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시작.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이 사무실 책장 앞에 비스듬히 서있다. 사진설명 끝.

서울은 가난하고 집 없는 이들의 절망 위에 세워진 도시다. 개발 열풍이 거세던 1980년대, 도시 곳곳에서 강제철거가 잇따랐지만 철거민을 위한 대책은 전무했다. 한국도시연구소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1985년 도시빈민연구소로 출발한 이래 도시빈곤 문제를 알리고 한국사회에 ‘주거권’ 개념을 확립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해왔다.

최은영 소장은 올해 설립 40주년을 맞은 한국도시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최 소장은 통계청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시절 데이터로 드러나는 청년들의 주거 현실을 목격했고, 2013년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특별한 계획이나 거창한 포부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자유롭게 펼치고 싶다는 마음에서 나온 선택이었다. 학계와 현장을 오가며 주거취약계층의 권리 보장을 위해 목소리 내온 최 소장에게 청년 주거권의 현주소와 주거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물었다.

청년 주거권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통계 전문가로서 청년 주거빈곤의 심각성을 느끼고 주거권 운동에 뛰어들었다. 통계에서 확인되는 청년들의 현실은 어땠나.

한국은 큰 흐름에서 보면 주거 문제를 빠르게 해결해 온 나라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전체 가구의 절반이 주거기본법상 최저 주거 기준에 미달하는 주거빈곤 상태였다. 지금은 이 비율이 10%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데 이 흐름에서 소외된 계층이 청년 1인가구, 특히 서울에서 혼자 사는 청년들이다. 한국사회 전체의 주거빈곤가구는 꾸준히 감소했는데, 서울 청년 1인가구는 오히려 2015년까지 주거빈곤가구 비율이 올랐다. 마치 청년세대가 따돌림받는 것처럼 보였다.

또 청년세대에서는 ‘주거 사다리’가 나타나지 않았다. 2010년 전후로 20대 가구 상당수가 월세로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30대가 된 이후에도 전세나 자가로 옮겨가지 못했다. 1997년 IMF 위기가 그 출발점이었다고 본다. 당시 가난했던 청년들이 나이 든 뒤에도 주거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 세대가 낳은 자녀들이 주거빈곤을 대물림하는 판국이다.

사진설명 시작. 1995년부터 2020년까지 전국 전체가구와 서울 1인 청년가구의 주거빈곤 가구 비율 변화를 보여주는 그래프다. 전국의 주거빈곤가구 비율은 1995년 46.6%에서 2000년 29.2%, 2005년 19.3%, 2010년 14.8%, 2015년 12.0%, 2020년 8.4%로 꾸준히 감소했다. 한편 서울 1인 청년가구는 1995년 58.2%에서 2000년 31.2%로 감소했으나, 2005년 34.0%, 2010년 36.3%, 2015년 37.2%로 이후 증가하는 흐름을 보였다. 2020년에는 23.9%로 크게 감소했다. 사진설명 끝.
▲ⓒ빈채현

기성세대에 비해, 청년들의 상황은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나.

1970~90년대는 지금과 달리 경제가 가파르게 성장하는 사회였다. 내 집 마련이 그리 어렵지 않았고, 서울과 지방의 집값이 지금처럼 하늘땅 차이도 아니었다. 집값도 계속 올랐다. 대출을 끌어다 집을 사고 높은 이자를 부담해도 문제가 없었다는 말이다.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지금 당장은 집값이 오르는 것 같아도, 수십 년 뒤에도 그럴까? 아니다. 그런데도 사회는 전과 같은 방식으로 돌아간다. 집을 사서 돈을 벌고,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여전히 퍼져있다. 실현되기 힘든 꿈이다. 2030 청년들이 ‘영끌’*로 집을 산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섬뜩하다.

*영끌: ‘영혼까지 끌어모으다’라는 뜻으로, 주택담보대출이나 신용대출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집을 사는 세태를 가리킨다.

