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의 한국인에게 ‘세계화’, ‘글로벌 시대’, ‘지구촌’은 친숙한 표현이다. 국내 외국인주민은 200만 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한국에 견고한 배제의 벽이 있다고 말한다.
디아스포라는 본래 강제로 혹은 불가피하게 이동한 이주민들을 가리켰지만 지금은 이주민 전반을 가리키는 용어로 바뀌었다. 난민, 조선족, 탈북자 등이 디아스포라에 해당한다. 한국 사회는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디아스포라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선과 혐오, 그 아래 깔린 인식을 짚어봤다.
‘국민이 먼저다’, 난민 안 받아요
지난 8월 아프가니스탄인 390명이 한국에 입국했다. 탈레반을 피해 입국한 이들에게 주어진 이름은 난민이 아닌 ‘특별기여자’였다. 특별기여자는 본래 ‘국적법’과 ‘출입국관리법’에 없던 표현이다. 새로운 표현까지 만들어가며 이들을 난민이 아닌 지위로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법무부 산하의 난민지원단체 사단법인 피난처의 이진하 활동가는 “지난 2018년 예멘 난민 수용 당시 있었던 현상을 염두에 둔 것”이라 분석했다. 수용의 당위성을 강조해 여론의 ‘난민 혐오’를 무마하려 했다는 것이다.
2018년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에는 예멘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청원들이 빗발쳤다. 청원인의 대다수는 ‘무슬림 난민이 테러와 범죄를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난민과 범죄를 연관짓는 것은 지금도 여전하다. 지난해 유엔난민기구와 한국리서치가 진행한 ‘대한민국 난민 인식 변화 조사’에 따르면 난민 수용 반대 이유는 ‘난민 수용을 위한 정부와 국민의 부담’(64%)과 ‘범죄 등 사회문제 야기’(57%)였다.
한국의 난민 혐오는 무슬림 혐오와 맞물린다.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백일순 연구원, 구기연 연구교수는 국내 난민 이슈에 관한 연구를 통해 한국의 난민 논의를 ‘난민=무슬림=범죄자’라는 공식으로 설명했다. 이슬람 국가인 예멘의 난민이 유입된 2018년은 ISIS의 테러로 무슬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다. 그리고 예멘 난민은 한국이 직접 경험한 최초의 대규모 난민이었다. 연구진은 낯선 난민에 대한 불안과 무슬림에 대한 공포가 뒤섞여 두 집단을 동일시하는 논리가 양산됐다고 분석했다.

대구 대현동 이슬람 사원 건립 반대 현수막
이 공식은 몇 년째 한국에 정착해있는 무슬림 이주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대구 북구 대현동에서는 지난해 12월 시작된 무슬림 사원 건립이 몇 달째 중단 중이다. 인근 주민들이 무슬림 사원 건립 반대 운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경북대학교가 위치한 대현동은 무슬림 유학생들이 8년간 거주하던 곳이다. 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이자 대구경북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집행위원장인 서창호 활동가는 “8년 동안 공존해왔는데 (최근 들어) 갑자기 혐오의 표출이 과격해졌다”고 말했다.
서창호 활동가는 아프간 난민 사태 이후 건립 반대 세력의 혐오 발언이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대현동 일대엔 탈레반을 언급하며 무슬림을 공격하는 현수막이 즐비했다. 서 활동가는 혐오 세력이 “ISIS와 탈레반이 무슬림의 전부인 것처럼 사고한다”며 “무슬림에 대한 이해와 정보가 부족한데, 알아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낙인부터 찍는다”고 비판했다.
난민과 무슬림에 대한 공포의 실체는 무엇일까. 이진하 활동가는 “난민 수용 이후 범죄율이 특별히 상승한 바는 없다”고 일축했다. 이 활동가는 “난민은 범죄 적발 시 바로 강제출국될 여지가 있기에 보통 범죄와 연관되지 않으려 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덧붙였다. 이슬람권 국적자가 비이슬람권 국적자보다 범죄율이 높은 것도 아니다. 2019년 기준 국적별 10만 명당 범죄 검거지수를 보면 이슬람권 국가들은 상위권에서 하위권까지 고르게 분포했다.
이러한 사실이 언론에 다수 보도됐음에도 불구하고 난민에 대한 심리적 장벽은 여전하다. 아프간 난민 수용에도 거센 반대 여론이 있었다. 서창호 활동가는 그 배경을 ‘국민이 먼저다’라는 구호에서 찾았다. 서 활동가는 “‘국민이 먼저다’에는 국민이 아닌 사람은 배제해도 된다는 인식이 담겨있다”며 “(그런 표현이) 혐오와 차별에 대한 자기확신을 키운다”고 논했다. 국민과 국민이 아닌 사람 사이의 경계를 강조하면서 일방적인 반대 정서를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조선족, ‘동포’에도 급이 있나요
난민이 외부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디아스포라라면, 조선족은 한국에서 외부로 이주한 디아스포라다. 조선족은 1945년 이전 만주 지역으로 이주한 한민족과 그 후손이다. 한국계 중국인, 중국동포라 불리기도 한다. 한중수교 이후 경제적인 이유로 한반도에 이주하는 조선족들이 급증했다. 법무부 출입국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거주 조선족은 87만 명에 이른다.
