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시 평원동에는 아주 오래된 극장이 하나 있다. 1963년 개관해 60년째 자리를 지켜온 아카데미극장이다. 아카데미극장은 멀티플렉스 극장이 들어서면서 다른 여타 단관극장들과 함께 2006년 폐관됐으나, 극장이 사라지지만은 않길 바라는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그곳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작년 새로 부임한 원강수 원주시장이 강력히 철거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하며 극장이 철거될 위기에 놓여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했고 아꼈으며, 그래서 애써 가꾸고 지켜온 이 극장은 정말 이대로 사라져야할까.
이곳은 아카데미극장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영사기사였던 정운학 씨가 1963년 개관한 단관극장으로, 국내에 남아있는 단관극장 중 원형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유일한 극장이다. 662석 규모의 아카데미극장은 폐관 직전까지 지역민들의 문화생활을 책임져왔다. 하지만 2005년 롯데시네마 개관 이후 아카데미극장에는 더 이상 관람객이 찾아오지 않았고, 다음해 문을 닫았다. 폐관한 뒤에는 황해도 해주 태생이었던 초대 소유주 정운학 씨의 뜻에 따라 극장 사무실이 이북5도민회의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나, 결국 발걸음이 이어지지 않은 채 오래도록 방치됐다. 그간 원주에 있던 다른 모든 단관극장도 철거돼 2015년에 가서는 아카데미극장만이 원주에 남은 유일한 옛 극장이 됐다. 2017년 당시 100세 가까운 나이였던 정운학 씨가 더 이상의 극장 소유와 보존이 어렵다는 판단 끝에 새 소유주에게 권리를 넘기며 아카데미극장도 뾰족한 수 없이 철거될 것으로 보였다.
이에 극장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 시민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아카데미극장 보전 관련 설문조사, 포럼 개최, 다큐멘터리 및 도서 출간 등 극장을 보존하기 위한 활동들을 전개했다. 2020년에는 시범재생사업 ‘안녕 아카데미’를 통해 극장 문을 잠시 다시 열기도 했다. 안녕 아카데미 행사에서는 영화 상영은 물론 각종 공연과 전시, 영사실 체험 등이 이뤄졌고 2천 명의 시민이 다녀갔다. 하지만 철거를 계획했던 당시 소유주의 마음을 돌리기는 여전히 어려워, 시민들은 2021년부터 ‘아카데미극장 보존추진위원회’를 발족해 극장을 ‘시민자산화’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아카데미극장 매입을 위한 모금 활동을 진행했다. 시민들은 ‘100인 100석 운동’ 등을 통해 2주 만에 1억 원의 매입 비용을 모았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2022년 1월 원창묵 전 원주시장의 최종 결정에 따라 아카데미극장은 원주시의 공유자산으로 매입됐다. 보수 공사와 리모델링을 통해 시민 문화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계획도 발표됐다. 이에 따라 아카데미극장은 국도비 39억 원의 지원까지 얻은 복원사업이 추진될 예정이었다.
많은 시민들이 아카데미극장이 보존돼야한다고 여긴 것은 단순히 장소에 깃든 추억 때문만은 아니다. 2021년 제작된 아카데미극장 철거 문제를 다룬 단편영화 《남아있는 순간들》을 제작한 고승현 감독은 아카데미극장을 “모두 함께 같은 자리에서 영화를 봤다는 관객만의 감각들이 공기로 남아있는 곳이었다”고 회상하며 영화 경험에 있어 극장이 가지는 가치를 말한다. 고 감독은 “기록물로서 영화가 가지는 가치가 크기 때문에 한국영상자료원 등에서 영화 보존 작업에 애쓰는 것이고, 그에 따라 필름 자체의 아카이빙은 훌륭한 편이지만 그 필름을 상영했던 공간, 즉 극장에 대한 보존의 필요성은 잘 제기되지 못한 채 많은 극장 공간이 사라져갔다”고 설명했다. 고 감독은 “영화는 관객에 비로소 도달했을 때 완성된다”며 극장 공간의 중요성을 고려한 보존 노력을 촉구했다.


