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 시장 논리 잣대를 갖다대는 일은 엄정하고 가혹한 듯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꼭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어떤 상품이 팔리기 위해선 구매자가 사고 싶게 만들어야만 한다. 그러니 팔려야 할 것이 책이라면, 그 책은 읽히고 싶게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우리 손에 안착하기까지 책은 수많은 통과의례를 거친다. 쓰이기부터 찍히기, 묶이기, 보내지기까지. 이젠 팔리지 않는 책, 도서 산업을 중심으로 그 실제를 살폈다.
책, 밥보다 비싸다?
2003년에 출판 시장의 과도한 할인 경쟁을 막고 영세 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도서정가제가 도입됐다. 당시에는 출간 이후 18개월간 정가의 최대 10%까지, 18개월 이후부터는 제한 없이 할인을 허용했고, 학습서, 실용도서, 참고서를 적용 예외 대상으로 뒀다. 그런데 2014년 개정 이후, 발매일과 도서 종류와 무관하게 모든 도서는 정가의 최대 10% 할인과 5% 이내 사은품, 마일리지 등을 지급하는 내에서만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이때부터 도서정가제가 출판 시장 안정화를 위한 조치인지 소비자 효용을 지나치게 해치는 조치인지를 두고 논란이 불거졌다.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도서정가제의 존폐 및 개정을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2020년 검토를 마지막으로 기존 내용이 유지되던 도서정가제는 이런 논란 속에 2023년 올해 또 한 차례의 검토를 앞두고 있다. 지난 1월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도 ‘도서정가제 적용 예외 허용’을 첫 국민토론 주제로 선정했다.

도서정가제를 두고 출판 시장의 다양성과 안정성을 보장한다는 찬성 측과 정부가 출판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데다 영세 서점의 재고 처리를 어렵게 한다는 반대 측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그렇다보니 어떤 집단의 의견이 반영됐냐에 따라 연구결과도 전혀 다른 방향성을 제시한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주최로 진행된 도서정가제 이해관계자 설문조사에서는 집단별로 저자 55.6%, 출판사 67.4%, 서점 60.5%, 독자 46.2%가 현행 도서정가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편 정가제의 본질적 필요성에서도 저자, 출판사, 서점, 독자 모두 50% 이상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이 올 3월 내놓은 국민제안 보고서에 따르면 찬반투표 참여자 2,310명 중 95.2%가 도서정가제 예외 적용에 대해 찬성을, 1,903여 명이 댓글로 참여한 자유토론에선 46%가 ‘도서정가제 폐지’를 주장했다. 참여한 이들이 성실한 독서 인구인지나 출판산업 및 독서문화 이해관계자 중 어느 집단에 속하는지를 알 수 없지만, 제도에 대한 반감이 눈에 띈다.
하지만 지금의 도서정가제에 대한 논의가 출판산업 및 독서문화 진흥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는지 의문을 던지는 시각도 있다. 현재 도서정가제에서 중심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은 ‘책값’이다. 그런데 문학, 실용서, 학습서, 학술서 등 시장에 공급되는 도서의 범주는 다양하고, 각기 수요나 제작 방식이 달라 책값이 어떠하다고 딱 잘라 단언하기 어렵다. 도서정가제 도입 이후 전반적인 지표에 따르면 책값이 크게 인상되지도 않았다. 도서 품목의 소비자물가지수는 도서정가제 개정 전인 2010년부터 2015년 사이에는 매년 2~3%대 상승했다가, 개정 이후인 2015~2019년 사이에는 매년 0~1%대 상승에 그쳤다.
