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지속되고 기억은 계속 피어날 것이니

–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히로시마 내 사랑』

  

사진설명 시작. 일본인 남자가 굳은 표정으로 프랑스 여자의 어깨를 감싸고 있다. 프랑스 여자는 상체를 숙여 일본인 남자의 품에 안긴 상태다. 미소를 띈 그녀는 자신의 어깨를 감싼 손에 자신의 손을 얹고 있다. 히로시마 내 사랑 민음사 책 표지이다. 사진설명 끝.

  제2차 세계대전이 할퀴고 간 환부에 새살이 차오른다. 유엔이 창설되고 원폭이 투하됐던 히로시마가 재건된다. 그러나 생존자들은 전쟁 이전의 일상을 잃은 채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부유한다. 마르크리트 뒤라스의 『히로시마 내 사랑』은 종전 이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복구된 현실 속에서, 역사의 잔해를 뒤적이며 전쟁이 불러온 비극을 기억하려는 ‘그녀’의 목소리를 조명한다.

  1944년 프랑스 느베르의 한 광장에서 ‘그녀’는 삭발을 당했다. 조국의 적군과 사랑에 빠졌다는 이유에서였다. 독일의 지배에서 해방된 프랑스인들이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를 부르며 거리를 뛰어다니는 동안, ‘그녀’는 그들의 발밑 아래 지하실에 갇힌 채 총살당한 연인을 그리워했다. 밤사이 느베르에서 도망쳐 파리에 도착한 ‘그녀’는 신문에 실린 히로시마 원폭 투하 소식을 목도한다.

  13년 후, 평화에 대한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원폭이 투하된 히로시마를 찾은 ‘그녀’는 일본인 ‘그’와 사랑에 빠진다. 히로시마의 참상을 부정하고 잊으려는 ‘그’와 달리, ‘그녀’는 진하게 덮쳐오는 망각에 맞서 종전의 여파를 기억하려 분투한다. ‘그녀’는 히로시마의 병원과 박물관을 찾아다니며 고통스러워하는 생존자들의 모습을 눈에 담고, 여기저기서 속출하던 원폭 피해 뉴스를 떠올린다.

  1945년 8월 6일 미국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일본의 항복 및 세계대전의 종전을 이끌어내기 위한 군사적 조치였다. 전쟁을 멈추기 위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인류 역사 최초로 핵‘무기’를 도입해 대량 살상을 저지른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원폭 투하는 불과 9분 만에 사망자 20만 명, 부상자 8만 명을 낳았다. 전쟁을 끝내고자 전쟁범죄를 일으킨, 폭력의 악순환을 보여주는 사례다.

  전쟁에서 개인의 이름은 비극이 일어난 진원지의 이름 뒤로 가려져 희미해진다. ‘그’와 ‘그녀’는 서로를 이름이 아닌 느베르와 히로시마로 부른다. 마치 ‘느베르에서 삭발당한 한 여자의 재앙과 히로시마의 재앙이 정확히 상응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개개인이 경험한 전쟁의 기억은 그 모든 절망의 총합 앞에서 밀려난다. 개인의 고통은 사상자의 숫자에 묻혀 섬세히 다뤄지지 못한다.

  그 개인조차 전쟁의 상흔을 극복해나가며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본인에게 남겨진 전쟁의 기억을 서서히 망각하게 된다. 날마다 조금씩 잊혀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재앙이 도시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히로시마 사람들은 ‘끈기 있게, 순진무구하게, 조용하게, 그 부당한 운명에 적응’해 나갔다. 사람들은 도시에 투하된 원폭을 그저 받아들여야만 했고, 폭력으로 인해 입은 피해를 드러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폭력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방식으로 ‘기억’을 제안한다. ‘그녀’는 ‘그’에게 선명히 남아있는 전쟁의 기억을 부인할 필요가 없다고 역설한다. 오히려 끊임없이 기억하려 할 때 비극은 비로소 마무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망각의 끔찍함은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었는지조차 떠올릴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 있다. 전쟁이 끝나고 원폭이 떨어진 도시가 재건됨에 따라 히로시마의 사람들 역시 자연스럽게 당시의 기억을 잊어가지만, ‘그녀’는 의식적으로 기억을 되새기려 한다. 기억은 망각의 눈속임으로 인해 과거에 무뎌진 사람들이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을 제지하기 때문이다.

  

  원폭이 투하된 지 15일 후, 히로시마는 온갖 다양한 꽃들로 뒤덮였다고 한다. 하지만 꽃이 피었다고 해서 그 아름다움과 생명력이 히로시마를 강타한 폭력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한다. 계속해서 기억하려 하지 않으면 똑같은 비극과 폭력이 반복된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일방적인 무력 침략으로 시작한 이 전쟁은 현재 무차별적인 민간인 학살과 약탈, 강간, 폭행, 고문으로 번져가며 국제사회의 우려를 사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를 향한 지원의 쇄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반전시위 등 폭력에 맞서 이 전쟁을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하려는 움직임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삶이 계속되는 한 기억은 계속될 것이고, 역사를 넘어 질주하는 폭력을 가로막을 것이다. Ні Війні, Нет Войн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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