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내 마르크스경제학 개설을 요구하는 학생들(서마학)’이 11월 27일 마르크스경제학 교과목 재개설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번 기자회견은 2025학년도 동계 계절학기에 마르크스경제학 교과목이 개설되지 않은 것을 비판하기 위해 마련됐다.
서마학은 9월 1일~15일 진행된 2026학년도 1학기 및 2025학년도 겨울학기 교과목 수요조사에서 마르크스경제학 수강 의사를 밝혀줄 것을 학생들에게 요청했다. 경제학부 학사위원회가 ‘강의 수요 부족’을 이유로 마르크스경제학을 개설하지 않은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 수요조사 결과 ‘정치경제학입문’, ‘마르크스경제학’, ‘현대마르크스경제학’에 각각 50여 명이 수강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해당 교과목은 동계 계절학기에 개설되지 않았고, 경제학부의 교원 채용도 계획된 바 없다.
서마학은 “이것이 대학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경제학부와 대학 본부가 특정 전공과 관점을 배제하는 학문적 검열을 ‘우선순위 조정’이란 그럴싸한 명분으로 가렸다”고 지적했다. 마르크스경제학 교과목 폐지가 “수요에 따라 공급이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결정권자가 수요를 거슬러 선택한 결과”라는 것이다. 또한 “마르크스경제학 교과목의 폐지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학문 구조조정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하나의 징후”라고 말했다.
서마학은 앞서 11월 4일 ‘총장과의 대화’에서 유홍림 총장에게 교과목 수요조사 결과가 실제 수업 개설에 반영되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이에 유 총장은 “강의를 열어달라고 요구하고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 것보다 서로 ‘디베이트(토론)’하는 것이 더 대학다운 일”이라고 답했다. 서마학은 이를 두고 “강의실에서 학생을 내쫓아 놓고, 밖에서 토론해 보라는 것은 대학에 대한 모독이고 학문에 대한 조롱”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한국외대 ‘왼쪽날개’ 회원 이찬용 씨가 연대 발언에 나섰다. 이 씨는 “서울대 경제학부가 다양성을 상실했다”며, “경제학이 소수의 목소리를 묵살하고 건설적 비판에 귀를 막는다면 복잡한 수식과 경제 모형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 씨는 〈서울대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마르크스경제학 수업을 듣기 위해 서울대에 학점 교류를 신청하려 했으나 강의가 사라져서 아쉽다”고 말했다. 또한 “서마학의 투쟁이 학생과 본부 간 다툼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 시민사회에서 이뤄지는 실천으로 뻗어나가는 모습이 인상 깊다”고 평했다.
학생들은 마르크스경제학이 이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관악중앙몸짓패 골패’에서 활동하는 최수지(자유전공 24) 씨는 “AI가 혁신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발전의 토대엔 자연과 노동에 대한 착취가 있고, 불안정한 노동 조건으로 밀려나는 노동자가 있다”며, “취약해져만 가는 이들의 삶을 마르크스경제학의 학문적 자장(磁場) 밖에서 사유할 수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성균관대 정치경제학회 폴레코(POLECO)에서 활동하는 신민섭 씨는 ‘대학생 연합 마르크스주의 학술제’를 진행한 경험을 언급하며 “세상을 바꾸고 싶은 청년들이 함께 모여 고민하고 토론하는 시공간을 진지로 삼아 싸워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학외 인사의 연대 발언도 이어졌다. 정치철학자 배세진은 “좋은 시민을 기르는 교육이 아니라, 무의미한 경쟁 속에서 동료 시민에 대한 혐오와 세계에 대한 무관심을 배양하는 교육만이 남았다”고 지적했다. 배 씨는 “서마학의 투쟁은 단순히 듣고 싶은 과목을 열어 달라는 요구를 넘어 좋은 시민을 위한 교육, 나아가 더 나은 세계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대학동에서 인문사회과학서점 ‘그날이오면’을 운영하는 김동운 대표는 마르크스경제학 강의를 ‘씨과일’에 빗댔다. 씨과일은 다음 농사철에 쓸 씨앗으로 쓰기 위해 먹지 않고 남겨두는 과일을 가리킨다. 김 대표는 “당장 쓸모없다는 이유로 씨과일을 먹어 없앨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서마학은 경제학부에 ▲2026학년도 ‘정치경제학입문’, ‘마르크스경제학’, ‘현대마르크스경제학’ 과목 개설 ▲비주류경제학 전공자를 포함한 기존 교원 모집 절차 복원을 요구했다. 대학 본부에는 ▲마르크스경제학 교과목 축소 및 강사 배제 과정 전반에 대한 공개 해명 ▲교과과정 논의에서 학생의 교육권과 학습 의지를 반영할 제도 마련을 요구했다. 참가자들은 “수요·공급 고려 않는 경제학부 웬 말이냐”, “학생 여론 외면 말고 이젠 강의 개설하라” 등의 구호를 함께 외쳤다. 서마학 측은 “앞으로 서마학을 동아리나 학회 같은 형태로 발전시켜, 강의 개설 요구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