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8일, 2022 카타르 월드컵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카타르 월드컵은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중동에서 개최된 것도, 땡볕 더위를 피해 11월에 개최된 것도 처음이었지만 이토록 많은 갑론을박이 있던 월드컵도 처음이었다. 월드컵 경기장을 건설하는 이주노동자의 사망 문제에서 여성·성소수자 인권탄압, ‘스포츠 워싱’ 논란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곳곳에서 카타르 월드컵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일었고, 이러한 주장이 서구의 위선에 불과하단 반박도 뒤를 이었다. 월드컵과 같은 국제 스포츠 행사가 진정한 ‘지구촌의 축제’가 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카타르 월드컵에서 시작돼 스포츠와 정치에 인 변화의 바람을 짚어봤다.
피의 월드컵, 무지개가 뜨지 않는 나라
카타르 월드컵은 개막 전부터 이주노동자 사망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2021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 건설에 투입된 이주노동자 6,5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보도했고, 국제노동기구는 이를 두고 카타르의 무더운 날씨와 열악한 근무 환경에 의한 산업재해라고 주장했다. 이에 카타르 측은 “월드컵 경기장 공사 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는 37명뿐”이라며 즉각 반박했다. <가디언>이 집계한 사망자 수는 카타르가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된 2010년 이후 카타르에서 일한 네팔, 방글라데시, 인도, 스리랑카, 파키스탄 5개국 출신 이주노동자 중 사망한 사람의 숫자를 토대로 추산한 것으로, 실제 사망자 수보다 과장됐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카타르 월드컵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하산 알 타와디가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가 400명에서 500명 사이”라고 밝힌 점을 미루어 볼 때, 카타르 정부가 주장한 사망자 수 37명 역시 지나치게 축소된 것으로 추정된다.

<로이터>
이주노동자 문제는 카타르의 기형적인 산업 구조에서 비롯됐다. 약 300만 명의 카타르 인구 중 10%가량을 차지하는 자국민 ‘카타리(Qatari)’와 나머지 250만 명 이상의 이주민 간 생활 수준 격차는 매우 크다. 카타르는 석유 산업이 발달한 국가로 2022년 10월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5위를 차지할 정도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으나, 이는 카타리에게만 집중적으로 분배된다. 반면 카타르 경제를 떠받치는 이주노동자의 삶은 매우 열악하다. 카타르 국립 연구 기금의 조사에 따르면 카타르 내 이주노동자 중 절반 이상은 의료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으며, 파업과 노조 가입이 금지되고, 임금체불, 강제 추방 등의 위협에 노출돼있다. 오랜 시간 주목받지 못한 카타르 내 이주노동자 문제는 월드컵 개최 확정 후 가시화됐다.
여성, 성소수자 인권탄압 문제도 국제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국제인권감시기구 휴먼라이츠워치가 카타르 법률을 검토한 결과에 따르면 카타르 여성은 결혼·여행·구직·육아 등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선 남성 보호자의 허가가 필요하다. 또한 이슬람 국가인 카타르에서는 동성애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다. 카타르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반동성애법을 월드컵 기간에 한해 한시적으로 적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으나, 이 기간에도 성소수자를 구금, 폭행하는 사건은 여러 차례 발생했다.
카타르는 월드컵을 통해 자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착취와 여성, 성소수자 인권탄압 사건들을 감추는 스포츠 워싱을 시도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스포츠 워싱이란 국가 또는 기업이 부정적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스포츠를 활용하는 전략이다. 아주대 이현서 교수(스포츠레저학과)는 스포츠 워싱에 대해 “아직 학문적으로 정착된 단어는 아니나, 프로파간다, 3S 정책(Screen, Sport, Sex) 등 여러 사례와 역사를 가진 문제”라고 소개했다.
스포츠 워싱은 스포츠가 전통적으로 정치와 분리된 영역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현서 교수는 “대다수의 관중이 스포츠를 단순한 ‘놀이’라고 생각하기에 스포츠는 다른 문제를 배제한 채 그저 즐길 수 있는 대상으로 존재해 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경기 외 지점에 대한 문제 제기에 거부감을 느끼는 관중도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 곳곳에선 카타르의 스포츠 워싱을 주장하며 카타르 월드컵을 보이콧하는 움직임이 나왔다. 국제앰네스티는 2015년부터 카타르 내 이주노동자 문제를 9가지로 정리해 해결을 요구했고,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여러 도시에서는 거리 중계 보이콧을 선언했다. 영국 방송 의 경우 월드컵 개막식 2부 송출을 중단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잉글랜드를 포함한 유럽 7개 국가의 축구 대표팀 주장은 성소수자 차별 반대를 상징하는 무지개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서기로 결의했다. 유명인들의 비판도 이어졌다. 영국의 가수 두아 리파는 자신의 SNS를 통해 “카타르가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됐을 당시 내걸었던 인권 보호 공약을 지키지 않는다면 월드컵 개막식 무대에 서지 않을 것”이라 밝힌 뒤 실제로 개막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카타르 정부와 국제축구연맹(FIFA)은 이러한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개막 전 FIFA는 “무지개 완장을 착용할 시 옐로카드를 줄 수 있다”며 무지개 완장 착용을 사실상 금지했다. 유럽축구연맹이 2020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무지개 완장 착용, 깃발 반입 등을 허용한 것과는 대비되는 대응으로, 카타르의 반동성애법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앞선 7개 국가 축구 대표팀은 무지개 완장 대신 ‘NO DISCRIMINATION(차별 반대)’이 적힌 완장을 차는 것으로 다양성을 존중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FIFA는 1차전에 앞서 무지개가 그려진 소품을 착용한 관중의 경기장 출입을 금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이어지자 FIFA는 2차전부터는 무지개가 그려진 소품의 경기장 반입을 허가했다.

