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사례는 트위터 프로아나 계정 조사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트위터에서 프로아나 계정을 운영하고 있는 한 10대 여성이 트위터에 접속해 같은 프로아나들이 모여있는 타임라인을 훑어본다. 그의 계정 프로필에는 ‘gw 45, ugw 38’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메인 트윗에는 단식 지속 시간을 기록하는 트윗들이 모여있다. 타임라인에 단식 관련 조언이 뜨면 북마크하거나 리트윗한다. “오늘부터 ‘무쫄’한다”는 다른 프로아나의 트윗에 하트를 눌러 응원을 보내고, 단식이 지치고 고통스럽다는 트윗에는 공감과 위로를 담은 멘션을 보낸다. 프로아나 동료를 찾는 ‘프아 트친소(트위터 친구 소개)’ 트윗을 검색해 친구를 늘리기도 한다.
최근 트위터를 기반으로 프로아나 커뮤니티가 확산되고 있다. 프로아나란 거식증(anorexia)에 찬성(pro-)한다는 의미의 합성어 ‘프로아노렉시아(proanorexia)’의 준말로, 거식을 질병이 아닌 삶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개인 및 집단을 가리킨다. 프로아나 커뮤니티는 거식 수행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고, 단식과 절식을 독려한다. SNS에서 프로아나는 이미 개인의 실천을 넘어 집단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프로아나로서의 삶을 공유하는 이들은 누구이며, 프로아나 커뮤니티는 어떤 공간일까.

#프아_트친소, #프아판에서_같이_굶어요
트위터 내 프로아나 커뮤니티는 ‘프아판’이라고 불린다. 프아판에서 프로아나 생활을 실천하는 사람인 ‘프아러’들은 ‘프아 트친소’ 해시태그를 통해 다른 프로아나를 소개받고, 프로아나만 모인 타임라인을 만들어 교류하는 방식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프로아나 커뮤니티는 여타 인터넷 커뮤니티와 같이 그들만의 은어로 소통한다. ‘ugw(ultimate goal weight, 최종 목표 체중)’·‘gw(goal weight, 목표 체중)’·‘cw(current weight, 현재 체중)’, ‘키빼몸(단위는 고려하지 않고 키에서 몸무게를 뺀 숫자)’ 등이 대표적이다. 프로아나들은 프로필을 통해 이에 해당하는 수치를 공유하고, 목표 체중이 달성 가능한지 함께 점검한다.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서로를 독려하기도 한다.
프로아나가 지향하는 신체는 평균보다 극단적으로 마른 상태다. 김윤아 섭식장애 전문 심리상담사에 따르면 여자 중학생의 평균 신장과 몸무게는 160cm에 55kg이며 평균 ‘키빼몸’은 105 정도다. 프로아나가 대체로 지향하는 키빼몸은 120, 125 정도다. 키가 160cm라면 40kg, 35kg 정도의 체중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프로아나가 목표 체중에 도달하는 방법은 단식이다. 프로아나 커뮤니티에서는 ‘조이자’는 표현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는 굶는다는 뜻이다. ‘무식하게 쫄쫄 굶는’ 극단적 단식을 의미하는 ‘무쫄’이라는 은어도 있다. 효과적인 단식을 위해 식욕 억제를 강조하는 일종의 규범도 있다. 음식 이름을 언급하지 않거나 초성으로만 쓰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를 준수하지 않는 프로아나와는 트위터의 차단 기능을 통해 교류를 끊기도 한다. 자신이 지향하는 마른 몸의 이미지를 자주 공유하고, 효과를 본 단식 및 절식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기도 한다. 식욕억제제 복용 후기가 대표적이다,
프로아나를 취재하려는 언론 인터뷰를 피하는 것도 규범 중 하나다. 2021년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일명 ‘나비약’으로 불리는 다이어트약의 부작용을 보도하기 위해 나비약의 수요층인 프로아나를 취재하려 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프아판’ 내부에서는 취재에 응해선 안 된다는 트윗이 공유됐다. 보도 이후 다이어트약의 판매 규제가 강화되면 약 구매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트위터 내 프로아나 집단을 관찰한 한 트위터 이용자는 ‘10대 여성 청소년들이 집단 거식을 겪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해선 당연히 논의가 필요하며, 취재 거부는 부적절하다’는 트윗을 남기며 이를 비판했다.
