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호에서는 책 두 편과 영화 두 편을 소개합니다.
『수치심 권하는 사회』
브레네 브라운, 서현정 옮김, 가나, 2019.
김선우 기자 studysunwoo@snu.ac.kr

누구나 살면서 최소 한 번쯤은 느끼는 감정이 있다. 굉장히 보편적인 감정이지만, 섣불리 입 밖으로 내기엔 망설여지는 감정. 바로 수치심이다. 수치심은 흔히 부끄러움이나 치욕감과 혼동된다. 그러나 수치심은 엄연히 그들과 구별되는 감정이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보다 자기 파괴적이고 위험하다.
수치심은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지만, 이를 명확히 인지하고 이겨내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본인의 연구를 바탕으로 수치심이 형성돼 마음을 장악하는 배경과 이를 인지하는 방식을 제시한다. 또한 ‘수치심 회복탄력성’이라는 고유한 개념으로 어떻게 하면 수치심으로부터 빠르게 회복할 수 있을지 그 방법과 방향성을 논한다.
수치심을 완전히 제거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이를 이겨내고 다시 일어설 수는 있다. 저자가 지면에 옮겨 둔 수많은 여성의 수치심 극복기를 읽으면서, 독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해답에 가까워져 갈 것이다.
『도서관 산책자』
강예린·이치훈, 반비, 2012.
박시윤 기자 psypsy228@snu.ac.kr

책은 언제나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내준다. 그것은 지식이기도, 지혜기도 하며 때론 삶 그 자체다. 하지만 우리는 책이 우리에게 ‘공간’마저 내주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놓친다. 돈 없이는 잠시 머무를 자리조차 찾기 힘든 도시에서, 책들이 서로 기대 서있는 도서관은 우리를 그 품에 머무르게 한다. 그렇기에 공간을 살피는 건축가의 눈으로 도서관을 바라보는 일은 충분히 의미있다.
‘책벌레’를 자처한 두 건축가는 전국 곳곳의 도서관을 직접 거닐고, 머무르고, 기록하며 각 도서관이 가진 특색과 매력을 이야기한다. 공간을 설계하는 건축가적 시선은 유지하면서도 공간 자체에만 매몰되진 않는다. 서울부터 제주까지 각양각색의 도서관을 산책하며 책 너머의 공간을, 공간 너머의 삶과 이야기를 전한다.
책과 사람, 공간이 교차하는 도서관엔 일상의 작은 비밀과 풍경이 숨어 있다. 이 안온한 공간을 산책하듯 따라가다 보면, 우리 곁에 존재하던 또 다른 세계가 조용히 말을 걸어올 것이다.
영화 《해피엔드》
네오 소라, 2024.
김수환 기자 kimsuhwan0831@gmail.com

대지진을 앞둔 근미래 도쿄에서 오늘의 한국사회가 겹쳐 보인다. 연일 울려대는 거짓 경보는 불안을 자극하고, 정부는 이를 빌미 삼아 통제를 강화한다. 저항은 테러와 폭동으로 왜곡되고, 위험분자를 색출하는 정보통신 기술이 동원된다. 그사이 누군가는 ‘비국민(非國民)’으로 낙인찍혀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12.3 내란이 불러낸 파시즘의 공포를 기억한다면, 영화에서 현실을 떠올리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가장 어두운 밤에도 저항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이들이, 반드시 있다. 영화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대에 응전하는 고등학생 ‘코우’와 ‘유타’의 갈라짐과 마주침에 주목한다. 차별에 분노하며 투쟁에 가담하는 재일조선인 코우와 달리, 유타의 태도는 사뭇 태연하다. 늘 그랬듯 친구들과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것만이 그의 관심사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 그 천진함이 체제에 균열을 낸다. 비장한 투쟁 대신, 경쾌한 유희로. 억압에 맞서는 대신, 억압을 넘어서기.
감독은 이 영화가 ‘우정’에 관한 것이라 말한다. 이때 우정이란 사랑에 미달하는 상태가 아니라, 애정과 갈등 너머에서 질척이는 무언가다. 여느 게이 커플보다 ‘퀴어한’ 저들의 가슴 꼬집기가 궁금하다면, 늦기 전에 극장으로 달려가자.
영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파얄 카파디아, 2025.
한정원 기자 hangrdne@snu.ac.kr

인도의 뭄바이. 온갖 것이 모여 바글바글 살아가는, 낯설지 않은 대도시의 풍경이 보이고 또 들린다. 살길을 찾아 고향을 떠나온 세 여자 ‘프라바’, ‘아누’, ‘파르바티’는 출신도 나이도 상황도 다르지만, 이 도시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눅눅한 공기, 단둘의 시간을 방해하듯 쏟아지는 스콜, 지루하고도 치열한 매일의 일과, 지독히 외로운 푸르른 빛의 시간.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흐리는 뭄바이의 풍경 위로, ‘이곳에선 착각을 놓지 않아야만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내레이션이 흐른다.
가난한 도시민에게 허락된 것은 밝은 낮보단 어두운 시간대의 구석진 공간이다. 그들은 도시의 밤을 밝히는 여린 불빛에 기대 서로를 보고, 각자의 빛을 상상하며 그에 의지해 살아간다. 상상의 다른 이름은 착각이다.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무언가는 실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믿어야 하는 힘없는 착각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이 영화가 그리는 대도시의 삶은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것들로 끊임없이 점멸한다. 착각만으로 다 밝혀지지 않는 현실의 어둠 가운데서도, 서로를 지탱하는 작은 빛 아래에서 우리는 웃으며 춤을 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