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이기 이전에 학생입니다

운동과 공부, 꼭 선택해야 하나요?

  ‘김지원(가명) 없어? 아 운동부야? 그래, 수업 시작하자.’ 운동부인 지원이가 반에 없는 것은 모두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학생선수는 ‘운동만 잘하면 성공한다’는 일념 아래 공부 대신 운동에 전념해왔다. 운동과 공부, 꼭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할까. 학생선수의 학습권 침해 실태와 지원 방안을 살펴봤다. 

운동을 위해 공부를 포기하는 학생들

  프로 선수를 꿈꾸는 학생들은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수업 대신 운동으로 보낸다. 축구 학생선수로 활동했던 A씨는 “오전 중에만 수업을 듣고 점심시간 이후부터는 훈련하는 것이 일상”이라며 “얼마 안 되는 수업시간도 자거나 딴짓하는 등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학생선수는 평일에 주로 열리는 토너먼트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며칠을 연속으로 결석하거나 조퇴하기도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중고등학교 학생선수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시합이 없을 때 학생선수의 하루 평균 수업시간은 4.48시간인 반면 시합이 있을 땐 1.91시간으로 절반 이상 감소한다. 성경찬 전북도의회 의원은 <새전북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학생선수들의 체육활동이 학습권을 비롯해 많은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잦은 훈련과 대회 출전으로 인한 학습 결손은 학생선수들의 학력 저하로 이어진다. 인권위 설문 조사에 따르면, 학생선수 중 82.1%는 빠진 수업에 대해 보충 수업을 전혀 받지 않는다고 답했다. 교육부가 제시한 학생선수의 최저학력 기준은 해당 학년 교과별 평균 성적의 50% 이상(초등학교) 혹은 40% 이상(중학교)이다. 최저학력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선수 비율은 초등학교 4학년의 경우 3.4%에 불과한 반면 중학교 3학년은 43.9%에 달한다. 고학년이 될수록 학습 결손이 심해지는 것이다. 

인포그래픽 시작. 학생선수 최저학력 미도달률이라는 제목 아래 막대그래프가 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의 수치가 나열되어 있다. 각각 3.4, 6.7, 8.3, 23.2, 34.7, 43.9로 갈수록 높아진다. 출처는 안민석 의원실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인포그래픽 끝.

  많은 학생선수들은 학력 저하를 ‘운동하려면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야구 학생선수로 활동했던 김동환 씨는 “대부분의 학생선수는 자신에게 공부가 필요 없다고 느낀다”며 “오히려 공부 때문에 운동할 시간이 줄어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도자와 학부모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전시교육청 체육예술건강과 김병수 장학사는 “공부하지 않아도 운동만 열심히 하면 프로 선수가 될 수 있다는 학부모와 지도자의 인식이 문제”라며 “이러한 인식 아래에서 교육받고 운동하는 학생선수들도 비슷한 생각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기초적인 역량을 기른다는 교육의 목적을 생각하면, 학생선수의 학습권 보장이 필수적이다. 강신욱 한국체육학회장은 “공부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식 습득보다는 (학생들을)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학교는 학생선수들이 최소한의 사회생활을 준비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9월 열린 프로야구 신인드래프트에는 고등학교 졸업예정자 760명, 대학교 졸업예정자 240명을 포함해 총 1006명이 참가했다. 이 중 프로로 지명받은 선수는 단 100명 뿐이다. 김병수 장학사는 “학생선수가 프로에 진출하는 비율은 채 10%도 되지 않지만 대다수의 학부모는 막연하게 자녀가 프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프로 선수가 되지 못한 학생선수들은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하지만, 학창시절 내내 학습권을 보장받지 못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체육교사 C씨는 “지도자·트레이너를 비롯한 스포츠 관련 직업에서도 데이터와 스포츠 과학 등 관련 지식이나 경력이 전무한 학생선수는 진입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학생선수들이 운동이 아닌 다른 꿈을 찾아나설 수 있으려면 학습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부하라는 교육부, 운동하고 싶다는 현장

  학생선수의 학력 저하를 막기 위해 교육부는 최근 다양한 정책을 추진 중이다. 2020년 교육부는 기존 약 63일이었던 출석인정 결석일수를 초등학생은 20일, 중학생은 30일, 고등학생은 40일로 축소했다. 적은 결석이라도 진도를 놓치면 학업에 흥미를 잃기 쉽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다. 김병수 장학사는 “출석이 인정되지 않으면 학생선수는 훈련 대신 수업에 나올 수밖에 없다”며 “다소 강제적이지만 제도를 변화시켜야 구조 자체를 바꿀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지속적으로 출석인정일수를 줄여나가 내년에는 초등학생의 출석인정 결석일수를 없애고 중학생과 고등학생은 각각 10일과 20일로 추가 축소할 계획이다. 