조선족은 국적상 중국인으로 ‘재외동포’에 포함된다. 외교부에 따르면 재외동포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외국에 장기체류하거나 외국의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 또는 ‘국적에 관계없이 한민족(韓民族)의 혈통을 지닌 사람으로서 외국에서 거주·생활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그러나 재외동포들 사이에서도 차등 대우가 있다. ‘국민이 먼저다’가 난민 등 외국인 이주민을 배제하는 논리라면, 재외동포 차별은 경제적 논리를 따른다.

보이스피싱하는 조선족을 희화화한 ‘개그콘서트’의 ‘황해’
조선족에 대한 인식은 각종 대중매체에서 잘 드러난다. 영화 《청년경찰》(2017), 《차이나타운》(2014), 〈KBS〉 ‘개그콘서트’의 ‘황해’ 등 미디어에서도 조선족은 범죄자로 자주 묘사됐다. 한국의 조선족 담론을 연구한 남서울대 김지혜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언론의 보도 방식에 그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오원춘 사건, 박춘풍 사건 등 2000년대 조선족이 연루된 강력범죄가 언론에서 크게 다뤄졌는데, (해당 보도들은) 범죄 사건 자체보다 조선족에 초점을 뒀다”며 “조선족이 가해자라는 걸 제목에서부터 강조해 대중에게 그런 인식이 굳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 국적자의 범죄율은 다른 국적자보다 높지 않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전체 외국인 범죄자 3만 5,390명 중 중국 국적이 약 48%를 차지했다. 하지만 2017년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 중 46.7%가 중국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 국적자의 범죄율이 특별히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인구 10만 명당 검거지수를 보면 중국 국적자 수의 순위는 전체 조사 대상 16개국 중 7위였다. 전체 범죄자 수에서 외국인 범죄자의 비중은 2%에 불과했다.
김지혜 교수는 “우리는 조선족을 범죄자로 보거나 불쌍하게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교수의 연구에 참여한 조선족 청년들은 ‘동남아보다 못살고 불쌍하다’ 같은 발언을 일상적으로 들었다고 증언했다. 반대되는 것 같은 두 입장은 사실 ‘그들이 우리보다 열등하다’는 인식에서 시작했다. 김 교수는 “못사는 나라에서 돈 벌러 왔으니 범죄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관점과 “열등해서 불쌍하고, 우월한 한국 사회에 동화돼야 행복할 것”이라는 관점이 공존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제적인 것이 열등함의 기준이 된다”고 덧붙였다.
한국은 경제적 목적에 따라 동포의 자격을 가르기도 했다. 1997년 제정된 재외동포법의 재외동포 인정 기준이 그 사례다. 당시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 출국한 이주민은 재외동포로 인정되지 않았다. 그 중 대부분은 일제강점기 이주한 조선족과 중앙아시아의 고려인이었다. 2001년 헌법재판소는 해당 조항이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비자에 특별한 개선은 없었다. 이주민 인권 활동가이자 조선족 5세인 박동찬 활동가는 “IMF 이후 서구 지역 재외동포의 투자가 필요해 재외동포법을 제정한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며 “한국은 어디까지나 국가적, 산업적 필요에 의해 이주민을 통제하고 관리한다”고 꼬집었다.
탈북민, 이데올로기의 경계 위에서
민족이라는 구분으로 특수한 위치에 놓여있는 디아스포라는 조선족뿐만이 아니다. 탈북민은 분단이라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서 등장한 디아스포라다. 탈북민들은 남북의 대치상황에서 자신이 안전한 사람임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모 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탈북민 A씨는 “(체제 갈등 때문에) 북한 사람은 위험하거나 도움이 안 되는 사람으로 인식된다”고 말했다. A씨는 “두만강 근처에 갔다가 간첩으로 몰린 탈북민들도 있다”며 탈북민들이 가치관의 차이로 불이익을 받을까 늘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사업을 운영하는 탈북민 B씨는 “남북 간의 갈등이 뉴스에 나오면 그게 마치 내 잘못인 것 같아 움츠러든다”고 토로했다.
탈북민은 남한 사회의 수혜자라는 인식도 있다. B씨는 한 공무원으로부터 “탈북민은 정부에서 지원도 많이 받고, 세금으로 먹고 사는데 무엇이 불만이냐”는 발언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월 40만 원 정도에 불과한 생계비가 지원되는 것은 정착 후 첫 6개월뿐이다. 이후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지원이 중단된다. B씨는 이러한 시선이 탈북민에 대한 무시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탈북민 역시 경제적 능력을 기준으로 ‘열등한 집단’이라 여겨지는 것이다.