<로이터>
왜 카타르에만 가혹해?
한편 카타르에 대한 비판이 아랍권에 대한 차별에서 비롯됐다는 반박도 힘을 얻고 있다. 2018 러시아 월드컵과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또한 인권탄압, 소수자 차별 등 카타르와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는 국가에서 개최됐으나, 이러한 행사들에는 카타르 월드컵과 같은 수준으로 비판의 움직임이 일진 않았단 시각이다.
서구가 일제히 카타르 월드컵을 비판하는 것이 위선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FIFA의 잔니 인판티노 회장은 월드컵 개막 전 진행된 공식 기자회견에서 유럽 국가들의 지속적인 카타르 이주노동자 문제 지적에 “유럽이 정말 이주노동자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이들이 유럽으로 일하러 올 수 있는 합법적인 통로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재의 움직임을 아랍 차별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 장지향 센터장은 “러시아와 중국이 권위주의 국가인 것은 사실이나, 행사와 관련한 인권침해가 발생하지는 않았다”며 러시아 월드컵과 베이징 올림픽을 카타르 월드컵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현서 교수는 인판티노 회장의 답변에 대해 “이주노동자가 필요해 고용한 것은 카타르이므로 카타르가 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은 매우 상식적이고 당연한 의무”라며 “유럽의 이주노동자 수용 문제를 끌어들여 반박한 것은 논점 흐리기”라고 반박했다. 이 교수는 “카타르의 경우 이미 본국의 인권침해 문제가 대두되고 있었고, 자국민이 아닌 이주노동자가 월드컵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경기장을 짓다가 사망했다는 사실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또한 카타르의 스포츠 투자 목적이 스포츠 워싱이라고 단언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카타르 정부에게 스포츠는 국민들에게서 국가에 내재한 문제를 감추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는 정권 안정을 위한 수단에 가깝다. 장지향 센터장은 “카타르 정부는 왕실의 권위를 다지기 위해선 단순히 복지 제공을 넘어 세계적인 수준의 위엄을 보여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에 가장 쉬운 수단이 국제 스포츠 행사 개최였다는 것이다.
카타르는 대외적으론 스포츠를 국가 인지도와 발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활용하고 있다.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구기연 연구교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월드컵은 카타르를 세계에 알리는 것을 넘어 관광 자원을 확대하고 경제적으로 석유 산업 의존도를 낮추는 기회”라고 풀이했다. 월드컵 개최는 카타르의 국가 경쟁력을 선전하려는 왕실의 의지이기도 했다. 장지향 센터장은 “카타르는 중동에서도 작은 편에 속하는 국가인데, 스포츠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주변 국가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가장 쉬운 분야이기에 스포츠 외교에 오랜 기간 공을 들인 것”이라 설명했다. 단순히 국가 내부적인 문제를 감추기 위해 스포츠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월드컵이 만들어내는 변화의 바람
카타르 월드컵은 변화의 시발점이다. 월드컵을 통해 카타르 내부에서도 인권 문제가 수면 위로 올랐기 때문이다. 월드컵 이전엔 이러한 지점이 카타르 내부에서 심각한 문제로 인지되지 못했다. 장지향 센터장은 “그동안 카타르 국민은 월드컵 경기장 건설로 사망한 사람은 자국민이 아닌 이주노동자이므로 불편해할 까닭이 전혀 없었다”고 해설했다. 구기연 교수는 “카타르는 종교적 이유로 전 세계에서 성소수자 문제에 가장 보수적인 국가로 꼽힌다”며 “성소수자와 여성 인권이 탄압받고 있다는 인식 자체가 많이 퍼지지 못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월드컵은 카타르에게 인권, 소수자, 노동 등에 대한 국제적 인식이 국내와 큰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는 계기였고, 카타르는 비판을 일부 수용함으로써 문제를 조금씩 개선해나가고 있다. 카타르 정부는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된 2010년 이후 이주노동자 처우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을 인지하고 2020년 ‘카팔라 제도’를 폐지했다. 카팔라 제도는 이주노동자의 근로 비자를 고용주가 관리·보증하는 제도로, 이주노동자의 자유로운 퇴직이나 이직은 물론 정당한 임금 요구에 방해가 돼왔다. 이현서 교수는 “카타르가 월드컵을 개최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지속됐을 악법”이었다며 “국제 스포츠 행사를 계기로 국제사회가 꾸준히 메시지를 전달한다면 변화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전했다. 다만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성과 성소수자 인권탄압 문제는 여전히 개선의 움직임이 미미하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월드컵은 한 국가를 국제사회에 내보이는 장이다. 개최국은 단순히 경기력을 넘어 국가의 경제 상황, 문화적 특징, 사회 문제 등을 간접적으로 평가받는다. 이처럼 국제 스포츠 행사를 계기로 오랜 기간 내재해왔으나 인지하지 못했던 수많은 문제가 드러나고, 국가와 국민의 인식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구기연 교수는 “언제까지고 국제 스포츠 행사를 서구에서만 개최할 수는 없다”며 “제3국에서 스포츠 행사가 개최되는 과정에서 세계적인 보편인권 담론에 배치되는 지점들이 지적되며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 예상했다.
