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에 대한 기사를 쓰겠다고 결심했을 때,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이 사안을 잘 알아서, 학살을 무심히 지켜만 보는 이들이 답답해서 입을 떼기로 한 게 아니었다. 나는 무심한 목격자였고, 솔직해지자면 제대로 목격조차 하지 않은 방관자였다. 그 방관자는 학살이 2년이나 지나서야 사람이 이렇게 많이 죽어나가는데 세상이 아무렇지 않은 게 문득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 의아함은 그리 존재감이 강하지 않았다. 국제정치는 어렵다는 생각에, 중동 역사는 복잡하다는 두려움에, 미국은 강대국이라 어쩔 수 없다는 체념에, 인권은 현실 앞에 무력하다는 냉소에 금세 자취를 감췄다. 무엇보다 나는 살아있다는 사실에서 비롯한 무관심 앞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멀고 희미한 것이었다.
그래서 기사를 쓰는 내내 나 같은 사람을 독자의 자리에 두고자 했다. 관심 없는 사람, 심지어 잘 모르는 채 비난하는 사람에게도 가닿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어려운 말 쓰지 말자. 복잡한 내용 장황하게 늘어놓지 말자. 무엇보다, ‘사람이 죽고 있어요’ 같은 뻔한 말은 하지 말자.
아무것도 몰랐던 만큼, 기사를 쓰기 위해선 꽤나 집약적인 벼락치기가 필요했다. 시간을 거슬러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추적하고, 여러 책과 국제기구 보고서를 찾아 읽고, 한국에서 20년 동안 학살을 증언해 온 활동가를 만났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주 먼 길을 건너왔음을 느꼈다.
75년의 역사를 알게 됐고, 국제법이 무엇을 범죄로 규정하는지 배웠고, 수많은 사람이 처절하게 죽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모든 걸 알게 되자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두려움과 거리감은 학살의 아픔 앞에 무척이나 나약한 것이 됐고, 냉소와 무관심은 더 이상 부정의에 대한 분노를 잠재울 수 없었다. 나는 어느샌가 아주 다른 내가 돼있었다.
때문에 기사 작성은 제법 난항을 겪었다. 한 문장 쓰고는 ‘너무 복잡해서 읽다 말면 어쩌지?’ 반문하고, 또 한 문장 써놓고는 ‘너무 추상적인 가치만 나열한 건 아닌가?’ 되물었다. ‘사람이 죽고 있어요’ 같은 뻔하디 뻔한 말을 하지 않기 위해 여러 번 머리에 힘을 줘야 했다.
그럼에도 끝내 나는 아주 뻔한 말을 해야겠다. 사람이 죽고 있어요. 이 말이 누군가에겐 헛된 구호로, 또 누군가에겐 위선으로 들릴 것을 안다. 내게 온전히 와닿지 않는 아픔을 제 것처럼 느끼고 저항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멀게 느껴지는지, 내가 느끼지 못하는 감각을 꼭 끌어안고 싸우는 사람들이 얼마나 헛돼 보이는지도 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함께 먼 길을 헤매길 바라는 마음으로 뻔한 말을 한다.
사람 죽는 것에 당연해지고 싶지 않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에 무던해지고 싶지 않다. 내가 운 좋게 살아있다는 사실이 무관심할 이유가 되지 않길 바란다. 하루에도 몇십 명이 새로 죽고, 가늠조차 되지 않는 숫자의 사망자가 기록돼도, 계속 의문을 품길 바란다. 모든 죽음에 의아함을 느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