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에서 온 통신

2023년 10월 7일 본격화된 가자지구 집단학살이 2년째 이어지고 있다. 멀고 복잡하게 느껴지는 현실 앞에서 우리의 눈과 귀는 어디로 향해야 할까. 아득한 공포와 참담을 넘어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일을 제대로 마주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193호 특집 미련에선 그 이정표가 될 네 권의 책과 세 편의 영화, 한 장의 음반을 소개한다. 팔레스타인에서 출발한 수만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전해지기까지 지나왔을 굴곡진 길을 가늠하면서. 그것을 기록하고 번역해 온 마음을 헤아리면서. 활자와 화면 너머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우리 앞에 도착한 이야기가 부디 변화를 만들어 내길.

『가자란 무엇인가』

오카 마리, 김상운 옮김, 두번째테제, 2024.

최희정 기자 heejunging@snu.ac.kr

사진 설명 시작. 가자란 무엇인가 책 표지. 사진 설명 끝.

지금 가자지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팔레스타인은 어떤 땅인가? 그래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중 누가 잘못한 것인가? 이 질문이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는 이유로 한 발짝 떨어져 ‘모른 채로 있기’를 택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학살자가 바라는 일이다. ‘알려고 하기’로 한 발짝 나아가려는 사람들에게, 그 길잡이로 이 책을 권한다.

이스라엘의 변명에 가려진 ‘가자전쟁’의 본질은 집단학살이다. 주류 언론이 지운 ‘갈등’의 맥락은 불법점령과 억압의 역사다. 이것이 뭘 뜻하는지, 점령과 학살은 어디에서 시작해 어떻게 지속된 것인지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오늘날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선명하게 마주할 수 있다.

한국이 해방을 맞은 1945년, 팔레스타인엔 식민지배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80년의 침묵과 망각 속에서 학살은 계속 몸집을 키웠다. 반복되는 폭력의 역사를 깨는 첫걸음은 기억이다. 학살을 멈출 열쇠를 집어들자.

『가자에 지하철이 달리는 날』

오카 마리, 박용준 옮김, 마르코폴로, 2025.

천세민 기자 chunsemin011@snu.ac.kr

사진 설명 시작. 가자에 지하철이 달리는 날 책 표지. 사진 설명 끝.

세상 밖에도 사람이 산다. 촘촘히 얽힌 국민국가의 그물망 속 작은 틈, ‘노 맨스 랜드(No man’s land)’라 불리는 곳이다. ‘노 맨’이란 말이 알려주듯, 이들은 인간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국민의 증표를 받지 못해 어떤 권리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노 맨은 이스라엘 치하에 놓인 팔레스타인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랍 전문가 오카 마리는 지난 40여 년간 팔레스타인에서 만난 사람들을 불러와 팔레스타인인의 얼굴을 그린다. 책에는 깊은 절망 속에서도 끝내 인간이길 택한 이들의 이야기가 넘실거린다. 유대인에게 복수하자는 아이에게 그들도 같은 인간이란 걸 가르치는 아버지, 조국에 도움이 되겠다며 언론인과 의사를 꿈꾸는 소년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팔레스타인의 존재를 알리는 사람들. 이들은 모두가 외면한 지옥에서 수십 년간 굳게 닫힌 문을 두드렸다.

저자는 우리가 “다음 ‘가자’의 앞”에 서있다고 말한다. 휴전이 이뤄지더라도 국제사회가 관심을 끊으면 언제든 학살이 재개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의 식민지배를 종식하지 않는 한 완전한 해방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어떻게 팔레스타인과 연루될 것인가. 어떻게 노 맨의 편이 될 것인가. 우선 책장을 넘겨 더 잃을 게 없다는 이들의 맨얼굴을 마주하자. 모든 싸움은 누군가의 삶을 구체적으로 아는 데서 시작한다.

『펜과 칼』

에드워드 사이드·데이비드 버사미언, 장호연 옮김, 마티, 2011.

이지원 기자 bluejw2002@snu.ac.kr

사진 설명 시작. 펜과 칼 책 표지.

팔레스타인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시선 속에서 팔레스타인은 존재한 적 없었던 것처럼 지워진다.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외면하고 침묵해 온 서구사회를 강하게 비판한다. 이러한 외면은 아랍 세계를 둘러싼 편견과 유대인 학살에 대한 죄의식이 빚어낸 끔찍한 결과다. 아랍 세계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 서구 전문가들은 낡은 시각으로 이스라엘의 학살을 정당화한다. 언론 역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 권력 비대칭이 자명함에도, ‘중립적 시선’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이스라엘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한다. 언론은 모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말하나, 팔레스타인은 포함되지 않는다.