스포츠를 넘어 자유로운 논의의 장으로
전통적으로 스포츠는 비정치의 영역으로 구분돼왔다. 이현서 교수는 “국제 스포츠 행사는 전 세계 수십억 명에게 노출되기에 개인이나 집단의 정치적 의사를 홍보할 수 있는 매혹적인 수단”이라며 “이를 무분별하게 허용한다면 선수들이 정치적 선전에 동원될 수도 있고, 선수나 경기가 아닌 정치적 메시지에 시선이 집중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허나 스포츠 행사에서 발생하는 모든 정치적 행위를 통제할 순 없다. 이현서 교수는 “경기장 앞에서 월드컵 반대 시위를 하거나, 경기가 끝난 뒤 선수와 스태프가 인터뷰에서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것까지 막아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구기연 교수는 “이미 월드컵은 스포츠 그 이상의 정치적인 메가 이벤트이자 막대한 자금이 흐르는 경제적인 이벤트”라며 월드컵을 정치와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정치적인 것의 범위를 명확히 정의 내리기도 어렵다. 장지향 센터장은 “대체 정치적인 이슈란 무엇이고 공정과 정의라는 ‘스포츠 정신’이 경기 내에만 국한되는 것이냐”고 물었다. 장 센터장은 무릎을 꿇어 인종 차별 반대 메시지를 전한 선수들의 퍼포먼스를 언급하며 “보편 가치를 보호하라는 정당한 목소리로 오히려 스포츠 정신에 맞게 행동한 것은 선수들”이라 주장했다.

<로이터>
스포츠 이벤트는 자연스럽게 국제사회가 가진 문제를 환기한다. 카타르 정부가 월드컵에 대한 비판을 계기로 변화를 만들어간 것처럼, 스포츠 이벤트는 전 세계가 함께 중요한 문제를 고민하고 논의를 나누는 장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현서 교수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조건과 환경을 상의하는 담론의 장이 필요하고, 스포츠가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특정한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와 국제 스포츠 행사를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이웃국가가 처한 상황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포츠 이벤트가 국가의 가치를 증명하고, 부조리를 폭로하며 관심을 촉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구기연 교수는 “월드컵을 거치며 국제적인 인권 담론 속에 편입됐고 카팔라 제도를 철폐한 카타르처럼, 나아가 다른 중동 국가도 국제적 인권 기준을 고려하게 되는 긍정적인 변화가 이어질 것”이라 전했다.
카타르 월드컵이 2026 북중미 월드컵을 기약하며 막을 내렸다. 4년 뒤 더욱 안전하게 월드컵을 즐기기 위해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는 무엇일까. 국제사회는 FIFA를 비롯한 당국이 개최지 선정과 월드컵 준비 과정을 면밀히 살피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즉각 대응에 나서기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 장지향 교수는 “문제가 발생한 당시를 포착하지 못했더라도 이를 끝까지 주시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구기연 교수 또한 “FIFA가 개최지 선정에서 최소한의 인권 규약이 보장되는지를 따져본다거나, 그 규약을 만들기 위해 논의를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며 스포츠를 통해 전 세계의 인권 의식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스포츠 팬들을 주축으로 월드컵을 통해 주목받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담론을 이어 나간다면, 연대가 필요한 수많은 국제사회의 문제들이 스포츠를 계기로 공유될 수 있을 것이다. 스포츠 이벤트는 온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을 넘어 전 세계의 마음도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 ‘진정한 지구촌 축제’로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