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들의 의료인 면허는 유지되는가?

의료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쟁
의료인 성범죄 대책위 기자회견 ⓒ의료인 성범죄 전북대책위

  올해 2월, 금고형 이상의 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의 면허를 박탈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의료인에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조산사·간호사가 포함된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개정안에 즉각 반발했고, 환자단체와 여성단체 측에선 조속한 입법을 촉구했다. 국회에서는 법안을 두고 정치적 충돌이 일어났다. 개정안을 두고 이토록 열띤 논쟁이 일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모든 논쟁의 중심에는 ‘의료인 면허’가 있었다. 

의료인 성범죄 대책위 기자회견 ⓒ의료인 성범죄 전북대책위

중범죄를 저질러도 유지되는 의료인 면허

  2019년 경찰범죄통계에 따르면 전문직(의사·변호사·교수·종교인·언론인·예술인·기타) 종사자 중 중범죄를 저지른 피의자 5만 2,893명 중 의료인이 5,135명(9.7%)으로 가장 많았다. 이 중 147명이 성범죄 피의자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에 성범죄 피의자로 집계된 변호사는 13명이었다. 성범죄를 저지른 의료인 수는2015년 114명부터 2018년 163명까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총 686명에 달하는 의료인이 성범죄를 저질렀다.

ⓒ경찰청

  현행법대로라면 성범죄와 같은 중범죄를 저지른 의료인도 면허를 유지할 수 있다. 현행 의료법은 ‘형법상 직무 관련 범죄와 보건의료 관련 범죄’만을 의료인 면허 취소 대상으로 삼는다. 성범죄와 살인 등 금고형 이상이 선고되는 중범죄를 저질렀더라도 의료 관련이 아니라면 면허를 유지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성범죄를 저지른 의료인들은 지금껏 1개월 자격 정지 수준의 처벌을 받아왔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9년까지 단 5명의 의료인(의사 4명, 한의사 1명)만이 성범죄로 자격정지 1개월 수준의 행정처분을 받았다. 최근 5년간 강력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에 대한 면허 취소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의료법 개정안 바로알기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 등장한 것이 의료법 개정안이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의료법 개정안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는 경우 의료 관련 범죄가 아니더라도 의료인의 면허를 5년간 취소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기존 의료법이 의료 관련 범죄만 다뤘다면 현재 논의 중인 개정안은 의료 관련 범죄가 아니더라도 의사 면허를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의료법 개정안은 발의 단계부터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개정안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다음과 같은 근거를 들며 해당 개정안이 통과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①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

  반대 측에서는 의료법 개정안이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과잉금지원칙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이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절성 ▲법익의 균형성 ▲제한의 최소성을 준수해야 함을 의미한다. 의협은 의료법 개정안 반대 성명문에서 ‘의료행위와 무관한 형사제재를 결격사유로 규정한 것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헌법상 기본권인 직업수행의 자유 침해 및 적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의료 관련 범죄가 아님에도 면허를 제한하는 것은 과한 처사라는 지적이다.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소속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 역시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개정안이 과도한 제한을 가한다고 비판했다.

용산에 위치한 대한의사협회

  과잉금지원칙 위배 여부를 두고 여러 법률 전문가들의 견해는 다소 갈린다. 의료 전문 변호사인 법률사무소 이원 정이원 변호사는 “입법 방향 자체는 적합하나 법익의 균형성이나 제한의 최소성 측면에서 과잉금지원칙에 어긋난다”고 평가했다. 현재 개정안대로라면 의사는 금고 이상의 형을 확정받을 시 5년간 면허가 취소된다. 정 변호사는 “지속적으로 술기를 익혀야 하는 의사의 직업적 특성상 5년의 현장 경험 공백은 의사라는 직업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며 “변호사는 자격 취소 기간이 2년이라는 점에 비춰 볼 때, 면허 취소 기간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과잉금지원칙을 위배한다고 볼 여지는 있으나 위헌이라고까지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법무법인 지우 이준석 변호사는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을 정도로 중범죄인 경우에만 면허가 취소되고 수년 후 재발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위헌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② 이중처벌 금지원칙에 위배된다?

  개정안이 이중처벌 금지원칙에 위배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이미 형사적으로 처벌받은 사안에 대해 면허 취소라는 행정처분을 내리는 것은 이중처벌이라는 주장이다. 의협은 의료법 개정안 반대 성명문에서 ‘의료인이라는 이유로 선고된 형이 종료된 상태에서 일정 기간 동안 면허를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이미 형사상의 죗값을 치른 개인에게 과도한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형사처벌과 행정처분은 별개의 영역이라는 게 법률 전문가의 설명이다. 정이원 변호사는 “형사처벌은 사법부의 영역이고 면허 관리(행정처분)는 행정부의 영역”이라며 면허 제한은 이중처벌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정 변호사는 “이중처벌은 동일한 범죄에 대해 시간이 지나고 다시 처벌하는 것을 의미하고, 지금처럼 권한이 분산되는 경우는 이중처벌이라고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③ 모든 범죄를 면허 제한 대상에 포함하면 억울한 사례가 생긴다? 

  의료 관련 범죄일 때만 면허를 제한하는 현행 의료법과 달리, 의료법 개정안은 면허 제한 범위를 모든 범죄로 확대한다. 의협은 개정 취지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일들이 발생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조승국 의협 공보의사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개정법대로라면 병원 경영난으로 월급을 주지 못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아도 의사 자격이 박탈될 것’이라며 면허 제한 범위 확대에 반대하는 의견을 밝혔다. 

