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건우(협동과정 공연예술학전공 석사과정)
다양한 프랑스 희곡 작품을 번역하고 있다.
현장과 소통하는 연구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봄을 만나기까지 123일
배고픈 아침이었다. 오전의 광장은 익숙하지 않은 일정이었다. 그동안의 광장은 대체로 점심이 지난 오후에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집에서 급하게 나오느라 아침을 해결하지 못한 나는, 부디 오늘은 큰 탈 없이 현장이 빨리 마무리되기를 속으로 빌었다. 이미 지난주 남태령에서 반나절 가까이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못한 채 도로 복판에 꼼짝 않고 서 있었던 까닭에 육체적으로 부담을 느끼던 터였다. 인사동길에 들어서니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모든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묵묵히 걷고 있었다. 안국역에 가까워질수록 시민들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이런저런 구호가 골목에 메아리쳤다.
안국동사거리 사방을 수많은 시민들이 뒤덮었다. 화창한 날씨에 한결 가벼운 옷차림으로 자리한 시민들은 눈이 부실 정도로 맑은 날씨에 일제히 손차양을 하고 있었으나 표정은 퍽 밝았다. 역사적 순간이 될 오늘을 취재하기 위해 수많은 내외신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분주히 돌아다녔고, 나 역시 한쪽 어깨에 맨 카메라로 시민들의 다양한 몸짓을 기록했다. 작은 인형에 ‘탄핵’ 머리띠를 매어 준 시민, 공룡 의상을 맞춰 입은 시민들, 횡단보도의 빈칸에 분필로 다가올 미래를 적어놓은 시민들 등 몸짓은 다양했으나 그것이 염원하는 바는 모두가 한뜻이었다.
곧 대형 전광판의 중계 화면에 헌법재판관들의 모습이 보이자 시민들은 구호를 멈추고 일제히 시선을 고정했다. 선고 요지를 낭독하는 소리가 큰 소리로 울려 퍼지며 대강의 요지가 밝혀지자 시민들의 격한 호응이 터져 나왔다. 주문이 선고될 무렵, 시민들은 일제히 일어섰다. 곧이어 엄청난 환호성이 거리에 물결쳤다. 두 팔을 하늘로 번쩍 뻗거나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는 사람들, 또는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 옆 사람과 얼싸안고 감정을 나누는 사람들. 곧이어 풍물패의 흥겨운 가락이 돌풍처럼 일고, 용기수(龍旗手)의 거대한 깃발이 마치 광장의 시민들을 강복하듯 한 바퀴 원을 그리며 머리 위로 힘차게 펄럭였다. 공복으로 인한 허기는 순식간에 잊은 채, 더운 피가 끊임없이 몸속을 휘감으며 화끈거렸다.
극장 같은 광장의 퍼포먼스성

나는 2024년 12월부터 광장에 참여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형성하는 집회 문화와 몸짓을 주제로 현장 연구를 진행해 왔다. 처음부터 연구를 결심한 것은 아니다. 몇 차례 광장을 드나들며 가만 보니 문득 광장의 문화가 극장의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성과 즉흥성은 광장과 극장을 사로잡는 주요한 질서다. 그리고 그 특성을 표현하는 재료로서 신체의 현전(現前)이 활용된다는 점에서도 광장과 극장은 맞닿아 있다. 샤프의 명곡 ‘연극이 끝난 후’에서 그리는 텅 빈 무대를 바라보는 객석처럼, 집회가 끝난 뒤 광장은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평소의 공간, 즉 도시의 일부로 돌아간다. 광장에서 벌어졌던 모든 일들은 이제 관객의 감각에 남아 은은한 여운을 남긴다. 휘발성의 맥락에서도 광장과 극장은 연결된다.
