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겠다는 약속의 방법론

사회적 재난을 기록하고 기억하기
▲단원고 4.16 기억교실 건물 정문

  펜은 심장의 지진계라고 했던가. 점점 가라앉는 배를 지켜보며 모두의 마음도 내려앉은 그날부터 지금까지의 10년. 요동치던 심장과 그로부터 터져 나온 목소리를 생생하게 받아적어온 움직임이 있었다. 사회적 재난에 대한 기록 작업이었다. 많은 시민이 잊지 않겠다고 노란 리본 앞에서 약속을 다짐했고, 기록 작업은 사람들의 꼭 다문 새끼손가락에 힘이 풀릴까 꾸준히 기억의 부목을 대 왔다. 10년 동안 기록과 기억 작업이 걸어온 자취를 돌아봤다.

모두가 쌓아올린 기억의 저장소

  기록 작업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직후부터 각계에서 펼쳐졌다. 한신대 안병우 명예교수(한국사학과)는 「세월호 사건 기록화의 과정과 의의」(2015)에서 기록 작업이 크게 두 축으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하나는 안산 시민과 활동가들이 중심이 돼 결성한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시민위원회)’다. 시민위원회에는 작가기록단·영상기록단·학자기록단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활동가들이 모였다. 다른 한 축은 기록전문가들로 이뤄진 ‘세월호 시민아카이브 네트워크(아카이브 네트워크)’다.

  어째서 국가 대신 시민들이 기록의 주체를 맡아야만 했을까.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해상 사고가 아니었고, 후속 조치에서 국가는 부재했다. 참사의 책임이 있는 정부에게 투명한 기록 작업을 기대하긴 어려웠으며, 실제로 해경은 초기 대응 기록의 일부를 조작하고 파기했다. 기록학 권위자인 명지대 김익한 명예교수(기록학과)는 “권력의 작동으로 왜곡된 현실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기억 투쟁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하며, 이때 “그 투쟁을 통해 제대로 된 사회적 기억을 형성하지 못하면 세상은 권력의 것이 된다”고 덧붙였다. 기억이란 과거가 그대로 편리하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기억을 가진 주체들의 투쟁을 통해 형성되는 산물인 것이다.

  그러나 기록자들의 작업은 사실을 감시하는 수준에만 그치지 않았다. 참사 피해자, 유가족, 시민사회와 관련된 마음의 기록 작업 역시 큰 과제였다. 김익한 교수는 “다른 모든 기록에 숨결을 불어넣는 것이 마음의 기록”이라고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는 유가족을 비롯한 전 국가에 잊지 못할 충격과 슬픔을 안겼고, 기록은 무엇보다도 이 정동의 움직임을 뒤쫓았다.

  시민위원회와 아카이브 네트워크는 2014년 8월, ‘4.16 기억저장소(기억저장소)’로 통합됐다. 기억저장소는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 근거를 두고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참사 현장의 사실과 희생자가 남긴 유품을 보존 및 관리했고, 유가족들의 활동을 빠짐없이 기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또한 기억저장소는 이현정 교수(인류학과)를 주축으로 참사 구술 증언록 『그날을 말하다』 연속물을 펴냈다. 자그마치 100권 분량의 대대적인 작업이었다. 2015년 8월부터 2019년까지 5년에 걸쳐 유가족·잠수사·동거차도 주민 등을 대상으로 기록한 구술들이었다. 김익한 교수는 “유가족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남기려 구술에 온 힘을 다했다”고 5년간의 작업을 설명했다.

▲단원고 4.16 기억교실 건물 정문

  기억저장소는 단원고 희생 학생들의 교실을 중요한 기록물로 파악해 그대로 보존하고자 노력하는 등 공간 보존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참사 초기에는 2학년 교실이 학교에 그대로 남았지만, 재학생 부모 및 학교와의 마찰 끝에 교실을 비울 수밖에 없었다. 세 번의 아픈 이전 끝에, 2021년 기억저장소 건물 2층과 3층에 4.16기억교실이 개방됐다.

  복도를 따라 줄지어 선 교실들은 2014년 4월 16일부로 시간이 멈춘 풍경을 그대로 내보인다. 벽에 건 달력도, 칠판에 쓴 낙서도, 가정통신문조차도 그대로다. 각 반에는 희생 교사와 학생들의 개인 기록물이 교탁과 책상에 전시돼 있다. 방문자들은 희생자들의 공간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접촉하며 더욱 강력한 애도의 정동을 경험하게 된다.

