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방학, 많은 대학생의 계획표가 여행으로 채워진다. 여행 가냐는 물음이 일상이 된 대학가에서, 대학생이자 여행자인 이들을 만났다. 모두가 다른 여행을 경험하지만, 대학생의 자리에서 출발한 그들의 여정은 어느 지점에선 서로를 비추며 공명했다. 이들은 여행을 왜 가고, 여행 중 무엇을 하며, 여행 후에 무엇이 남았다고 느낄까. 여행을 좋아하는, 좋아해야 할 것 같았던,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묻는다. 우리에게 여행은 무엇인가?

지금 아니면 못 떠나는 세계
20대 대학생에게 여행은 매우 중요한 ‘여가’다. 이들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여행을 떠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국민여행조사」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20대의 96.2%가 국내 여행을 다녀왔다. 해외여행도 빼놓을 수 없다. 비누랩스 인사이트가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기반해 천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선, 응답자의 71.3%가 2024년 한 해 동안 해외여행을 다녀왔거나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학생 때 해외여행은 필수’라는 문장에는 그보다 많은 74%가 동의했다.


대학생들 사이에는 바로 지금,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넓게 퍼져있다. “방학 때 여행을 못 가면 왠지 방학을 잘 못 보낸 것 같다”는 수진 씨는, “여행을 좋아하는 것도 맞지만 그와는 별개로 지금 꼭 가야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수진 씨는 “주변을 둘러보면 방학뿐 아니라 여비가 저렴한 학기 중에 수업을 포기하면서 가기도 한다”고 전했다.
기자가 만난 대학생들은 지금이 삶에서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시기라고 말했다. 10대에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당위가 무겁게 자리하는 입시의 시간을 거쳐야 했고, 여행 자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았다. 20대를 맞이해 얼마간 자유가 생겼지만, 이는 대학 졸업 이후 사회생활이 시작되기 전까지로 제한된다. 그렇기에 대학 시기는 사회에서 부과하는 의무로부터 얼마간 벗어나, 원하는 만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시기로 여겨진다. 그리고 많은 대학생은 이를 여행 기회로 삼는다.
이러한 분위기는 이들이 졸업 후 마주할 노동환경과도 긴밀히 닿아있다. 수진 씨는 “직장인들이 졸업하면 여행 갈 시간이 전혀 없으니 대학생 때 많이 가야 한다고 조언하는 것을 온라인상에서 종종 봤다”며, “우리나라의 일하는 문화상 휴가를 길게 쓰기가 어렵다 보니 특히 장거리 여행은 대학생 때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여행에 대한 높은 선호 역시 이런 맥락과 맞닿는다. 한국리서치가 2023년 시행한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20대의 여행 선호도는 국내보다 해외로 확연히 기울어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여행을 즐긴다는 수아(가명) 씨 역시 “국내여행은 학기 중이나 취직한 후에도 비교적 쉽게 갈 수 있기에 해외를 선호한다”고 밝혔다.
젊음과 학생 신분이라는 두 조건은 대학생을 여행으로 이끄는 제도로도 나타난다. 교환학생을 마치고 프랑스 파리를 여행 중인 수아 씨는 교환 생활 동안 한 달에 2~3번꼴로 여행을 다녔다. 프랑스에서는 학생 비자 덕분에 여행할 수 있는 곳이 넓어졌다. 박물관·미술관을 비롯한 여러 명소가 학생 비자 소지자에게 무료로 열리기 때문이다. 수아 씨는 만 25세까지 학생 비자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며, 이것이 “20대 초반의 여행을 독려하는 방식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경험’의 가치
여행지에서 우리는 낯선 풍경을 보고, 처음 보는 음식을 먹고,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난다. 익숙하지 않은 지역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들을 마주한다. 여행을 준비하고, 떠나고, 돌아오는 그 모든 과정은 ‘새로운 경험’이 된다. 이는 그 자체로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된다.
여행은 다른 사회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다. 지난겨울 이탈리아로 봉사활동을 다녀온 수진 씨는 “관광은 이틀밖에 못 했지만, 평소에 하지 못했던 경험을 했다는 점에서 좋은 여행이었다”고 평했다. 외국에 사는 또래 대학생과 문화 차이를 실감하는 계기기도 했다. 수진 씨는 “평소에 보지 못하던 풍경을 보는 것도 좋지만, 문화적인 차이를 느낀 것이 인상 깊었다”며, “여행은 “내가 살던 곳의 표준이 당연하지 않아지는 경험”이라 말했다.