그러나 프로아나가 언론 취재를 비롯한 외부인의 접근에 강한 반발을 보이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김윤아 상담사는 “프로아나를 지나치게 타자화하고 문제의 심각성에 경악하기만 하는 기존 보도에 대한 거부감”이 프로아나 커뮤니티의 ‘양지화’에 당사자들이 반발하는 원인일 것이라 분석했다. 서강대 류지현 박사과정생(신문방송학과)은 프로아나들의 공론화 회피가 “음식 섭취를 거부하는 자신들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에 대응하는 방식”이자 “자신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고려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모일 수밖에 없는 마음, 모일 수밖에 없는 환경
프로아나가 외부인을 피해 폐쇄적인 ‘음지’ 커뮤니티로 모여든 경로는 어떠할까. 전문가와 프로아나 당사자들은 고립감이라는 심리적 요인이 커뮤니티 형성으로 이어졌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까지 프로아나 계정을 운영했던 20대 여성 A씨는 “지인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알리는 것이 두려웠다”고 말했다. 지인들이 A씨의 거식증을 부정적으로 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A씨는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가득한 커뮤니티에 뛰어든 것은 단순히 이해와 공감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며 자신의 거식 행위를 긍정해준 것은 같은 프로아나뿐이었다고 회상했다.
류지현 박사과정생은 “프로아나는 대개 자신의 정체성을 외부에 드러내지 못하므로 커뮤니티에서 나와 닮은 ‘당사자들’을 만나 현실에서의 고립감을 해소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커뮤니티를 통해 자신과 같은 사람의 존재를 깨닫고, 자신의 욕망을 인정하게 되며 자긍심과 해방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실제로 프아판에 오게 된 계기를 말하는 프로아나들의 트윗에서는 소속감과 연대감이 자주 언급된다.
전문가들은 온라인 환경이 프로아나 커뮤니티 구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진단한다. 류지현 박사과정생은 “온라인에서는 오프라인에서보다 익명성이 보장되고, 특정 활동으로 생길 수 있는 사회적 결과가 실제 현실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여겨지므로 자신을 더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의 개방성·익명성이 현실에서 ‘비정상’이라 여겨지는 이야기를 편히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류지현 박사과정생은 프로아나의 연령대 구성도 온라인 중심의 커뮤니티 활성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덧붙였다. 프로아나의 대다수는 10대로, 유년기부터 디지털 기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해온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다. 휴대용 기기로 커뮤니티에 접속해 다양한 정보와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이들의 일상이다. 프로아나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쉽게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이유다.
프로아나 온라인 커뮤니티는 특정 웹사이트가 아닌 SNS를 중심으로 형성돼있다. SNS는 웹사이트와 달리 커뮤니티의 존폐를 결정할 수 있는 운영자가 따로 있지 않아 지속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웹사이트를 중심으로 형성됐던 국내 프로아나 커뮤니티는 언론보도 이후 폐쇄됐다. 한편 트위터 이용자 개인들의 관계맺음을 통해 형성된 ‘프아판’은 개인 계정 신고 정도가 가능할 뿐, 이용자들의 교류 자체를 막을 수는 없어 완전한 폐쇄가 불가능하다.
SNS 환경은 커뮤니티의 폐쇄성을 위한 규범 유지에도 효과적이다. 프로아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은 해당 SNS의 기능을 활용해 커뮤니티의 경계를 공고히 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미활동자를 퇴출시키는 ‘물갈이’를 하거나, 언론 인터뷰를 요청하는 취재진 등 커뮤니티에 침입한 외부인을 ‘강퇴’시키는 식이다.

