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은 성소수자에게 얼마나 평등한 공간일까?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트랜스젠더들은 일상 용무 중 ‘병원 등 의료 기관 이용’을 가장 많이 포기했다. 전체 응답자 588명 중 27.9%는 꼭 필요한 경우에도 병원에 방문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병원에서 마주하는 차별과 편견은 성소수자가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아 삶의 질을 유지할 건강권 향유를 가로막는다.
차별 없이 안전한 진료실이 필요한 현시점, 한국 성소수자 의료 연구회에서 활동하며 국내 최초로 대학 내 성소수자 의료 교육을 도입한 윤현배 교수(의학과)를 만나 성소수자 의료와 건강에 관해 물었다.

윤현배 교수(의학과)
의료인이 성소수자 의료와 건강권 문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의료의 대원칙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이나 처한 환경과 관계없이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충분히 받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 원칙만 잘 지키면 되지, 성소수자 의료만을 떼어내 특별히 다룰 필요가 있냐고 묻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에는 분명 건강과 의료 측면에서 차별받고 있는 의료 취약 계층이 많이 존재한다.
성소수자가 대표적인 의료 취약 계층이다. 성소수자는 사소한 치료 때문에 병원에 가더라도 무례한 시선과 질문을 받곤 한다. 특히 트랜스젠더의 경우 주민등록상의 이름 혹은 성별을 재차 확인받거나, 자신의 성별 정체성과 맞지 않는 병실을 배정받는 상황에 크게 힘들어한다. 의료인이 모든 사람을 이성애자로 단정 짓는 선입견을 품고 질문하거나, 환자가 성적 지향이나 정체성을 밝혔을 때 거부감을 보이는 등 직접적인 혐오를 표출하는 경우도 있다.
성소수자가 어떤 이유로 병원을 방문하든 편안하게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를 위해 의료인은 성소수자 의료와 건강권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의료 분야에서의 차별과 소외는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해소되기 어렵다.
성소수자가 누려야 할 의료 서비스에는 무엇이 있나?
성소수자 관련 의료 서비스라고 하면 트랜스젠더의 성별 불일치 해소에 관한 것을 많이들 떠올린다. 물론 개선이 필요한 영역이긴 하지만, 성소수자 관련 의료 서비스를 너무 특수하게 좁혀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오직 성소수자만을 위한 의료 서비스란 없는 것 같다. 암이나 고혈압, 당뇨, 감기 등 흔한 질병을 겪고 치료받을 때조차도 의료 기관에서 차별받지 않는 게 기본이다.
한국의 성소수자 의료 관련 제도 현황은 어떤가?
현재 성확정 수술이나 호르몬치료 등 성확정과 관련된 모든 의료 조치에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환자가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성확정을 위한 호르몬치료를 갱년기 호르몬치료 등으로 바꿔 입력하는 의사들도 있다. 실제 치료 목적이나 내용과는 다르지만 그렇게라도 환자의 비용 부담을 덜어주려는 것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체계는 필수적 의료 조치만을 보험 적용 대상으로 한다. 성확정 수술이 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란 것은, 현 건강보험 체계가 지정 성별을 원하는 성별로 바꾸는 의료 조치를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받지 않아도 환자의 건강이 나빠지거나 환자가 죽지 않을 의료 조치로 성확정 수술을 인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확정 수술은 가벼운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성별 불일치로 인한 고통은 상당히 크고, 성확정을 해야 개인의 정신건강과 삶의 질이 향상된다는 연구는 이미 많이 나와 있다. 적당히 불편을 감수하고 살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셈이다. 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함께 성확정 관련 의료 조치들이 환자 건강과 직결된 필수적 의료 조치로 건강보험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알리는 중이다.
성별 정정 조건으로 성확정 수술을 요구하는 법률도 성소수자들의 의료적 어려움을 유발한다고 하는데.
