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동물 약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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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섭(약학대학 약학과 석박사통합과정 수료)

학부 졸업 후 약사 면허를 취득하고 대학원에서 의약품 인허가에 대해 공부했다. 이후 약국, 제약회사 등에서 근무했다. 최근 반려동물과 동물용의약품 제도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다. 사진은 반려견 ‘탱이’다.

내 반려견 탱이는 이제 만 12살 생일을 앞둔 노령견이다. 그동안 큰 병치레 없이 자라줬지만, 요즘 ‘슬개골탈구’*와 ‘면역매개성혈소판감소증(IMT)’**으로 고생하고 있다. 특히 후자는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출혈이 멎지 않아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슬개골탈구(Patellar luxation): 무릎뼈(슬개골)가 제자리에서 벗어나는 외과적 질환

**면역매개성혈소판감소증(IMT, Immune-mediated thrombocytopenia): 면역체계가 자신의 혈소판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의 일종

탱이에게 이 병이 찾아온 것은 지난 8월의 일이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보니 화장실이 피로 난장판이 돼있었다. 영문을 몰라 혼비백산했는데,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아이가 소변을 보려 하자 오줌 대신 혈액만 나오는 것을 보고 알았다. 그러니까 화장실 바닥에 흥건한 피의 정체는 아이의 혈뇨*였던 것이다. 급히 동물병원에 달려가 혈액검사와 방광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탱이의 혈소판 수치는 정상 범위에 한참 못 미쳤고, 방광벽은 헐어서 피가 고여있었다. 그제서야 전부터 탱이에게 보이던 증상을 내가 알아채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눈이 자주 충혈되고 피 섞인 눈곱이 꼈던 것도, 귀와 배에 크고 작은 멍이 들었던 것도 모두 혈소판 감소의 신호였다.

*혈뇨(血尿): 피가 섞인 오줌

약사로서, 사람이 아프면 어떤 약을 써야 하는지는 안다. 열이 날 때 먹는 해열제, 통증을 가라앉히는 진통제에 대한 정보를 찾는 일도 어렵지 않다. 약학대학에서 교육받고, 보건복지부에서 약사 면허를 받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니까. 하지만 사람이 아니라 강아지나 고양이가 아프다면? 한국에선 약사만이 동물약국을 열어 동물용의약품을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약사인 나는 반려동물에게 어떤 약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 내 반려동물이 아프고 나서야 이 사실을 깨달았고, 보호자들이 동물용의약품을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됐다.

아픈 반려동물을 위해 인간용의약품을 찾는 사람들

약국에서 근무하면서, 적절한 동물용의약품을 찾지 못해 고생하는 보호자들을 여럿 만났다. 자정까지 영업하는 약국에서 시간제로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머릿니를 없애는 약이 있냐는 전화가 왔다. 약사로 5~6년 일하면서 머릿니약을 찾는 환자는 처음이었지만,  다행히 제품이 있어 오시라고 했다. 곧이어 방문한 환자는 자기 몸보다 큰 네모난 가방을 옆으로 멘, 체구가 작은 여성이었다. 가방 안엔 태어난 지 보름은 됐을까 싶은 아기 고양이가 꼬물거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머릿니약이 필요한 건 반려인이 아니라 그 조그만 고양이였다. 머릿니약의 살충 성분은 고양이에게도 효과가 있겠지만, 몇백 그램밖에 안되는 아기 고양이에게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용량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번은 더운 날 땀에 흠뻑 젖은 여성이 급하게 들어와 수액제가 있냐고 물었다. 혹시 ‘먹는 수액’으로 홍보되는 이온음료를 찾는 건가 싶어 되물었더니, 반려견이 아파 수액 주사제를 맞아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국에서 주사제는 처방전 없이 살 수 없는 전문의약품이다. 더욱이 수액제는 병원에서 투여하는 게 보통이라 약국에 잘 구비돼 있지도 않다. 있다 하더라도 인간용의약품의 성분 함량이 개의 생리학적 요구에 알맞게 만들어졌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반려동물을 위해 인간용의약품을 찾는 보호자들을 보며 무력감이 밀려왔다. 명색이 약 전문가인데 아무것도 도울 수 없었다. 약학대학 6년과 그 이후 직무교육에서도 ‘아기 고양이에게 안전한 머릿니약 용량’을 배운 적은 없다. 심지어 나 역시 강아지를 키우는 보호자임에도, 강아지의 고열 기준이 몇 도인지, 열이 나면 어떤 해열제를 얼마나 먹여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약학대학 교육과정은 인간을 치료하는 관점에서 설계돼 있고, 인간 중심적인 관점에서 동물은 치료 대상보다는 인간을 위한 실험 도구로 여겨질 뿐이다.

