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유해한 일상

보이지 않는 화학물질에 둘러싸여 살아가기

  우리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 화학물질이 있을까? 화학물질을 다루는 업종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는 수많은 화학물질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생활화학제품을 일상 곳곳에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활화학제품이란 가정, 사무실, 다중이용시설 등 일상적인 생활공간에서 사용되는 화학제품으로서 사람이나 환경을 화학물질에 노출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을 말한다. 살균제·소독제 품절 대란까지 일어났던 코로나19를 거치면서는 생활화학제품 사용이 더욱 증가했다. 문제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시중 제품은 당연히 검증을 거친 안전한 물건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만 해도 방향제, 세정제와 같은 화학 제품류 리콜이 전년 대비 54.7% 증가했다. 이러한 수치는 유해화학물질이 기준치보다 많이 포함된 제품들이 판매 전에 걸러지지 못하고 버젓이 유통됐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리콜 조치가 가능하다는 것은 적어도 제품 안에 든 유해화학물질의 유해성이 알려져 있고 안전 기준이 정해진 물질이라는 뜻이지만, 새로운 화학물질은 계속 쏟아져 나오기에 아직 그 유해성이 밝혀지지 않은 물질도 많다. 우리 생활 속엔 어떤 화학물질이 부유하며 어떻게 취급되고 있을까. 소비자가 제품의 성분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뭘까. 일상 속 화학물질이 주는 영향과 이를 관리하는 구조를 돌아봤다.

12년째 현재진행형인 가습기 살균제 참사

 

  인체에 무해하다고 생각해 사용한 생활화학제품이 큰 피해를 낳은 사건으로는 국내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있다.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은 2011년부터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1994년부터 유통돼 온 가습기 살균제는 가습기에 생기는 세균을 없애면서도 인체에는 무해하다는 설명 아래 꾸준하게 팔려나갔다. 광고나 라벨에 ‘아이에게도 안심’, ‘내 아기를 위해!’와 같은 문구가 쓰여있던 탓에, 특히 임산부나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에 많이 팔렸다. 그러나 2011년 당시 수많은 영유아와 임산부들이 원인불명의 폐 손상을 앓았고, 역학 조사 결과 폐가 딱딱하게 굳는 폐 섬유화와 같은 피해의 원인이 바로 가습기 살균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가습기 살균제의 주성분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등이 흡입 시 위해성을 지니는 물질임에도, 유해성 심사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흡입독성 평가를 거치지 않은 채 시중에 판매돼 왔던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지원 종합 포털에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 피해 신고자는 7,877명이며 이 중 사망자가 1,835명이다. 정부 차원의 피해 구제가 요구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질병관리본부는 참사가 드러난 지 3년 뒤였던 2014년부터 피해 정도를 4단계로 구분해 지원을 시작했다. 이는 살균제 노출 경과와 질병 경과를 확인한 뒤 가습기 살균제 사용으로 인한 폐 손상 가능성에 따라 나뉜 단계로, 1단계는 노출 및 질병 경과가 확인됐고 다른 질병원인이 없을 가능성이 확실한 상태, 2단계는 그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문제는 피해자 전부에게 피해 구제와 지원이 고르게 이뤄지지 않은 채, 주로 1·2단계 피해자들을 위주로 정부지원금 등이 집중됐다는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노출과 폐질환의 인과관계 가능성이 비교적 낮거나 거의 없다고 판단된 3·4단계 피해자들은 초기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다 보니 2016년부터 있었던 기업들의 배·보상도 일부 1·2단계 피해자들을 위주로 이뤄졌다. 질병의 경중을 기준으로 한 판단이 아니기에 3·4단계로 구분됐다고 해서 가벼운 피해를 앓은 것이라 볼 순 없다. 가습기 살균제로 피해를 입었어도 폐질환 이외의 질환을 가졌거나, 폐질환이 있어도 가습기 살균제와 직접적 인과관계가 없다고 보이면 3·4단계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3·4단계 피해자들은 피해 구제를 촉구하며 가해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으나 대부분 몇 년째 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태다. 

  제대로 된 피해지원센터가 설립된 것 역시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이후인 2017년이었다. 2020년엔 해당 법이 개정되면서 단계별 분류 없이 다양한 질환에 대해 가습기 살균제와의 연관성이 확인되면 피해자로 인정하도록 하는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뒤늦은 피해 인정으로 기업 배상이 진행된 기간 안에 등급 판정까지 이뤄지진 못해 제대로 된 배상을 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여전히 많다. 