“승리의 자리에는 모든 사람이 함께할 자리가 있다”는 탈식민주의 이론가 에메 세제르의 말은 팔레스타인 문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다. 배타성을 내세우는 민족주의는 진정한 의미의 민족 해방을 가져올 수 없다. 유대인만의 국가를 말하는 시온주의 대신 ‘이 땅의 모든 존재를 인정하라’는 팔레스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시간이다.

『팔레스타인 시선집』

리파트 알아리르 외, 김한나 외 옮김, 접촉면, 2025.

한정원 기자 hangrdne@snu.ac.kr

사진 설명 시작. 팔레스타인 시선집 책 표지. 사진 설명 끝.

시는 공습을 막지 못한다. 시는 “승인되지 않은 팔레스타인 사람”의 긴 목록을 지우지도, “가자의 개구쟁이들”을 돌아오게 하지도 못한다. 멈추지 않는 학살 앞에서 시인은 무력해진다. “가자여, 네게 가장 쓸모없는 건 시”라고 슬퍼하면서, “씨발 작법 같은 소리”에 분노하면서. 시구의 공허함을 온몸으로 견디며, 그럼에도 시인은 시를 쓴다. 말을 걸고, 이야기를 남긴다.

팔레스타인 시인과 팔레스타인계 시인, 그 외 나라의 시인들이 쓴 시 31편이 모였다. 아랍어와 프랑스어, 영어로 쓰인 시를 번역가 여덟 명이 한국어로 옮겼다.

책장을 넘긴다. 시어와 시어 사이로 팔레스타인의 삶을 통과해 온 몸들이 다가온다. 겹겹이 쌓인, 다치고 아물기를 반복한 마음들이 비친다. 수많은 몸마음이 팔레스타인의 삶을 잇고 있음을, 절망과 희망, 의지가 부딪히고 깨지는 셀 수 없는 순간을 지나 지금 여기에 이르렀음을 이내 깨닫는다. 이야기가 희망이 되기를, 우리는 또 다시 믿는다.

《올 리브 올리브》

김태일·주로미, 2017.

정여진 기자 yeojin0317@snu.ac.kr

사진 설명 시작. 올 리브 올리브 영화 포스터. 나이 든 남성과 어린 아이가 길을 걷는 모습이 보인다. 사진 설명 끝.

팔레스타인 인구의 약 75%가 올리브에 의지해 살아간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이 자기 소유의 올리브밭에 가려면 이스라엘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석 달을 기다려 받은 통행증에는 밭을 가꾸는 데 7일, 수확에 2일을 허가한다고 적혀있다. 그렇게 거둬들인 올리브에는 ‘이스라엘산’이란 상표가 붙는다.

영화는 유대인의 이주로 고향에서 내쫓긴 팔레스타인 난민의 모습을 담는다. 화면 속 서안지구 사람들의 일상은 잔잔한 듯 소란스럽다. 난민 1세대 ‘무함마드’는 고향에서의 추억을 생생히 기억하고, ‘마텔’은 언젠간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믿으며 고향 집 열쇠를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잠든다. 난민 3세대 ‘알리’는 인티파다*를 겪고 감옥에 다녀온 후 홀로 남았지만, 좌절하지 않고 계속 노래한다.

*인티파다: 이스라엘의 점령에 맞선 팔레스타인 민중 봉기. 제1차 인티파다는 1987년부터 1993년까지, 제2차 인티파다는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이어졌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올리브는 성스러운 것이다. 메마른 땅에서도 꿋꿋이 자라나는, 회복과 저항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인물들이 바라는 건 단지 시기에 맞춰 올리브를 심고 가꾸고 수확하는 평범한 일상이다. 난민들은 이 땅에 굳건히 뿌리내린 올리브나무처럼, 자신들도 그 곁에서 굳세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영화는 묻는다. 당신은 이 땅이 누구의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노 아더 랜드》

베즐 아드라·함단 발랄·유발 아브라함·레이첼 졸, 2024.

석지웅 기자 seokjw0801hs@snu.ac.kr

사진 설명 시작. 노아더랜드 영화 포스터. 멀리 굴착기의 모습이 보이고, 가까이에는 들판에 움츠려 누워있는 한 사람이 보인다. 사진 설명 끝.

오늘의 철거 생중계. 팔레스타인 마을 ‘마사페르 야타’, 이스라엘군이 일사불란하게 집을 부순다. 철거는 하루에 딱 한 집씩. 집을 잃은 이들은 시위에 나선다. 탕! 누군가 총에 맞는다. 그 장면을 기록하던 카메라는 이스라엘군의 발길질로 바닥에 나뒹군다.