동물용의약품, 정확히 알고 쓰자

그날부터 나는 동물용의약품에 관한 정보를 틈틈이 알아봤다. 동물용의약품에 관해 정확한 정보를 얻는 방법부터 온라인에서 동물용 제품을 구매할 때 유의해야 할 점까지. 그렇게 알아낸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반려동물과 보호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국내에서 인허가 받은 동물용의약품, 의약외품 및 의료기기는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제공하는 ‘동물용의약품아지(AZ)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해당 사이트엔 약 1만 6천 개의 동물용의약품 및 의약외품과 약 5천 건의 동물용의료기기 정보가 등록돼 있다.

*https://medi.qia.go.kr/index

제품명이나 성분명을 검색하면 해당 성분이 들어간 제품 목록을 볼 수 있고, 원료약품* 및 분량·효능효과·용법용량·주의사항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에게 흔히 쓰이는 해열진통제 ‘아세트아미노펜’을 검색하면, 이 성분은 돼지의 발열과 통증에만 쓰이며 개나 고양이에게는 독성이 높아 사용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동물용의약품아지트에서 확인 가능한 정보는 다음과 같다.

*원료약품: 의약품의 주성분 및 첨가제로 사용되는 물질

기본정보: 제품명, 제조업체 혹은 수입업체에 대한 정보원료약품 및 분량: 해당 의약품이 효능을 나타내는 유효성분의 성분명, 함량 등. 첨가제에 대한 정보가 포함돼 있으므로 혹시 자신의 반려동물이 알레르기를 가진 첨가제가 포함되지 않았는지 알 수 있다.효능효과: 해당 의약품이 대상으로 하는 동물종과 대상 증상 및 질환, 투여 목적 등용법용량: 효과적이면서 안전하게 사용가능한 투여량에 대한 상세정보주의사항: 해당 의약품을 사용할 때의 주의사항과 복용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이상반응, 임상시험 등에서 수집된 정보성상 제조방법 등 기타정보: 의약품의 모양, 저장방법, 포장단위 등

다만, 효능효과나 사용상의 주의사항, 동물종 등 세분화된 검색 조건을 적용하는 기능은 아직 지원되지 않는다. 인간용의약품 정보 사이트인 ‘의약품안전나라’와 비교하면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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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어떻게 사야 할까?

올바른 판매처를 이용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약사법 제44조와 제50조에 따라 동물용의약품은 동물약국과 동물병원에서만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으며, 온라인 판매는 불가하다. 즉, 온라인에서 파는 동물용 제품은 의약품이 아니거나 정식으로 허가받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영양보조제나 일부 사료첨가제 등 동물용의약외품은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다. 의약외품은 질병 치료나 예방을 목적으로 하지만 인체나 동물에 직접 작용하지 않거나 그 작용이 약한 제품이다. 일반적으로 붕대, 거즈 같은 상처 처치용품이 여기에 해당하지만, 영양보조제나 일부 사료첨가제(배합사료)도 동물용의약외품으로 분류될 수 있다. 문제는 일반 소비자가 제품 유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파는 경구용 제품을 의약품으로 오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온라인 구매 시에는 다음을 확인해야 한다.