사진 설명 시작. 야외에 있는 계단 위에 신발들이 놓여있다. 그 사이에는 어린이 얼굴의 그림자 이미지, 아기 사진, 산소호흡기를 한 여성의 사진이 들어간 액자들이 놓여있다. 계단 앞에는 다양한 종류의 가습기 살균제가 있다. 사진 설명 끝.

지난 8월 31일 서울역 앞 계단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참사 12주기 캠페인 및 기자회견.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들의 유품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문제 중 하나는 제품 속 화학물질의 독성이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품이 유통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건의 피해 구제는 가습기 살균제가 실제로 어떤 질병과 상관성이 있는지를 밝히는 건강영향연구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질병과의 연관성이 아직 충분히 규명되지 않아 보류된 판정도 많다. 환경부가 가습기 살균제 성분 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에 노출되면 폐암 발생 확률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를 받아들여 폐암을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인정한 것도 불과 석 달 전이다. 가습기 살균제 속 많은 성분에 대해 질병과의 인과관계를 모두 입증하는 것에 매우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입증된 바에 따라 다시 산정된 기준으로 법을 개정해 실제 판정에 적용하는 데에도 긴 기다림이 필요하다. 

  피해자 구제 제도의 불완전성뿐만 아니라 기업들의 이해관계 차이 또한 충분한 보상과 피해 구제를 방해해왔다. 작년 3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조정위)에서 신속하고 타당한 지원 보상을 위해 사태에 책임이 있는 기업들에 조정액을 마련하라는 내용의 최종 조정안을 내놨지만, 이 조정안은 거의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조정액 분담률을 둘러싼 기업 간의 입장차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책임이 있는 기업엔 크게 원료물질 제조업체와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업체가 있는데, 이 중 제조·판매업체들이 원료물질 제조업체의 분담률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반복하면서 조정안이 계류 중인 것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와 불확실성 속에 구제가 늦어지는 동안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특히 사망자 수가 증가하고 있어 빠른 피해 구제가 더욱 시급한 시점이다. 다행히도 지난달 3단계 피해자가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업체를 대상으로 제기한 민사 소송에서 9년 만에 최종 승소한 판결이 있었다. 이는 3·4단계 피해자의 손해배상소송 중 처음으로 최종 판결이 나온 사건이기도 하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제품이 진열대에 놓이기 전 진행됐을 각종 검증 및 안전 심사 시스템과 제품을 안심하고 사용하라고 홍보한 기업을 믿고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들이 극심한 피해를 입은 사건이다. 기업과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 이 사건 이후, 다시는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충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을까. 참사 12년 만인 지금, 질병관리청에서는 내년부터 환경성 혹은 직업성 질환에 대비하고 조기 대응하기 위한 신고·감시 시스템인 건강위해 통합정보관리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새로 마련되는 시스템이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비감염성 질환을 막는 체계적인 대비의 발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주목해야 할 때다. 

더 자주, 더 크게 영향받는 민감집단

  환경보건의 기본 원칙 중 하나는 민감 계층 우선 보호다. 환경보건법 제15조에 따르면 어린이, 노인, 임산부 등 환경유해인자의 노출에 민감한 계층에 대해 환경유해인자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지속적으로 조사·평가돼야 한다. 생활 속 유해화학물질이 미치는 건강영향에서 민감집단이 그만큼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대표적인 민감집단으로는 임산부와 아이가 있다. 한국환경보건학회의 2020년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서도 더 큰 피해를 입었다.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이 특히 더 필요한 임산부와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더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에 노출된 비율도 다른 가구보다 1.2배 높게 나타났다. 이는 단순히 이들의 사용량이 많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화학물질의 건강영향을 연구하는 김성균 교수(보건대학원)는 같은 물질에 노출되더라도 “발달 중인 태아나 어린이는 흡수부터 배설까지 물질의 거동이 성인과 다를 수 있다”며, 화학물질에 대한 임산부와 어린이의 본질적인 취약성이 이들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더욱 심화했다고 설명했다. 많은 화학물질은 우리 몸속 호르몬과 물질 구조가 비슷하거나 호르몬을 흉내 내며 우리 몸에 혼란을 일으킨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집단마다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정도와 영향이 다른데, 임산부와 어린이는 그 노출 정도에 더해 다른 집단과의 신체적 차이가 더 큰 피해를 발생시킨다.

