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구에 노인도 살아요

사진 설명 시작 관악산자연공원에서 휴식하는 노인 사진 설명 끝
▲관악산자연공원에서 휴식하는 노인

관악구에서 노인이 마음 놓고 머무를 수 있는 곳은 어딜까. 청년 인구 비율이 전국 1위인 관악구는 2024년 새로운 도시브랜드로 ‘대한민국 청년수도 관악’을 공포한 후, 여러 청년맞춤형 사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관악구엔 청년 못지않게 많은 노인이 살고 있다. 관악구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은 올해 7월 기준 18.3%로, 서울시 평균보다 높다. 노인들은 청년을 중심으로 변화하는 도시에서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을까. 도시 속 노인이 머무는 공간과 그 속의 삶을 들여다봤다.

노인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

30도가 훌쩍 넘어가는 무더운 여름날, 80대 노인 세 명이 공원에 놓인 탁자에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관악산 초입에 있는 관악산자연공원이다. 이들은 아침 일찍 만나 저녁 무렵 헤어지는 일상을 벌써 5년째 반복하고 있다. 천막 하나 없는 곳에서도 이들의 만남은 이어진다. “매일 오지.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우산 쓰고 여기 앉아있어.” 궂은 날씨에도 노인들은 활기를 얻고자 집 밖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공원에 모인 노인들은 입을 모아 “집에만 있으면 우울해진다”고 말한다. 80대 여성 A씨는 “공원에 나오기 귀찮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며, 힘들어도 공원에 나오려 애쓴다고 말했다.

많은 노인은 신체가 나이 들고 활동 반경이 줄어들며 사회적 역할이 줄었다고 느낀다. 이러한 심리적 위축은 때때로 우울감과 고립감으로 이어진다. 이 가운데 공간을 매개로 한 사회적 교류는 노인과 사회를 잇는 끈이자, 이들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다. 노인이 집 밖으로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건강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관악구 노인들이 공원을 자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관악산자연공원 입구는 관악산역과 맞닿아 있다. 관악구 내 노인 인구가 많은 미성동과 은천동에서 한 번 환승하면 3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다. 또 공원까지 오는 길에 계단이 없고 경사가 완만해 이동이 편하다. 노인들은 그늘이 있고 탁자가 마련된 몇 안 되는 ‘명당’을 차지하려면 아침부터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자리가 다 차서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돌린 적도 많다.

공원은 노인들이 오랜 시간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이다. 카페 같은 도시 내 상업시설은 오래 머물기에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윤예화 연구자(협동과정 조경학)의 논문 「노인들의 외부공간 이용에 관한 맥락의 해석」(2024)에 따르면, 노인들은 자신이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끼거나, 다른 이용자에게 폐를 끼친다는 생각이 들면 이용을 꺼린다.

몇몇 노인들은 카페보다 공원이 편하다고 말한다. 매일 공원을 찾는 A씨는 “카페는 너무 시끄러워서 대화하기 불편하고 에어컨 바람도 세다”며 공원을 찾는 이유를 설명했다. 급변하는 도시 공간 속 노인들에게 공원이 몸과 마음이 쉬어가는 안식처가 되는 셈이다.

공원에서 노인들은 또래 노인들과 활발하게 교류한다. 처음엔 한 쌍의 노부부만 앉아있던 탁자 주변에 점차 노인들이 모였다. 이들을 잇는 것은 공통의 관심사인 화투였다. 노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화투를 치고, 간식을 나눠 먹으며 새로운 인연을 만든다. 공원이 고립된 노인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내몰리는 노인들

모든 공원이 노인을 반기진 않는다. 종로구 탑골공원은 노인들이 모이는 대표적인 장소로, 곳곳에서 노인들이 장기와 바둑을 두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종로구청과 종로경찰서는 7월 31일부터 ‘공원 내 관람 분위기’를 이유로 바둑·장기 등 오락행위를 금지했다. 노인들은 한순간에 여가를 즐길 장소를 잃었다.

공원에서 노인을 내몰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종로구는 2001년 3.1운동 진원지를 복원한다는 이유로 탑골공원 성역화 작업을 진행했다. 등받이가 있는 의자가 차가운 돌의자로 대체되고, 오락행위가 금지됐다.

노인들을 외면한 건 종묘공원도 마찬가지였다. 2007년 서울시는 종묘공원을 원형대로 복원한다는 명분 아래 성역화 사업을 추진했다. 그 결과 산책로가 넓어졌지만, 노인들이 앉아서 휴식을 취할 공간이 사라졌다. 이후 노인들이 반발하자 종로구는 탑골공원을 개방해 오락행위를 허용했다. 그러나 최근 또다시 노인 내몰기가 시작됐다.

사진 설명 시작 관악산공원캠핑숲 안내문 사진 설명 끝
▲관악산공원캠핑숲 안내문 ⓒ관악구홈페이지

관악산계곡캠핑숲 역시 노인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관악산계곡캠핑숲은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캠핑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된다. 신청 대상은 7세 이상 12세 미만 아동을 동반한 가족이다. 따라서 이 기간 노인들의 이용이 사실상 제한된다. 80대 여성 B씨는 “주말엔 텐트를 쳐서 못 들어온다”며 자리를 피한다고 말했다. 공원의 주 이용자인 노인들이, 이들을 고려하지 않는 공간 운용으로 인해 배제되는 셈이다.

