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윤석열을 파면하고, 비상행동이 해체되고,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됐습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무대가 설치되고 각양각색 깃발이 나부끼던 광화문엔 언제 그랬냐는 듯 차들이 쌩쌩 달립니다. 응원봉을 들고 추위에 떨었던 기억이 아주 예전 같습니다.
이쯤에서 〈서울대저널〉은 질문을 던지려 합니다. 지난겨울 광장의 불씨는 어디로 갔나요. 우리는 12.3 내란 이전보다 나아진 세상에서 살고 있나요. 광장을 달궜던 이들은 지금 어디 있나요. 두 손 모아 염원하던 것들이 이뤄졌나요. 오늘 당신의 하루는 안녕한가요. 자신의 이야기를 나눠준 이들과 답을 찾아가려 합니다. 기고는 하반기에 발행되는 세 호에 나눠 수록됩니다.

소미(필명)
동덕여대 무단 공학전환에 반대하며 목소리를 낸 학생. 학내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며 광장에 처음 나섰고, 현재까지 ‘광장’에 머물러 있다. 학내에 고립됐던 시기를 지나 만난 연대자 동지들이 너무 소중하기에, 우리의 해방은 연결돼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김형수 동지가 97일 만에 청계천 CCTV 철탑에서 내려온 날, 투쟁 승리 문화제에서 심장이 얼어붙는 경험을 했다.
찬 바람 부는 날 거리에서 잠들 땐 너무 춥더라 인생도 시리고
도와주는 사람, 함께하는 사람은 있지만 정말 추운 건 어쩔 수 없더라*
*꽃다지의 ‘내가 왜?’
첫 소절을 듣자마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본부가 의도적으로 난방을 끊은 동덕여대 본관을 점거하던 날들이 떠올랐다. 세종호텔에서 부당하게 해고된 고진수 동지가 고공농성 중인 명동역 1번 출구 앞에서 막차 시간까지 앉아있던 날들이 떠올랐다. 교내 성폭력에 맞서다 부당하게 해임된 지혜복 교사와 함께 교육청 앞에서 교육감 면담을 요청했던 낮과 밤이 떠올랐다. 여의도, 남태령, 한강진, 헌법재판소 앞, 그곳에서 서거나 누워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연대하거나 같이 투쟁하는 사람들이 옆에 있어도, 추운 건 어쩔 수 없이 추웠던 그날들. 오로지 홀로 감내해야 했던 시리고 쓰렸던 통증들. 내게 남은 상흔들.
내가 왜 세상에 농락당한 채 쌩쌩 달리는 차 소릴 들으며 잠을 자는지*
*같은 곡
금속노조 주얼리분회 텐트 농성장에 간 적이 있다. 바로 옆이 도로였는데, 농성장 안에 앉아있으니 차가 지나갈 때마다 텐트가 휘청이는 게 느껴졌다. ‘나’와 다를 바 없는, 혹은 더 험하게 투쟁했을 그들의 괴로움이 어땠을지, 감히 짐작조차 되지 않아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들이 왜 차 소리를 들으며 잠들어야 했는지, 서글프고 죄스러워 흐느낌이 멈추지 않았다. 세종호텔 앞 농성장도 마찬가지다. 차 소리가 들리고 캐리어 바퀴 소리가 머리맡에서 들린다. 때론 진동까지 느껴진다.
내가 왜 세상에 내버려진 채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됐는지*
*같은 곡
작년 11월 내가 왜 수많은 모욕과 폭언을 들으며 춥고 깊은 밤을 견뎌야 했는지. 두 손으로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날 동안, 각종 지역·직군의 동지들은 왜 매연 내를 맡으며 먹고 자야 했는지. 우리는 왜, 이 일 좀 알아달라고 선전물을 건네고 시위를 하면 귀찮다는 듯 찌푸린 미간을 마주해야 했는지.
계절마다 팬레터를 보낼 정도로 좋아하던 연극배우가 있다. 팬레터를 쓸 때면 가장 솔직해지곤 했는데, 그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팬레터에서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했다. 그들 옆에서 온기를 실어주고 싶다고. 집회가 공연 시간과 겹쳐 앞으로는 자주 보러 오지 못할 것 같다고. 다른 사람의 ‘광장 이후’는 어떻게 형성되고 자리 잡았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광장 이후’는 이들의 곁에 서고 싶다는 마음에 뿌리내리고 있다. 한참 앞서 투쟁의 길로 접어든 이가 말했다. 그렇게 느끼고 있다면 이전과 같은 형태의 삶으로는 돌아가기 힘들 거라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살아갈지 궁금하다고.