시장님, 아카데미극장을 철거한다고요?
하지만 2022년 지방선거 이후 원주시의 시장이 바뀌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원주시 ‘공유자산’으로의 아카데미극장 매입 이후 극장이 아예 사라져버릴 위기는 일단락된 것으로 보였지만, 작년 7월 원강수 시장이 임기를 시작한 뒤 원주시장직 인수위원회는 아카데미극장 복원사업을 재검토할 것을 권고했다. 원 시장은 이를 수용해 지난 4월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아카데미극장의 복원사업 계획을 철회하고 극장을 철거하겠다고 발표했다. 원 시장은 아카데미극장이 “툭 치면 무너질 건물”이라며 건물의 안전성을 철거 추진의 이유로 들었다. 이어 지난 5월 시의회에서 철거안과 철거예산안이 통과됨에 따라 극장 철거가 불가피하게 됐다. 원주시는 이르면 6월 말 아카데미극장의 철거 공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원강수 시장의 주장대로 아카데미극장이 무너지기 직전의 정도로 낡았는지는 불명확하다. 현재 아카데미극장은 지난 3월 이후 원주시청의 각종 위험시설물 고지 안내문이 부착된 채 출입이 통제돼 있다. 하지만 아카데미극장 보존 범시민연대 ‘아카데미의 친구들’ 신동화 대표는 직전 겨울까지도 극장 안에서 영화상영을 비롯한 여러 행사를 시청 허가를 받고 안전히 진행해 왔다며, “극장 철거에 대한 동의 여론을 얻기 위한 의도로 공간의 안전성에 관한 공포심을 조성하는 위협적인 안내문을 통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 6월 6일에는 원주시청이 극장 앞 일대를 전부 통제하는 펜스를 설치해 ‘무단 진출입 시 형사고발조치를 취하겠다’는 안내까지 부착했다. 극장 건물 앞에서 각종 집회 및 시위, 시민행동이 예정된 것을 의식해 그것을 막으려는 의도라는 추측이 이어지고 있다.

원주시가 아카데미극장을 철거한 자리에 지으려는 것은 다름 아닌 주차장과 야외공연장이다. 원강수 시장은 “(근처 재래시장인) 풍물시장 일대의 주차난을 해소하고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문화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허나 야외공연장과 주차장 건립이라는 대안 역시, 아카데미극장을 당장 허물고 지을 만큼 시급하거나 대체 방안이 없는 것이 아니기에 의아한 사업계획이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꼭 아카데미극장의 부지에 지어야하는 시설인지에 대한 의문인 것이다. 야외공연장의 경우 아카데미극장 부지에서 30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이미 ‘문화의 거리 상설 공연장’이라는 야외공연장이 있다. 주차장의 경우에도, 아카데미극장 부지에 원 시장의 계획에 따라 건립할 수 있는 주차장은 20면으로 주차난을 해결하는 데 기여하기에는 부족한 숫자다. 원주시에 주차장 설치 관리 관련 조례를 발의한 바 있는 곽문근 원주 시의원은 철거안을 표결한 올해 5월 시의회에서 “주차난 해결을 위해서는 ‘평원사거리 일대의 사선식 노외 주차장 건립’ 등이 더욱 효과적인 대안”이라며 원 시장이 제기하는 주차장 건립의 타당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원강수 시장의 철거의지와 그에 따른 계획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자 기존에 극장 철거 문제와 관련해 활동하던 시민들에 더해 각자의 위치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의 범시민연대인 아카데미의 친구들은 철거를 막기 위한 각종 대응과 시민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정치’로 간 아카데미극장
시장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비 지원까지 결정돼 있었던 복원사업이 백지화된 것에 많은 시민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국민의힘 소속인 원강수 시장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던 원창묵 전 시장의 정책과 사업에 대해 과도한 정파적 검토를 진행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이는 상황이다. 실제로 원강수 시장의 취임 이후 아카데미극장 복원사업 외에도 원창묵 전 시장의 원도심 활성화 정책이었던 원일로 일방통행화 정책 등 많은 사업들이 재검토나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지헌 원주시의원은 “전임 시장의 아카데미 복원사업을 중단하고 철거를 밀어붙이는 현 시장의 의도가 전대 시장의 업적 지우기에 불과”하다며 “그 때문에 철거 이후 기획이 궁색하고 엉성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철거 계획의 의도가 제대로 된 도시 재개발, 도시 계획 철학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시의회 내부 지형에서도 아카데미극장의 철거 문제에 대한 당파적 경향이 관찰된다. 지난 5월 5일 통과된 아카데미극장 철거안은 모두 24명으로 구성된 원주시의회에서 국민의힘 의원 13명 전원 찬성, 더불어민주당 의원 11명 전원 반대로 표결됐다. 25일 철거예산안 표결 결과도 비슷했다.
