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위기’라는 말이 익숙한 사회다. 경쟁과 불안 속에서 힘겹게 내일을 준비하는 청년들을 겨냥하는 정책은 필수가 됐다. “청년의 목소리를 듣겠다”, “청년을 위한 정책을 만들겠다.” 청년을 겨냥한 정치권의 메시지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러나 청년 정책이 실제 청년의 삶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됐는지에 많은 청년들은 의문을 표한다. 청년이 갖는 문제의식은 정치권에 제대로 전달되고 있을까. 청년과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일자리, 주거, 젠더를 중심으로 청년 정책의 방향성을 점검해봤다.
#일자리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청년
최근 몇 년 ‘공정’이라는 키워드가 한국 사회의 청년들을 휩쓸었다. 일자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해 6월 불거진 ‘인천국제공항(인국공) 사태’가 대표적이다. 인국공은 정규직 평균 연봉이 약 9100만원에 달하는 소위 ‘꿈의 직장’이다. 인국공이 1900여 명의 용역업체 소속 보안검색 요원들을 청원경찰 신분으로 직접 고용하는 계획을 내놓으면서 논란이 일어났다. 스펙 쌓기와 취업 시험에 청춘을 바치는 청년들은 제대로 된 절차 없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로또 취업’이라 부르며 박탈감을 호소했다. ‘인국공 사태’를 향한 청년들의 분노는 여러 측면에서 평가될 수 있지만, 청년에게 일자리가 생존과 맞닿은 절박한 사안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국무총리 산하 청년정책조정위원회 김지윤 실무위원은 “좋은 일자리는 적은데 이를 얻기 위해 갖춰야 할 요건은 많다”며 “‘인국공 사태’는 일자리 문제에 대한 청년의 불안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2030 정치 공동체 ‘청년하다’가 작년 7월 ‘인국공 사태’ 관련 기자회견에서 청년 일자리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2030청년하다
문재인 정부는 청년의 일자리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공공일자리 정책을 추진했지만, 청년들은 공공일자리에 기댈 수 없다. 공공일자리는 ‘일자리 문제를 민간에만 맡겨놓지 않겠다’는 취지로 공공기관의 고용을 늘리는 정책이다. 그러나 공공일자리는 6개월에서 2년 정도의 단기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다. 이주환 국회의원이 24개 공공기관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공공기관에서 단기 일자리는 증가한 반면 안정적인 고용으로 이어지는 채용형 인턴은 감소했다. 청년정치크루 이동수 대표는 “정부가 단기적인 실업률 개선에만 집중하다 보니 질 낮은 단기 일자리를 양산했다”며 단기 비정규직 공공일자리가 ‘땜질 처방’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대비 올해 청년 취업자수가 14만 3000명 증가했으나, 이는 표면적 성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공공일자리가 20대의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공공일자리는 대부분 사무직과 회계직에 편중돼 청년 개인의 관심 분야와 특기를 살리기 어렵다. 이주헌 세종시 청년일자리분과위원은 “정부가 가시적인 성과에 집중하다 보니 20대가 원하는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지 못했다”며 “‘20대에게 매력적인 일자리’를 충분히 고민한 후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밝혔다.