청년들이 겪는 주거 문제는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청년들이 소득에 비해 과한 주거비를 부담하는 데서 오는 문제가 심각하다. 주거비 부담을 나타내는 통계 지표로 ‘소득 대비 주택임대료 비율(RIR, Rent to Income Ratio)’이 있다. 이 비율이 30%를 넘기면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다. 예를 들어, 한 달에 200만 원을 버는데 월세와 관리비로 매달 80만 원이 나간다고 하자. 이런 상황에선 노후 대비 저축은 물론이고 의료비나 교육비, 친구를 만나는 데 드는 비용 모두가 부족해진다.

국가나 지자체에서 월세 지원을 확대해야 하는 이유다. 80만 원 중 20만 원을 서울시나 정부가 부담해 주면, 조금은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지 않겠나. 물론 20만 원은 주거비 부담을 전부 해결하기엔 부족한 금액이지만, 나는 이것이 국가가 청년들에게 줄 수 있는 희망이라고 본다. 국가가 내 삶을 일부나마 뒷받침해 준다는 믿음 말이다.

20대 청년은 주거복지 사각지대

지금 시행 중인 월세 지원 정책의 문제는 무엇인가.

청년을 주거권이나 주거복지의 예외로 보는 시각이 문제다. 한국은 여전히 청년 주거를 국가가 아닌 부모가 해결할 문제로 간주한다. 원칙적으로 집이 없고 소득이 적은 청년이라면 누구나 월세를 지원받아야 한다. 그런데 현행 월세 지원 정책은 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라 지원을 결정한다. 청년이 가족과 떨어져 살아도 마찬가지다.

한시적인 지원도 문제다. 정부의 월세 지원은 처음부터 ‘청년월세 한시 특별지원’이라는 이름으로 도입돼, 1년 동안만 20만원을 지원했다. 지금은 2년으로 늘었지만, 2년이면 주거 문제가 해결될까? 아니다. 주거권을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가 아닌, ‘1~2년만 특별히 도와준다’는 식의 시혜적인 관점으로 접근한 것이다.

보편적 주거복지 제도로 주거급여가 있다. 저소득층 가구에게 매달 약 35만 원을 지급하는 제도다. 여기서도 30세 미만 미혼 청년은 소외된다. 부모와 한 가구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가족과 떨어져 관악구에서 자취하는 대학생, 노량진에서 취업 준비하는 청년을 부양할 책임은 국가가 아닌 부모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2016년 조사에 따르면, 청년 4분의 1은 원가족으로부터 주거비를 전혀 지원받지 못한다. 이들은 아르바이트로 주거비를 마련하고, 대출로 생활비와 학자금을 겨우 마련한다. 이런 기회의 불평등이 누적되며 생애 전반에 걸쳐 격차가 벌어진다. 지금처럼 청년의 주거와 생계를 부모에게 떠맡기는 한,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내기란 불가능하다.

청년·신혼부부 대상으로 공급되는 공공임대주택은 어떻게 평가하나.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청년·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공공임대주택이 ‘행복주택’이라는 이름으로 도입됐다. 여기서도 청년은 예외였다. 공공임대주택은 입주자가 필요한 만큼 거주 기간을 보장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청년은 최대 6년까지만 거주할 수 있었다. (2024년부터 10년으로 연장됐다.) 그러고선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으면 입주 기간을 연장해 준다. 청년을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 할 대상’으로만 간주하는 것이다.

세대 간 분리도 문제다. 청년만 대상으로 하는 정책을 만들다 보니, 기존 영구임대주택엔 나이 든 사람만, 행복주택은 청년만 거주하게 됐다. 이런 분리가 청년·신혼부부 주택에 대한 혐오로 이어졌다. 2018년 영등포구에서 청년주택이 지어질 당시 집값이 떨어진다며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는 경악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청년 주거권보다 재산권이 우선시되는 현실을 보여준 사건이다.