광장과 극장의 친연성을 포착한 뒤로는 집회 문화를 좀 더 관찰해 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카메라와 수첩을 들고 현장연구를 시작했다. 말이 좋아 현장연구지, 무턱대고 의욕이 앞설 때 생기는 각종 실수 대소동이었다. 매서운 추위에는 카메라가 쉽게 방전된다는 것도, 렌즈를 바꿔 장착하는 시간을 벌기 위해 현장을 촬영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카메라 두 대를 들고 다닌다는 것도 몰랐다. 드넓은 광장에서는 곳곳에서 산발적인 퍼포먼스가 이뤄진다. 저 멀리 들리는 시끌벅적한 소리를 듣고 급하게 뛰어 가면 현장에는 관객들의 박수만 남아있었다. 촬영 허락을 받지 못한 채 순식간에 일어났다 사라지는 퍼포먼스를 그저 눈에 담았던 경우도 허다했다. 카메라 때문에 받은 숱한 의심은 말할 것도 없다.
언론이 광장을 묘사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한 수사가 ‘축제 같은 집회’다. 청년 여성들이 집회 문화의 주축으로 떠오르며 일어난 현상이다. 기실 다종다양한 응원봉이나 깃발의 물성으로 재창조된 각종 ‘밈(meme)’, 직접 제작한 다양한 굿즈 등은 집회보다는 아이돌 팬덤 문화에서 더 익숙한 것들이다. 이들에 내재된 대중 친화적인 성질은 집회의 장벽을 낮춰 누구나 들어오게 하고, 또 즐기게 함으로써 ‘희유하는 광장’을 만드는 데 크게 활약했다. 그러나 집회가 축제가 됐다고 해서 그것이 마냥 가볍거나 쾌락적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분노가 사람들을 광장에 모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단지 투쟁이 길어지고, 또 매서운 겨울 추위를 버티고자 이들은 끝내 즐기면서 분노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광장이라는 학교 – 다양성과 환대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뜻깊은 경험도 많았다. 무엇보다 광장의 힘을 체감한 것은 ‘환대’에 있다. 광장의 사람들은 상대가 누구든 함께 광장에 있다는 것만으로 타인을 환대할 줄 알았다. 환대는 거창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춥고 불편해도 짜증내지 않고 옆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웃음으로 인사하고, 간식이 있으면 나눠 먹는 것이다. 부정적인 영향을 멀리하는 인간의 본능상 분노는 지속하는 것만으로 힘에 부치는 일이다. 광장은 서로를 다독이며 분노를 이어갔고, 그 중심에 여성은 물론 사회 다수의 합의라는 이름 아래 박해받는 다양한 정체성 당사자들이 있었다. 이른바 ‘휀걸(fan girl)’들의 초고속 운동권화(속칭 ‘꿘화’)와 ‘말벌 동지’ 등은 이러한 소수자들의 십시일반을 보여주는 주목할 만한 사례다.
나 역시 광장의 여성 동지들에게 도움 받고 빚진 것이 많다. 대학을 나와 막 광장을 기웃거리는 내가 기댈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수룩한 내게 기꺼이 도움을 건네준 이들이 있었다. 자신이 만든 스티커를 먼저 건네며 말을 걸어주거나, 간식을 나누고, 인터뷰에 기꺼이 응해준 사람들. 이들은 현장의 다양한 정보를 나와 기꺼이 나누며 현장연구 작업을 많이 보태줬다. 어떤 대가를 바란 것도 아니고 단지 같은 광장에 함께 있다는 동지로서의 연대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광장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존재하는 광장들이 미래를 이야기한다. 모두가 함께 어울려 누구도 불의에 순응하지 않는 사회. 이를 위해 여전히 광장에 나서고, 고공에 올라 땅을 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적 의제를 표현하고 요구하는 방식 또한 다양해졌고, 그것들이 모여 독창적인 문화를 생성하고 있다. 나는 지난 4월까지의 현장연구 자료를 정리하는 작업을 막 시작했다. 오는 7월에는 한국여성학회가 주최하는 포럼에서 응원봉과 광장의 관계를 청년 여성의 공연예술 문화 소비 경험을 통해 살펴보는 작업을 주제로 발표를 앞두고 있다. 전만큼 시간 여유가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광장에 나갈 계획이다. 그곳에 여전히 시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