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중아, 나는 죽어. 그걸 받아들이는 데까지 나도 힘들었어. 나도 살고 싶어. 살 수 있는 가망이 1%라도 있다면 나도 무슨 짓이라도 했을 거야. 근데 없어. 희망이라는 게 사람을 말려 죽여. 더는 아프지 않고, 내가 누구인지 아는 채로 죽고 싶은 게 그렇게 큰 잘못이고 욕심이야? 적어도 나한테 고통을 거절할 권리는 있지 않아?”
모두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한다. 외면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의 주인공, 상연은 바로 이 현실을 직면한다. 말기 암 판정을 받았고, 완치를 기대하기 힘들다. 고통에 몸부림치지만,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상연은 무의미한 고통을 거절하고, 자신이 선택한 방식으로 죽기를 결심한다. 상연의 죽음으로 끝나는 이 이야기는 ‘죽을 권리’에 대한 관심을 촉발했다.
열 명 중 여덟 명이 찬성하지만
현대의학은 인간의 수명을 크게 연장했다. 항암제와 인공호흡기, 혈액 투석 같은 연명의료* 기술은 말기 환자가 더 오래 버틸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회복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이런 시술은 고통까지 함께 연장한다. 환자들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 ‘죽기 전까지 남은 시간을 어떻게 견디느냐’를 고민한다. ‘죽을 권리’, 즉 스스로 죽음을 결정할 권리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연명의료: 치료될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에게 치료 효과 없이 죽기 전의 기간을 연장하는 의료 시술
조력사망은 죽을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한 가지 방안이다. 완치가 불가능한 질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 환자가 요청하면, 의사는 죽음을 앞당기는 약을 처방한다. 현재 네덜란드, 스페인, 캐나다, 호주 등 10여 개 국가에서 조력사망이 허용된다. 단, ▲치료 방법이 사실상 없고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지속되며 ▲환자가 충분한 판단 능력을 갖춘 상태에서 ▲여러 차례 자발적인 의사를 밝힌 경우로 엄격히 제한된다.
한국은 아직 조력사망을 허용하지 않는다. 말기 환자가 더 이상 연명의료를 원치 않을 경우,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을 작성해 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길은 열려있다. 그러나 연명의료결정법은 인위적인 생명 연장을 중단할 권리만 보장할 뿐, 죽음의 시점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는 보장하지 않는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픈 환자들에겐 충분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
2023년 10월, 조력사망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현 상황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조력사망제도의 부재가 행복을 추구하고 자기 삶을 결정할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청구인 이명식 씨는 원인 불명의 불치병 ‘척수염’을 진단받고 하반신 마비와 극심한 환상통*에 시달리고 있다. 이 씨는 2024년 3월 국회에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통을 참고 살아가기엔 너무 힘들다. 그렇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가족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기고 싶진 않다.”
*환상통: 아무런 자극이 없어도 사지에서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증상.
비슷한 취지의 헌법소원이 이미 2017년과 2018년 제기됐지만 헌법재판소는 모두 각하했다. 구체적인 기본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았고, 조력사망 도입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5년 2월 발표한 「미래 사회 대비를 위한 웰다잉 논의의 경향 및 과제」에 따르면 응답자 중 82%는 조력사망 합법화에 찬성했다. 열 명 중 여덟 명이 찬성하는데도 이루지 못한 사회적 합의란 무엇일까.
스위스 조력사망, 쉽지 않은 여정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한국에서 조력사망을 원하는 환자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하나다. 스위스로 가는 것이다. 스위스는 외국인에게 조력사망을 허용하는 유일한 국가다. 2023년 4월 기준 약 300명의 한국인이 디그니타스·라이프서클·엑시트인터내셔널·페가소스 등 조력사망을 돕는 스위스 단체에 가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남유하 작가의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는 2023년 8월, 작가의 어머니가 디그니타스의 도움으로 조력사망을 택한 과정을 세세하게 그린 에세이다. 유방암 완치 판정을 받았던 어머니는 1년 뒤 암이 뼈로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뼈로 전이된 암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칼로 쿡쿡 찌르는 듯한 통증을 유발했다. 어머니는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삶을 마무리할 좋은 방법을 고민하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조력사망을 떠올리고, 스위스행을 결심한다.

