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 이후 크고 작은 광장이 여럿 등장했다. 사람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다양한 방식으로 그곳을 채웠다. 그중 무지개색 리본으로 장구를 동여매고 힘차게 상모를 돌리던 이들이 있었다. 남원농악을 선보이는 마이너리티* 풍물패 퀴얼이다. 퀴얼은 소수자를 뜻하는 ‘퀴어(queer)’와 정신의 줏대를 뜻하는 ‘얼’의 합성어로, 퀴어한 풍물을 통해 새로운 무대를 꾸미고 싶은 이들이 모인 단체다. 이들은 소수자 의제를 다루는 투쟁 현장에 공연으로 연대하거나 무지개색 깃발을 들고 광장 곳곳에 출몰한다.
*마이너리티(minority): 사회적 소수자 집단을 일컫는 말
윤석열은 탄핵됐지만 소수자를 향한 탄압은 여전하다. 5월 2일, 아트하우스 모모는 기독교 정신에 반한다는 이화여대 본부의 항의에 한국퀴어영화제 대관을 취소했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성소수자를 축복한 목사를 줄줄이 쫓아냈다. 광장의 요구였던 차별금지법은 대선에서 자취를 감췄다. 무지갯빛이 온통 사라진 듯한 아스팔트 위에서, 여전히 꽹과리를 치고 북을 울리는 이들이 있다. ‘프라이드 먼스’*인 6월을 맞아 퀴얼의 소연, 소진, 수민, 승희, 진영, 하지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

퀴얼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소연 시작은 같은 학교 단과대 풍물패에서 활동하던 넷이었다. 졸업한 후에도 풍물을 계속하고 싶어서 사람을 모았다. 퀴얼이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우리가 포용하려는 가치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지었다.
퀴어가 성소수자를 뜻할 수도 있지만, ‘마이너리티’ 풍물패를 표방하는 만큼 ‘퀴어하다’의 원뜻 ‘기묘한’, ‘이상한’으로 쓰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떤 맥락에서 퀴어라는 단어를 사용하나.

하지 구성원 중 퀴어 정체성을 가진 이도 있지만, 성소수자에 국한하기보다 소수자 전반과 연대하고자 ‘퀴어하다’는 말을 사용했다. 풍물 자체가 퀴어한 속성을 띠고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기존에 있는 풍물패에 들어가지 않고 퀴얼을 만든 이유는.
소연 남원농악을 계속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 다른 풍물패는 보통 고창농악이나 임실필봉농악을 한다. 서울에서 남원농악을 하는 풍물패는 거의 없다. 몇 년간 남원농악을 하며 다져온 우리의 단합력을 이어가고 싶었다.*
*농악은 전승되는 지역에 따라 판굿 형식이나 가락 구성 등에 차이가 있다. 남원농악은 장단이 다채롭고 빠른 편이다. 부드러운 재질의 헝겊이나 종이로 만든 상모 장식인 ‘부들상모’도 특징이다.
풍물을 어디서 처음 접했나. 각자가 생각하는 풍물의 매력이나 풍물패를 계속하게 된 계기는.

하지 우연한 기회로 대학 동아리에서 풍물을 처음 접했다. 다른 이유 없이 재밌어서 계속하고 있다.
소연 새내기배움터에서 본 선배들의 공연이 너무 멋져서 풍물을 시작했다. 풍물의 좋은 점은 완전히 처음 접하는 사람도 무리 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들 채를 잡는 법부터 배운다. 중간에 1년을 쉬었다. 그전까지 내가 풍물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쉬는 동안 계속 풍물 생각이 났다. 풍물이 단순한 공연이 아닌, 일종의 기억이자 총체적인 예술이라 그런 것 같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배워야만 이어지고 전승될 수 있다는 게 풍물의 매력이다.
수민 나 역시 신입생 오티 때 동아리 소개 영상을 보고 풍물패에 들어갔다. 그때는 풍물보단 동아리원들이 좋았다. 후에 대학 동아리의 한계를 느끼고 소연과 퀴얼을 만들었다. 그냥 풍물보다도, 남원농악을 계속하고 싶다. 현재 남원농악을 전수받을 수 있는 곳이 얼마 없다. 배우는 이가 줄어들어 남원농악이 사라지면 너무 속상할 것 같다. 또 풍물패에서 꽹과리를 치는 이들 중 우두머리를 ‘상쇠’라고 한다. 상쇠는 가장 앞에서 행렬을 지휘한다. 상쇠가 노래하는 걸 ‘고사소리’라고 하는데, 고사소리는 한 상쇠로부터 다음 상쇠에게 넘어간다. 그게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너무 슬프다. 버젓이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 내가 풍물을 계속하는 이유다.
