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과 영혼이 만날 때

  『돈키호테』로 잘 알려진 스페인의 소설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는 ‘펜은 영혼의 언어고, 글은 그것의 실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누군가가 쓴 글에는 그 사람의 영혼이 깃든다고 합니다. 글로써 적힌 내용은 작가의 영혼이 독자에게 건네는 말로, 글을 읽는 순간 독자의 영혼은 그 대화에 응하게 됩니다. 글을 읽으면서 독자는 그 글이 말하는 바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용에 대해 어떤 의견을 떠올리거나 혹은 단순히 ‘그렇구나’하며 넘어가는 식으로라도 독자의 영혼은 건네진 말에 대꾸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대학교의 게시판과 벽은 영혼들의 거대한 사교장일지도 모릅니다. 비록 소리는 없지만, 그곳에 붙어있는 수많은 글이 저마다의 차림새로 지나가는 사람들과, 심지어는 자신들끼리 대화를 나누니까요. 어떤 글은 동아리를 홍보하기도 하고, 다른 글은 학내 행사에 참여하는 건 어떠냐고 권유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유달리 날것인 글이 있습니다. 다른 글보다 몇 배는 큰 몸에 꾸밈없이 빼곡하게 채운 글씨들. 언뜻 보면 고요해 보이지만, 사실 누구보다도 절박한 목소리로 소리치는 글. 대자보에 깃든 영혼들은 알아야 한다고,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함께해 달라고 핏대를 세웁니다. 

  지난 반년간 학내 대자보들은 팔레스타인에서 발생하고 있는 학살을, 텔레그램 속에서 자행된 인권 파괴를, 모 교수가 휘두른 폭력을, 이 모든 것에 무관심한 학교 본부의 태도를 알아달라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영혼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화답했습니다. 관심을 갖고,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고, 나아가서 의견을 내고 행동에 동참하면서 영혼들의 대화는 점점 현실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사교장에 불청객이 끼어들었습니다. 그 불청객은 영혼이 더 이상 말할 수 없도록 해쳤습니다. 게시판과 벽에서 열변을 토하던 대자보는 하루아침에 페인트로 더럽혀지거나, 찢기거나, 심지어는 송두리째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영혼들의 말이 마음에 안 들었던 걸까요, 억눌렸던 목소리가 현실로 나오는 게 두려웠던 걸까요. 무뢰배들의 횡포에도 불구하고, 대자보는 다시 돌아와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대자보를 훼손한 사람들을 비판하고 절대로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까지도 함께 내비치면서요.

  이번 187호의 기사 ‘글은 입이 없다 그리고 우리는 비명을 질러야만 한다’는 올해 6월 발생한 학내 대자보 훼손 사건을 목격한 것을 계기로 기획한 기사였습니다. 분명 어제까지 잘 말하고 있던 대자보가, 다음날 보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더군요. 벽에는 채 떨어지지 못한 종이 조각과 테이프 끈끈이만 남아있었습니다. 며칠 뒤, 대자보가 사라졌던 자리에는 다시 한번 똑같은 대자보가 붙었고, 그 옆에는 누가 썼는지 모를 노란 포스트잇 하나도 붙어있었습니다. ‘대자보에는 정당하게 대자보로 대응하라’는 단 하나의 문장이,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영혼과의 대화에서 폭력을 행사할 게 아니라, 같은 언어로 동등하게 대화할 것을 요구하는 말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납니다.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발화하는 곳을 망가뜨리려던 시도가 있었다는 걸 알아달라 외치기 위해, 이곳을 함께 지켜나가자고 말하기 위해 기사를 쓰게 됐습니다. 

  〈서울대저널〉에 글을 실을 때마다, 읽고 계실 당신께서 제 영혼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계실지 이따금 궁금해지곤 합니다. 비록 저는 알 수 없지만, 그 대화가 당신에게 부디 하나의 의미로 남기를, 앞으로도 〈서울대저널〉과 당신의 대화가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전 기사

학생회 동향

다음 기사

글은 입이 없다 그리고 우리는 비명을 질러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