높은 책값이나 도서정가제가 독서문화의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는지도 확실치 않다. 한국출판연구소가 독서 구매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 따르면, 3순위까지 복수응답을 허용한 내에서 최근 독서량과 도서 구입량 변화 요인으로 ▲본인의 사회생활 변화 66.2% ▲스마트폰 이용 등 매체환경 변화 61.8%, ▲독서 이외의 여가활동 59.9% 세 항목이 가장 높게 나타났고, 도서정가제는 19%에 불과했다. 매년 문화관광체육부에서 발간하는 「국민 독서실태 조사」를 살펴보면 성인 연평균 독서율은 1994년 86.8%에서 2021년 47.5%로 감소했다. 도서정가제 도입 전부터 독서율이 하락세를 보여온 탓에, 최근 저조한 독서율에 도서정가제가 저해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때문에 도서정가제와 같이 책값만이 아니라 소비자에 공급되는 상품으로서의 도서의 가치 제고를 위한 다각화된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도서정가제의 당초 도입 목적 역시 가격의 고정이 아니라 건전한 출판 시장 형성과 도서의 질적 경쟁의 유도에 있었다. 〈출판저널〉 정윤희 편집인은 “도서정가제 도입 당시부터 독서문화 및 출판시장의 변화 양상에 대한 시뮬레이션과 다각적인 연구는 부족했다”며 “현재의 제도는 출판산업 촉진을 위해서는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정 편집인은 “독서율도 계속 떨어지는 것을 보면 도서정가제 도입과 독서문화의 긍정적 확산 사이엔 연계성이 없어 보인다”고 덧붙이면서, “공급자 중심의 일방적 정책에서 벗어나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를 고려한 독서와 출판 전반의 새로운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변화하는 출판 지대
독서가 전제된 ‘책’을 판매하기란 문화적 가치와 상품적 가치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까다로운 일이다. 원체 ‘독서’의 힘과 가치가 강조돼온 탓에 도서의 상품성을 놓치기도 하고, 가격에만 경도돼 도서의 질이나 판매 공간만의 가치 제고에 느슨해지기도 해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독서 생활의 변화와 함께 출판산업도 큰 변화를 맞이했다.

최근 출판산업은 다형화된 양상을 보인다. 도서 시장 내 가격 경쟁이 과도해지면, 신간보단 할인에 용이한 기존 도서 구매량이 늘고, 새로운 도서의 출판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런데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출판 시장이 가격 경쟁에서 벗어나면서 출판되는 도서의 다양성이 확장됐다. 책과사회연구소의 「도서정가제 영향 평가 및 개선방안연구 주요 결과 발표」에 따르면, 2014년에서 2020년까지 출판사 수는 약 2만 곳 증가했고, 발행 종수도 약 1만 5천 종 늘었다. 5월 중소기업 옴부즈만*이 문화체육관광부에 건의한 꽃집, 카페 등의 근린생활시설에서도 1인 출판사를 개설할 수 있는 ‘1인 무점포 출판사’가 곧 관련 조항 개정을 통해 수용될 예정으로 알려져 이러한 추세가 더 강해질 전망이다. 책과사회연구소 백원근 대표는 “1인 출판사의 증가로 출판문화의 다양성이 확보되고 있고, 할인이나 마케팅보단 기획력이나 콘텐츠의 재미를 갖춘 1인 출판사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우리 사회의 책 문화가 개성을 갖추게 된다”며 현 출판산업의 변화를 긍정했다.
* 옴부즈만(Ombudsman)은 북유럽을 중심으로 시작돼 발전된 제도로, ‘공공기관의 법령상 책무를 적정하게 수행하고 있는지 국민을 대신하여 감시하기 위해 그 대리인으로 선출된 자’를 말한다.
한국 출판산업의 새로운 활로을 보여주는 듯한 1인 출판이지만, 한편 이들은 자본의 한계로 인한 사업적 어려움에도 쉽게 처하고 있다. 본래 우리나라 출판산업은 영세성이 강한 특성을 보여왔다. 1인 출판사의 급증 이전부터 출판계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이 70% 이상을 차지했다. 장윤희 편집인은 “자본력 있는 출판사와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을 중심으로 한 유통구조가 견고”한 기존 상황에 더해 “1인 출판 자체를 위한 시장이 활성화돼 있지 않아” 1인 출판이 지속 가능성에 있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 전망했다.
