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소원(경제 졸업, ‘권력형 성폭력·인권침해 문제 해결을 위한 서울대인 공동행동’ 대표)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하게 돼 활동이라는 것을 했습니다. 이제는 학교 밖에서도 그 마음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함께해서 서러웠고 다시 또 보겠지!
flolightma@snu.ac.kr
상투적인 시작을 해볼까. “많은 일이 있었다.” ‘권력형 성폭력·인권침해 문제 해결을 위한 서울대인 공동행동(권서공)’은 ‘알파벳 교수’ 사건이라고도 불리는 교수 성폭력 사건에 대응하고자 2021년 5월 14일 출범한 학내 단체로, 2024년 2월 19일 활동을 종료했다. 실질적인 전신인 ‘음대 내 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음대특위)’를 이어 2020년 공론화된 음악대학 B, C교수 사건에 집중적으로 대응했고, 반복되는 권력형 성폭력·인권침해 사건을 야기하는 구조적 문제의 해결을 도모했다. 그동안 학내에서 B교수는 해임됐고, C교수는 파면됐으며, 피해자도 모르는 사이 징계위가 개시되고 징계가 의결되는 문제가 있었던 교원 징계규정이 개정됐다.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B교수는 직위해제 기간 동안 서울대 교수라는 직함을 내걸고 학외 국제 학회에서 활동했고, 검찰은 주거침입 혐의에 대해서만 약식 기소를 하고 성추행 등 주요 혐의에 대해서는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C교수 사건의 1심은 피해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으며, 1심에서 징역형이 선고되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번 2월 29일 대법원 선고가 난다고 하니 사법적인 ‘결론’이라는 것이 나오기까지 삼 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 코로나19 등을 이유로 한 사법적 절차의 지연은 서울대학교 본부의 좋은 핑계가 됐고, 징계 등 서울대학교 내부에서의 자체적인 해결이라는 것 역시 몇 년씩이나 지연됐다. 그동안 권서공은 다음과 같은 일들을 반복했더랬다: 기자회견과 행진, 집회, 연대방청, 생계후원, 서명운동, 기고, 내부 세미나, 본부와의 면담과 무수한 탄원, 탄원.
이제 조금은 내밀한 이야기를 해볼까. 탄원. ‘사정을 하소연하여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람.’ 유의어로는 사정, 사정사정, 애원 등이 있다. 누구에게 무엇을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라야 하는지를 몰라 헤매던 날들이 많았다. 그나마 학내 징계에 대해서는 구성원으로서 이용할 수 있는 수단들이 몇 개나마 있었으나 사건의 사법적 절차가 본격화됐을 때는 더더욱 그러했다. 학내에서의 해결과 사법적 해결이 모두 예상치 못하게 지연되는 동안 어떤 활동가는 학교를 떠났고 어떤 활동가는 학생사회를 떠났으며 또 어떤 활동가는 권서공에 남아있기를 택했다. 당사자에게는 말할 것도 없겠지만 삼 년은, 권서공 활동가들에게도 긴 시간이었다.
삼 년이라는 시간 동안 권서공이 한 일이 많다면 많겠지만, 하지 못한 일이 너무나도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교원 징계규정의 경우에도, 징계처분 등은 피해자에게 고지될 수 있도록 개정됐으나 전반적인 징계위 진행 절차에 대한 고지 등은 여전히 명시된 바가 없고, 학생 참여에 대한 논의는 원천적으로 배제되고 있다. 이외에도 무수한 문제가 남아있다. 본부가 권력형 성폭력·인권침해 문제의 해결을 선도하고 실효성 있는 예방책을 강구할 책임에 대한 공식적인 인정도 노력도 없는 것. 피해 학생이 학술 활동을 이어가고 동료 학생들도 학업의 단절에 대한 두려움 없이 진실을 투명하게 증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교수, 특히나 지도교수에게 부여된 과도한 권위를 벗겨나갈 대안이 필요하나 실상은 직위해제된 교수를 대체해 학생들을 지도할 인력마저 제대로 구하지 않고 있는 것. 징계 이후 피해자의 학계 복귀를 도울 조치를 마련하지도, 사법적 절차 이외의 공동체적 해결이라는 것을 모색해 알파벳 교수 사건을 종식할 일말의 의지마저 보이지도 않는 것 등.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과제가 너무나도 많다. 권서공 이후의 학생사회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더 좋은 방안을 모색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 모든 혼란 속에서 사법적 절차가 지연되는 동안 권서공의 활동은 점점 본부 등에 대한 규탄보다도 피해자 지원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피해자가 어떠한 해결이라는 것을 마주할 때까지 연대하는 것에서 권서공의 역할을 찾고자 했다. 가해자는 돌아오고 피해자는 떠나간다는 자조에 그치고 싶지 않았고, “당사자도 아닌데 왜?”라는 물음에 대해 학생운동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냐”는 무관심의 표현에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힘줘 말하고 다녔고, 학생운동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다른 학생 활동가들에게 “당신들이 그 답을 찾아가고 있다”고 답했다. 그것이 그들의 물음이 내게 알려준 것이었고, 그것이 내가 권서공의 대표로서 느꼈던 바의 전부였으니까. 권서공이 지난 학생사회의 무수한 논의 위에서 발화를 시작했듯 권서공의 발화 너머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가는 그들을 보며 우리의 좌표를 찾아갈 수 있었으니까. 누군가가 연대라는 것을 설명해 보라 한다면 이 연결의 감각을 내다보이고 싶었다. 서로가 서로의 논의 위에서 발화를 시작하고 또 서로의 말하기를 통해 서로의 위치를 찾아가는 것. 이 감각을 조금 더 활발히 공유했더라면 우리는 조금 덜 흔들릴 수 있었을까.