  젠더 역시 화학물질에 대한 노출과 영향을 달라지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여성이 주로 사용하는 화장품은 대표적인 화학제품으로, 화장품을 눈 주위나 입술 등 점막에 가까운 피부에 바르고 오랜 시간 있다 보면 화학물질이 피부를 통해 흡수되기도 하고, 무언가를 먹고 마시다가 의도치 않게 섭취하게 되기도 한다. 여성이 월경 기간 내내 사용하는 생리대, 진통제에도 화학물질은 어김없이 들어있다. 특히 생리대에 발암물질이 들어있다는 문제제기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7년 여성환경연대가 생리대 10종에 대한 유해화학물질 연구를 의뢰한 결과 대다수 생리대에서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이 검출됐다. 휘발성 유기화합물은 많은 종류가 있지만 개중에는 두통, 구토, 호흡곤란 등을 유발하는 유해화학물질이 포함돼있다. 식약처는 전수조사 결과 시중에 판매되는 생리대에 유해화학물질이 포함된 것은 사실이나, 양이 미미해 인체에 무해한 수준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생활 속 다른 제품 속의 화학물질과 상호작용할 가능성을 고려하면 인체에 무해하다고만 보긴 어렵다는 주장들이 있기에 여전히 안심할 수는 없다.

사진 설명 시작. 흐릿하게 처리된 사람들의 얼굴 사이로 흰색 생리대 모양의 피켓이 들려있다. 피켓 가운데에는 빨간색으로

2017년 9월 5일 여성환경연대 생리대 유해성분 규명 및 역학조사 촉구 기자회견에서 사용된 피켓 ⓒ여성환경연대

  여성이 노출됐을 때 더 유해한 화학물질도 있다. 유해화학물질은 주로 호르몬을 모방하거나 유사한 구조로 세포, 조직 등 호르몬 수용체의 반응을 유도해 우리 몸에 영향을 미친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젠의 정상적 기능에 영향을 주는 화학물질의 경우 다른 집단보다도 여성 건강에 더 크게 유해할 수 있다. 환경단체에서 활동하며 환경호르몬과 여성 건강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온 고혜미 방송작가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젠을 흉내 내거나 에스트로젠의 작용을 방해하는 외부 화학물질이 극심한 생리통이나 난임 등 자궁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며,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동안 만난 여성들 중 극심한 생리통을 겪는 이들 주변엔 늘 환경호르몬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흔히 환경호르몬이라 부르는 내분비계 교란 물질 중 하나인 비스페놀A(BPA)는 에스트로젠과 화학구조가 유사해 인체에 들어가면 성조숙증, 성기능 장애, 암 등을 유발할 수 있지만, 생활의 어느 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흔한 화학물질이다. 플라스틱 그릇, 캔, 식품 포장재 등의 원료로 쓰이며 종이 영수증·번호표 등을 만들 때 사용되는 감열지에도 들어있다.  

  어린이도 민감집단 중 하나다. 신체 발달이 진행되는 단계에 있는 어린이는 화학물질에의 노출부터 작용까지의 과정이 성인과 다르기 때문이다. 김성균 교수는 화학물질에 똑같이 노출되더라도 성인에 비해 “어린이는 단위 체중당 노출량이 더 많다”고 설명했다. 단위 체중당 호흡률, 음식 섭취량 등이 더 높아 화학물질에도 더 많이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물건을 빨거나 접촉하는 행동이 많은 어린아이들의 특성상 화학물질에 더 취약한 편이다.