  현장은 교육부의 조치가 학생선수의 활동에 제약을 가한다며 반발한다. 평일에 열리는 대회에 몇 차례 참가하는 학생선수는 출석인정 여부와 상관없이 결석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테니스 학생선수가 올해 10월 열린 ATF 안동 국제주니어테니스대회에 참가할 당시 주말을 제외하더라도 약 5일이 필요했다. 대회를 한 번 참가했음에도 줄어든 출석인정 결석일수의 절반 이상을 소모한 것이다. 학교 운동부 코치 B씨는 “1년 동안 두세 개의 대회를 참가한다면 무단결석을 할 수밖에 없다”며 출석인정 결석일수 축소가 학생선수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학교 안에서 운동에 집중할 수 없다고 판단해 학교를 이탈하는 학생선수도 많아지고 있다.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출결이 비교적 자유로운 방송통신고등학교로 옮기거나, 자퇴한 뒤 스포츠클럽에서 운동에만 전념하는 식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현장의 지적을 수용해 학기 중 개최되는 대회를 주말로 옮기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로 인해 학생선수의 휴식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김동환 씨는 “주말은 대체로 학생선수들이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라며 “주말에 대회를 나가게 되면 피곤한 학생들이 평일 수업 시간에 잠을 자는 등 휴식을 취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선수의 충분한 휴식이 보장되지 못해 결국 학습에 악영향을 주는 것이다.

  교육부는 최저학력을 달성하지 못한 초등학교 및 중학교 학생선수의 대회 출전을 6개월 동안 제한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학교체육 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한 김예지 의원은 <스포츠경향>과의 인터뷰에서 ‘학생선수의 장래를 위해서는 학생들이 적어도 최저학력 수준에는 도달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어 왔다’며 학생선수의 최저학력 보장은 기본적인 학습권의 문제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최저학력 규정이 오히려 학생선수의 운동권을 침해한다는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 황대호 경기도의회 의원은 지난달 23일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국·영·수 교과성적을 대상으로 최저학력 미달 선수에 대한 대회 참가 금지 지침을 내리는 것은 체육활동을 주 과목으로 삼아 훈련하고 성장하는 학생선수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비판했다. 

  교육부의 정책에 대한 현장의 일관된 반응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운동을 제한하는 현행 방식이 학생선수의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B씨는 “운동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기본적인 구조가 바뀌지 않았는데 공부를 위해 운동하는 시간을 줄이라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국민대 신승호 교수(스포츠산업레저학과)는 지난 2017년 학생선수 최저학력제 관련 국회 토론회에서 “사후 제재보다는 학생선수들이 학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선행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생과 선수 사이, 균형을 위해서

  현장과 발맞춰 학생선수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학생선수의 상황을 고려한 별도의 맞춤 지원 제도가 필요하다. C씨는 “학생 선수가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의 교과 과정을 만들고 학습 지원으로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교육부가 실시하고 있는 이스쿨(e-school)이 대표적이다. 이스쿨은 학생 선수를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학습 플랫폼으로, 대회나 훈련으로 인한 학습 결손을 보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019년 기준 4만 8000여명의 학생선수가 이용하는 이스쿨은 학생선수 학습권 지원의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교육부가 학생선수 557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82.1%의 학생선수가 ‘이스쿨이 부족한 수업 진도를 따라가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응답했다. 

사진설명 시작. 운동복을 입은 학생들의 일러스트를 배경으로 학생선수 이스쿨 홈페이지에 오신걸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써있다. 그 아래에는 각각 중학교 이스쿨과 고등학교 이스쿨로 접속할 수 있는 버튼이 있다. 사진설명 끝.

학생선수 e-school 사이트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은 운동에 모든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지금의 엘리트 체육 구조다. 김동환 씨는 “현재 학교 스포츠는 운동부에 처음 들어오는 시기부터 학생선수의 진로를 운동 하나로 한정한다”며 엘리트 체육 구조의 문제를 설명했다. 김병수 장학사는 “학습 시간만큼 운동량을 줄여야 한다”며 “한정된 시간 안에서 학습 시간을 늘리면서 운동량을 유지하고자 하면 휴식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소수의 학생선수를 대상으로 집중 훈련하는 엘리트 체육의 대안은 모든 학생이 공부와 운동에 모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혁신위원회는 ‘학교스포츠 정상화를 위한 2차 권고안’에서 현재 학교가 운동만 하는 학생선수와 공부만 하는 일반학생으로 나뉜다고 정의했다. 이에 반대되는 사례가 대다수 학생이 운동부에 소속돼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미국의 학교체육이다. 운동에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은 프로선수의 길을 걷고, 그렇지 않은 학생도 학업을 병행했기에 자신의 적성에 맞춰 다양한 진로를 모색할 수 있다. 

  학생선수는 학생이길 포기하고 선수로 길러지지만 정작 모든 이가 선수로 살아갈 수는 없다. 학습권은 다른 권리의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권리를 위한 권리’라 불린다. 학생이 어떤 꿈을 꾸든 배울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 학생선수들이 학생인 동시에 선수일 수 있도록, 이제 학생과 선수 사이의 균형을 바로잡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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