기자가 놀란 점 중 하나가, 소진 씨의 학과를 다른 분들이 아까 이야기를 나누며 처음 알았더라. 서로를 어디까지 알고 있나.
수민 소진이 상모를 돌릴 수 있다는 건 알아도,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건 방금 알았다. (일동 웃음)
진영 그렇지. 소진이 멀리서 온다는 거랑 부지런하다는 건 알아도. (웃음)
소진 (서로의 사소한 일상을) 어떻게 아냐면 ‘네이버 밴드’에서 매일 이야기를 나눈다. 승희의 제안으로 네이버 밴드에 각자의 일상을 공유하고, 달에 한 번 ‘왕튼튼이’을 뽑고 있다.
승희 악기를 매고 판굿을 하다 보면 금방 힘에 부친다. 체력이 없으면 박자가 쉽게 밀린다. 본격적인 운동은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각자 일상에서 건강을 위해 소소하게 노력하자는 취지로 ‘왕튼튼이 제도’를 제안했다. 차곡차곡 노력을 인증하다 보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된다. 달이 끝날 즈음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고 왕튼튼이를 뽑는다.
연습 시간뿐 아니라 일상에서 서로를 돌볼 수 있는 장치를 일부러 마련한 것 같다.
수민 맞다. 운동뿐 아니라 약이나 밥을 잘 챙겨 먹었다는 소식에도 다들 ‘좋아요’를 누른다.
진영 서로 어느 정도 알고 있느냐는 원래 질문에 답하자면, 부원을 모집할 때 나이나 전공을 묻지 않는다. 만나도 연습하기 바쁘니 서로 몇 살인지, 어디 사는지도 잘 모른다. 대신 저 사람이 장구를 잘 친다는 건 안다.
승희 우리가 풍물을 하려고 모인 거지 친구를 사귀는 게 주목적은 아니니까. 이 사람이 어떤 악기를 다루는 데 있어서 그의 나이나 전공은 중요한 고려 사항이 아니다.
소연 잠깐만. 우리 너무 정 없어 보이지 않나. (일동 웃음) 아냐. 그런데 연습할 때 상태도 정말 중요하다.
승희 맞다. 누군가 피곤해 보이면 그날은 칭찬을 후하게 한다거나.
소연 사람을 만나려고 온 이도 있겠지만 주목적은 풍물인 것 같다. 그만 말할까? (일동 웃음) 풍물을 배우는 것 자체로 재밌기에 그거 외에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게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것 같다.
하지 친구가 되는 데 나이가 중요한 정보는 아닌 것 같다.
‘퀴어한’ 풍물은 무엇일까. 퀴어함과 풍물을 어떻게 연결지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퀴얼
하지 풍물의 퀴어성은 복장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남원농악은 상모로 머리카락과 얼굴이 가려져 관객이 연행자의 성별을 추측하기 힘들다. 또 풍물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 역할의 ‘앞치배’와 가장을 한 채 연극적인 역할을 하는 뒷치배, 즉 ‘잡색(雜色)’이 따로 있다. 잡색은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각시·할미·양반 등의 역할을 맡아 판을 휘젓는다. 전통적인 성역할을 파괴하고 연극적 놀이를 구현한다는 점에서 오는 퀴어함이 있는 것 같다. 언젠간 퀴어성이 짙은 우리만의 잡색으로 공연을 하고 싶다.
진영 다양한 악기가 어우러져 하나의 음악을 만든다는 것, 우리끼리 즐기는 걸 넘어 그걸 보고 듣는 사람들과 계속 상호작용하는 느낌이 되게 ‘이상하다(queer)’는 생각을 가끔 한다.
승희 풍물놀이 장단에 맞춰 길을 따라 걸으며 공연하는 ‘길놀이’가 있다. 관객의 호응과 추임새는 길놀이의 필수적인 구성 요소다. 요즘 공연이 가만히 구경하는 걸 요구하는 것에 반해 길놀이는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내가 무언가를 하는 게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니라 보탬이 될 수 있어서 좋았다.
퀴얼에 들어온 후 바뀐 것이 있다면.
승희 판굿을 할 때 내 가락뿐 아니라 다른 이의 가락을 챙겨야 하기에 계속 시야를 넓히려고 노력한다. 또, 연습 중 자주 ‘이걸 하려면 우리 인생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퀴얼에는 내향인이 많은데 공연 중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려면 끼를 부려야 한다. 다들 수줍어서 눈을 못 쳐다보고 어색하게 몸을 움직인다. 그런 새로운 시도를 할 때마다 내가 변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고, 그 여운이 풍물을 하지 않는 순간에도 남는다.