상품 설명에 제품 유형(동물용의약외품, 배합사료 등)이 명시돼 있는가제품 유형, 효능효과, 용법용량 등이 동물용의약품아지트 검색 결과와 일치하는가의약품이 아닌 것을 의약품과 같은 효과가 있는 것처럼 과장 광고하고 있지는 않은가

동물용의약품은 온라인에서 구매할 수 없으므로, 동물약국이나 동물병원을 직접 방문해야 한다. 이때 ‘휴일지킴이약국’*에서 ‘동물약취급’ 항목을 선택하면 동물용의약품을 취급하는 약국을 지역별로 찾을 수 있다. 행정안전부 ‘공공데이터포털’에서도 동일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근처 동물약국을 찾으려 약국마다 일일이 전화를 돌리는 보호자가 많다. 그 번거로움이 조금이라도 해결되면 좋겠다.

*https://www.pharm114.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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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동물약국이 필요해

약국을 찾긴 쉽지만, 문제는 따로 있다. 동물약 취급 약국이라 해도 필요한 의약품이 구비돼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약국은 아플 때 필요한 약을 지역사회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사람의 경우엔 대체로 그렇다. 반면 동물용의약품 취급 약국은 작은 판매대 하나를 두고 심장사상충약만 판매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반려인들이 기대하는 동물용 상비약을 종류별로 갖춰둔 약국은 거의 없다.

KB경영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한국의 반려인구 비율은 약 29.9%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동물용의약품에 대한 수요가 적다는 건 핑계일 뿐이다. 오히려 동물용의약품의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나타나는 착시현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먼저 교육과 면허 제도의 공백이다. 약학대학 과정이 6년제로 개편되면서 서울대 약학대학 교육과정에 ‘동물의약품학’이 신설됐지만, 수업이 열린 적은 아직 없다. 약사 국가고시에도 반려동물을 환자로 바라보는 임상 영역은 출제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실제로 2025년도 약사 국가고시에서 동물용의약품 관련 문항은 약사법 조항을 묻는 한 문제뿐이었다. 반려인구가 증가하는 사회에서 약사에게 새로운 역할이 요구되지만, 교육·면허 제도는 여전히 제자리다. 당장은 기성 약사들이 스스로 학습하고 다양한 품목을 공급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테다.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동물용의약품을 관할하는 기관이 분산돼 있는 것도 문제다. 인간용의약품은 보건복지부와 그 산하 기관들이 관할한다. 반면 동물용의약품은 관계 법령이 여러 부처에 걸쳐있다. 수의사법과 동물용의약품등취급규칙은 농림축산식품부 및 해양수산부 소관이고, 약사법은 보건복지부 소관이다. 제도 개선이 필요하면 세 기관이 협의해야 하니, 규제를 조정하기가 어렵다.

제도가 도리어 뒷걸음치기도 한다. 동물병원에서 모든 동물 종의 모든 질환에 대응하는 의약품을 갖추긴 어렵다. 그래서 필요시 수의사는 인간에게 쓰는 약을 동물에게 사용할 수 있고, 약사(약국개설자)에게 인간용의약품을 구매할 수도 있다. 반려동물을 치료하는 입장에선 동물병원이 더 쉽게 인간용의약품을 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지만, 2026년 시행을 앞둔 약사법 개정안은 관련 규제를 오히려 강화했다. 인간용 전문의약품이 오남용되는 것을 막겠다는 명목이다. 하지만 동물병원이 필요한 약을 구하기 어려워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반려동물과 보호자에게 돌아간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인식은 이미 사회 전반에 퍼져있다. 하지만 그에 걸맞은 동물용의약품 접근체계는 아직 제자리걸음이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보호자들이 겪는 불편과 위험을 해소하긴 어렵다.

이제 동물용의약품을 인간용의약품만큼 중요한, 생활 속 필수 보건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교육, 제도, 유통 전반에 걸친 공적 과제로 접근해야 하며, 그 첫걸음은 보호자가 적시에 필요한 동물용의약품을 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동물용의약품 접근성을 개선하는 일은 제약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보호자의 행복을 증진하고, 생명에 대한 책임과 존엄을 실천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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