  화학물질의 영향은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성별, 세대 등과 교차하며 모두에게 서로 다르게 닿고 있다. 경로도 규모도 다른 화학물질의 영향에 대해 집단별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되는 이유다. 고혜미 작가는 “어린이나 임산부처럼 가장 취약하고 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제품을 안전하게 만들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안전할 것”이라며 민감집단을 고려해 안전 기준이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현명히 소비할 책임에 앞서, 현명히 만들 책임

  전문가가 아니라면 소비자 스스로 일상에서 쓰는 제품에 어떤 성분이 들어있고 그것이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알긴 어렵다. 근본적으로 소비자에겐 유해화학물질에 관한 정보가 부족하다. 만약 생활화학제품 때문에 건강에 피해를 입더라도 그 사실을 개인이 제대로 인식하고 입증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이렇듯 성분과 그 영향을 확인하고 정보를 습득하기 어려운 구조임에도 피해가 발생했을 시의 책임은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소비자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서, 잘 모르고 사용했다가 생긴 피해라는 것이다.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할 때마다 성분을 일일이 확인하고 구매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현실에서, 과연 제품을 만드는 기업의 책임은 없는 걸까.

  가습기 살균제 참사 이후, 화학물질 관리 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2013년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이 제정됐다. 이외에도 화학물질 관리와 관련한 법에는 ‘화학물질관리법’,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화학제품안전법) 등이 있다. 이러한 법에 따라 기업은 제품 제조에 화학물질을 사용할 때 유해성 정보 등을 등록하거나 신고하고, 정부는 위해성이 있는 생활화학제품을 심층 관리하는 등 화학물질을 다룬다.

  현재 화평법상 화학물질을 제조하거나 수입하기 위해 개별 원료의 유해성 정보 등을 등록해야 하는 기준은 제조·수입의 규모가 기존화학물질* 연간 1톤, 신규화학물질** 연간 100kg 이상이다. 문제는 이 정도 규모의 화학물질을 다루지 않는 소규모 사업장에는 해당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기존화학물질: 1991년 2월 2일 전에 국내에서 유통된 화학물질로서 환경부장관이 고용노동부 장관과 협의해 공식적으로 알린 화학물질 또는 그 이후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에 따라 유해성심사를 받고 환경부 장관이 공식적으로 알린 화학물질

** 신규화학물질: 기존화학물질을 제외한 모든 화학물질

  이렇다 보니 법적 기준보다 엄격한 생활화학제품 관리를 목표로 하는 협약도 존재한다. 38개의 기업과 2개의 시민단체가 환경부 및 한국환경산업기술원과 함께 맺은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자발적 협약’이 그 예시다. 2021년 12월 14일부터 이번 달 13일까지의 협약 기간 동안 기업은 시민사회, 정부와 함께 제품 내 함유 전성분 공개 원료 안전성 평가 및 유해원료 저감조치 화학제품 안전관리 경영원칙 천명 대-중소기업 간 제품 안전관리 협업 제조·유통사 간 안전제품 판매 시스템 구축 등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정부와 시민단체는 그에 대한 지원 및 감시를 맡고 있다. 이외에도 내실 있는 제도 이행을 위해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지속가능 사회’를 목표로 정부, 산업계, 시민단체 및 이해당사자인 개인이 화학안전에 대해 토론하는 장을 만들고자 하는 화학안전정책포럼이 운영되고 있다. 올해는 화학물질 안전관리 중장기 계획 수립 유해화학물질 지정관리체계 제도 개선 화학물질 유해성정보 생산·전달·활용 실효성 제고 만성유해성물질 관리 로드맵 마련을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여러 차례 진행됐다.

사진 설명 시작. 큰 회의장의 모습이다. 무대에는 다섯 명이 앉아있고, 그 뒤로 벽을 채우는 화면 가운데 하단에

올해 화학안전정책포럼에서 다뤄진 토론 내용을 종합·정리하는 종합토론회가 11월 28일 열렸다. ⓒ화학안전정책포럼  하지만 현 정부에 들어 산업계를 위해 화학물질 관리 규제를 완화하려는 흐름이 나타나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정부는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킬러 규제’를 혁파하겠다고 밝히며, 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 역시도 기업을 방해하는 킬러 규제로 지목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올해 안에 법을 개정해 신규화학물질 등록 기준을 연 100kg에서 1톤 이상으로 완화하고, 화학물질 위험도에 따라 사업장을 차등 관리하겠다고 발표했다. 김성균 교수는 이 같은 규제 완화 시도에 대해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며 진화돼 온 화학물질 규제의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완화라는 이름으로 제도의 구멍이 더 커져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장친화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 자체가 완화된다면, 제도는 더 이상 시민의 일상을 안전히 지켜줄 수 없다.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모두의 일상을 위해 정부와 기업은 화학물질 규제의 입법 배경과 취지를 기억하며 체계적 시스템을 만들어나가야 할 마땅한 책임이 있다. 