변화하는 출판 지형에서 고민해볼 또 다른 문제는 전통적 도서, 즉 종이책 자체에 대한 수요 저하다. 2021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국 1인 가구당 월평균 서적 구매비는 11,221원이었다. 동일연도 기준 평균 종이책 한 권 가격인 17,116원보다도 낮다. 이는 단순한 독서 인구의 감소 때문이 아니라 국내 종이책 시장이 형태에서부터 다양성이 부재한 것과도 맞닿아 있다. 해외 독서 시장에선 양장본이나 하드커버 등 인쇄 및 제작에 비용이 많이 드는 책뿐 아니라 그 비용을 줄여 간단한 형태로 내놓는 페이퍼백과 문고본도 함께 찾아볼 수 있다. 소비자 선택의 다양성을 넓혀 심리적 문턱은 낮추고 접근성은 높이는 전략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출판 시장에서는 값비싼 하드커버 유의 종이책이 주를 이룬다. 한국출판연구소 주선미 연구원에 따르면 “소장 욕구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국내 책 소비 현상이 반영된 것”이다. 백원근 대표는 획일화된 종이책 출판에 대해 “(다양화된다면) 종이 질이 낮더라도 저렴한 판본으로 공급해 독자층 확대를 꾀할 수 있을 텐데 현재는 이러한 역할을 중고책 산업이 대신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중고의 가격적 이점을 넘어설 요인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소비자는 더 이상 새 상품을 소비하지 않게 된다. 중고책 시장의 발달은 곧 출판사 자체의 영업이익 하락을 시사하는데, 이 역시 출판사가 신간을 계속해서 발간해낼 힘을 잃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현재 ‘출판법’에 따라 도서, 즉 종이책 취급에 한정돼 있는 출판 범주를 재고할 시대적인 필요도 생겨났다. 종이책 내의 다양성 제고도 중요하지만, 작금의 출판산업이 앞으로 종이에서 벗어난 전자책과 오디오북, 제도권에서 탈피한 문학과 에세이, 장르와 매체성으로 승부를 보는 웹소설 등 다양해진 출판 지대를 어떻게 포섭해낼 것인가가 관건이다. 아직까지 독서 관련 통계 조사 대부분이 종이책과 전자책·오디오북·웹소설을 분리해 연구하고 있으며, 독서율 지표도 종이책을 중심으로 집계된다. 그렇다보니 새로운 출판매체의 흥행이 출판산업의 미래가 아니라 ‘위기’로만 여겨지고, 변해가는 독서 소비 지대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됐다. 〈출판저널〉 정윤희 편집인은 “출판의 정의와 범위가 시대에 맞게 확장하고 있는 만큼 예전처럼 종이책 출판에 머무르기보단 재정의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산업 내 ‘출판’ 개념의 인식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를 만나는 최전방, 서점의 오늘
독서율이 낮아진 데다 가계 도서 소비 금액까지 줄어드는 시점에 들어 가장 위협의 벼랑에 있는 것은 오프라인 서점이다. 2021년 서울문고가 어음을 해결하지 못해 부도를 내면서 산하의 서점 ‘반디앤루니스’의 오프라인 매장 대부분이 운영을 중단했다. 코로나 여파 이후로 오프라인 도서 시장은 회복세를 보이는 듯했지만, 대한출판협회가 발간한 「2022년 출판시장 통계」 자료에 따르면, 대형서점 4사(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영풍문고)의 2022년 총 매출액은 전년 대비 2.3% 성장했지만, 총 영업이익은 33.3% 감소했다. 통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온라인 서점 이용률 증가나 전자책, 오디오북 등 종이책 대체물 시장 확대와 더불어 최근 인건비와 영업 수수료, 제작원가 상승에 중첩돼 일어난 것이라 분석했다.