1박 2일 캠핑 프로그램은 8월 1일을 끝으로 종료됐지만, 관악구는 같은 장소에서 당일 피크닉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8월 14일부터 3일간 진행된 이 행사 역시 신청 대상은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이었다.

이처럼 공원에서 노인들의 자리가 지워지는 명분은 다양하다. 역사적 가치에 걸맞은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어린이와 가족을 위한 공원을 만들기 위해. 문제는 공원을 대체할 도시 공간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고립되는 노인들

경로당과 노인복지관은 노인이 편히 머무를 수 있도록 조성한 공간이다. 관악구에만 113개의 경로당과 노인 교실, 복지관 등을 포함한 28개의 노인복지시설이 있다.

그러나 일부 노인들은 이에 접근하기조차 쉽지 않다. 김동호 관악노인종합복지관 관장은 “한 달에 150명에서 200명의 신규 회원이 들어오는데, 대부분 친구 소개로 복지관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복지관을 아는 지인이 있어야만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김동호 관장은 “일부 노인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집단에 적응하는 걸 두려워한다”고도 설명했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남성 노인에게서 두드러진다. 관악노인종합복지관의 경우 남성 회원이 여성 회원에 비해 확연히 적다. 또 남성 노인은 정적인 프로그램에만 참여하거나 활동 중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복지관의 인기 수업인 ‘라인댄스’와 ‘노래교실’의 수강생 중 남성은 10%도 채 안 된다. 남성 노인 대다수는 복지관 한켠에 마련된 ‘장기·바둑실’에 모여있다.

남성 노인뿐만 아니라 노인 1인가구도 새로운 집단에 적응하기 힘들다. 관악구의 노년층 1인가구는 2024년 말 기준 3만 2,074명으로 다른 자치구보다 많다. 홀로 지내는 노인은 가족이나 이웃과의 연결망이 약한 만큼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쉽다. 이들에게 새로운 집단에 발을 들이는 일은 더욱 큰 부담이다.

그럼에도 일상적 공간을 찾아

사진 설명 시작 관악노인종합복지관 사진 설명 끝
사진 설명 시작 관악노인종합복지관에 모여있는 노인들 사진 설명 끝

관악노인종합복지관은 복지관을 찾기 어려워하는 노인들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외부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집에만 머무는 ‘은둔형’ 노인을 찾아내 집단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특화서비스 사업이 대표적이다. 관악노인종합복지관은 현재 은둔형 노인 42명을 돌보고 있다. 이러한 사업을 통해 집 밖으로 나서기 망설이던 노인들도 복지관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사회와 연결된다. 김동호 관장은 복지관에 적응해 전보다 활기찬 일상을 살게 된 한 여성 노인이 복지관을 ‘천국’이라고 표현하며, 사회와 교류하는 삶의 즐거움을 드러냈던 일화를 전했다.

노인 일자리 운영도 그 일환이다. 관악노인종합복지관은 노인이 다른 취약계층 노인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는 일자리 사업을 운영한다. 노인들은 도시락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안부를 묻고 대화를 나누며 자연스레 사회적 연결망을 형성한다.

경로당과 협약을 맺어 진행하는 지역복지활성화사업도 주목할 부분이다. 기존의 경로당은 기성 구성원 간 관계가 공고해 새로운 회원이 적응하기 어렵다. 이에 김동호 관장은 “기존의 폐쇄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개방적인 경로당’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개방적인 경로당은 노인을 비롯해 다양한 세대가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이다. 관악노인종합복지관은 개방적인 경로당을 만들기 위해 지역 주민과 노인이 어우러질 수 있는 세대 통합 프로그램 등을 운영 중이다. 경로당이 세대 간 교류와 돌봄의 거점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이렇듯 노인을 위한 도시 공간에는 꾸준한 고민이 필요하다. 기존 공간은 노인이 더 쉽게 발걸음할 수 있도록, 또 노인이 아닌 다른 세대와도 연결될 수 있도록 품을 넓혀야 한다. 소통과 교류를 위한 공간이 충분히 마련된다면 노인은 사회적 연결망 속에서 더욱 활기찬 일상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청년수도’ 관악에도 노인이 산다. 노인들은 청년 중심의 도시 공간에 소외감을 느끼며 점점 가장자리로 내몰린다. 그럼에도 그들은 끊임없이 대안적 공간을 찾아 또래와 교류하고, 취미를 즐기며, 일상을 이어나간다. 중요한 건 노인이 사회와 연결될 기회를 더 많이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공간이 마련될 때, 우리는 비로소 전 세대를 아우르는 도시에 살 수 있을 것이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전 기사

서울대, 히트 상품이 되다

다음 기사

가자지구 집단학살, “한국도 공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