내게 무해한 지금을 만들기 위해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겪은 우리 현실에서, 생활화학제품이 그 위해성에 대한 제대로 된 심사 없이 시중에 유통됐을 때의 위험성은 명백하다. 화학물질이 모두의 건강에 직접적이고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화학물질을 전부 배제하고 살아갈 순 없는 상황에서 모두가 안전할 수 있으려면 화학물질이 사용된 제품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전 과정을 국가 차원에서 체계를 갖춰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제도의 마련부터 적용까지의 과정이 더디게 이뤄져 빠른 변화와 즉각 대응이 시급한 화학물질 문제에 있어서는 제도에만 모든 것을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개개인은 당장 일상생활에서 매일 화학물질을 맞닥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유해한 물질들을 줄이기 위해 소비자 개개인이 직접 실천할 수 있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구매 시 제품의 성분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강조했다. 많은 사람들이 성분에 대한 주의 없이 제품의 사용으로 얻을 편익만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성균 교수는 “하나의 문화로서 (성분을) 알고 접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세상은 좀 더 낫지 않을까”라며 “편리함보다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소비문화의 형성을 제안했다. 고혜미 작가는 “소비자들이 물건을 구입할 때 이게 진짜 안전한지에 대한 질문을 기업에 던졌으면 좋겠다”며 “많은 사람들이 안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면 기업도 경각심을 가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화학물질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있는지보다도 안전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며 질문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품을 구매할 때 안전 정보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환경부에서 제공하는 생활환경안전정보시스템인 ‘초록누리’ 등을 활용할 것을 제안하면서도, 해당 시스템에 대한 접근성의 한계 역시도 지적한다. 고혜미 작가는 “시스템적으로는 성분을 확인할 수 있도록 고지가 잘 돼 있지만 일반 소비자들에게 친화적인 시스템은 아니”라는 견해를 밝혔다. 물질의 이름만으로는 유해성 파악이 어려울뿐더러 검색 체계 자체도 미흡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일반적으로 가장 빠르고 간편하게 제품의 정보를 확인하는 방법인 제품에 부착된 라벨 또한 마찬가지다. 고혜미 작가는 시민단체 환경정의에서 생활화학제품 라벨 개선안 연구에 참여했던 경험을 소개하며 성분 확인 라벨이 진정으로 소비자를 위해 구성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안전 확인 대상 생활화학제품의 라벨에는 용도, 사용 물질, 사용법, 주의 사항, 응급처치 방법이 표기돼 있지만, 긴 문장이 작은 글씨로 쓰여있는 탓에 소비자가 내용 전부를 꼼꼼히 읽기는 쉽지 않다. 시민단체 환경정의는 ‘소비자가 라벨을 읽고 이해하기 어렵다면 라벨이 안전 사용 안내라는 역할을 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며 픽토그램, QR코드 등을 활용하는 개선안을 제안하고, 생활화학제품 라벨 안내서를 마트 등에 비치한 바 있다.

사진 설명 시작. 마트 선반에 대용량 섬유유연제들이 놓여있다. 좌측에 연분홍색 제품이 크게 보이고 옆으로 연보라색, 연노랑색의 제품들이 보인다. 연분홍색 제품의 하단에 진분홍색 배경에 흰색 글씨로 이루어진 라벨이 붙어 있다. 라벨에는

안전확인대상 생활화학제품으로 지정된 한 제품의 라벨. 라벨에는 주요성분, 사용법, 사용 시 주의사항 등을 필수 표시해야 한다. 이는 작은 글씨의 줄글로 기재된 경우가 많다.

  교실의 칠판부터 거실에 둔 방향제까지, 현대사회에서 화학물질은 일상을 살아가며 마주칠 수밖에 없는 존재로 우리 모두와 말 그대로 직접 닿아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겪으며 화학물질의 유해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높아졌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에 어떤 화학물질이 있는지 알기는 어렵고, 많은 화학물질은 그 정확한 영향조차 밝혀지지 않았으며, 관리제도의 전망도 불투명하다. 참사의 고통을 12년째 여전히 겪어나가고 있는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이미 발생한 피해를 신속히 구제하며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피해는 예방해나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함께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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