  의료법 개정안은 금고 이상의 형을 기준으로 면허를 제한한다. 어느 범죄든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확정받는 경우에는 죄질이 가볍지 않다. 의협 측에서는 근로기준법 위반 말고도 의도적이지 않은 교통사고 사망으로 인해 면허를 제한받는 사례를 들었다. 그러나 이창준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지난 3월 22일 브리핑에서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사고는 대부분 벌금형이고, 실형이나 금고 이상의 형을 받는 경우는 무면허 운전이나 상대 운전자 폭행 등 의도적이고 악질적인 사고일 때만 해당한다’며 우려를 일축했다.

  전문가들 역시 의협 측의 주장에 반박했다. 정이원 변호사는 “교통사고나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의사 자격이 박탈될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면서도 “법조문과 실제 사법부 판단을 구분해 보면 개정안의 처벌 조항이 과하다고 보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선거법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이 하나의 사례다. 순수하게 법만 따져보면 선거법을 위반할 경우 벌금 100만원 이상이면 당선자 직위가 상실된다. 그러나 사법부는 법조문과는 별개로 해당 범죄행위가 의원직을 상실할 수준인지를 심판한다. 정 변호사는 의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며 “면허를 박탈할 만한 죄질인지는 개별 재판부에서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준석 변호사는 “면허가 취소된다면 의사 개인의 불이익이 크다”며 “법원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할 때 보다 신중하게 판단할 것”이라 말했다.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찬반 논쟁과는 별개로 의료인의 범죄에 대한 사회적인 문제의식은 분명히 존재한다. 보건복지부 권덕철 장관은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법의 제재 수준은 그 당시의 사회적인 환경, 국민의 의식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며 ‘그런 차원에서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되고 논의가 이뤄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료인 중범죄 처벌’을 요구하며 36만 명의 동의를 기록했던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성폭행이나 살인 전과가 있는 의사에게 진료받고 싶지 않다’, ‘의사 면허에도 알맞은 제재가 필요하다’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의료인의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의료인의 도덕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거세지면서 개정안의 필요성 역시 커지고 있다.

의료법 개정안을 둘러싼 정치 공방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현재 개정안은 논의가 진척되지 못하고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소관 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복지위)에서는 통과됐으나 이후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못했다. 의료법 개정안에 우호적인 여당과 그렇지 않은 야당의 상황을 고려해볼 때, 개정안이 법사위를 통과해 본회의에 상정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법률안이 계류된 채로 국회 임기가 끝나면 해당 법률안은 그대로 폐기된다. 지금 의료법 개정안 논의가 사그라들면 2024년 21대 국회가 끝날 때까지 법사위에 머무르다 폐기될 수도 있는 것이다.

국회의사당의 모습.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지는 미지수다.

  의료법 개정안이 계류된 직후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수정안을 마련해 다음 전체회의에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3월 법사위 전체회의 안건에도 의료법 개정안은 없었다. 법사위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이 전문 검토보고서를 추가로 요청해 검토한 뒤 곧바로 논의를 재개할 예정’이라 밝혔다. 그러나 전문위원들은 3월 이후에 법사위원장실로부터 추가 검토보고서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개정안 통과에 차질이 생긴 데에는 의협의 압력이 작용했다. 의협은 의료법 개정안에 가장 강력하게 반발하는 이익단체다. 지난 3월 치러진 의협회장 선거에 출마한 모든 후보가 핵심 공약으로 의료법 개정안 통과 저지를 내세웠을 정도로 의협 내부의 반대 여론은 강경하다. 

  의협은 의료법 개정안이 복지위를 통과하자마자 즉각 행동에 나섰다. 복지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그간 논의에서 대안을 제시하지 않던 의협이 개정안 통과 소식에 즉시 의료법 개정안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설명자료를 보내왔다”고 밝혔다. 의협은 법사위 소속 위원들에게도 접근한 것으로 드러났다. <YTN>은 지난 3월 의협회장 선거를 앞둔 시점에 후보자들이 직접 야당 법사위원들을 찾아다니며 개정안의 문제점을 피력했다고 보도했다.

의료법 개정안이 나아가야 할 방향

  의료법 개정안이 폭넓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한 배경은 무엇일까. 의료 행위 중 일어나는 범죄에 대한 문제의식과 더불어 윤리적·도덕적 기준을 준수하지 않는 의료인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이원 변호사는 “의료인이 신뢰를 잃었기에 현재의 상황이 초래됐다”며 의료인이 국민에게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의료인의 도덕성에 대한 불신을 먼저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법 개정안은 사후 대응에 가까운 만큼 미리 중범죄를 막을 수 있도록 예방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채민 활동가는 “처벌을 내리는 것은 결코 예방이 아니다”라며 “국가는 현재 범죄로부터의 안전을 위한 기본적인 조치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예비 의료인일 때부터 관련 교육을 시행하는 것이 대안으로 꼽힌다. 채민 활동가는 “의료인 중범죄가 부도덕한 개인이 일으키는 특이범죄라는 인식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비 의료인 단계에서 예방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여성주의 단체 언니들의병원놀이 박슬기 의사 역시 의료인 성폭력 근절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의료인 양성을 위한 전 과정에서 실질적인 교육을 강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료법 개정안 통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그러나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의료인의 중범죄에 관한 논의는 시작도 하지 못했다. 의료 현장 안팎에서 의료인에 의해 발생하는 폭력은 국민의 기본권과 직결된다. 이권 다툼이나 정쟁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모든 이들의 ‘범죄로부터 안전할 권리’를 지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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