‘위험한 안식처’, 위안과 고통을 동시에 건네는 공간에서
프로아나 커뮤니티는 체중 감량의 기쁨은 나누고 거식의 고달픔은 위로하는 장이다. 그러나 동시에 또래 프로아나와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이상적인 마른 몸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류지현 박사과정생은 프로아나 커뮤니티가 “정서적 유대를 제공하는 동시에 체중 감량에 대한 강박을 증폭시키는 ‘위험한 안식처’로 기능하고 있다”고 우려했다.이러한 ‘프아판’의 위험성을 아는 프로아나들은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건강을 걱정하며 모순적인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A씨는 트위터 ‘프아판’에서 만나 친해진 한 10대 프로아나에게 식욕억제제를 구해주고 싶었지만, 약의 부작용을 알고 있어 고뇌했다. A씨는 “그 친구를 위하는 마음이 그 친구를 망치게 된다는 생각에 무척 괴로웠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프로아나 커뮤니티의 폐쇄성에 프로아나 확산을 막고자 하는 당사자들의 심리가 반영돼있다고 해석한다. 커뮤니티가 가시화될 경우 새로운 구성원이 유입될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거식 실천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는 프로아나들이 이를 우려한다는 것이다.
한편 류지현 박사과정생은 프로아나 커뮤니티의 비가시화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날씬한 몸을 이상적 육체로 제시하고 강요함으로써 다양한 몸에 대한 상상력을 축소하게 만드는 구조 자체가 프로아나 문제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A씨는 “프로아나 계정을 없앴다고 해서 프로아나가 아니게 된 것은 아니며 나 역시 여전히 식이장애를 앓고 있다”고 밝혔다. 프로아나 커뮤니티를 나오는 것 이상의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프아판’ 아닌 다른 공간을 상상하기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우선 프로아나 개인에 대한 비난을 넘어서 문제를 구조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김윤아 상담사는 “프로아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 목소리를 높였다. 마른 몸에 대한 동경을 유발하는 사회의 미의식 등을 간과한 채, 문제의 원인이나 해법을 프로아나 개인에게서 찾으려는 것은 당사자들을 더욱 고립시키기 때문이다. 류지현 박사과정생 역시 “프로아나를 ‘문제적 집단’으로 일반화하는 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훈육이나 치유를 통한 교정보다 프로아나 당사자의 충분한 공감을 이끌 수 있는 접근, 당사자가 논의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익명성이 보장된 공간의 형성이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익명성이 보장된 공간이란 프로아나들이 ‘비정상’이라는 낙인 없이 프로아나가 아닌 사람들과 섞일 수 있는 환경을 말한다. 류지현 박사과정생은 이를 전제로 ▲미디어의 미적 기준에 대한 논의 ▲표준화된 여성복에 대한 논의 ▲외모 평가를 당연시하는 문화에 대한 비평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프로아나와 관련된 모든 논의는 거식 수행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아닌 ‘마른 몸을 이상화하는 문화’를 비정상화하는 작업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 류 박사과정생의 입장이다.
김윤아 상담사는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마른 몸에 대한 강박을 느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상담사가 내담한 섭식장애 여성들은 미디어에서 마른 여성 연예인을 볼 때보다 여성 쇼핑몰에서 맞는 옷 사이즈를 찾을 수 없을 때 좌절을 느꼈다. “연예인의 몸을 볼 때는 현실과 먼 이미지라며 거리를 두더라도, ‘옷을 구매한다’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마른 몸에 대한 사회의 요구를 발견하고 만다”는 게 김 상담사의 설명이다.
마른 몸에 대한 강박이 일상적으로 주입되는 사회에서 프로아나는 재생산될 수밖에 없다. 최근 있는 그대로의 몸을 긍정하자는 사회적 운동인 ‘바디 포지티브(Body Positive)’가 등장했지만, ‘마른 몸 예찬’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일상이다. 김윤아 상담사는 이러한 상황에서 ‘바디 포지티브’의 메시지는 프로아나에게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마른 몸을 ‘비정상적으로’ 동경하고 있는 것은 프로아나 커뮤니티 바깥의 세계다.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현실의 ‘커뮤니티’가 변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