실제로 종이책을 취급하는 전통적 서점에 대항하는 출판매체 산업이 두각을 보이기 시작한 지 오래다. 구독형 전자책 서비스 ‘밀리의 서재’는 가입자 수가 연신 성장세를 보여 2018년 8,378명에서 2022년에 들어서는 23만 명을 넘어 섰다. 서비스 해지율도 같은 기간 23.3%에서 17.7%로 하락했다. 고객 충성도가 높아진 것이다. 한편, 개별적으로 도서를 구매하는 경우에도 전자책이 우세를 보였다. 2021년 통계청의 도서 구입량 통계에서는 19~29세 젊은 층에서 종이책보다 가격이 낮은 전자책 구입량이 더 우세하게 나타났다. 주선미 연구원은 웹소설 이용 실태 레포트에서 이용자 중 85%가 작품을 유료로 경험했다고 응답했음을 들어 새로운 독서 매체에선 오히려 강한 구매력이 돋보임을 강조했다. 주 연구원은 “(종이책보다) 상대적으로 읽기 가벼운 주제를 내놓는 웹소설이나 가격과 사용의 용이성 측면에서 우세한 오디오북, 전자책이 확실히 우세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점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전통적 서점이 위기에 빠진 와중 독립서점은 늘었다. 기업형 대형서점과는 달리 오프라인으로 독립적으로 지역에 기반을 두고 운영되는 중·소형 서점을 일컫는 독립서점은 최근 들어 출판 소비 시장의 중심에 있다고 불릴 만큼 그 영향력이 커졌다. 주식회사 동네서점의 「동네서점 트렌드 2022」에 따르면, 독립서점은 연신 증가 추세를 보이며 전국 97개였던 2015년에 비해 2022년 815개로 약 8배 넘게 늘었다. 같은 자료에 따르면 독립서점은 서울에 집중해 있기보다는 지역 전체에 고루 분포해 있다는 또 다른 특징을 지닌다. 특히 경주나 제주 등 여행·관광에 특화된 도시에서 독립서점의 발전이 뚜렷이 나타났는데, 제주특별자치도는 전국에서 네 번째로 독립서점 수가 많다. 최근 SNS에서 ‘여행지에서 가볼 만한 곳’ 등의 문구로 지역 서점이 소개될 만큼, 지역 독립서점이 하나의 공간성을 인정받아 여행·관광과 맞물려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부흥 속에서 독립서점은 그 지형 내에서도 다양성을 보인다. 주력하는 도서 분류도 제공하는 서비스도 가지각색이다. 「동네서점 트렌드 2022」의 취향별 독립서점 수 조사에서는 커피차가 있는 서점(29.1%), 독립출판물 서점(21.0%), 큐레이션 서점(15.6%) 등 다양한 서점별 특성이 드러났고, 활동별 독립서점 수 조사에서도 독서모임(32.2%), 북토크(23.7%), 공간대여(16.2%) 등이 꼽혀 독서 관련 활동이 여럿 제공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프랜차이즈 서점 혹은 온라인 서점이 제공하지 못하는 서비스를 내보임으로써 차별화과 경쟁력 확보를 꾀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이에 박차를 가하듯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서는 서점마다 개성이나 전문성을 찾을 수 있도록 지역 서점 인증제나 서점학교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물론 동시에 영업을 중지하거나 문을 닫는 독립서점도 늘었다. 2022년에 들어 누적 휴·폐점 수가 216곳에 달했다. 독립서점은 온라인 서점이나 대형서점에 비해 태생적으로 수요가 적어 유지에 어려움이 있다. 〈트렌드모니터〉의 「2022 동네 책방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동네 작은 책방에 대한 필요성은 20대부터 50대까지 모두 70% 이상 동감했지만, 책을 구매하는 목적이라면 우선적인 고려대상은 대형서점일 것이라는 데에도 전 세대 70% 이상이 동의했다. 독립서점이 자기만의 특별한 요소를 제공하지 못하면 소비자로부터 도태되기 쉬운 것이다. 독립서점을 문화공간으로 여기는 기조가 강한 상황 속에서 본질적으로 상업공간인 서점이 어떻게 상품을 팔 힘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진다.