신동화 대표는 아카데미극장 문제가 고작 정당 갈등으로 축소될 수 없음을 강조했다. “지역 정치에서만큼은 지역의 발전과 미래만을 첨예하게 고민하는 것에 대한 건강한 토론과 협치가 필요하다”며 “사안에 대한 숙고 없이 정당의 입장에만 따른 표결에 실망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번 철거안과 철거예산안에 찬성표를 던진 국민의힘 조창휘, 조용기, 이재용 (원주) 시의원은 전임 시장 때 이뤄진 원주시의 아카데미극장 매입 결정과 보존 사업을 의결할 당시에는 찬성표를 던지며 철거 반대에 의견을 보탰었다.
아카데미극장의 문제가 정당 갈등으로 정쟁화된 상황보다 더 문제적인 것은 시 행정조차 공정한 절차에 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먼저 지난 4월 11일 철거 계획을 공식 발표할 당시, 원강수 시장은 인수위원회의 재검토 권고를 “충분히 숙의하겠다”고 말했지만 아카데미의 친구들과의 면담 바로 다음날 철거 계획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원주시 한 공무원이 간담회가 있기 이전인 4월 7일에 이미 아카데미극장 철거안인 ‘공유재산관리계획 변경안’이 결재돼 있었다는 내용의 내부고발을 제기했다. 이미 철거 계획을 모두 정해둔 채 형식상의 요건을 위해 간담회를 연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시민들의 정당한 소통 요청이 위법하게 묵살되기도 했다. 지난 3월 7일 아카데미의 친구들은 250명의 자필 성명부를 모아 원주시장에게 시정정책토론을 청구했다. 원주시 주민참여기본조례가 보장하는 시정정책토론은 200명 이상 시민의 서명으로 시정정책토론 개최를 요구할 수 있는 제도다. 아카데미의 친구들은 조례에서 규정하는 기준에 따라 250명 시민 개개인의 성명, 생년월일, 주소 등이 포함된 성명부를 제출했으나 원주시청은 선거권 유무 확인을 위해 250명 시민의 주민등록번호와 등록거주지까지도 필요하다며 청구를 반려했다. 아카데미의 친구들은 주민등록법상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등록거주지를 추가해 보완한 성명부를 재제출했으나 원주시청은 ‘시정정책토론 개최의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재청구 역시 거부했다.