수민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공연을 준비하다 보면 합을 맞추기가 정말 어렵다. 완벽한 공연을 위한 규칙은 분명 존재하지만, 각자의 사정으로 따르기 힘들거나 불가능할 수 있다. 이 경우 규칙에 무조건 맞추길 요구해야 할지, 혹은 상황에 맞춰 함께 고민하면서 나아가는 게 맞을지 항상 고심한다.
다양성을 존중하려고 애쓰는 과정은,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것과 멀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공동체가 중요시하는 가치를 지키고자 여러 변수를 고려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계획대로 되지 않아 일정에 차질을 빚기도 할 것 같다. 우리가 지향하는 바를 몸으로 실천하는 과정에서 포기하는 것들. 그때 완벽한 공연이란 목표가 어떤 의미인지, 그게 정말 ‘우리’의 목표가 맞는지, 그 과정은 어때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도 있을 것 같은데.
수민 사실 퀴어적으로 풀어가기에 남원농악이 적합하진 않다. 공연을 위해 만들어진 농악이라 기능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원농악 자체를 ‘퀴어링*’하는 것 역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그때의 고민은 가령 이런 것들이다. 남원농악의 특징 중 하나인 ‘부들상모’는 동물의 털로 만들어진다. 장구피도 동물 가죽이다. 다른 존재를 해하지 않고 우리의 풍물을 만들어가고 싶기에 이런 부분이 항상 어렵다.
*퀴어링(queering): ‘퀴어하게 만든다’는 뜻을 넘어, 지배 규범과 체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전복하는 행위 또는 시각을 의미한다.
또 어떤 풍물패는 장구가 ‘예뻐’ 보여야 한다며 여자에게 맡긴다. 그런 점은 바꾸려고 한다. 한편, 풍물이 아직 다양한 몸이 함께할 수 있는 음악은 아니라는 데서 오는 고민도 있다. 연습 과정이 공연‘만’을 위한 준비 단계라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우리가 만나서 연습하는 과정을 즐기는 것 자체가 퀴얼의 지향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동의한다. 기자도 예전에 몸짓패를 했다. 약을 먹으면 제시간에 눈을 뜨고 연습 시간에 맞춰 오는 게 힘들 때가 있다. 그때 완벽한 공연이 우리가 달성해야 할 전부는 아닌 것 같다고 느꼈다. 당장 한 명 한 명이 밥을 먹고 잠을 잘 자는 게 더 중요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지 않나. 그런 어려움 속에서 늘 고민하게 된다. 퀴얼의 이야기를 들으며 ‘튼튼이 제도’처럼,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는 공동체를 일구려면 무대 밖 삶을 보듬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이쯤에서 지난겨울의 기억을 묻지 않을 수 없다. 12.3 내란 이후 광장에 나가 무엇을 느꼈나.
소진 퇴진 국면을 거치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선전전을 비롯해 소수자와 노동자의 투쟁이 많이 가시화됐다. 장애인 활동가들 때문에 열차가 지연되는 게 아니라 서울교통공사가 이들을 막고 있다는 사실을 많은 이가 알게 된 것처럼, 그간 차별을 경험해 온 소수자 집단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게 인상적이었다.
소연 12.3 내란 직후 국회의사당 근처에서 공연을 했다. 내란에 대한 분노도 컸지만, 사회적 소수자가 탄핵 넘어 사회대개혁을 적극적으로 바라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광장에서 신기했던 점은 평소 교류가 없던 중년 남성들에게 환대받은 것이었다. 우리를 환영하고 간식을 나눠주는 걸 보고 이런 방식의 소통도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일각에서는 정치와 예술이 분리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퀴얼은 ‘마이너리티’ 정체성을 내세워 여러 투쟁 현장에 공연으로 연대한다. ‘정치적’인 의제를 이야기하는 현장에서 풍물이, 나아가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또 이번 탄핵 국면에서 여러 집회에 풍물패가 등장했는데, 광장 문화와 풍물이 어떤 측면에서 맞물린다고 느끼나.

하지 대학 풍물패는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 시기에 사회 변화에 대한 열망을 토대로 형성됐다. 지금은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한때 독재 정권에 맞서는 시위에 대학 풍물패가 앞장서기도 했다. 대학 풍물패가 가진 저항적 성격을 이어가려는 시도가 이번 광장에서 잘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진영 이미 내 일상이 정치적인데 어떻게 풍물만 쏙 빼서 정치랑 분리할 수 있겠나. 모두가 ‘퀴얼’이란 이름을 순순히 받아들인 것 역시 같은 맥락인 것 같다.