그래서 수진 씨에겐 여행지의 사람들과 대화하는 순간이 소중하다. 수진 씨는 기차 옆자리에 앉은 승객이 궁금해 5시간의 여정 중 4시간을 고민하다 내리기 전에야 대화를 나눴던 일화를 들려주며, “평소에 망설였던 일이라도 여행지에서는 용기를 내 도전하게 된다”고 말했다. 낯선 이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일이 평소라면 쉽지 않았겠지만, 여행은 일상과 먼 경험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때로는 가보고 싶었던 곳에 도착했다는 사실만으로 의미 있는 경험이 된다. 여행지 풍경과 자신의 모습이 함께 담긴 ‘인생사진’ 찍기를 즐기는 수아 씨는 여행 브이로그에서 본 매력적인 장소를 실제로 찾아가는 데서 큰 즐거움을 느낀다. 미디어를 통해 그려왔던 여행지에 방문하지만, 그곳을 직접 걷는 일은 “미리 알 수 없었고 일부러 찾아가지도 않은 곳에서 특별한 순간을 마주치기도 한다”는 점에서 더욱 재미있는 경험이다.
여행의 경험은 낯선 환경에서 직면한 위기를 해결하는 일을 포함한다. 수아 씨는 “여행을 통해 다양한 상황에 대한 대처 방법과 문제 해결력을 얻을 수 있다”고 짚었다. “여행을 많이 가면 시야가 넓어진다는 말은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생긴다는 의미일 것”이라 덧붙이기도 했다.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는 때로 여행을 꼭 가야 할 것 같은 압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민성 씨는 이전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대학에 온 후 여러 지역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곳으로 여행 다녀온 이야기도 듣게 되며 다른 지역에 가보고 싶다는 궁금증이 커졌다. 여행 경험이 많은 친구들을 보며, 자신은 경험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여행에 대한 갈망이 커지기도 했다.
코로나19 대유행 때 새내기 시절을 보낸 후 바로 입대해 여행을 거의 하지 못했던 민성 씨는, “여기저기 여행 다니며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현재 중앙여행동아리 ‘괴나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처음엔 여행 경험이 없다는 점이 계기가 됐지만, 민성 씨는 “막상 여행을 다녀보니, 못 해본 게 있다는 압박감보다는 조금씩 즐기면 되겠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자신에겐 여행에서 얻는 새로운 경험 자체가 큰 도움이 되진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필수라 생각하진 않는다”고 입을 뗀 민성 씨는 여행 경험이 없는 이들이 여행을 “한 번쯤 해볼 만한 것 정도로 느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벗어나는 감각
여행은 지금 이곳을 잠시나마 벗어나는 일이다. 목적지를 향한 움직임 속엔 일상을 탈출하고 싶다는 마음이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익숙한 환경과는 전혀 다른 리듬 속에 자신을 배치하는 경험이라는 점에서 여행은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일상을 떠나는 일은 현실의 고단함을 푸는 휴식이다. “힘들 때 여행을 다녀오면 환기에 큰 도움이 된다”는 민성 씨의 말처럼, 여행은 반복적인 생활을 벗어나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이다.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물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무이(가명) 씨는 여행을 “자신에게 주는 선물 같다”고 표현했다. 때로는 여행 계획이 잡혀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혹은 지난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일상을 버틸 힘이 생긴다.
여행이 주는 휴식은 불안한 현실을 잠시 잊음으로써 가능해지기도 한다. 예림 씨는 지난가을 즉흥적으로 일본 여행을 떠났다. 집에서 연휴를 의미 없이 흘려보낼 것 같다는 조바심이 싫었기 때문이다. “여행 중 새로운 환경이 주는 긴장감과 돌발 상황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불안정한 상태를 환기하는 데 도움을 줬다. 예림 씨는 또래 대학생들이 이토록 많이 여행을 다니는 데는 “취업 등 무거운 과제를 직면하기 전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전했다. 쉴 새 없이 밀려드는 불안 속, 여행은 부담을 잠시나마 유예할 수 있는 일종의 도피처가 되는 셈이다.
한편, 일상을 벗어날 때 생기는 거리감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 무이 씨는 너무 힘들어서 혼자 여행을 떠났던 때를 떠올리며, “내가 처한 상황을 한 걸음 떨어진 채 들여다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여행을 가면 나 자신뿐 아니라 함께 간 사람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된다”고 덧붙였다. 무이 씨에겐 여행의 목적지만큼이나 함께하는 사람이 중요한데, 이는 여행이 가까운 사람과 추억을 쌓고 익숙한 관계 속에서 새로운 면을 발견해 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벗어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떨어뜨린 것들을 다시 엮어내는 일이다. 재창 씨는 “나와 연고가 하나도 없는 것들 속에서 모든 게 지나쳐가고 있다는 느낌”이 좋아서 여행을 떠나지만, 동시에 여행에서 얻은 맥락으로 일상을 다시 쌓아올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낯선 곳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얽힘이 돌아온 이후의 삶으로도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024년 여름 친구들과 한 달간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던 재창 씨는, 오스트리아의 한 술집에서 만난 바텐더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가 됐다. “그 친구와 여행하는 도중은 물론이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계속 연락했다”는 재창 씨는 “그곳에서 만난 새로운 관계를 떠올리면 여행이 단순히 떠났다가 돌아오는 행위가 아닌 것 같다”고 곱씹었다.