  이처럼 10년 동안 기억저장소를 중심으로 재난 기록은 다방면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물론 시민, 그것도 유가족이 중심이 된 기록 활동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김익한 교수는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사회적 기억 형성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기억저장소 역시 “모두 유가족들이 직접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기억저장소는 작년부터 4.16 기억교실과 관련한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간담회를 여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520번의 금요일을 함께한 작가기록단

▲세월호 참사 관련 서적들

‘세월호 참사 작가기록단(작가기록단)’은 시민위원회의 일원으로서, 유가족들의 구술집 『금요일엔 돌아오렴』(2015)을 시작으로, 『다시 봄이 올 거예요』(2015), 『재난을 묻다』(2017)를 비롯해 올해 발간한 『520번의 금요일』과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까지 10년간 꾸준히 참사 기록 활동을 이어왔다. 기억저장소가 광범위한 기록물 수집에 힘썼다면, 작가기록단은 참사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그것을 책의 형태로 재구성해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인권교육센터 들’에서 활동하는 배경내 작가는 2015년 1월 『금요일엔 돌아오렴』 발간 작업부터 작가기록단에 참여해 왔다. “수백 명의 유가족이 직접 싸우는 모습을 보며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고 느꼈다”고 배 작가는 당시를 회상했다. 작가기록단은 그렇게 모인 글쓴이들로 결성됐다.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는 르포 작가부터 개인으로 활동하는 이들까지 다양한 구성이었다.

  참사 직후, 작가기록단은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데 집중했다.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운동의 핵심에 있었고, 그들의 목소리에는 다양한 메시지가 겹쳐 있었다. 자녀를 잃은 개인의 고통과 죄책감부터 국가에 대한 분노를 통한 사회적 각성과 재인식까지. 그렇게 유가족들의 구술을 담은 『금요일엔 돌아오렴』이 참사 1주기에 맞춰 발간됐다. 이후 다시 유가족의 의뢰를 받아 그간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가 걸어온 10년의 과정을 또 한 번 구술로 담아내 올해 3월 『520번의 금요일』을 출간했다.

  배경내 작가는 구술만이 낼 수 있는 효과를 두 갈래로 설명했다. 첫째는 유가족이 “스스로 자기 삶에 들이닥친 참사를 해석하고 말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운동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둘째는 구술이 파편화된 사실들을 이어 “참사의 사회적 진실”을 건설할 수 있다는 점이다. 참사의 사회적 진실에는 참사의 구조적 원인뿐 아니라, 유가족들이 구술로만 전할 수 있는 피해자들의 생애와 유가족이 겪는 사회적 문제들이 모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작가기록단의 기록이 유가족들의 목소리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배경내 작가는 “재난 피해자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참사 직후에는 희생자의 부모님들에게 집중했지만, “유가족들이 싸우는 현장에 가보면 그 옆에 꼭 형제자매들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또 세월호 1주기 무렵에는 생존 학생들의 도보 행진도 이어졌다. 희생자의 부모뿐 아니라 형제자매와 생존 학생들에게도 할 말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생존자와 형제자매들이 대부분 10대였고 사회적 위치가 불확실했기에 이들의 생각은 쉽게 간과됐다”는 사실을 배 작가는 깨달았다.

  그렇게 작가기록단은 『다시 봄이 올 거예요』를 통해 생존 학생과 형제자매의 구술을 받아 적었다. 이들의 목소리 역시 10년이 흐른 뒤, 그간의 변화를 담아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로 새롭게 나왔다. 책이 다루는 구술자들의 범위는 또 한 번 확장됐다. 수학여행을 애초에 가지 못한 사람을 비롯해 유가족 근처를 꾸준히 지켜온 활동가들 역시 각자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구술도 고스란히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에 반영됐다. 작가기록단이 받아 적은 참사의 목소리는 이처럼 넓어져 갔다.

  그 사이 2022년 이태원 참사가 있었다. 또 한 번 들이닥친 사회적 재난의 비극이었다. 작가기록단이 지켜온 재난 기록의 흐름은 이태원 참사의 재난 기록에도 영향을 미쳤다. 작가기록단 중 기록 활동에 상시로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이 만든 ‘인권기록센터 사이’는 이태원 참사 이후 기록학교 워크숍을 진행하며 이태원 참사 기록에 참여할 작가들을 발굴하고 교육했다. 그렇게 모인 새로운 기록자와 『금요일엔 돌아오렴』부터 함께한 기존 기록자들이 모였다. 이들은 ‘10.29 이태원 참사 작가기록단’이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를 펴냈다.

  “일종의 프로젝트 그룹이라 명칭만 이어지고, 책 한 권을 작업할 때마다 누가 빠지기도 하고 들어오기도 한다”고 배경내 작가는 작가기록단의 유동성을 설명했다. “작가기록단은 누구만의 그룹이 아니”라는 것이다. 계속 자리를 지키는 사람도 있고, 새로 드나드는 사람도 있다. 이와 같은 특성이 참사 기록 활동을 지속되게 했다. 기존의 작가들이 함께하며 신뢰와 경륜을 쌓아가고, 새로운 작가들이 합류하며 외연을 넓혀가는 셈이다. 배 작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수많은 경험을 겪은 대규모의 참사를 한 개인이 정리할 수는 없다”며 “공동 작업이 아니었다면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작가기록단의 의의를 정리했다.