이왕 이렇게 됐으니 여기서부터는 대놓고 개인적인 이야기. 권서공의 활동을 정리하던 시기에도 권서공의 대표로서 “여전히 학생사회에서 무엇인가를 해보고자 하는” 여러 사람들을 새로 만났는데, 참 많이들 묻는 질문이 있었다. 순전히 궁금해서 묻는 것이든, 어디서라도 답을 구하고 싶어 절박하게 묻는 것이든 물어보는 모든 이들의 얼굴에서 나와 동료들의 어떤 얼굴을 보게 돼서, 익숙해질 만도 한데 답할 때마다 바짝 긴장하게 되는 질문.
“어쩌다 학생운동을 시작하셨나요?”
어쩌면 이곳을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서울대학교라는 공동체와 이곳을 공동체로 여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믿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합리나 정의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사랑해 마지않는 공동체에서 불합리하고 또 부정의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을 그저,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상의 너무 많은 부분을 이곳에서 보내버리니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혹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쪽으로든 이곳은 너무나도 중요해져 버렸고, 아마도 비슷한 마음으로 이곳에서 생활했을 사람들이 부조리한 일을 겪게 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권서공 활동을 하며, 어떤 부조리함을 마주했을 때 어떤 마음으로 그것을 공론화하고 어떤 마음으로 이 공동체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인지를 옅게나마 알아버렸으니까. 그렇게 서울대학교를 규탄해 놓고 이곳을 사랑했다니 우습게 들릴 것도 같지만, 그러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대학에서 하는 무엇인가를 최소한 대학이라는 곳에서는 위협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본부에 대한 믿음이라기보다도, 우리가 어떤 문제를 마주한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행동을 시작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우리가 그러했으니까. 그리고 그대들이 그러했으니까. 그 언젠가의 그대들이 그러했기에 우리가 그러할 수 있었으니까. 비록 본부 사람들은 작년 학위수여식에서 1인 시위를 하는 학생에게 ‘권서공 소속이 아니지 않느냐’고 물으며 또 한 번 서울대에 대한 믿음을 깎아 먹었지만, 이곳을 공동체로 여기는 사람들의 마음에 대한 믿음만은 여전했다.
권서공에 답을 구하던 사람들은 알지 모르겠다. 그들의 물음이, 달라진 학생사회에서도 차마 어찌하지 못하는 그 마음을 지니고 무엇인가를 해보려는 그들의 물음이 삼 년이라는 시간 동안 권서공이 찾아 헤매던 물음에 대한 답이 됐다는 것을. 어쩌면 나를 비롯한 권서공 활동가들도 그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권서공은 아직도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약간은 서글픈 마음으로 해산을 맞이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권서공에 대해, 권서공의 활동가들에 대해, 그리고 권서공에 관심을 가지고 연대해 준 권서공 안팎의 사람들에게 지닌 오랜 미안함의 근원이겠지. 그렇지만 삼 년 동안이나 이런 대표를 믿고 함께해 준 그대들에게 마지막 아량을 바란다면 무리일까. 그러니까 이 글은, 무리인 것을 알면서도 결국은 서로를 이해해 버릴 활동가라는 사람들에 대한 편지.
이 글이 권서공에 대한 좋은 이별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추적추적한 이별문에 지면을 할애해 준 〈서울대저널〉에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