사진설명 시작. 한 청년이 텐트 안에 피켓을 들고 앉아있다. 피켓에는
▲2018년 영등포구 청년주택 건설 계획이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히자 청년들이 사업 추진을 촉구하며 철야 텐트 시위를 벌였다. ⓒ우리미래

공공주택, 쉬운 길은 없다

서울시 청년안심주택 등 민간자본으로 건설되는 청년주택의 경우, 높은 보증금과 임대료 탓에 정작 지원이 필요한 주거취약계층이 소외되는 문제가 지적돼 왔다.

이른바 ‘민자 기숙사’가 생기던 때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그 전엔 대학이 직접 기숙사를 공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민간자본을 끌어들이더니 기숙사 비용이 높아졌다.

청년안심주택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공공임대주택을 충분히 공급하는 대신, 민간 협력이라는 이름 아래 영리 기업을 끌어들였다. 그 결과 임대료가 상당히 높아졌고, ‘안심주택’이라는 이름과 달리 보증금 사고까지 발생했다. 공공이 직접 재정을 투입하기보다 용적률 상향이라는 혜택을 주고 민간에 사업을 떠넘기는 쉬운 방법을 택한 데서 비롯된 문제다. 그 결과 용적률 상향으로 땅값이 오르고, 땅값 상승은 임대료 인상으로 이어지며, 전체 주택시장 가격을 끌어올리는 악순환이 만들어졌다.

최근 떠오른 전세사기와 ‘깡통 전세’도 공공이 돈을 덜 들일 방법만 좇은 결과다. 공공임대주택이나 월세 지원에 돈을 쓰는 대신 전세 보증금을 빌려주는 편한 방식을 택했고, 이 과정에서 대출과 보증이 마구잡이로 이뤄졌다. 이로 인한 위험은 청년들이 고스란히 떠안았다. 잘못 설계된 정책이 개개인에게 너무 큰 고통을 안긴 셈이다.

공공주택 공급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돌파구는 무엇일까.

서울은 개발할 땅이 거의 남지 않은 도시다. 과거처럼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공급하긴 어렵다는 뜻이다. 이런 조건에서 주목해야 할 방식이 매입임대주택이다. 이미 지어진 주택을 사거나 신축 예정인 물량을 사들여 공급하는 방식으로, 지금도 충분히 시도할 수 있다.

돈이 없어서 못 하는 것도 아니다. 박원순 시장 시절에는 연간 1만 호 이상을 공급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와 오세훈 서울시에서는 공급이 크게 줄었다. 그 결과 경쟁률이 수백 대 일까지 치솟았고, 2022년과 2023년에는 오히려 매입임대주택 재고가 줄어들었다.

청년 주거 문제를 해결하려면 SH와 LH가 서울에서 적극적으로 매입임대주택을 확보해야 한다. 결국 정책 관련자의 의지에 달린 문제다. 매입임대주택은 성과가 빠르게 나타난다. 다세대 도시형 생활주택은 1년이면 지을 수 있어, 의지만 있으면 곧바로 청년에게 제공할 수 있다.

사진설명 시작. 도로 건너편으로 10층 정도 높이의 건물이 우뚝 서있다. 사진설명 끝.

청년친화도시 관악의 ‘지옥고’ 청년들

관악구는 서울에서도 특히 청년 주거 문제가 심각한 곳으로 꼽힌다. 일명 ‘지옥고’라 불리는 지하, 옥탑방, 고시원 등 열악한 주거지가 밀집한 지역이기도 하다.

최근 놀랄 만한 통계가 발표됐다. 2020년과 2024년 사이 지하에서 거주하는 서울시 가구가 약 4만 4천 가구 늘었다는 것이다. 지하 가구가 줄어들던 추세에 역행하는 결과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속도가 주거취약계층이 증가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선택지가 없는 주거취약계층이 지하로 내몰리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서울시와 관악구는 반성하고 대책을 찾기보단 통계를 부인하고 있다.

