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의 비극은 싫다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

본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본 기사는 동성애 혐오와 관련해 트라우마를 일으킬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설명 시작. 강렬한 보라색 조명 아래, 가면을 쓰고 춤을 추는 사람들 사이에서 줄리엣과 줄리엣만이 가면을 벗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한눈에 반한 둘이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둘의 손은 춤을 추다가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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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가 아닌 줄리엣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두 청춘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인류 문학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쓰여온 이야기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단연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중 가장 많이 공연됐고, 영화, 오페라, 뮤지컬로도 수없이 변형된 작품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너무나 익숙해 더 이상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정도로.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은 셰익스피어가 그려내는 비극적 사랑이 현대의 무대에서 다시 설득력을 가지게끔 변용한다. 제목 그대로 극의 주인공은 두 명의 줄리엣이다. 이름이 같은 두 여자, 줄리엣 몬태규와 줄리엣 캐풀렛이 사랑에 빠진다. 

  원작의 로미오 몬태규는 극에서 로미오라는 남동생을 둔 줄리엣 몬태규가 된다. 어머니와 오빠에게 순종적인 딸이었던 줄리엣 캐풀렛은 줄리엣 몬태규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좇게 된다. 둘은 비밀 결혼식을 올리고, 베로나를 떠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줄리엣 캐풀렛의 오빠 티볼트가 둘의 관계를 알게 되고, 줄리엣 몬태규는 추방당한다. 줄리엣 캐풀렛은 거짓 죽음을 꾸며 줄리엣 몬태규에게 가려 하지만, 소식이 엇갈리며 줄리엣 몬태규는 줄리엣 캐풀렛의 죽음을 믿게 된다. 절망한 줄리엣 몬태규는 자결하고, 이를 본 줄리엣 캐풀렛도 줄리엣 몬태규를 따라간다. 

 《줄리엣과 줄리엣》의 서사는 셰익스피어의 원작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는 두 사람이 동성으로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은 신선해진다.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이 이야기가 새삼스러운 흡입력을 가지게 되는 것은 현실의 무게가 실렸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는 ‘금지된 사랑’이다. 현실의 금기와 만나며 고전은 다시 설득력을 얻는다. 목숨을 건 사랑의 세레나데는 수사가 아닌 선언이 된다.

사진 설명 시작. 발코니에서 줄리엣 몬태규가 줄리엣 캐풀렛의 집으로 사랑을 고백하러 찾아왔다. 줄리엣 캐풀렛이 발코니 아래의 줄리엣 몬태규에게 손을 뻗고, 줄리엣 몬태규는 그녀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고 있다.

극장 밖의 비극

  두 줄리엣의 관계를 의심하는 티볼트는 자신의 가정이 역겹기 그지없다고 표현하고, 줄리엣 캐풀렛의 어머니는 줄리엣이 결혼을 거부한다면 자신의 딸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주변의 멸시와 가족의 부정, 현실의 동성애자들도 흔히 겪는 일이다. 이들의 비극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쓰여졌을 때부터, 그것이 고전이라 불리게 된 현재까지 이어져왔다.

  “지워지지 않아.” 연극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대사다. 무대 위에서 두 여자는 보란 듯이 껴안고, 키스하고, 함께 침대에 눕는다. 하지만 극장을 나서면 둘의 모습을 볼 수 없다. 두 가지 비극이 극장 안과 극장 밖에서 펼쳐진다. 극장 안의 비극은 두 줄리엣의 죽음이라는 결말, 극장 밖의 비극은 둘의 사랑이 지워지는 현실이다. 

  두 비극은 교차한다. 극의 절정에서 줄리엣과 줄리엣은 가족에게 버림받고, 서로의 죽음을 마주한다. 가족들의 차가운 눈빛과 오열하는 두 줄리엣의 절망이 극장을 짓누른다. 그러나 극장 안에서 줄리엣들은 누구의 눈도 피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다. 지워지지 않고 관객의 두 눈에 담길 수 있다. 무대 위에 선 그들의 사랑은 죽음으로 달려가는 비극일지라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관객은 극장 밖의 비극을 알고 있다. 극장을 나가면 줄리엣들의 사랑은 보이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다. 극장 밖의 비극은 두 줄리엣이 열렬히 사랑을 고백하고 마음을 나눌 때조차도 비참함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이 오래된 비극을 전한다.

이제는 해피엔딩을 원한다

  동성애를 소재로 한 작품은 유독 비극이 많다. 극장 안이든, 밖이든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것은 고되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통해 그려지는 줄리엣과 줄리엣의 사랑은 아름답다. 황홀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두 줄리엣에게서 누구든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극의 방점은 사랑의 아름다움보다 결말의 슬픔에 찍힌다. 그들이 처한 현실이 비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으로 충만한 줄리엣들의 행복 역시 현실이다. 무대 위의 두 줄리엣이 사랑하듯, 현실의 줄리엣들도 웃으며 사랑한다. “빛이다! 저기가 동쪽이니까 그렇다면 나의 줄리엣은 태양이야.” 존재만으로도 빛과 같은 누군가와 함께했던 삶이 과연 비극이기만 할까. 줄리엣들의 사랑을 비극으로 만드는 것은 사랑 그 자체가 아니다. 그들의 사랑을 지워버리는 세상의 편견이다. 

사진 설명 시작. 줄리엣과 줄리엣의 결혼 장면. 주례를 보는 사제가 중간에 서 있고, 줄리엣 캐풀렛의 하녀 내리서와 줄리엣 몬태규의 동생 로미오가 증인으로 섰다. 두 줄리엣은 부케를 들고 서로 마주보고 손을 맞잡고 있다.
《줄리엣과 줄리엣》 스틸컷 ⓒ골든에이지컴퍼니

 

  “나는 진실되고 싶어요. 내게는 어렵게 얻은 귀한 사랑이 있고, 그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란다고 진실되게 맹세하고 싶어요.” 사랑 앞에서 진실한 것조차 줄리엣들에겐 욕심이다. 비극을 바라는 줄리엣은 없다. 다만 소박한 해피엔딩을 바랄 뿐이다. 결말을 쓸 펜을 쥐고 있는 것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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