A씨는 탈북민이 목소리를 낼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A씨는 남한에서 박사 학위를 땄음에도 일을 받지 못하고 있다. 수차례 논문을 써 북한 연구 프로젝트에 지원했지만 계속 떨어졌다. 북한 출신이 강점이 되는 분야에서도 탈북민의 진입이 쉽지 않은 것이다. A씨는 “북한 연구자의 북한 연구를 남한 연구자의 것과 비교하면 학문에 큰 도움이 되겠지만, 그런 차이를 긍정적으로 활용할 기회가 적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탈북민 생애사를 연구한 사단법인 샌드연구소 와다 신스케 연구위원은 “혼자 살긴 어렵지만 지원은 받을 수 없는 탈북민들이 특히 어려움을 겪는다”고 설명했다. 탈북민 공동체의 부재는 이런 사각지대를 방치시킨다. 다른 이주민들과 달리 탈북민은 이익단체가 없다. B씨는 “남한에서 살아가기 위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단체도 거의 없고, 모여서 탈북민의 목소리를 내거나 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A씨는 “연결이 안 되니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며 “주체적으로 사회적 역할을 하려는 탈북민 단체에 대한 지원이 애초에 없다”고 비판했다.
탈북민 공동체가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남한 사회에서 탈북민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A씨는 “북한에서의 과거를 얘기하면 조롱받는다. ‘그게 좋으면 거기 살지 왜 왔냐’는 식”이라며 “북한 사람은 고향도 추억도 지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와다 신스케 연구위원은 “일부러 북한 출신임을 숨기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 문화적 요소가 복잡하게 얽힌 정체성의 혼란을 겪지만 억누르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을 구분짓는 방법
디아스포라에 대한 한국 사회의 부정적 태도는 어디서 시작했을까. 명지대 정회옥 교수(정치외교학과)는 ‘GDP 인종주의’를 배경으로 지목했다. ‘GDP 인종주의’는 인종차별이 경제적 계급차별과 복합돼 있다고 설명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에게는 인종차별과 가난한 하층 노동자에 대한 계급차별이 동시에 작동한다. GDP가 낮은 유색인종 국가 출신 이주민은 GDP가 높은 백인 중심 국가 출신 이주민보다 멸시된다. 난민, 이주노동자, 조선족, 탈북민이 열등하다는 인식 뒤에도 ‘GDP 인종주의’가 있다. 김지혜 교수는 이들을 차별하는 태도에 “못사는 나라에서 돈 벌러 왔으니 막 해도 된다는 심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한국사회 인종차별 차별사유 조사 결과 ⓒ국가인권위원회
소수자 배려가 부족한 한국 사회의 태도 역시 ‘GDP 인종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서창호 활동가는 “한국같은 치열한 경쟁 사회에선 승자의 논리가 일방적으로 학습된다”며 “권력을 통해 소수자에게 낙인을 쉽게 찍는 가치관이 자연스러운 사회”라고 비판했다. 약자를 짓밟고 이득을 취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경쟁 사회의 문제라는 얘기다. 정회옥 교수는 “(한국이) 그간 개발 이데올로기에 익숙해져 소수자를 배려할 여유를 갖지 못했다”며 “특히 외부 위협을 직면했을 때 소수자에 대한 일반화가 쉽게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한국의 인종주의가 ‘인종’이 아닌 다른 이유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을 취한다고 설명한다. 전북대 전의령 교수(고고문화인류학과)는 “한국의 반다문화 담론은 대체로 ‘인종주의자는 아니지만 정당한 이유가 있어 반대한다’는 식”이라며 한국의 배타적 태도를 ‘인종 없는 인종주의’라고 평했다. 생물학적인 인종의 차이보다 ‘극복할 수 없는 문화적 차이’를 내세워 배제와 혐오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인종 없는 인종주의’는 경제·사회·종교의 영역에서도 적용된다. ‘이주민이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다’, ‘무슬림이 테러를 일으킨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전의령 교수는 인터넷 상의 반다문화 담론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각종 범죄를 일으키고, 서민의 일자리를 빼앗고, 자신들의 권리까지 당당히 요구하는, 무임승차하는 불량한 이주민’이라는 이미지가 자리잡았다고 분석했다. 이런 이미지가 이주민을 사회적 분노, 혐오, 그리고 불안감의 대상으로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자격 없는 불량한 이주민’에게 ‘선량한 진짜 국민’이 역차별을 당한다는 주장이 따라온다. 전 교수는 이것이 “평범한 국민으로서 사회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는 식으로 (차별의) 합법성을 주장하는 전략” 이라고 꼬집었다.
이주민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결국 ‘어떤 이의 권리는 박탈해도 무방하다’는 배제의 논리 안에서 자리잡았다. 활동가들과 이주민 당사자들은 “한국에서 이주민은 포용보다 관리의 대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국가의 발전을 위한 수단인 동시에 무임승차를 일삼는 골칫거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주민은 오해와 두려움을 넘어 동등한 이웃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