  작가기록단의 작업은 일회성이 아니다. 10년 동안 계속됐고,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참사 이후에도 당사자들이 사회적으로 겪는 일이 있다”고 배경내 작가는 말했다. 그 사람들의 삶은 달라졌는지. 진실은 밝혀졌는지. 사회는 변화했는지. “그것을 모두 좇아야지만 참사의 깊이를 알 수 있고, 기록은 한순간에 이뤄지는 것이 절대 아니”기 때문에 배 작가는 기록 작업이 지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지 않는 눈이 담아낸 ‘바람의 세월’

  렌즈는 눈꺼풀을 감지 않는다. 사진과 영상은 오래도록 사회적 활동에 기여해 왔고, 카메라는 세월호 참사의 기록 작업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2014년 5월 17일, 영상매체를 통해 사회적 활동에 참여했던 미디어 활동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였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산하의 미디어팀으로 묶여 활동을 이어갔고, 이후 ‘4.16연대 미디어위원회(미디어위원회)’로 전환됐다. 미디어위원회는 2018년까지 4기에 걸쳐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미디어위원회는 먼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운동의 전반적인 현장을 기록하는 작업인 기록 촬영에 매진했다. 단식투쟁, 도보행진, 특별법 개정을 위한 싸움 등 유가족들이 걸어온 투쟁의 길이 카메라에 담겼다. 이렇게 보관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운동의 기록은 모두 기록저장소로 옮겨져 보관됐다.

  한편으로는 기록 영상을 재구성해 시민들에게 알리려는 영상 제작 및 공유 작업도 이어졌다. 미디어위원회는 4.16연대 유튜브 채널에 활발하게 영상을 올렸다. 또한, 세월호와 관련된 프로젝트 다큐멘터리도 만들었다. 《바다에서 온 편지》(2015)부터 《망각과 기억》(2016), 《망각과 기억 2 :돌아 봄》(2018), 마지막으로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2018)까지. 미디어위원회는 4기에 걸쳐 꾸준히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제작비는 텀블벅에서 크라우드 펀딩으로 마련했다. 시민들의 십시일반으로 만들어진 영상들은, 인디다큐페스티발·서울인권영화제·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정동진독립영화제 등 다양한 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이외에도 세월호와 관련한 기록 영상물은 지속적으로 제작됐다. 참사 6개월 만에 개봉된 《다이빙벨》을 시작으로, 《나쁜 나라》(2015), 《그날, 바다》(2018) 등의 영상물이 차례로 세상에 나왔다. 참사 초기의 다큐멘터리 영화들은 세월호 참사의 침몰과 구조, 그리고 세월호 특별법 재개정 운동 등 남겨진 자들의 투쟁을 담아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세월호 다큐멘터리의 주제 역시 범위를 넓히기 시작했다. 주현숙 감독의 《당신의 사월》(2021)은 카메라 앞에 유가족이 아닌 일반 시민들이 앉았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에 얽힌 자신의 심정과 이야기를 털어놨다. 사회적 참사를 지켜본 시민들이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런가 하면 당사자를 포착하는 다큐멘터리 역시 변화가 있었다. 이소현 감독의 《장기자랑》(2020)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으로 구성된 4.16가족 극단 ‘노란리본’의 대표적인 자작 연극 「장기자랑」을 다룬다. 영상에는 7명의 유가족 엄마들이 연극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고 세월호를 알리는 과정이 담겨있다. 《장기자랑》은 유가족은 슬픔에 사로잡히거나 투쟁에 매진해야 한다는 ‘피해자다움’의 틀을, 연극 예술에의 참여를 통해 정면으로 반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바람의 세월》(2024) 포스터

  나아가, 올해는 세월호 유가족이 직접 만든 영화가 개봉되기도 했다. 《바람의 세월》(2024)은 유가족 문종택 씨가 10년 동안 담은 5천 개의 영상 기록물을 토대로 제작됐다. 참사 당시 현장에서부터 지금까지를 담고 있는 영화는 각 독립영화관에서 상영을 이어나갔다. 영화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코리안시네마:세월호 참사 10주기 특별전 섹션」에 출품되기도 했다. 참사로부터 10년이 흘렀지만 영상은 꾸준히 쌓여가고 있다. 카메라가 담는 대상과, 카메라를 드는 주체의 범위가 점차 넓어지면서.

“오늘은 ○○○○번째 4월 16일입니다.”

