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징병제 논의는 새삼스럽지 않다. ‘여자도 군대 가라’라는 형태로 표출돼온 목소리 이면에는, 징병제가 강요하는 희생에 대한 억울함과 군대 문제가 ‘젠더 갈등’으로 번진 맥락이 모두 담겨 있다. 반복되는 여성징병제 논의는 한국 사회에서 군대가 안고 있는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오랜 숙제로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과연 여성징병제는 군대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여성징병제를 논하기 전에 먼저 한국의 병역 제도 전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여성징병제 논의와 함께 등장하는 주장을 검토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병역 제도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봤다.
여성징병제=성평등? 등식 새로 쓰기
지난 4월 19일 국민청원 사이트에 올라온 ‘여성도 징병대상에 포함시켜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에서 작성인은 ‘성평등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병역의 의무를 남성에게만 지우는 것이 후진적이고 여성비하적’이라고 주장했다. 남성만이 군대에 가는 현 상황이 평등하지 않으며, 여성징병제를 통해 성평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해당 청원에는 29만여 명의 동의가 이뤄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여성 징병제 요구 청원
그렇다면 정말 여성징병제 시행이 성평등으로 가는 길일까. 전문가들은 여성징병제가 등장한 사회적 맥락을 생각하면 그렇게 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성공회대 시민평화대학원 김엘리 외래교수(실천여성학)는 “여성의 군 참여가 그 자체로 성평등이라는 건 하나의 프레임일 뿐”이라며 “국방부에서 여군을 받아들일 때도 같은 논리를 펼쳤지만 여군이 성평등한 방식으로 통합되지 못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90년대 이후 여성의 군 참여가 본격화됐다. 당시 국방부는 군 전문화라는 정책 기조하에 우수인력으로서의 여군을 강조하며 남군과 여군이 동등하게 인정받을 수 있음을 홍보했다. 여군은 정말 군 내에서 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을까. 국가인권위원회의 <여군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병과 선택은 개방되어 있으나 실질적인 선택의 폭은 좁은 편이다’라는 문항에 61.9%, ‘군대에서 여군이 자기 부서에 배치되는 것을 꺼려하는 분위기가 강하다’라는 문항에 57%의 여군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여군의 기여에 대한 제한적인 평가로 인해 여군은 강인함을 더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기도 한다. 익명을 요청한 여군 A씨는 “똑같은 군장을 메고 훈련을 받아도 여군을 동등하게 바라보지 않는 사회적 시선에 회의감이 들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A씨는 “여군이라고 평가절하되는 시선을 경험하면서 적어도 체력으로는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의 군 참여를 제한하는 논리로 가장 빈번하게 언급되는 것이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차이다. 2010년 헌법재판소는 남성에게만 병역의무를 부과하는 병역법의 위헌 심사를 요구한 헌법소원을 각하하면서 ‘근력 등이 우수한 남성이 전투에 더욱 적합한 신체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러한 시각은 여성 징병제 논의에서도 반복돼 나타난다. 한 남성 인터뷰 참가자는 “건장한 남자들도 교대로 세 시간씩 산을 타다 보면 무릎이 아파서 병원을 가곤 했다”며 “징병으로 뽑혀온 불특정 다수의 여성이 군대가 요구하는 신체 능력을 충족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남녀의 신체적 차이를 바탕으로 군대 내 성별 분업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4월 에서 진행한 여성징병제 찬반 토론회에서 자주국방네트워크 신인균 대표는 ‘CCTV 경계병이나 군수 지원, 교육 훈련 등 전투부대 외에 군 내에 여성이 더 잘할 수 있는 병과들이 많다’는 의견을 내놨다. 신 대표는 ‘남녀의 신체적 차이를 고려해 여성의 복무기간을 남성보다 짧게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의 말에 제기되는 의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여성의 신체가 정말 군대에 부적합한지에 관한 물음이다. 여성학 연구자 권김현영 씨는 “군대에서 여성과 남성에게 적합한 분야가 따로 있다는 주장은 우리 사회의 오랜 성별 분업적 사고를 답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이 전투에 적합하지 않다는 말에 담긴 젠더 통념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엘리 교수 역시 “생물학적 차이와 직무를 연결하는 과정에 개입된 선입견을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강한 남성’의 모습이 반드시 이상적인 군인상이라는 생각에도 물음을 던질 수 있다. 군인권센터 방혜린 상담팀장은 “군대는 군수, 병참, 계획, 보급 등 다양한 분야가 합쳐져 구성된다”며 “<가짜 사나이>나 <강철부대> 등에서 재현되는 모습이 ‘진짜 군인’처럼 비춰질 때 그에 부합하지 않는 군인은 배제된다”고 말했다. 김엘리 교수는 “전쟁 양상 및 군사 전략이 백병전에서 고기술 정보전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군대와 관련된 환경 변화를 고려하면 군대 내 여성의 역할에 대한 판단도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한 군인상에 여성이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도 선입견이지만, 강한 군인상 역시 절대적이지 않다는 비판이다.