독자에 손을 내밀자

산타클로스가 밤중에 몰래 트리 아래 선물을 두고 가듯이 책이 어느새 선물처럼 독자의 손에 놓인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손발이 달린 것처럼 매대 안팎에서 살아 움직이고 눈길을 끌어야만 그들의 손에 들릴 수 있다. 그렇다면 책은 어떻게 독자에게로 향할 수 있을까. 출판산업 전반이 상호 연계되어 있음을 인지하고, 이들 사이의 연대를 형성하는 게 우선해야 한다. 〈출판저널〉 정윤희 편집인은 2017년부터 *‘책문화 생태계’ 조성을 출판산업의 새로운 방향성으로 제시해 왔다. 이를 빌려 정 편집인은 “책을 쓰고 만들고 유통하고 읽는 그 모든 과정에 참여하는 이해관계자가 생태계 속에서 연대해 건강한 책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서점에서는 독자들이 좋은 책을 발견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북 큐레이션을 제공하고, 출판사는 책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제공할 뿐 아니라 독자의 신뢰를 얻는 사회 공헌 활동 등을 통해 책 문화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앞장서야 한다”며 공급자가 책문화 생태계를 이루는 하나의 요인으로서 건강하게 작동해야 함을 피력했다.* 책문화 생태계: 저자, 출판사, 서점, 도서관, 독자로 이어지는 지속가능한 선순환 시스템 출판산업 전면에 서있는 독립서점에서 책문화 생태계의 씨앗을 살필 수 있다. 서울시 하월곡동 소재의 G 서점은 문학, 아동도서, 수험서, 참고서까지도 취급하는 곳으로 흔히 떠올리는 동네의 일반 서점과 크게 모습이 다르지 않다. 하지만 도서나 서가마다 책방지기가 남긴 북 큐레이션 메모가 놓여 있다. 단편적 예로, ‘슬픔’을 키워드로 꾸린 서가에는 “맞잡은 손으로 시집을 넘기다 ‘나는 여기가 눈물로 다가왔다’고, 언젠가 서로의 슬픔을 속삭이고픈 이들을 생각하며 골라둔 문장들”이란 메모가 붙어있다. G 서점 책방지기는 “배치한 상품, 즉 도서의 매력이 무엇인지 잠재 고객에게 설득하기 위한 장치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건 상업공간인 책방의 기본”이라고 말하며 큐레이팅의 계기를 설명했다. 책방지기에 따르면 메모가 붙은 도서가 더 많은 관심을 끌어 판매량에도 유의미한 차이가 있으며, 책을 구매할 때 메모까지 가져가려는 고객도 늘었다. 곳곳에 남긴 단평이 곧 서점의 정체성이자 책의 상품성을 높이는 요인이 된 것이다. 서울시 정릉동 소재의 S 서점은 올해로 5년 차를 맞은 독립서점으로, 소설, 인문, 에세이를 주로 취급하면서 독립출판물도 별도의 코너를 마련해 소개한다. 온라인·대형서점보다는 취급하는 도서 수가 적을 수밖에 없지만, 책을 대주제에 따라 분류해 소개하거나 큐레이션 메모를 남기고, 주류 서점이 다룰 수 없는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면서 경쟁력을 확보했다. 한편 서점엔 북토크나 독서모임 등 서점 자체 활동이 이뤄지는 대화 공간이 함께 마련돼 있다. 기존엔 지역 창작가의 작품 전시를 위해 사용했던 작은 공간을 술 한 잔 겸할 수 있는 바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S 서점 책방지기는 “책을 사갈 뿐 아니라 내부에서 시간을 보내고 소통하는 공간인 일종의 ‘살롱(Salon)화’를 꿈꾼다”며, “독립서점의 이점은 공간을 재조성하고 취향에 맞게 꾸며 개성을 차리는 데 있다”고 말했다. 한편, 2017년 문을 연 경주시 소재의 E 서점은 관광객을 중심으로 큰 관심을 받아왔다. E 서점 책방지기는 “경주가 문화도시라 불리지만, 정작 향유할 문화가 없는 것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서점을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 책방지기 자신의 취향을 반영해 문학을 전문으로 다루며 독립출판물도 여럿 입고돼 있다. 주 이용객은 20~30대 여성 관광객이다. 