소연 투쟁 현장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우리에겐 연대 공연을 나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하면 좋을지 종종 고민한다.
수민 전수해 주시는 선생님도 우리를 점점 받아들이시는 것 같다. 북에 적힌 ‘총파업’ 글씨를 보시곤 최근 ‘호호굿*’ 구호로 ‘투쟁’을 제안하셨다.
*호호굿은 ‘호호’ 구호가 반복되는 장단이다. 선생님의 제안은 반복되는 후렴구를 ‘투쟁’으로 바꿔 보라는 뜻이다.
과거 풍물은 농사일의 능률을 올리고 풍년을 기원하며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역할을 했다. 퀴얼이 느끼기에, 과거와 오늘날의 풍물이 어떻게 같고 또 다를까.
진영 개인이 가진 삶의 양식이 다채로워지며 공동체의 의미 역시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그대로인 것도 있다. 공연 중 사람들의 호응을 보면 여전히 풍물이 공동체의 결속을 이끄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느낀다. 2024년 12월 국회에 갔다. 하도 소리 질러 목이 쉰 이들 사이로 한 시민이 애써 발언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악기 소리가 사람의 목소리를 대신한다면, 공연하는 동안에라도 그가 물을 마시는 등 쉴 수 있겠다고 느꼈다. 사람 대신 악기 소리가 공간을 채우는 것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뜻을 잇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퀴얼의 공연을 보는 관객들 혹은 〈서울대저널〉 독자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다면.

진영 남원농악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공연 섭외 문의도 환영! (일동 웃음)
수민 우리나라 전역에 다양한 농악이 있다. 이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
하지 앞으로 우리가 하고픈 것에 관해 말해보자면, 풍물로 큰 소음이 환영받지 못하는 도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싶다. 또 폐현수막을 재활용한 장구피를 사용하는 등, 동물성 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풍물을 이어갈 수 있도록 여러 가지를 시도 중이다. 풍물은 매 순간 많은 동작과 운동성을 요구한다. 이제껏 다양한 몸들과 어떻게 판을 돌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부재했다. 누가 들어왔을 때 고민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미리 여러 경우를 고려해 두고 싶다.
물론 퀴얼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남원농악을 어떻게 퀴어링할 것인지’다. 퀴어한 이들이 모여 풍물을 하는 단체를 넘어, ‘퀴어한 농악’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 남원농악은 마을별로 발달한 대다수 농악과 달리, 여러 마을의 가락이 합쳐져 공연 형태로 근대에 재정립된 농악이다. 다양한 농악과 상호작용하며 변모 과정을 거쳤기에 ‘하나의 정통성을 가진 남원농악’이란 말 자체가 허상이다. 그렇기에 전통에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다.
승희 무대와 관객이 분리되지 않는 공연을 하고 싶다. 지금껏 여러 조건을 고려하다 보니 관객과 소통할 기회가 적었는데, 한 번쯤 우리가 객석에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싶다.
수민 지금은 서울 중심으로 모여 서울 밖에 사는 사람들을 포괄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고민에 관해 좋은 생각이 있다면 언제든 공유해 달라.
소연 무엇보다 오래갔으면 좋겠다. 퀴얼이 방금 말한 여러 과제를 계속 고민하는 공동체길 바란다. 그렇게 수년 후 〈서울대저널〉이 40주년을 맞았을 때도 인터뷰할 수 있길 바란다.
인터뷰를 마친 후, 하지 씨가 못다 한 이야기가 있다며 보내온 글의 일부를 수록한다.
저를 과도하게 소진시키지 않고 일상에서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아야겠다고 느꼈습니다. (…) 솔직히 제가 배웠던 운동을 떠올려 보면 퀴얼의 활동을 과연 ‘투쟁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저 스스로도 남아있습니다. 퀴얼은 특정한 의제를 내세우기보다 풍물을 함께 향유하기 위한 취미 동아리를 표방하고 있고요. 그러나 투쟁과 취미, 일상이 괴리돼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 저희는 풍물을 ‘잘’하고 싶고, 동시에 큰 소리가 필요한 현장에 ‘잘’하는 공연으로 연대하고 싶습니다. (…) 이 즐거운 운동은 저를 소진시키긴커녕 일상의 활력소가 되고 있습니다. (…) 인터뷰 요청을 받았을 때 저희끼리 ‘우리에게 어떤 얘기를 듣고 싶으신 걸까’, ‘도대체 무슨 얘기를 들려드릴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에 대한 저의 답을 적고 싶었습니다. 퀴얼은 ‘일상에서 운동을 찾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