두 물음에 대해 시민단체와 연구자들이 제시하는 답은 결국 같다. 여성의 군 참여는 군대의 남성중심성을 해소하는 과정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권김현영 씨는 “성평등한 군대에 대한 기획이 없는 여성 징병은 성평등에 도움이 되기 보다 오히려 성차별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군 A씨는 “애초에 여군을 같은 군인으로 보는 게 아니라 성적인 대상 혹은 약자로 보는 인식 자체가 잘못됐다”며 여성 징병제에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방혜린 팀장은 “얼마나 ‘빡센가’를 중심으로 역할이 계층화되는 군대 구조에서 ‘여성은 험한 일은 못하니까’라는 이유로 여성을 지원부대 등으로 배치할 경우 여성이 군대에 온다고 해도 남성과 여성 사이의 위계는 지속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여성의 군 참여가 성평등한 문화 속에서 이뤄진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나라가 노르웨이다. 노르웨이는 사회 전반의 성평등 수준과 비교해 ‘군대라는 영역만이 성평등이 이뤄지고 있지 않고 있다’는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2015년에 여성징병제를 실시했다. 대체근무 없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비롯해 징병에 대한 개개인의 자율적 의사를 존중하는 사회적 제도가 마련돼 있기도 하다. 전쟁없는세상 이용석 활동가는 “노르웨이의 경우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여성 징병제를 시행한 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성평등을 위한 노력이 축적된 결과가 여성징병제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놨다. 성평등한 군대를 위해선 성평등한 사회가 되는 과정이 함께 동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엘리 교수는 “성평등은 독자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며 “한 사회의 다양성이나 민주성이 함께 높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징병제야, 바보야!
여성징병제에 대한 찬반 논의는 징병제가 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와 부조리를 놓치고 있다. 징병제가 지금과 같은 형태로 만들어진 이유 자체를 질문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방혜린 팀장은 “국가가 징병제를 통해 남성의 신체와 노동력을 착취하는 구조 속에서 여성 징병을 논할 수 없다”며 “징병제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징병제가 남성들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유지돼 온 구조를 문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징병제가 시작된 때로 돌아가보자. 지금의 남성징병제는 1949년 병역법 제정을 기점으로 도입됐다. 징병제가 안정화되기까지 국가에 의해 다양한 전략이 행해졌다. 상지대 신병식 교수(정치학과)는 학술지 《경제와 사회》에 기고한 논문 「박정희시대의 일상생활과 군사주의」에서 ‘1968년 주민등록법 실행을 통한 인구 통제 및 병역회피의 범죄화를 통해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담론이 개개인에게 내면화됐다’고 설명한다. 징병제가 시민권과 결부돼서 발전한 서구의 역사와 달리 한국은 권위주의적인 국가에 의해 병역 의무가 부과된 후 사후적으로 국민의 권리라는 담론이 만들어진 것이다.