정당한 시정정책토론 요구를 시에서 거부하는 것은 조례 위반이다. 원주시 주민참여기본조례를 대표 발의한 용정순 전 시의원은 “정당하게 청구된 시정정책토론에 대해서는 2개월 내에 정책토론을 진행하는 것이 강제 규정이며 시에서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용 전 시의원은 “지방자치는 시민들이 어떻게 더 많이 시정에 참여하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일이기도 하다”며 지방자치의 본질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독단적이고 비민주적인 원주 시정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아카데미의 친구들 측은 즉각 이 사안을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에 진정했고, 3개월가량 지난 후인 6월 2일 권익위는 원주시가 ‘시정정책토론 청구를 거부하고 서류 보완을 요청한 것이 부당’하다며 원주시에게 청구 서류 보완 요청을 취소할 것을 권고했다. 등록 기준지와 주민등록번호는 청구인 명부의 기재 대상이 아니며 선거권자 여부 확인 역시 행정정보 공동이용 시스템을 통해 시 자체에서 파악할 수 있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에 있어 무척 중요한 요소인 ‘문화’를 대하는 지역 정치인들의 무지한 태도 역시 아카데미극장에 닥친 어려운 상황을 거들고 있다. 원주시의회 문화도시위원회 유오현 위원장은 지난 4월 원주 맘카페 ‘파랑맘’과의 면담에서 아카데미극장의 문화적 가치가 언급되자 “문화는 집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원강수 시장의 부임 이후 원주 시민들은 원 시장이 문화산업 전반을 훼손하는 중이라고 비판한다. 위협받고 있는 시민사회 문화자산은 아카데미 극장뿐만이 아니다. 원주한지문화사업과 같이 시민들이 가꿔온 민간 중심 문화사업들을 시 출연기관인 원주문화재단 등을 통해 다시금 시로 귀속시키는 등의 시도가 그 예다.
또 2017년 이래로 매해 원주시에서 개최된 원주옥상영화제는 올해 처음으로 개최되지 못할 위기에 놓였다. 원주옥상영화제는 작년 여름에는 아카데미극장에서 열렸었다. 하지만 원주시의 비협조로 올해 강원영상위원회의 도내영화제지원사업에 신청조차 하지 못하며 개최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도내영화제지원사업이 지원하는 예산은 지금까지 원주옥상영화제 예산의 큰 비중을 담당해왔다. 기초 단위인 시 예산을 지원받는 영화제에 도 예산을 지원하는 해당 사업은 신청 시 영화제가 시 예산 지원을 받고 있음을 증빙할 수 있는 서류가 필요하다. 원주옥상영화제는 원주시 승인을 받아 위탁 운영되는 원주영상미디어센터가 공동 주최진으로 참여하고, 시의 원주영상미디어센터 위탁금이 자금의 일부를 쓰였다. 이러한 사실이 시 예산 지원으로 인정돼 매해 시청의 협조하에 관련 서류를 제출해 문제 없이 도내영화제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왔다. 허나 올해 원주시청은 사업 신청 마감 당일까지 해당 서류의 발급을 거부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원주시청의 방해가 원주옥상영화제가 아카데미극장의 보존과 관련도가 높은 사업이기 때문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결국 아카데미극장의 보존 문제는 단순히 영화관을 고쳐짓거나 허무는 것을 두고 갈등하는 사안이 아니라, 시장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반민주적이고 폭력적인 정치·행정이 원주 지역 시민사회에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오는 상황 자체와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 아카데미의 친구들 활동가 서한울 씨는 “아카데미극장의 보존 운동은 단순히 지역문화공간을 보존하기 위한 문화 중심의 시민운동을 넘어 정치 영역과도 적극적으로 교섭하는 투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시장과 시민의 관계가 무척이나 위계적이고 불평등한 상태에서 시민들의 민주적인 요구들이 번번이 가로막히고 있기 때문이다. 서 씨는 “이 도시의 주인은 시민들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하는 것 역시 보존운동의 중요한 목적”이라고 전했다. 어떤 정치단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한 갈등처럼 비치는 것은 경계하면서도 사안을 다루는 지역 정치권의 책임은 분명히 따져묻는 움직임이 이어져야한다는 설명이다.

아카데미 극장이 지켜진다면
만약 시민들의 염원대로 아카데미극장이 보존된다면 극장은 어떤 공간으로 다시 문을 열게 될까. 아카데미의 친구들 측은 시각 전시실, 영화 전문 도서관, 시민 휴식 공간 등 다양한 활용방안을 상상하고 있다. 서한울 씨는 “당장이라도 영화 상영이 가능할 만큼 영사 시설이 잘 보존돼 있는 극장이기에 영화 상영이라는 극장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라는 소박한 소망을 그리기도 했다.