서안지구의 ‘마사페르 야타’ 공동체는 황무지에 일군 삶을 이스라엘에 빼앗긴다. 이스라엘군이 군사 훈련장을 짓는다며 부순 집을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몰래 다시 짓는다. 가난과 인종차별에도, 주민들은 굴하지 않고 자리를 지킨다. 마을 사람들에게 ‘다른 땅은 없다.’ 땅을 순순히 내줬을 때 벌어질 일을 이미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을의 상황을 기록하는 두 사람, ‘유발’과 ‘베즐’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존재한다. 이스라엘인 기자 유발이 열정이 필요하다 말할 때, 팔레스타인인 베즐은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실을 기록하는 일이 영화가 될 수 있다면, 베즐의 기록에서 시작하는 이 영화는 2019년 여름에 시작해 2023년 10월 7일에 끝난다. 그 뒤로 벌어지는 일을 어떻게 볼지는 관객의 몫이다. 개봉 이후, 함단 발랄 감독은 이스라엘 정착민들에게 폭행당하고 이스라엘군에 체포됐다. 알려져선 안 될 진실을 담은 카메라는 그렇게 스크린 밖을 나뒹굴었다.

《나의 친애하는 후세인》

알렉스 바크리, 2025.

배진영 PD svaha@snu.ac.kr

사진 설명 시작. 나의 친애하는 후세인 스틸컷. 폐허의 돌무더기 앞에 한 나이 든 남성이 두 손을 모으고 서 있다. 사진 설명 끝.

제1차 인티파다 이후 지금까지 가자지구에는 영화관이 없다. 서안지구의 ‘시네마 제닌’ 역시 같은 사정으로 오랫동안 방치됐다. 그곳의 마지막 영사기사 후세인에게, 한 독일 비영리 단체가 영화관 복원을 제안한다. 생애 마지막 기회를 얻은 후세인은 검은 기름때가 묻은 손으로 영사기 부품을 구하려 동분서주한다. 그러나 대망의 개관식 당일, 독일인들이 서로의 공로를 치하하는 동안 영화관을 위해 누구보다 헌신한 후세인의 이름은 끝내 불리지 않는다.

이 다큐멘터리는 필름 시대의 종말을 애도하는 동시에 제1세계의 위선을 고발한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팔레스타인 영화 산업 변두리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한 영사기사에 대한 감독의 애정 어린 시선이다. 재개관으로부터 7년 후, 시네마 제닌은 쇼핑센터로 바뀌고 후세인은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필름 릴을 옮기던 후세인의 투박한 손을 관객은 기억할 것이다. 누군가를 기억하게 하는 것, 그것이 기록영화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치적인 행위이므로. 가자에 다시 영화관이 세워질 날을 기다리며 이 영화를 권한다.​​​​​​​​​​​​​​​

「Tuqoos」

Julmud, 2022.

김수환 기자 kimsuhwan0831@gmail.com

사진 설명 시작. Tuqoos 앨범 커버. 들판에 서 있는 사람의 형상, 그리고 그를 둘러싼 아랍어 글자(Tuqoos)가 보인다. 사진 설명 끝.

어느 래퍼의 말처럼 힙합이 ‘게토의 CNN’이라면, 팔레스타인에서 힙합 문화가 꽃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힙합의 형식을 빌려 주류 미디어가 외면하는 점령지의 현실을 증언해 왔다. 앞서 DAM이 제2차 인티파다가 벌어지던 2001년 ‘Who’s the Terrorist?’를 발표하며 식민지배에 정면으로 맞섰다면, 줄무드(Julmud)는 점령지에서의 삶과 아랍 정체성을 깊이 파고든다.

‘Tuqoos(طُقُوس)’는 아랍어로 ‘의식(儀式)’을 뜻한다. 줄무드는 이집트 80년대 팝, 걸프 지역의 사우트, 예멘 북부의 자잔, 팔레스타인 성가 등 아랍 음악의 요소를 현대 힙합과 뒤섞어 열다섯 번의 제의를 행한다. 특히 두 번째 트랙 ‘Kassara’는 팔레스타인 고대 석공이 돌을 부딪는 리듬에서 착안한 곡으로, 대대손손 이 땅을 일궈온 이들의 역사를 지금-여기로 불러낸다.

때로 소음처럼 들리는 실험적인 음향에서 우리는 점령지의 혼란과 고통, 분노와 체념, 그럼에도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 의지를 듣는다. 장르를 넘나드는 자유로움은 영토의 분할을 넘어서며 지배에 균열을 낸다. 그 한가운데서, 경계 너머로 질주하는 팔레스타인 청년이 있다. 나는 가진 것 하나 없이 맨발로 거리를 달린다. 우리 젊은이들은 소리치고, 춤추며 깨어있다. (‘Ha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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