▲304 낭독회 배너

  ‘304 낭독회(낭독회)’는 2014년 9월, 시민과 작가들이 함께 모여 시작한 낭독회다. 한 달에 한 번씩, 총 304번의 낭독을 하자는 다짐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10년간 115번의 낭독을 거치며, 낭독회는 304명의 희생자를 기리고 참사의 기억을 이어왔다.

  낭독회는 유가족 농성장이 있었던 광화문광장부터 안산, 제주, 속초, 광주 등 다양한 지역에서 열렸다. 많은 시민과 작가들이 일꾼으로 참여해 낭독회를 운영해 왔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는 비대면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낭독 일정과 장소는 SNS를 통해 게시된다. 누구나 글을 낭독할 수 있고, 낭독하지 않더라도 자리에 함께할 수 있다. 역대 낭독문들은 텀블러 사이트에 보관돼 있으며, 10년에 걸친 낭독 자료와 후기를 담은 기록집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의 말을 이어갑니다』가 올해 3월에 출간됐다.

  낭독회는 왜 중요할까. 115번째 낭독회는 지난 5월, 광주에서 열렸다. 5·18광주민주화운동과 세월호를 가로지르는, 참사의 연대를 고려한 장소였다. 이번 낭독회 일꾼으로 참여한 한여진 시인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자신은 “아직도 그 바닷가에 서 있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당시에는 충분히 애도하지 못하고 금세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이후 세월호가 인양되던 날 다시금 마음이 흔들렸다. 건설 현장 식당에서 뉴스를 보던, “마찬가지로 매일 위험에 내몰린 채 일하는” 건설 노동자들이, 인양 뉴스를 지켜보며 “뾰족한 철근처럼 아프고 차가운 말”을 던지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다들 각자의 바다가 있고 그 안에 미처 건져내지 못한 무언가가 있다”고 한여진 시인은 말했다. 세월호 참사는 당사자와 유가족을 넘어, 침몰을 함께 지켜본 우리 모두에게 각자의 상처와 슬픔을 남겼다. 우리 모두에게도 구술할 이야기가, 또 멍울진 기억의 상이 있다. 하지만 개인 차원에서의 기록은 잘 보듬어지거나 나눠지지 못하기도 한다. 한 시인의 말처럼, “애도와 공감의 마음은 언제나 늦게” 오기 때문이다.

  김익한 교수는 “기억의 자기화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인 차원의 기억이 수립되고 표현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낭독회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글을 가져와 낭독한다. 글의 형식은 다양한 편이지만, 많은 사람이 시를 가져온다. 한여진 시인은 “시는 세상이 어떤 모양과 색으로 보였는지를 살짝 보여준 다음 접어버리는 장르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접힌 페이지를 찾기 위해 온갖 곳을 뒤집고 다니게 된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시는 “기억과 진실 그 자체의 원형에 가장 관심이 많은 형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낭독회에서 시를 들으며 사람들은 기억과 감정을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시뿐 아니라 다른 형식의 글들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형식으로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 기억은 시간이 흐르며 분위기가 달라지기도 했다. 오랜 기간 낭독회의 일꾼으로 함께한 양경언 평론가에 따르면 “초반 원고에는 ‘그때 나는 어디에 있었나’에 대한 고민이 많이 녹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때 나는 어떤 감정이었나’에 대한 얘기들이 좀 더 많아졌다”고 한다.

  개개인의 기억을 되살리는 자리지만, 무엇보다 낭독회는 함께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큰 힘을 갖는다. 한여진 시인은 낭독회가 “낭독자와 청취자들, 그리고 그들이 떠올리는 기억과 감정들이 함께 존재하는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 동시성이 사람들을 한데 묶고, 더 큰 연대의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 말처럼, 5월의 낭독회에도 다양한 목소리가 한 공간에 두툼하게 쌓였다. 누군가는 울먹이며, 누군가는 속삭이듯, 또 누군가는 단단하게. 한여진 시인은 그 “작은 목소리들이 와글거리며 강한 주문이 된다”고 표현했다.

  낭독회는 닫는 말을 모두가 함께 소리 내 읽는다. 사회자가 “오늘은 4월 16일입니다”라고 메기면, 다 같이 “○○○○번째 4월 16일입니다”라고 그때그때 달라진 시간을 셈한 문장으로 받는다. 함께 읽는 글은 낭독회를 거쳐오며 작가와 시민들의 

“협동적 창조”에 의해 덧대져 왔다. 참사의 기억과 재발 방지를 다짐하는 발화를 함께 수행할 때, 이는 하나의 강력한 주문이 된다. 그리고 그 주문은 다음과 같은 결의의 확인으로 끝맺는다.

사회자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닙니다.”
다 같이   “끝날 때까지 끝내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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