남성만 의무복무를 하는 현 징병제가 바람직하다고 답한 성별, 연령별 응답률. 전체 여성, 남성 모두 40% 이상이 현 징병제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병역제도를 재검토할 필요성이 드러난다. © 조영주·문희영·김엘리(2019), 병역담론의 전환을 위한 기초 연구, 서울: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이런 상황에서 병역 의무가 질문의 대상이 되기는 어려웠다. 양현아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한국 사회에서 국가는 병역 제도를 남성에 대한 차별이나 자유권의 억압이라는 관점에서 제대로 검토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양 교수는 최근까지 발의되고 있는 군 복무자 보상에 관한 다수의 법안을 가리켜 “남성 의무복무제의 정당성에 제기되는 비판은 병역 시스템 자체를 재구성하는 것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이를 군 복무에 대한 보상으로만 해결하려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한 남성 인터뷰 참가자는 ‘(남성들이 수긍할 수 있는) 보상을 줄 수 없다면 군대에 왜 가야 하는지에 대해 국가가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현행 징병제가 단순히 남성들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넘어 어떻게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왔는지를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엘리 외래교수는 “한국 사회는 남성, 군인, 국민이 동일시되어 온 역사를 갖고 있다”며 “남성이면 당연히 군대를 가고, 군인이 돼서 국민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관념이 오랫동안 이어져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병역법이 표방하는 군인의 몸은 ‘이성애자 한국 원주민 남성’으로, 누가 군인이 될 수 있는가를 중심으로 국민과 비국민의 경계 짓기가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군 문제를 논할 때 ‘누가 군대를 가야 하는가’를 넘어 ‘누가 군대에 오도록 허용받았는지’를 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1984년에는 ‘외관상 식별이 명백한 혼혈아는 징집을 면제한다’는 조항이 병역법에 삽입됐다가 2010년 병역법 개정으로 폐지됐다. 지난해 故 변희수 하사는 트랜스 여성으로 성별 정정 이후 여군으로 복무하길 희망했으나 ‘심신장애’를 이유로 강제 전역 판정을 받기도 했다.
남은 것은 징병을 확대해서 대규모 병력을 유지하는 게 타당한지에 관한 문제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지난 4월 『박용진의 정치혁명』을 통해 ‘모병제와 남녀평등복무제로 전환해 강력한 군사력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박 의원의 주장은 현재의 군사력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안보 개념 자체를 다시 생각한다면 그렇게 보기만은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이용석 활동가는 “안보 위협 자체가 과거와 달라진 상황에서 새로운 안보위협에 대응할 비군사적인 수단이 확장될 때 국민의 평화와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며 “병력규모를 산출할 때 안보정책이 먼저 논의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대 사회의 안보 위협이 변화함에 따라 적정한 군사력도 달라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인천공항에서 역학조사 지원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군인. 현재 군사활동 이외의 재난 관련 대민지원 업무에도 군인이 참여하고 있다. ©국방일보 국방사진연구소
새로운 안보 위협에 대한 지적은 안보 개념 자체도 고정적이지 않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방혜린 팀장은 “식량 안보, 환경 안보, 인간 안보 등 우리 사회가 안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모두 안보의 영역에 포함될 수 있다”며 병력을 유지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김엘리 외래교수는 “한국 사회에서는 국가가 안보 영역을 독점해 왔다”며 “무엇을 안보의 핵심으로 보느냐에 대해 국민들이 주체적으로 논의할 장이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징병을 확대하기 이전에 안보 개념을 중심으로 군대의 역할을 새롭게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여성 징병 담론이 논의되는 방식 자체를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징병제가 기형적으로 유지돼 온 상황과 함께 한국 사회 및 군대의 강한 남성중심성을 먼저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여성징병제에 대한 단순한 찬반양론을 넘어 앞으로의 군대가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