼내지 않게 된다. 나만의 경계를 정해두고 얘기를 할 사람과 하지 않을 사람을 나누는 거다.

한별 친한 친구들과 화나는 일을 이야기하지만,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그러지 못한다. 하루는 학교에서 가족 구성원의 역할을 배치하는 조별 과제를 하는데, 조원들이 자연스럽게 엄마를 부엌에 배치했다. 잘못된 젠더규범이라고 지적했더니, ‘보통 다 그렇게 하니까 넘어가자’는 말이 돌아왔다. 나 빼고 다들 친한 상황이라 말을 더 꺼낼 수 없었다.

학교에서 반페미니즘 정서를 체감하나.

윤서 반페미니즘적 친구와 직접 충돌한 적은 없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느낀다. ‘난 차라리 ‘남미새’*가 페미보다 낫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한 친구는 ‘너 페미야?’를 달고 사는 남학생들 때문에 짜증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남미새: ‘남자에 미친 새끼’의 줄임말로, 남성과의 연애·관계에 강하게 몰두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은어다.

성령 어릴 때부터 반페미니즘 정서를 접해서 이젠 익숙하다. ‘너 페미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하면, ‘너 게이냐’, ‘남자가 왜 페미 하냐’ 같은 말이 돌아온다.

수영 학교에서 혐오 반대 포스터를 붙이는 캠페인을 했다. 내가 포스터를 붙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 괴롭힘을 당했다. 내가 불편해할 화제를 일부러 꺼내거나, 노골적으로 ‘페미’ 운운하며 조롱했다. 매일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혐오표현을 들은 게 큰 상처로 남았다.

그럴 땐 어떻게 대응하나.

수영 그냥 무시하는 쪽을 택했다. 처음엔 말로 설득하려 했지만 대부분 논의 자체를 원치 않았다. 이후 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교사가 간단히 주의만 줘서는 상황이 바뀌지 않았다. 아예 관심 갖지 않는 교사도 있었다.

성령 그냥 웃고 넘길 때가 많다. 갈등을 피하고 싶고, 내 말에 상대의 기분이 상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윤서 웬만하면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를 직접 안 쓰고 돌려 설명한다. 친구가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다’ 같은 말을 하면, 그런 뜻이 아니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데 잘 모르는 사람이 ‘페미’를 욕으로 쓸 땐 그냥 무시한다. 내가 뭐라 말한들 달라질 것 같지 않으니까.

동조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기도 하나.

성령 느낄 수밖에 없다. 공동체에서 잘 지내려면 나도 혐오발언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낀다. 그래도 그냥 무시하려고 애쓴다.

수영 만약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면, 페미니스트임을 밝히지 않고 반페미니즘에 동조할 것 같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다. 혐오에 반대하거나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 괴롭힘이 돌아온다. 버티려면 동조할 수밖에 없다.

페미니즘을 말하기 망설였던 경험이 있나.

채원 페미니즘을 주제로 발표를 준비하다 그만둔 적이 있다. 1년 동안 같은 반에서 지내야 하는 친구들인데, 내게 낙인을 찍거나 나를 부정적인 사람으로 볼까 걱정됐다. 또 내가 전문성이 부족해 잘못된 지식을 전하게 될까 우려됐다.

한별 어른에게 얘기하긴 더 어렵다. 교실에서 느낀 문제를 선생님에게 말하려고 해도, 선생님의 인식이 어떨지 알 수 없어 망설이게 된다. 문제를 지적했다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치부된 적이 있어, 선생님을 완전히 신뢰하기 어렵다.

페미니즘 교육이라는 안전망

학교 안 젠더폭력과 혐오를 줄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인터뷰이들은 한목소리로 교육을 꼽았다. “누가 좀 제대로 알려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페미니즘 교육은 어떻게 가능할까. 청소년이 안전한 학교를 만들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

동백작은학교 교장 이임주는 페미니즘을 필수 교과로 운영한 경험을 담아 『국어, 수학, 페미니즘!』을 썼다. 그는 페미니즘 교육이 “폭력으로부터 청소년을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망”이라고 말한다. 학교가 이 역할을 방기하면 학생들은 불평등과 혐오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그는 청소년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가 “관계를 형성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평등 가치를 체득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선 일회성 수업을 넘어선 성평등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학교의 규범과 문화 속에서 학생들이 페미니즘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현직 고등학교 교사 이현애는 수업 중 혐오표현이 나오면 이를 즉시 수업 주제로 삼아 토론을 진행한다. 학생들은 토론을 통해 당연했던 일상을 비판적으로 돌아본다. 학생들이 즐겨보는 뉴미디어를 비판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수업도 진행했다. 일상적으로 여성혐오가 이뤄지는 미디어 환경을 스스로 성찰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청소년이 직접 차별을 문제시하고 안전하게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현애 교사는 “학생들이 차별적 언어에 항의하거나 주류 사회와 다른 의견을 말해도 공격받지 않는다는 신뢰를 갖고 말할 때 페미니즘 교육이 만드는 변화를 실감한다”고 말했다. ‘말해도 된다’는 신뢰감은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이들에게도 주어져야 한다. 이임주 교사는 “혐오를 비판하되, 혐오를 지탱하는 구조를 함께 살피는 교육이 필요하다”며, “반페미니즘을 학습한 학생에게도 지속적으로 말을 걸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설명 시작. 두 학생이 피켓을 들고 있다. 피켓 위엔 ‘내가 원하는 학교는 안전한 학교다’, ‘내가 원하는 학교는 여학생도 살 만한 학교다’라고 적혀있다. 사진설명 끝.

페미니즘 교육은 교사 개인의 노력만으로 실현될 수 없다. 이현애 교사는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 성평등이 반드시 명시돼야 한다”며 제도적 측면을 강조했다. 일상 속 성차별을 생활 지도로 다루고, 모든 과목에 성평등 관점을 반영하며, 페미니즘을 정식 교과로 만드는 변화는 제도가 갖춰질 때 온전히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도덕·보건 과목에서 ‘성평등’ 용어를 삭제한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올해부터 적용됐다. 성평등 도서는 검열되고 폐기됐다. 2024년 경기도 교육청은 학교 도서관의 성평등·성교육 도서 2,517권을 폐기하고 3,340권을 열람 제한했다. 성평등이 교육의 중심에 자리하지 않으면 평등을 말하는 일도 안전할 수 없다. 청소년에게 안전한 학교를 만드는 일은 교육의 핵심 과제다.

이임주 교사는 “청소년과의 연대는 청소년의 언어를 재해석하거나 완성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공간을 비우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청소년들은 이미 분노하며 질문하고 있다. 학교는 왜 차별을 방치하는지, ‘페미’가 왜 욕으로 쓰이는지, 어떻게 해야 학교에서 평등을 배울 수 있을지. 혐오의 최전선에서 저항하고 도전하는 청소년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들어야 할 때다.

페미니즘은 내게 어떤 의미인가.

채원 뗄 수 없는 나의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

윤서 당연한 것. 앞으로도 계속 가져갈 것.

한별 사회를 더 나은 쪽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

성령 나를 변하게 만들어 준 것.

수영 나를 말할 수 있게 한 언어.

사진설명 시작. 종이 위에 다음의 문장이 적혀있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다. 강력한 여성으로 변해 당신의 세계를 박살내러 돌아온다. 사진설명 끝.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전 기사

마지막 선택지를 마련하는 것

다음 기사

인헌아파트 정차가 그렇게 불편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