20대의 수요를 만족하는 다양한 일자리는 민간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선 임금과 근로 조건에 있어서 일자리 간 격차를 좁혀야 한다고 지적된다. 현재 일자리는 임금과 안정성을 비롯한 근로 조건에서 양극화돼있다. 이동수 대표는 “노동시장의 구조가 경직돼있기에 청년들이 열악한 일자리에서 출발할 경우 좋은 일자리로 이직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좋은 일자리’와 ‘열악한 일자리’의 구분이 뚜렷하기에 청년들은 소수의 좋은 일자리로 바로 진입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치열하게 경쟁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일자리 간 격차를 줄여 전반적인 일자리의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꿈꾸는 일을 직접 만들어나가는 창업·창직 지원도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현재 창업 지원은 창업 무경험자를 지원하는 예비창업패키지, 창업 초보를 지원하는 초기창업패키지 등 창업 초기에 집중돼있다. 이주헌 위원은 “창업 초기 지원뿐 아니라 실패해도 회생할 수 있도록 뒷받침이 필요하다”며 창업 과정 전반에 대한 지원을 강조했다. 창업을 넘어 새로운 직종을 직접 만드는 창직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창직은 개인의 경험과 관심 분야에 아이디어를 더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직업을 만들거나 전통적인 직업을 세분화하는 것이다. 도시라는 새로운 환경에 기존의 농업 기술을 적용하는 도시농업전문가가 하나의 예다. 전국정책네트워크 진형익 대표는 “일자리를 넘어 일거리 정책이 필요하다”며 청년이 일하는 방식을 스스로 찾아 자신의 직업 자체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거 청년이 머물 곳은 어디에
청년들에겐 내 집 마련은커녕 전·월세를 내는 것도 버겁다. 모아놓은 자금이 적은 청년들은 당장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에 달하는 월세 보증금과 전세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청년이 현실적으로 이를 감당하기는 어렵다. 많은 청년들이 무소득자기에 대출을 받기가 쉽지 않으며, 매달 월세와 관리비를 내면 생활비를 충당하기도 빠듯하다. 2020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청년 가구는 전세자금 대출지원(39.1%), 주택 구입자금 대출지원(23.4%), 월세보조금 지원(16.3%) 등 금융지원을 가장 필요로 한다.
청년의 주거난 해결을 위해선 청년 금융 지원의 확대가 필요하다. 청년 전용 버팀목 전세자금을 비롯한 세 가지의 청년 대출 지원의 한도는 7천만 원에서 1억으로 전세자금으로는 충분치 않다. 월세 대출 한도는 3,500만원 수준으로 전세 대출의 절반 수준이다. 만 25세 미만 청년과 무소득자의 경우 대출 한도는 최대 3천만원으로 제한된다. 계속해서 오르는 전·월세 보증금을 고려하면 집을 구하기엔 빠듯한 금액이다.
청년 주거난을 해결하려면 장기적으로 보증금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본, 미국 등 주변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보증금은 현저히 높다. 일본에서 보증금 액수는 월세의 2~3배 정도로, 예기치 못한 상황을 대비한 ‘보증금’의 의도에 맞게 책정된다. 이동수 대표는 “(한국은) 주인이 임차인에게 받은 보증금을 다른 곳에 재투자하는 구조기에 보증금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며 보증금을 합리적인 액수로 낮추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집을 구하기 어려운 청년을 위해 정부는 청년임대주택을 마련했지만, 가격과 면적에서 경쟁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용면적 20㎡(약 6평)을 초과하는 역세권 청년주택의 가격은 인근 오피스텔 시세를 웃돈다. 청년들이 주로 거주하는 원룸과의 가격 격차는 더욱 크다. 국토교통부와 ‘직방’이 월세를 모두 보증금으로 전환한 ‘환산전세금’을 비교한 결과, 20㎡ 원룸의 환산전세금은 1억 393만원으로 역세권 청년주택보다 2000만원 이상 저렴했다.

서울 송파구 삼전지구 행복주택 전경 ⓒ국토부
일부 청년임대주택의 협소한 공간 문제도 청년의 정착을 어렵게 한다. 청년임대주택인 행복주택의 6개월 이상 장기 미입주 비율은 전용면적에 반비례한다. 전용면적이 10-20㎡(약 3-6평)인 주택의 미입주 비율은 12.5%로 가장 높은 반면, 50㎡(약 15평) 이상은 모두 입주 상태다. 이동수 대표는 “좁은 데다 가격도 그리 저렴하지 않은 주택은 청년이 입주를 망설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청년의 주거 문제는 1인 가구 대상 주거 서비스의 부족에서도 나타난다. 홀로 자취 중인 20대 청년 A씨는 “주거비 지원이 시급한 건 맞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라며 “전반적인 주거 환경을 지원해주는 서비스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대인과 임차인 간 분쟁이 생겼을 때 1인 가구 임차인을 돕는 청년 주거 상담 서비스가 하나의 예시다. 이사 지원과 가전 대여 서비스를 통해 단기 월세 계약을 맺는 청년들의 잦은 이사를 도울 수 있다. 진형익 대표는 주거 서비스 지원이 “현실적으로 청년 1인 가구에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들”이라며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 당사자인 청년 1인 가구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해야 한다고 말했다.