모녀의 여정은 험난했다. 먼저 디그니타스로부터 ‘그린라이트’라 불리는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라이프 리포트’를 영어로 써내고, 영어로 된 의료 기록도 보내야 한다. 언어 장벽에 부딪혀 중도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 한국에선 조력사망이 불법이므로 병원에서 의료 기록서를 뗄 때 다른 핑계를 대야 한다.
엄격한 심사를 통과해 허가가 나오면 출국 준비에 들어간다. 인천에서 취리히까지 직항 노선은 12시간이 걸리는데, 중증 환자에게 장시간 비행은 사실상 고문이다. 비행기의 좁은 복도와 화장실은 거동이 불편한 환자에게 큰 장애물이 된다. 비행기에서 절명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경제적 부담도 만만찮다. 디그니타스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조력사망 준비부터 사후 장례 비용까지 약 1천만 원에서 1,500만 원이 든다. 스위스 왕복 항공료와 체류비는 포함되지 않은 금액이다. 드라마 속 은중과 상연처럼 비즈니스석을 타고 고급 호텔에 묵으며 작별을 준비할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조력사망을 둘러싼 오해
11월 1일, 조력사망 법제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국회의사당 앞에 모였다. 18번째 ‘세계 죽을 권리의 날’을 기념해 한국존엄사협회 등이 개최한 걷기 대회였다. 최다혜 한국존엄사협회 대표는 “조력존엄사(조력사망)는 생명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국회에서도 법제화 시도가 있었다. 2022년 6월, 안규백 의원은 기존 연명의료결정법에 조력사망을 허용하는 규정을 추가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반대에 부딪혀 결국 폐기됐다. 안 의원은 2024년 7월에 다시 ‘조력존엄사에 관한 법률안’ 제정안을 발의했다. 이번엔 개정안이 아닌 조력사망을 허용하는 새로운 법을 제시했다. 법안은 현재 계류 중이다.
입법시도가 번번이 좌절되는 데는 ‘조력사망을 허용하면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분위기가 퍼질 것’이라는 불안이 깔려있다. 특히 종교계는 조력존엄사를 ‘자살을 포장한 제도’, ‘의사에 의한 살인’이라고 규정하며 강하게 반대해 왔다. 하지만 남유하 작가는 “조력사망은 생명 경시가 아니라 인간 존중이며 삶에 대한 경외”라고 말한다. 조력사망은 적극적으로 고통의 기간을 단축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또 다른 쟁점은 환자의 자발적 의사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환자가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혹은 의료비를 줄이려고 원치 않는 조력사망을 선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는 제도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 법제화 전 충분히 검토해야 할 지점이다.
다만 조력사망을 허용하는 국가들은 조력사망 자체를 금하는 대신, 강요에 의한 조력사망을 걸러낼 촘촘한 제도를 마련했다. 디그니타스의 경우, ‘그린라이트’를 받은 뒤에도 현지 의사와 최소 두 차례 이상 대면 면담을 거친다. 이때 의사는 조력사망이 제삼자의 개입 없이 온전히 환자 스스로 내린 결정임을 확인한다. 온전한 자기결정을 보장하는 안전장치다.

조력사망 이전의 호스피스
조력사망 법제화를 논의할 때 반드시 함께 다뤄야 할 것이 호스피스다. 호스피스란 완치를 목표하는 대신, 생애 말기 환자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목표하는 돌봄이다. 통증과 호흡곤란 같은 증상을 조절하고, 환자와 가족이 겪는 문제를 함께 다루며 남은 기간을 존엄하게 보낼 수 있도록 돕는다. 호스피스 병동에선 의사뿐 아니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작업치료사, 성직자 등이 함께 환자의 마음을 돌본다.
