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의 서술자가 표현하는 열여섯 명의 인물, 그리고 이십사 시간.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한 명의 배우가 서술자로 등장해 ‘시몽 랭브르’의 장기이식 과정을 그려내는 1인극이다. 시몽 랭브르의 삶이 사그라들고 또 다른 이의 삶이 불타오르는 모습은 서술자의 언어와 몸짓으로, 그리고 그가 표현하는 각기 다른 인물들의 병렬적인 이야기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시몽 랭브르의 심장에서부터 나의 심장까지 전해지는 박동을, 요동치는 삶의 파도를, 그리고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껴보자.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스틸컷 ⓒ프로젝트그룹일다
심장 박동과 살아있음의 상관관계
열아홉 살 시몽 랭브르는 서핑을 다녀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뇌사에 빠진다.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가 시몽의 유가족을 만나 그의 장기를 기증할 것을 설득하지만 시몽의 부모는 이를 거절한다. 시몽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심장이 뛴다는 것과 살아있다는 것이 같은 의미로 여겨지기에 시몽의 심장 소리가 들리는 한 그의 가족도, 그 장면을 지켜보는 관객도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시몽의 담당의는 “1959년을 기점으로, 심정지는 더 이상 죽음의 신호가 아니며 죽음을 확정 짓는 건 뇌 기능의 정지가 되었다”라고 언급하며 시몽의 상태를 진단한다. 호흡기를 단 채 병실에 누워있는 시몽은 과연 살아있는 것일까. 시몽의 뇌는 기능을 멈췄지만, 그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다. 결국 시몽의 심장은 심근염으로 인해 심장이식을 기다리던 51세 여성 클레르 메잔에게 이식돼 끊어지기 직전이었던 삶을 잇는다. 시몽의 육체는 사라지더라도 그의 심장은 클레르 안에서 여전히 뛰고 있다. 그리고 시몽은 자신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영원히 살아있다. 이 극에서만큼은 뇌가 기능을 정지한 시몽도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다. 이를 깨달았기 때문에 “아이를 두 번 죽게 할 수 없다”며 장기이식을 반대했던 시몽의 부모도 마음을 바꾼 것은 아닐까. 결국 시몽의 뛰는 심장은 살아있는 자의 삶을 ‘수선’했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스틸컷 ⓒ프로젝트그룹일다
우리의 삶은 곧 바다
시몽의 삶은 남겨진 이들의 삶에 어떤 형태로 존재할까. 심장 박동이 만들어내는 심전도 그래프는 마치 수직‧수평 운동을 넘나드는 파도 같다. 파도를 타며 서핑을 즐기던 시몽은 결국 파도를 닮은 심전도 그래프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심전도 그래프가 올라갔다 내려올 때 우리의 마음에는 파도가 친다. 그리고 그 파도가 모여 바다를 만든다. 시몽의 심장이 만들어 낸 바다가 여전히 이 세상에 남아있기에 인물들은, 그리고 관객들은 그가 여전히 살아있다고 느낀다.
극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들은 시몽의 심장이 이식 과정에서 망가지지 않도록 노력한다. 삶이 곧 바다라는 생각으로 그 모습을 다시 곱씹어보면, 사람들은 그가 만들어 낸 바다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그의 심장이 그린 파형은 수많은 이들을 거쳐 클레르가 만들어내는 파형과 단단히 연결된다. 모든 이들의 마음에는 각자가 만들어 낸 바다가 있고, 심장이 뛰는 한 그 바다는 보존된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스틸컷 ⓒ프로젝트그룹일다
서술자가 전하는 텍스트에 파묻히다
극에서 서술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옷을 입고 여러 인물을 표현해낸다. 보이는 것은 배우 한 명뿐이기에, 관객들은 청각적 자극과 서술자의 몸짓을 실마리 삼아 온 상상력을 동원해 머릿속에 각자가 생각한 자신만의 인물을 그려 볼 수밖에 없다. 즉, 극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이 가진 각자의 바다를 상상해 보는 것이다.
여러 명의 배우가 등장인물 각각의 삶을 동시에 연기했다면 단순한 배경 설명 및 사실 전달로 끝났을 식상한 과정이 1인극의 형식을 만나 완전히 달라진다. 각 인물의 심장이 어떤 바다를 그려냈을지, 그의 삶은 어떤 형태로 존재할지 상상하는 것은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각자가 상상하는 인물들은 완전히 다를 것이고, 관객은 극이 진행되며 순차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직접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모든 것은 관객이 상상하기 나름. 극에 여백을 만들고 관객이 서사를 직접 채울 수 있게 함으로써 관객은 인물들의 삶에 온전히 빠져든다. 같은 극을 본 후 서로 다른 감상을 쏟아내고. 각자의 생각을 나누며 서로가 상상한 인물들을 함께 공유하는 것. 1인극의 진가는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스틸컷 ⓒ프로젝트그룹일다
삶이란 바다를 만드는 우리는 살아있다
두근대는 심장 소리와 긴 암전, 내레이션과 함께 시작되는 극. 절정에 다다랐던 심장 박동은 마치 수미상관처럼 극의 마침표와 함께 그 속도를 늦추고, 파도 소리와 함께 긴 암전이 계속된다. 어둠 속에서 공연장을 채우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텍스트를 곱씹을 때, 눈앞에는 파도를 닮은 심장의 파형이 그려지는 듯하다. 극을 온전히 즐기다 보면 비로소 극에서 튀어나온 심장의 파형이 우리의 심장이 만들어 낸 박동과 연결된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스틸컷 ⓒ프로젝트그룹일다
단 24시간을 함께했을 뿐이지만, 인물들이 기뻐하고, 슬퍼하고, 고민하고, 절망하는 모습을 보며 관객은 그들의 삶을 함께 서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몽이 사고를 당한 프랑스 어느 해변에서 그의 심장이 살아있는 자를 수선한 수술실까지. 다시 수술실에서 한국의 어느 한 공연장까지. 모든 공간이 하나의 바다로 이어지며 관객은 시몽의 심장이 만들어낸 파도를 타고 극에 뛰어든다.
첫 인물인 시몽 랭브르부터 마지막 인물인 클레르 메잔까지 열여섯 명의 인물이 가진 고유의 바다를 탐험한 후 관객은 최종 목적지로서 ‘나의 바다’를 상상하게 된다. 내 심장은 오늘 어떤 바다를 그려내고 있을지 곱씹을 때 우리는 심장이 뛰는 것을 느끼며 온전히 ‘살아있는’ 경험을 한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스틸컷 ⓒ프로젝트그룹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