#젠더 청년 젠더 문제의 핵심을 보지 못하는 정치권
지난해 12월 리얼미터가 19세 이상 성인 1,0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대가 꼽은 한국사회의 가장 심각한 갈등은 ‘젠더’(56.5%)다. 성평등에 관한 남녀 간 인식 차이도 크다. 청년 남녀 간 젠더 인식의 차이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 대한 상반된 평가에 기인한다. 올해 여성가족부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여성의 74.6%는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불평등하다고 답한 반면 남성의 51.7%는 남성에게 불평등하다고 답했다.
젠더 문제의 원인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이동수 대표는 “젠더 문제의 핵심은 공정”이라며 “정책의 수혜자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누구에게 혜택을 더 주느냐’의 공정 문제가 떠오른 것”이라 평가했다. 반면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권수현 대표는 젠더 문제를 동등한 상황에 놓인 세력 간 갈등으로 명명하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다. 권 대표는 “사회 구조 자체가 여전히 남성중심적”이라며 여성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이 젠더 문제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젠더 문제의 핵심에 대해선 이견이 있지만, 정치권의 젠더 의제 대응 방식에 대해서는 고민의 깊이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권수현 대표는 “지금 정치인들은 젠더에 대한 이해가 없다”며 “젠더 의제에 관심을 보이는 소수는 이를 이용하려 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치권은 청년 젠더 의제에 소극적이거나 지지층 확보에 이용하려는 모습을 보여왔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는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토크콘서트에서 “젠더 문제에 대한 분석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며 구체적인 입장표명을 피했다. 반면 국민의힘 이준석 당대표는 소위 ‘이대남(20대 남자)’의 지지를 통해 정치적 기반을 다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준석 당대표는 자신의 책 『공정한 경쟁』에서 ‘채용에서 할당제를 비롯해 특정 성별에 대한 우대 선발이 용인되면 안된다’며 ‘할당제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남성은 더 큰 소외감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젠더에 대한 현 정치권의 단편적인 접근은 실효성 없는 젠더 정책으로 이어진다. 그 예로 이낙연 전 대표는 군 장병 제대 시 3000만원을 지급하는 ‘사회출발자금’ 정책을 제안했다. 진형익 대표는 “그때그때 이슈가 되는 사안에 대해 급하게 정책을 만든 결과”라며 단발성 현금 복지가 군대를 둘러싼 갈등을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이 군대를 둘러싼 갈등 이면에 자리한 청년들의 문제의식에 대해선 무심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20대 청년 B씨는 “군 복무에 대한 현금성 지원보단 군대 내 열악하고 부조리한 환경 개선부터 이뤄져야 한다”며 “보다 근본적으로는 징병제 자체가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야권을 중심으로 정치권에서 대두된 여성가족부(여가부) 폐지론 역시 ‘이슈 몰이’를 위해 젠더 갈등에 정치인들이 편승한 결과로 평가된다. 전문가들은 여가부 ‘때문에’ 젠더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젠더에 대한 근본적 인식 차가 갈등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은 “여가부가 폐지된다고 해서 젠더 갈등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정치권이 근본적인 갈등의 원인 대신 갈등의 표면적 소재를 놓고 논쟁 중이라고 평가했다. 여가부를 폐지하고 업무를 각 부처로 분산시켜야 한다는 후보들의 공약이 여가부의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는 비판도 있다. 정영애 여가부 장관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 97개국에 여성·평등 업무의 컨트롤타워 부처가 있는 것은 업무가 각 부처로 분산됐을 때 여성·평등 정책의 추진이 약화되기 때문’이라며 여가부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올해 7월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열린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규탄 기자회견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정책을 만드는 당사자들이 청년이 겪는 문제와 청년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할 때 청년 정책은 ‘청년을 위한 정책’이 될 수 없다. 정책이 청년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위해선 청년의 목소리가 직접 반영돼야 한다. 진형익 대표는 “청년에게 정책 전반을 평가할 기회를 줘야 한다”며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청년 참여를 강조했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청년이 직접 정책을 만드는 당사자가 되는 것이다. 청년의 목소리가 정치에서 누락되고, 왜곡되고, 때로는 이용되는 지금. 청년의 정치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