전문가들은 조력사망이 말기 환자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선택지여선 안 된다고 말한다. 환자에게 ‘죽을 권리’가 있다면, ‘덜 아프게 살 권리’도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윤리학자인 연세대 김준혁 교수(치과대학)는 “말기 환자가 누릴 수 있는 충분한 지원이 마련된 상태에서, 그 지원이 무의미한 환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으로서 조력사망이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제는 한국의 호스피스 제도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국은 2016년 1월 ‘연명의료결정법’을 시행하며 호스피스 제도를 도입했지만, 대상 질환은 총 6가지로 제한된다. 호스피스 병동 입원은 말기 암 환자만 대상으로 한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려도 대상 질환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호스피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시설과 인력도 부족하다. 호스피스 병상은 전국에 약 1,600개에 불과한데, 이는 2023년 암 사망자의 2%도 수용하지 못하는 규모다.
이는 호스피스에 대한 대중의 낮은 관심과 관련 있다. 김준혁 교수는 “수술과 같이 치료 효과가 눈에 보이는 분야와 달리 호스피스는 고통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중요성이 과소평가되는 면이 있다”고 말한다. 가시적 결과가 드러나지 않기에 대중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특히 “조력사망이 ‘빠르고 최종적인 해결책’으로 받아들여지면, 그 이전 단계에서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돕는 호스피스의 역할이 과소평가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김준혁 교수는 “실제 환자들이 느끼는 삶의 질은 종종 외부에서 상상하는 것보다 높다”며 “환자들이 ‘빠른 해결책’으로써 조력사망을 원할 것이라는 단편적인 추측이 호스피스 확충을 늦추고 조력사망 논의를 왜곡한다”고 설명한다. 여의도성모병원의 일상을 담은 〈신동아〉 기사에서 한 환자의 딸은 이렇게 증언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보낸 7주간은 엄마와 제게 특별했습니다. 고통 중에 있었지만 그저 괴롭기만 하지 않았고, 이별 앞에 있었지만 그저 슬프기만 하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활동과 촘촘한 돌봄으로 이별을 도운 호스피스 병동에 감사를 전한 것이다.
호스피스 확충과 조력사망 법제화는 말기 환자가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호스피스로 고통을 줄인 채 살아가고자 하는 환자에겐 호스피스를, 그럼에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지속돼 고통을 끝내고자 하는 환자에겐 조력사망을 선택지로 제공해야 한다. 지금 한국은 둘 다 미비하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렇게 두려울 줄. 그곳에 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일인지. 가겠다고 말한 후에야 알았다. 어쩌면 혼자 돌아와야 할 길에 대한 결심. 답이 없다는 걸 알아. 그래도 너의 시간을 같이 겪을게.”
은중은 상연과 동행하기로 마음먹은 후에도 끊임없이 고민한다. 하지만 결국 상연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겪기로 결심한다. 조력사망 법제화를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현실엔 극심한 고통을 거절하고픈 수많은 상연과 그 곁을 지키는 은중이 있다.
안락사? 존엄사?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용어인 안락사와 존엄사는 얼핏 보면 비슷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먼저 안락사는 ‘좋은 죽음’이란 의미로, 사전적으로 고통 없는 자연사도 안락사에 포함된다. 그러나 오늘날엔 보통 의사가 직접 약물을 투여해 환자의 죽음을 유도하는 능동적인 행위를 가리킨다. 안락사는 소극적 안락사와 적극적 안락사로 나뉜다. 소극적 안락사는 인공호흡기 같은 생명유지 장치를 제거하는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연명의료결정법으로 알려져 있다. 적극적 안락사는 치사량의 약을 복용하거나 투약하는 방식이다. 이때 의사가 투약하는 경우와 의사에게 처방받은 약을 환자가 직접 투약하거나 복용하는 경우로 나뉜다. 후자를 의사조력사망이라 부른다.
한편, 존엄사는 매우 폭넓은 의미로 해석되는 개념이다. 한국에선 대개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의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행위를 존엄사로 칭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의사조력사망까지 존엄사에 포함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