다양성 영화나 독립 예술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제한돼있는 지방 영화관람 환경에 있어서도 아카데미극장이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강원도 전체를 통틀어도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상설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은 강릉시의 신영극장 하나뿐인 데에 반해, 멀티플렉스 극장은 원주시만 해도 5개에 달한다. 원주영상미디어센터가 다양한 장르의 영화 상영 기회 확대를 위해 모두극장을 운영하곤 있지만 상영 가능 일수가 엄격히 제한된 비상설 영화관이다. 이러한 기형적인 구조에서 아카데미극장이 시민들의 다양한 선택권을 보장하고 다양성 영화와 예술 영화의 자리를 만드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고승현 감독은 “인천 미림극장처럼 실버영화를 상영할 수도 있을 것이고, 광주극장처럼 아날로그 영사기를 이용한 필름 영화의 상영도 가능하다”며 지방 영화예술의 가능성과 범위를 확대하는 차원에서도 아카데미극장의 보존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아카데미의 친구들 신동화 대표 역시 아카데미극장이 “서울 수도권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실험적이고 독특한 문화예술적 시도들을 지역사회에서도 무리 없이 상상하게 해주는 플랫폼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원주시가 지역 생활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을 아끼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깊이 있고 참신한 기획들로 이어지진 못해왔다”고 그간의 지역 문화예술 정책을 평가하며, 아카데미극장 보존으로 다양한 문화예술의 실험과 도전이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극장이 끝끝내 지켜지지 못하더라도 보존을 위해 애썼던 많은 시민들의 노력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신동화 대표는 “철거를 지지하는 상인들을 설득해냈던 경험, 매일 다른 시민들과 만나고 소통하며 느낀 연대의 감각”을 소중하게 여긴다고 전했다. 고승현 감독 역시 “단번에 필요한 매입 금액을 모두 모아 시장을 설득하고 시 소유의 공유 자산으로 만들어냈던 시민자산화 운동 등의 시도들이 특별히 인상깊다”고 말했다.
지역사회가 겪는 갈등과 어려움에 조직된 시민운동으로 시민사회 구성원의 몫을 다해온 원주 지역 시민들의 경험 역시 아카데미극장만큼이나 지역의 소중한 자산으로 남을 것임은 자명하다. 서한울 씨는 시민행진 등에 나갈 때마다 이 도시에 누구와 함께 살고 있었는지를 확인한다며 도시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할 때의 반가움에 대해 말했다. 서 씨는 “시민들의 네트워킹이나 기억은 오래 유지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기억과 경험이 유적으로 남은 시민사회의 다양한 실천과 도전을 보존된 아카데미극장에서 펼쳐나갈 수 있기를 많은 이들이 염원하고 있다. 아카데미의 친구들은 앞으로도 극장을 지키기 위한 시민운동을 다방면에서 지속할 계획이라며 필요하다면 사람들이 모여 극장에 직접 머무르는 행동도 고려 중이라고 전했다. 신동화 대표는 “극장을 철거하는 포크레인이 다가오는 순간까지 극장을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오늘날 더 새로운 것을 찾아, 더 좋은 것을 찾아 어떤 장소를 떠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 낡고 헤진 장소는 허물어 사람들을 더 많이 끌어들이는 새 건물을 짓는 일도 합리성과 효율성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곳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곳에 남아있기도 한다. 낡았다고 해서,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고 해서, 아주 조금의 사람들만 남았다고 해서 공간들이 자꾸만 사라지는 동안 영원히 갈 곳을 잃게 되는 것들도 있다.
『장소와 장소 상실』의 저자인 캐나다 지리학자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는 “인간답다는 것은 의미 있는 장소로 가득한 세상에서 산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카데미극장이라는 장소에 원주 시민들은 저마다의 의미를 불어넣었고, 아카데미극장은 그랬기에 지금까지 존재해왔다. 극장이 이대로 사라져선 안 되는 이유는 다소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의 권력이 많은 이들이 의미 가득히 채워온 장소를 해치는 것을 용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카데미극장이 부디 함부로 저물지 않기를, 다시 한 번 관객으로 가득차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은 오늘도 극장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