한국의 성별 정정 기준은 상당히 엄격하고 보수적이다. 현행 기준은 정신적 진단 및 상담은 기본이고 *지정 성별의 생식 능력 제거와 확정하려는 성별의 생식기관 재건 모두를 요구한다. ‘*시스젠더’의 신체적 조건을 완전히 갖출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소수자들이 원하는 성확정의 정도는 매우 다양하다.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의 외형을 다 갖추지 않고 지정 성별의 모습만 제거하길 원하는 환자도 있다. 현행 기준에선 이들도 위험하고 비싼 재건 수술을 억지로 받아야 한다. 확정 성별의 생식기관 재건 수술을 받지 않으면 법원에서 성별 정정 허가를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제거보다 재건 수술이 훨씬 어렵고 위험한 것은 물론, 앞서 언급했듯 건강보험 적용이 안 돼 비용도 많이 든다. 원하지 않는데 억지로 성확정 수술을 받는 사람도, 원하는데 비싸서 못 받는 사람도 없도록 현행 기준이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지정 성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생물학적으로 지정받은 성
*시스젠더: 본인이 정체화하고 있는 성별 정체성과 신체적 조건이 일치한다고 느끼는 사람
성소수자를 환자로 만나는 의료인의 적절한 역할과 태도는 무엇인가?
첫 번째는 ‘짐작하지 않을 것’이다. 의료인이 환자의 보호자로 이성의 배우자나 애인을 상정해 동성의 보호자와 함께 온 환자에게 무례한 발언을 할 때가 있다. 그러한 환자의 신상 정보는 꼭 필요한 경우에만 물어서 확인해야 할 정보이고, 확인도 전에 지레짐작할 것도 아니다. 선입견이 있는 의료인을 만났을 때 환자는 자신이 제대로 고려되지 못한다고 인식하는 것은 물론, 위축돼 자신의 상태를 솔직하게 이야기하기 어려워한다.
두 번째는 ‘가치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의료인 개인이 종교, 정치적 신념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이 환자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에 관한 판단이나 평가를 환자에게 드러내는 것은치료를 크게 방해한다. 열린 마음으로 어떤 환자도 올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환자에 대한 의료인 개인의 평가나 가치판단은 앞서 언급한 의료의 대원칙을 위반할 수 있다. 모든 환자는 자신을 구성하는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충분히 받아야 한다.
2021년 국내 최초로 성소수자 의료 수업을 개설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하고 있나.
작년 서울대에서 정식으로 ‘성소수자 건강과 의료’ 과목을 개설하기 전까지 대학 수업에서 성소수자 의료는 많이 다뤄지지 않았다. 순천향대, 인하대 등에 계신 선구적인 선생님들이 산부인과 과목 강의에서 한두 회차 정도를 할애해 설명하는 정도였다.
학생들이 성소수자의 건강 및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의료인이 되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하고 싶어 ‘성소수자 건강과 의료’라는 수업을 개설했다. 강의 계획서에도 기재한 부분이고, 수업을 신청한 학생들도 같은 뜻을 지녔던 것 같다. 개설 과정에서 반대에 부딪힌다거나 항의받는 등의 난항은 없었다. 동료 교수나 학교 측도 이 수업의 취지와 필요성에 공감했기에 가능했다. 수업은 성소수자가 경험할 수 있는 건강 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완화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의료적 접근을 이해하기 위한 내용으로 구성했다.
올해는 두 학기에 걸쳐 ‘성소수자 의료와 건강’ 수업을 하고 있다. 1학기 과정은 본과 2학년 학생 전체가 수강하며, 2학기 과정은 선택적으로 수강한다. 아주 깊이 있는 지식은 아닐지라도 1학기에 2학년생 전체에게 성소수자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과 성소수자 환자를 만날 때 갖춰야 할 태도를 가르친 것에 의의를 두고 있다. 2학기 선택 과정에서는 다양한 외부 전문가를 모셔 4주 동안 수업을 진행한다. ‘성별 정체성 진단기 준과 정신과적 상담’, ‘HIV 성소수자의 환자 경험’, ‘성소수자 친화적 클리닉의 실제 운영’ 등을 포함한 총 8가지의 주제를 가르친다.
