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고개를 들어

2022년 10월 30일 일요일 아침, 학급 채팅방에 담임 선생님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긴급] 2반~ 아무 관련 없을 거라고 믿지만 너무 큰 사고라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원 점검하겠습니다. 이 글 아래에 ‘네’라고 대답해 주세요.

네, 네, 네…. 스물여섯 개의 ‘네’가 올라온 뒤에야 채팅방이 잠잠해졌다. 다음 날, 어딘가 핼쑥한 얼굴로 조회에 들어온 선생님은 우리가 혹시라도 ‘그곳’에 갔을까 봐 걱정했다고 하셨다. 그러나 우리가 아니었을 뿐 그날 이태원엔 너무 많은 사람이 있었고, 선생님은 이내 말을 잃었다. 주말 내내 별다른 뉴스를 접하지 못한 우리는 선생님의 심각한 표정에서 무언가 큰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수업 종이 울리자 모든 게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돌아왔다. 문제집 넘기는 소리, 겨울 초입의 미지근한 온도, 부러진 샤프심이 나뒹구는 교실 바닥. 수능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골목길에 쓰러져 구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모의고사를 풀었다. 정부가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해 일방적인 애도를 강요하는 동안, 면접을 준비했다. 행정안전부가 ‘피해자’를 ‘사고 사망자’로 칭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동안, 연표를 외웠다.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을 부르짖는 동안, 오답노트를 정리했다. 그 모든 죽음이 내 일이 아니라는 양 즐겁게 연말연시를 보냈다. 그 시간이 훗날 너무 큰 부채감을 남겼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빚을 갚아야 한다는 심정에 매년 열리는 추모대회로, 참사 생존자의 이야기를 듣는 집담회로, 학교에서 열린 유가족 간담회로 향했다. 누구에게 용서를 빌어야 할지도 모른 채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가다 보면 피켓이며 발언문 따위가 손에 들려있었다. 궁금한 게 많았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 앞에서 서럽게 우는 사람 곁에선 저절로 말이 삼켜졌다. 같이 울다가 그조차 머쓱해져 조용히 빠져나온 게 내가 한 애도의 전부다.

너무 늦어서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순간은 이후에도 찾아왔다. 지면에서 가자지구 집단학살을 다루자는 말은 작년부터 나왔다. 먼 나라 이야기라며, 주변에 시급한 문제가 넘친다며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기사를 낸다. 그러는 동안 이스라엘군의 폭격은 여성과 어린이, 기자와 의료진, 구호단체 활동가 누구도 피해가지 않았다. 식료품 반입이 막혀 가자지구 사람 대부분이 기아 상태에 놓여있다. 아이들에게 미래는 아득한 것이 됐다. 다음은 가자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묶은 2010년 연극 「가자 모놀로그」의 한 대목이다. 1996년생 야스민 카드베흐는 말한다.

만약 내가 미래에 어른이 된다면 말이야—가자에서 어른이 되는 건 그 자체로 성취니까, 죽음이 늘 문 앞을 지키고 서 있어서—난 아이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아이들의 권리를 지켜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팔레스타인 애들은 노인으로 태어나는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거든. 여섯 살 된 아이가 가족을 돌보기도 하고.*

*팔레스타인 아슈타르 극장, 이동경 외 옮김, 『가자 모놀로그』, 2010.

눈 깜짝할 새 수없이 많은 게 사라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여전히 크나큰 상실 앞에 애도와 슬픔을 저울질하는 방법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목을 한껏 숙이고 문제를 풀다가도 마땅히 고개를 들어야 할 순간이 있다는 걸 안다. 어떤 상실도 완전히 떠나보낼 수 없으므로. 고통 한가운데 있는 이가 생을 이어갈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의 삶 일부를 떼 줘야만 한다고. 언제고 마주칠 슬픈 이를 위해 항상 한쪽 어깨를 비워두자고. 나는 그게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을 지켜본 동료 시민의 책임이라고도 생각한다.

나아가 이런 책임은 지구 반대편에도 예외일 수 없다. 가자의 참상을 알게 된 이상,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무차별적 공습과 쏟아지는 포탄을 더는 모른 척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제안한다. ‘내가 죽어야 한다면/희망을 낳기를/이야기로 남기를’이라는 팔레스타인 시인 리파트 알아리르의 시*처럼, 우리에게 남은 희망이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 것뿐이라면 언제까지고 그 일을 이어가자고.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누구라도 될 수 있고,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다. 목격하고, 알리고, 기억함으로써 지난한 싸움을 이어갈 수 있다.

*리파트 알아리르, 류송 옮김, 「내가 죽어야 한다면」, 『팔레스타인 시선집』, 접촉면, 2025. 가자지구 출신 시인인 그는 2023년 12월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가족과 함께 숨졌다. 이 시는 2011년 딸 샤이마를 위해 쓰였다.

푸르른 가자의 하늘과 바다를 직접 보고 싶다. 올리브나무 그늘에서 몸을 늘어뜨린 채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낮잠을 자다가, 자기가 노인의 마음을 한 아이라고 말하는 이를 만나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꼭 껴안아 줄 테다. 마주 앉아 눈을 맞추고 가자에서 현재를 살아내는 것만큼 큰 성취는 없다고 말해줄 테다. 무너지는 곳에 홀로 두지 않겠다고, 어떻게든 곁에 있겠다고 뒤늦은 답신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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