유명 관광지 황리단길에 위치한다는 지리적 특성 때문도 있겠지만, 방문객 취향에 따라 책을 제공하는 ‘읽는 약’ 서비스나 내부 공간 조성, 방문객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한 책 추천 등 서점만의 특색이 한 지역에서 방문해봐야 할 명소로 자리 잡게 했다. E 서점에서는 지역 사회나 창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심야책방이나 북토크도 열린다. 책방지기는 “경쟁 상대인 온라인 서점은 가격이나 배송 면에서 이길 수 없는 게 분명하지만, ‘왜 서점에서 사야 하는지’ 이유를 만들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하며 독립서점만의 방향성을 설명했다. 강릉시 소재의 R 서점은 “문향(文香)의 고장인 강릉에 걸맞은 서점이 없다는 생각”과 함께 문을 열었다. 지하부터 지상 4층에 걸친 큰 규모 중에서도 강릉 출신 작가들의 작품만 모인 지하 서가가 특히 R서점의 핵심 공간이다. 관광객이 서점을 자주 찾아 젊은 층을 위한 에세이나 ‘강릉’ 관련 독립출판물뿐 아니라 가족 단위의 방문을 고려해 아동서도 배치해 판매 중이다. 한편, 강릉 율곡연구원과 협업해 분야별 전문가와 함께 진행하는 시민 독서모임은 올해로 2년 차를 맞았는데, 책방지기는 “인근 동해, 삼척 등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씩 참여하는 분들도 있다”라며 “이런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책방의 존재 의미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운영 수익의 일부로 매년 도서 1종을 관내 유치원 및 초중고 학교에 기증해왔고, 판매 시에는 친환경 제품과 재활용을 우선하고 있다. “지역 문화과 미래 세대에 대한 응원으로서의 환경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두고 있다”는 운영 철학 아래서 서점을 이어가려는 노력이다. 공급의 기점이자 책문화 생태계의 뿌리 역할을 하는 출판사도 산업 전면에 나설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양질의 책 생산환경 조성과 더불어 독자와 만나려는 능동적인 움직임을 펼쳐야 함을 짚었다. 정윤희 편집인은 “출판도 산업이기 때문에, 고객이 신뢰할 수 있도록 창작가의 정당한 권리와 인세 보장 등의 이슈를 신경 쓰고 잘못된 관행은 고쳐가야 한다”고 언급했다. 무엇보다 ‘좋은 책’은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에서 비롯된다는 맥락이다. 주선미 연구원은 “책을 읽고 또 읽게 만들 연쇄 고리는 출판사 주도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며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을 만들 뿐 아니라 그러한 가치를 세상밖에 내보여야 한다는 출판사의 자체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백원근 대표는 책의 가치를 세상에 내보이는 방식에 대해 말했다. 그는 “출판계가 보여온 노력의 총량이 지나치게 적은 것 같다”고 평가하면서, “독서 캠페인이나 시민 독서 단체와의 협업 등 사람들의 책 읽기 자체를 자극하는 활동도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얘기했다. 대형 출판사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기수제 북클럽이나 1인 출판부터 대형 출판까지 함께 모여 책을 선보이고 체험하게끔 하는 서울국제도서전 등이 그 일환이 될 수 있다.

특정 주제로 도서를 엮어 배치하는 큐레이션 섹션을 마련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 읽을 것으로 가득한 오늘날, 마냥 책을 읽어주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 책의 사회문화적 가치는 읽혔을 때 발현된다. 그 읽힘의 순간을 기다리며 책은 쓰이고 묶이고 유통돼 매대에서 독자에 ‘날 읽으라’ 손짓해야 한다. 이제 출판도 찍어내는 데에 그치지 않고 독자 앞으로 성큼 다가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