별개로 본과 4학년 과정의 5주 선택 실습 과목 중 하나를 성소수자 의료 실습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성소수자 친화적 의료 기관인 살림의원, 순천향대병원, 한림대 성심병원에서 성소수자 진료를 참관하고 실습했다.
개인적으로 많이 노력하고 있지만, 성소수자 의료에 대한 교육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한국의 현실이 아쉽다. 우리나라 의과대학에서 성소수자 의료만을 다루는 과목은 아직 서울대에만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교육을 시작하려고 노력하는 학교도, 교수들도 많기 때문에 점차 성소수자 의료 교육이 확대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성소수자와 의료’ 강의 계획서 일부 ©강다겸
저서 『차별 없는 병원』에서 ‘성소수자 권익 활동에 참여하기’가 의과대학 교육 과정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소수자 권익 활동이 의료 활동이 아님에도 교육 과정에 포함돼야 하는 이유가 있나?
성소수자 의료 교육을 준비할 시, 국내에 성소수자 의료 교육 사례가 없어 해외 사례를 검토했다. 서울대가 특히 참고하고 있는 워싱턴 대학 프로그램에는 의료 실습뿐 아니라 연구나 자원 활동, 참여 활동도 포함돼 있었다. 성소수자의 건강 또는 삶의 질 문제는 진료실에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다. 진료실에 오는 모습만 봐서는 성소수자의 삶이나 환경을 이해할 수 없고, 의료인으로서 그들의 건강이나 삶의 질 향상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아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학생들이 진료실 바깥에서 성소수자를 만나는 경험을 해야 한다는 취지에 동의해 성소수자 권익 활동을 교육 과정에 포함했다. 실제로 작년 4학년 실습수업에서 성소수자 진료에 참관할 뿐 아니라 성소수자 권익 단체와의 간담회를 열거나, 현직 의사들의 도움으로 당사자들과 인터뷰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성소수자의 법적 권익을 다루는 법무법인에서 실습 중이었던 로스쿨 학생들과 공동 세미나도 진행했다.
성소수자 의료 교육에 방향성을 제시한다면?
모든 의료인을 성소수자 의료 전문가로 만들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교육은 모든 의과대학과 간호대학에서 필수로 이뤄져야 한다. 성소수자 환자를 진료할 때 갖춰야 하는 태도와 의료 환경에 관한 기본적인 이해를 제공하는 교육 말이다. 성소수자 전문 의료인을 양성하려면 지금보다 성소수자 의료에 관한 선택 과목이나 실습을 더 많이 개설해야 한다.
결국 최소한의 준비는 되게끔 하는 필수적인 과정과 전문성을 키워주는 과정이 동시에 필요하다. 성소수자 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기관이 적다 보니 지방에서 서울로 오는 환자도 많아서, 전문 의료인의 수적 양성이 특히 잘 이뤄졌으면 한다.
차별금지법과 관련된 글을 작성하기도 했다. 의료인의 입장으로 보는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은 무엇인가?
사람의 건강은 그 사람이 처해있는 환경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는다. 미세먼지와 같은 물리적 환경도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겠지만, 그 사람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사회적 환경에 처해있을 때도 사람의 건강은 크게 악화한다. 건강이란 단순히 환자가 약을 잘 먹고 치료를 잘 받는다고 해서 달성되지 않는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환자의 건강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사회적 환경을 개선한다면, 성소수자 의료 현실에도 유의미한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차별 없는 병원’은 어떤 곳일까?
모두가 자신의 정체성이나 환경, 처지와 관계없이 인간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고, 필요한 최선의 의료를 받으며, 누구나 건강할 수 있는 곳이다. 성소수자여서, 여성이어서, 장애인이어서 건강하지 못한 현실을 그냥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차별 없는 병원은 당장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노력하고 추구해야 할 공간이다. 차별 없는 병원이 있으려면 차별 없는 학교도, 차별 없는 직장도 있어야 한다. 성소수자의 건강권 문제는 단순히 병원이나 진료실 안에만 한정돼있지 않다. 차별 없는 병원을 위한 노력은 사회 전체의 과제라는 점을 당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