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시대에 지면을 디자인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서울대저널〉에 들어오기 전까지 내게 지면은 너무 가까워서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 존재였다. 여기서 ‘가깝다’의 의미는, 거리를 두고 생각해 볼 수 없을 만큼, 지면 안의 내용에 빠져있었다는 뜻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지면과 거리를 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지면 위 글자들을 다뤄야 하는 사람이라면 글자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관점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나는 글자와 계속 멀어지려 했다. 지면과 마주하기 전까지 나는 텍스트가 없는 시각 작업들에 익숙했다. 그러나 타이포그래피, 편집디자인 수업을 들으며 텍스트가 존재하고, 또 그것이 ‘읽히는 것’을 목표하는 작업에선 지면에서 어떤 조형을 설계해야 하는지 조금씩 익혀갔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떠올리는 시각언어의 화려함과 정반대로, 지면의 논리는 매우 미시적이고 작은 단위로 움직였다. 하나의 미세한 조정은 단어에서 문장, 문장에서 글로 옮겨갈수록 명백한 변화를 보여줬다. 작은 조율의 과정들은 생각보다 흥미로웠고, 나는 다시 지면의 논리에 몰입해 갔다.
하지만 우습게도 지면의 논리에 열중하며 역으로 지면 속 이야기들과 멀어져 버린 탓에, 종종 지면을 설계하는 목적 자체를 잊곤 했다. 이곳에 들어온 계기를 되짚어 보면, 이곳에 들어온 건 내가 속한 세상에 안주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얘기들을 그저 듣고 싶어서였다. 그럼에도 마치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쪽을 포기해야 하는 양자택일과 같은 상황 속에서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중간값을 찾아내는 것이 편집자의 몫일 거라고.
〈서울대저널〉은 많은 이들이 헤아릴 수 없는 애정을 담아 꾸려가는 단체다. 이 덕에 한 학기에 3권, 꽉 찬 내용들과 함께 쉴 새 없이 움직일 수 있다. 편집의 균형은 애정 어린 이야기가 담긴 글자들 위에서 이뤄진다. 비록 과거 저널의 시각적 문법에서 벗어나기로 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저널에 맞는 지면의 구체성을 조금씩, 가능한 만큼 찾아나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