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이 글을 읽을 때쯤, 대선은 끝났을 것이다.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고, 언론은 앞다퉈 그의 행적을 보도하고 있을 것이다. 소란한 세상 한편에는, 그 모든 일에 아랑곳하지 않고 깃발을 들고 광장에 나가는 이와 무거운 몸을 이끌고 피켓 시위에 나서는 이가 있을 테다.
알 수 없는 미래에 질문을 던져본다. 고용 승계를 촉구하며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옥상에 올라간 박정혜 씨는 땅에 발을 디뎠나.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고진수 씨와 조선소 하청노동자 김형수 씨는 고공에서 내려왔나.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안수용 지부장은 단식을 멈췄나. 여성들은 딥페이크 성범죄를 비롯한 각종 젠더폭력에서 자유로워졌나. 미아리와 용주골의 성노동자들은 강제 철거를 걱정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고 있나. 서울대 경제학부는 마르크스경제학 강의를 듣게 해달라는 학생들의 요구에 응답했나. 갈수록 닫히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정붙일 공간을 찾았나. 우리는 연금개혁을 통해 모두의 존엄을 지키는 미래사회를 진정 꿈꾸고 있나.
이 모든 물음에 대한 답이 그대로라면, 우리는 정말 빛의 혁명 이후 새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 몇 달 전 케이팝이 울려 퍼지는 광장 한가운데서 나는 은근한 고양감에 들떠 있었다. 전에 없이 하늘에 휘날리는 수만의 무지개 깃발 아래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소개하는 이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내다 보면, 이곳에서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서로의 체온에 기대 밤을 지새운 날들엔, 몸은 힘들었을지라도 내가 나인 채 사는 게 좀처럼 버겁지 않았다.
그러나 대선에서 여성과 성소수자를 비롯해 소수자와 노동자에 관한 공약은 자취를 감췄고, 대통령 후보들은 ‘우선순위’와 ‘사회적 합의’란 말을 내세워 차별금지법과 각종 소수자 의제를 나중으로 미뤘다. 새하얀 셔츠를 입은 그들은 구둣발 소리를 내며 국회를 오갔고, 광장의 목소리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행동했다. 우리나라 인구의 반은 여성이라는 걸 잊은 듯이, 당신 곁에 미처 입을 떼지 못한 성소수자가 얼마나 많을지 상상조차 안 해본 듯이. 장애인 이동권 투쟁과 동덕여대 학내 민주화 투쟁을 혐오와 갈라치기를 위한 수단으로만 동원하며.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겠다며 반질거리는 얼굴로 방송에 얼굴을 비추곤 힘있는 자들의 눈치를 보며 주절거렸다.
거대 양당이 내세운 공약에, 그들이 그리는 세상에 내 미래는 없었다. 공약집을 찬찬히 훑어보다 울고 싶어졌다. 공들여 지면에 모셔 온 이들의 삶과 꿈이 앞으로 5년을 굳세게 버틸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서. 이번에는 뭔가 다를지도 모른다고 믿었는데, 아직 많은 것이 멀게만 느껴져서.
그러나 역으로 질문한다. 언제는 우리 삶이 굳건했느냐고. 아무도 죽거나 다치지 않는 세상이란 게 존재한 적 있었느냐고. 높다란 벽을 향해 목청껏 외치고 수백 번 넘어져 너덜거리는 옷자락을 보는 일이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냐고. 사실 다 헤진 천으로도 세울 수 있는 천막이 있다는 걸 안다고, 구멍 뚫린 우산을 내던지고 함께 비를 맞아온 당신들의 역사에 내 지난 시간을 얹혀왔다고. 그래서 쉽게 절망할 수 없다고.
대선 이후에도 삶은 이어질 것이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사람들을 만나고. 변하지 않은 부분만큼 변한 것투성이인 세상을, 우리는 계속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 잊지 않길 바란다. 깜박이는 형광등 아래서 갈 곳 잃은 사람들을 떠올리며 계속 뭔가를 써낸 이들이 있었다는 걸. 대선 결과에 따라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이 빛바래진 않는다고. 그러니 무릎을 털고 다시 몸을 일으키자고. 이를 활짝 드러낸 채 웃는 네 얼굴을 좋아한다고. 욕을 하거나 화를 내도 한 명보다는 두 명이 나을 거야. 그걸 아는 우리는 다시 씩씩해질 방법을 궁리하지. 펑펑 운 뒤에 염분 보충은 필수라며 어디선가 이온 음료를 구해오지. 새빨개진 얼굴이 토마토 같다며 깔깔 웃을 거야.
그렇게 오래 최전선에서, 자꾸만 서로의 손을 잡아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