2022년 신림동의 반지하에 살던 일가족이 침수로 목숨을 잃는 참사가 있었다. 최근 그 지역에 살던 노인 가구가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주했는데, 그 빈방에 청년이 월세로 들어왔다. 아주 상징적이고 마음 아픈 장면이다. 참사가 발생한 곳은 하천을 복개한 지역으로, 언제든 물이 들어찰 수 있어서 위험하다. 그런 곳을 그대로 방치해도 될까.

고시원 문제도 심각하다. 고시원에서 화재가 일어나면 탈출하기 어렵다는 걸 우리는 이미 여러 사건을 통해 알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고시원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가 없다. 가장 가난한 사람이 사는 곳도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하도록 감독하는 게 국가의 책임인데,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

사진설명 시작. 전국, 서울, 관악구에서 지하 거주 가구 비율의 변화를 보여주는 그래프다. 2005년에서 2024년 사이, 전국의 지하 거주 가구는 3.7%, 3.0%, 1.9%, 1.6%, 1.8%로 변화했다. 서울시의 지하 거주 가구는 10.7%, 8.8%, 6.0%, 5.0%, 5.9%로 변화했다. 관악구의 경우 14.4%, 11.5%, 8.4%, 8.1%, 11.2%로 변화했다. 사진설명 끝.
▲ⓒ빈채현

관악구는 ‘청년친화도시’를 표방하며 여러 정책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체감되는 정책이 있던가? 선언하기는 쉽지만, 현실에서 변화를 만드는 건 다른 얘기다. 말로만 주거 문제를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실행으로 옮겨야 한다.

일부 지자체는 이미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고 있다. 경기도 시흥시는 연간 10억 원 이상을 들여 청년과 신혼부부, 자녀가 있는 가정에 월세를 지원하고 있다. 인천에서는 하루 1천 원에 살 수 있는 ‘천원주택’을 추진 중이다.

전국의 청년들이 서울로, 관악구로 모여든다. 서울의 비싼 집값과 월세를 방치한 결과,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것이라 예상되는 초저출생 국가가 됐다. 이 암담한 현실이 바뀌어야 한다.

주거정책이 청년에게 희망 줘야

청년 주거정책,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청년이라고 해서 주거권의 예외가 돼선 안 된다. 청년의 주거권이 특히 더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이의 주거권이 중요하기에 청년을 빼놓아선 안 되는 것이다. 지금의 주거복지 제도는 청년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짜여있기에 문제다.

『해리포터』를 쓴 J. K. 롤링을 그 자리에 있게 한 것이 영국의 주거복지 제도다. 최소한의 주거 공간을 지원받을 수 있었기에 길이 남을 작품을 써낼 수 있었다. 한국 청년들도 그런 기회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주거권은 모두에게 보장돼야 하는 권리지만, 주택이 투자 상품으로 여겨지는 탓에 이러한 인식이 널리 자리 잡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녹록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주택을 상품으로만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공급하는 나라다. 유럽에선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공공임대주택이 생겨났는데, 한국은 1989년에 시작했으니 많이 늦은 편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지어진 장기 공공임대주택만 해도 130만 호가 넘는다. 주거급여 도입, 청년 월세지원 확대 등 주거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기반도 꾸준히 확대돼 왔다. 국가가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널리 자리 잡은 셈이다. 마냥 비관적이지는 않다.

청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가 연구소에 온 2013년만 해도 청년에게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자는 주장은 아주 생경한 것이었다. 이제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10여 년간 청년 주거권을 쟁취하기 위해 당사자들이 앞장섰기 때문이다. 조금씩 세상이 변해왔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현실이 분명히 나아지고 있고, 앞으로도 나아질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진설명 시작. 최은영 소장이 인터뷰 중 미소 짓고 있다. 사진설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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