사실 내게는 광화문광장만 ‘광장’이 아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 집회 현장, 규모만 다를 뿐 그곳은 모두 나의 광장이고, 학교였다. 수많은 광장을 지나며, 염원하는 것이 많이 생겼다. 누군가의 복직, 누군가의 고용승계, 누군가의 생존권 보장, 누군가의……. 동덕여대 무단 공학전환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난 뒤로 언론이며 여론이며 학생들을 헐뜯었기 때문에, 나는 ‘우리(동덕여대생)’를 지지하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광장으로 나가니 정말 많은 사람이 지지의 마음을 표현해 줬다. ‘우리’만의 광장에 내몰려 있던 내가 ‘모두의’ 광장으로 마음을 열고, 나와 그들의 경계를 허물어 우리의 범주를 새롭게 넓힐 수밖에 없을 만큼. 광장은 매일 내게 경이로움을 선사했다. 발언대에 올라와 기꺼이 자기 삶의 한 조각을 펼쳐주는 사람들, 내가 생각조차 해볼 수 없었던 삶, 우리보다 훨씬 이전에 ‘내몰렸던’ 노동자들의 이야기, 그들의 일을 제 일처럼 여기며 곁에 선 연대자들.
이대로는 살 수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여자애들은 자라서 당신들의 세상을 깨부술 것이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
팔레스타인에 해방을!
불법인 사람은 없다.
그렇구나, 잘 알아두겠다!주
쏟아져 나오는 목소리들이 매번 내가 몰랐던 세계를 알려줬고, 더 알고 싶게 했다. 앞서서 외치는 이들은 확실히, 무언가를 바꾸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들 곁에 서게끔 바꿨고, 나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바꿨으니 더 큰 차원에서도 무언가 바꿀 수 있으리라고 믿고 바라며 광장을 지켰다.
나의 염원과 그들의 염원이 ‘우리의 염원’이 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비슷하고 또 얼마나 서로에게 다정했는가. 집회에서 서로의 요구를 구호로 외치고, 탄원서를 모으고, 괜히 음료 하나를 사서 건네고, 어려운 형편에도 투쟁 기금을 전달하고.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음을, 너의 해방과 나의 해방이 연결돼 있음을 그 누구보다 몸으로 깨우친 자들의 모습. 그러나 이렇게 두 손 모았던 염원들은 손에 닿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세종호텔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이 일터로 돌아가기를 기원하며 글을 쓴다. 지혜복 교사가 공익제보자 지위를 인정받길 여전히 바란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아직도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지 못하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 순간에도 죽고 있다. 사람에게 불법 딱지가 붙고, 성소수자는 존재조차 지워지고, 여성은 억압당한다.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차별을 당하며, 정리해고는 너무나 쉽게 행해지고, 외국 자본은 한국인 노동자의 고용을 책임지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이, 일을 하다가 수없이, 죽어나간다. 생산직, 건설직, 학교 비정규직, 유통업계, 라이더, 정말 수없이. 이런 상황에서 내 염원은 어디까지 퍼질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나, 그들…, 우리의 염원이 ‘저들의 염원’이 되려면.
지금 내 일상은 안녕하지 않다. 온갖 집회에 다니느라 쓸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고, 또래와 나누는 대화에서 이질감을 느끼기 일쑤다. 동덕여대 본부는 형식적으로만 민주주의의 틀을 갖추고, 학생과 교직원이 반대하는 공학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흘러가는 학교 분위기에 신음을 삼킬 때가 있는가 하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에 손이 떨리기도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도 잊고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따금 이유 없이 찾아오는 비관과 우울, 고독함에 막막할 때가 있지만.
그럼에도. 2월 안국역 동덕여대 집회에서 마주했던 8천 명의 연대 동지들을 생각하면, 반파된 일상도 살 만하다.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 끝에… ‘내가 왜?’라는 말이 필요 없는 세상을 마중 나갈 수 있기를.
주
‘이대로는 살 수 없지 않겠습니까.’
2022년, 거제통영고성지회 유최안 부지회장은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에 임금 삭감 철회를 요구하며 스스로 철창 안에 들어갔다.
‘우리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한국 노동운동의 오랜 구호로, 2023년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건설노동자 투쟁에서 울려 퍼졌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2016년 강남역 여성살인 사건 이후, 여성폭력에 맞서는 페미니즘 집회의 구호로 자리 잡았다.
‘여자애들은 자라서 당신들의 세상을 깨부술 것이다.’
2018년 미국의 미투 고발자 카일 스티븐스가 법정에서 한 말로, 한국에서도 반성폭력 운동의 구호로 널리 쓰인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2014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등장한 구호다.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구호다.
‘팔레스타인에 해방을!’
이스라엘의 식민지배와 집단학살에 맞서 팔레스타인 민중과 연대하는 국제 연대 투쟁의 구호다.
‘불법인 사람은 없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향한 차별과 강제 추방에 저항하는 이들의 구호다.
‘그렇구나, 잘 알아두겠다!’
2024년 12월 21일 남태령 집회 당시 “고맙다, 딸들아”라는 한 농민의 말에 연대자들이 “근데 사실 저희 딸이 아니에요”라며 성소수자임을 밝히자 돌아온 대답이다. 소수자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