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어떤 종류의 생각이 상황과 맥락을 달리하며 나에게 몰아치듯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시기가 있다. 최근 몇 달 동안은 ‘남김없이 말해질 수 있는 감정이나 사건 같은 건 없다’는 생각이 날 지배하고 있었다. 글 쓰는 것을 즐기고 심지어는 꽤나 잘 쓴다고 느끼던 때도 분명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글이라는 것이 어떻게 해도 나의 생각이나 의도를 어디까지나 부분적으로 반영할 수 있을 뿐이라는 인식에 사로잡혔다. 머릿속에서 부유하는 생각들을 정연하게 출력해내는 행위 자체에서 만족감이 아닌 회의를 느끼기 시작하자 글을 쓰다가 자주 전부 놓아버리고만 싶어졌다. 공허한 단어들의 나열일지라도 유려한 문장을 쓰고 싶어서 수사(修辭)에 공을 들이던 시절이 차라리 그립기까지 했다.
그런 ‘글럼프’(‘글 슬럼프’를 부르는 나만의 단어다)의 한중간을 지나던 중에 168호에서는 특집을, 169호에서는 커버를 맡게 됐다. 심리적으로 부담이 상당했다. 기사라는 글이 특히나 나를 난감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던 즈음이라 더 마음이 복잡하기도 했다. 기사는 소재가 정해진다고 해서 바로 글의 논조까지 결정할 수 있다거나, 주제와 관련된 자료를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계획해 조사할 수 있는 성격의 글이 아니었다. 글의 청사진을 잡아두고 개요를 짜는 일이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취재원을 만나봐야 비로소 알게 되는 세계가 기사에 미치는 영향력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목소리에 확성기를 대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취재 이후 기사를 쓰면서는 취재원의 말을 전부, 있는 그대로 옮길 수 없다는 사실로 인해 마음 한구석이 괴롭기도 했다. 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누락되거나 재가공되는 말들이 누군가의 세계를 해칠까봐 겁이 났다. 게다가 이번 커버 기사는 근래 내가 가까이 지냈던 존재들의 이야기를 담았던 만큼 더욱 실수하고 싶지 않았다. 디아스포라들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 사회의 민낯을 누구보다 잘 담아내고 싶다는 욕심이 기획 단계에서부터 가득했다.
과욕 때문이었는지 기사가 완성되기까지 애를 많이 먹었다. 전하고 싶은 말이 많다 보니 오히려 생각이 엉켜서 진도가 제대로 나가지 않았다. 엉성하고 조잡했던 초고가 결국 무사히 발간될 수 있는 형태의 기사로 거듭난 것은 함께 고민하고 조언해준 동료들 덕분이었다. 이번 기사의 키워드 중 하나였던 ‘공존’은 이 기사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 그 자체이기도 했다.
혼자서도 완전할 수 있다는 말이 얼마나 허구적인지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굳이 무슨 돌봄정의를 논할 때의 거창한 차원에서가 아니라, 내가 일상적으로 다른 존재들과의 교류에 얼마나 크게 의존하고 있는지를 온몸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이주와 디아스포라’라는 주제로 커버를 기획할 수 있게끔 내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 지인들, ‘글럼프’에 빠져있던 내 글을 성심껏 손봐준 데스크, 그리고 마침내 발간된 기사를 읽어줄 미래의 독자들까지. 지난 두어 달은 이들 덕분에 무결하지 않은 나의 글이 그나마 온전해지며 누군가에게 가닿을 수 있음을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그들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어쩌면 이제는 내 글이 미처 담아내지 못하는 현실의 여백을 조금 덜 미워하고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도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