재창 씨는 여행자로서의 자신이 능동적인 행위자보다는 수동적인 존재에 가까웠다고 설명하며, “그런 무능력함과 수동성이 오히려 접촉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여행지에서 마주친 대상들과 거리를 두기보단 “그들과 접촉해, 여행과 일상을 아우르는 삶의 맥락을 재구성하는 것”이 재창 씨에겐 중요하다. 여행과 일상의 경계가 희미해져 ‘떠났고 돌아왔다’는 말이 무의미해지는 순간들. 재창 씨에게 여행의 의미는 여행이 끝나는 순간에 존재했다.
고르지 않은 망설임
어디든 떠날 수 있는 자유가 모든 대학생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건 아니다. 대학생은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며, 저마다 다른 조건과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학생이라면 해외여행은 필수’라는 말은 어떤 이에게 더 무겁고 따갑게 다가온다.
졸업 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이 무게를 더해갈 때, 여행을 위해 시간을 내는 일은 점점 어려워진다. 민성 씨는 여행의 제일 큰 걸림돌로 부족한 시간을 꼽으며, “아무래도 고학년이다 보니 길게 시간을 빼는 건 무리가 되겠다는 걱정이 있다”고 말했다. 민성 씨는 “여행보다 공부나 다른 일을 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그런 쪽에 시간을 쓰려고 하는 편”이라며, 휴식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도 여전히 해야 할 게 많아 여행을 떠날 수 없는 고충을 토로했다.
여행을 떠날 돈과 시간을 동시에 확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비교적 높은 비용과 긴 시간이 소요되는 해외여행은 더욱 그렇다. 직장생활을 하는 현재와 대학 시절을 비교하며, 무이 씨는 “그때는 돈이 없었고 지금은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무이 씨는 대학 시절 부모의 지원을 청하기 어려워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모아 여행을 했다고 회상하며, 그랬기에 친구와의 해외여행은 한 번밖에 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가오는 방학, 여행 계획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재창 씨는 “일본에 가고 싶지만 아르바이트와 과외가 등짐처럼 짊어져 있어 짬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재창 씨는 대학생은 돈을 버는 족족 생활비로 써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 쉽다는 점을 짚으며 여행 자금을 모으기가 좀처럼 쉽지 않음을 토로했다. 재창 씨는 “여행을 떠나려고 모아둔 돈을 털어 쓰거나 부모님께 빚을 지기도 한다”고 털어놓으며 “여행은 항상 탕진하거나 빚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한편, 여행 앞의 망설임은 여행자 개인이 가진 무형의 자원에 따라서도 다르게 나타난다. 가령 어린 시절부터 가족과 국내외를 여행하며 체득한 삶의 양식은 성인이 된 후 여행을 대하는 방식에도 큰 영향을 준다. 수아 씨는 “여행 경험이 많지 않다면 멀리 떠나기 꺼리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며, 어릴 적부터 여행이 익숙했던 덕분에 현재까지도 자연스럽게 떠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아 씨의 경우 “부모님도 여행을 좋아하시고 원하는 경험은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분위기”기에 “여행 가서 아주 큰 돈을 쓰는 것만 아니라면” 비용은 큰 부담 요인이 아니다.
예림 씨는 돈과 시간만큼, 젠더와 인종, 국적 등 다양한 정체성이 여행에 고민을 더한다고 말했다. 어떤 곳을 누구와 어떻게 갈지 선택하는 모든 과정에서 “만 22세 한국인 여성”이라는 점이 종합적으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혼자 혹은 여자 친구들과 여행을 할 때 안전에 더 신경 쓸 수밖에 없다”던 예림 씨는 인종차별에 대한 우려도 해외여행을 주저하게 하는 요인이라 지적했다. “일본에서 한국인이란 이유로 차별받은 적이 있었다”는 예림 씨의 말은 특정 정체성을 지닌 이가 여행 내내 더 큰 걱정과 긴장감을 동반하게 된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는 곧 개인이 향할 수 있는 여행지를 좁히고, 여행지에서 발휘할 수 있는 용기의 반경을 제한한다.
여행은 가능성과 기대, 압박과 부담으로 대학생의 삶에 스며든다. ‘지금 떠나야 한다’는 생각은 설레는 초대장이자 흐릿한 명령으로 우리 곁을 맴돌고, 때로는 떠날 수 없는 현실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여행자들은 같은 곳으로 떠나지도, 같은 곳으로 돌아오지도 않는다. 각기 다른 여행의 풍경 속에는 사회적 기대와 믿음, 조건과 배경이 교차한다. ‘나에게 여행은 무엇인가’를 넘어, 서로 다른 여행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함께 바라본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을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