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독자, 책을 향유하는 존재로서의 어린이, 어린이문학. 모두 생소한 단어들이다. 모든 성인의 어린 시절 속에는 어린이책들이 있었고, 지금도 수많은 어린이들 곁에는 어린이문학이 있다. 그저 ‘애들이 읽는 유치한 동화’쯤에 그치지 않는 어린이문학의 세계. 그 세계의 잠재력과 앞으로 해결돼야 할 과제들을 짚어봤다.

어린이문학과 어린이 인권
어린이문학은 흔히 아동청소년문학이라고 불린다. 두 단어가 지칭하는 범주는 같지만, 어린이문학이라는 단어엔 어린이 권리 신장을 요구해 온 어린이 인권 운동의 역사가 담겨 있다. 어린이라는 단어 자체가 1920년대 어린이 운동가들이 아동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담아 사용하기 시작했던 용어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 높아진 어린이 인권의식은 어린이문학의 필요성에 힘을 실었다. 계간 『창비 어린이』의 원종찬 기획위원은 “아동을 생산노동에서 해방시키고, 아동을 성인과 동등한 인격적 존재로 대우하면서도 사회적 약자로서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근대에 자리잡은 덕분에 아동을 위한 문학도 따로 마련됐다”며 근대사회의 어린이 인권 운동과 어린이문학이 더불어 발전했다고 강조했다.
초창기 어린이 인권 운동이 어린이문학에 긍정적인 영향만을 준 것은 아니다.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는 “근대 아동문학의 배경에는 어린이를 계몽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고 비판했다. 여러 문학 갈래 중에 유독 아동문학의 가치를 설명할 때만 ‘교훈’이라는 말이 붙었다. 김 평론가는 성인 중심의 시각에서 “편향된 통제의 규범을 교훈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근대 어린이문학의 한계를 지적했다.
어린이문학은 오늘날 성인이 아닌 어린이가 주체가 되는 문학을 지향한다. 김지은 평론가는 “오늘날의 어린이문학은 어린이 독자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주체가 돼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했다”며 “지금은 어린이가 미적 경험의 주체가 된다는 것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한다”고 설명했다. 근대 어린이 인권 운동과 발맞춰 걸어온 어린이문학은 이제 어린이의 시각과 실제적인 욕망,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린이문학의 아동성과 문학성
독서 에세이 『어린이책 읽는 법』의 저자 김소영은 책에서 ‘어린이도 독서의 세계에서 어엿한 시민권자’라고 말한다. 어린이들도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선택해서 읽을 자유가 있으며, 어린이들의 그러한 욕구가 마땅히 존중돼야 한다는 의미다. 어린이들은 개개인마다 취향이나 관심사가 모두 다르므로 각자 읽고 싶은 책도 제각각이다. 어린이의 ‘읽을 자유’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어린이가 읽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춘 어린이문학부터 마련돼야 한다.

어린이문학은 아동성과 문학성이라는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아동성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어린이의 고유한 시선을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어린이의 눈에 비친 세계의 모습과 그 세계를 향해 어린이가 하고 싶은 말이 책에 담겨야만 어린이 독자가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아동청소년문학 전문출판사 바람의아이들 최윤정 대표는 “아동문학에서는 어린이를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작가는 자기 안의 어린이를 찾고, 그 아이와 더불어 지금 여기에서 자라나는 어린이의 성장을 돕는 조력자가 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린이 관점’을 견지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삐삐 롱스타킹』은 어린이의 솔직하고도 진솔한 마음을 잘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어린이가 어른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삐삐의 목소리를 통해 가감 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미 어린이 시기를 한참 지나온 성인 작가가 어린이의 마음을 온전히 대변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작가는 어린이 시절에 이해받지 못했던 순간, 격려받지 못하고 놓쳤던 꿈, 다독이지 못한 채 남아있는 상처들을 떠올리며 어린이의 감각을 회복한다. 김지은 평론가는 “어린이 시기를 겪지 않고 오늘에 이른 어른은 아무도 없다”며 “아동문학 작품을 쓰면서 어린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작은 사람이었던 시절의 나를 되찾아 돌보는 마음으로부터 출발한다”고 설명한다.
어린이문학은 소재를 계몽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다루는 문학성 역시 갖춰야 한다. 원종찬 위원은 “어린이문학은 어린이의 나이와 성장단계에 맞춘 소재와 표현방식으로 구성되지만, 삶과 세상의 진실을 훈계하듯 전달하면 아이들이 지루해한다”고 지적했다. 일반문학과 마찬가지로 어린이문학도 교훈적인 어조와 주제를 지양해야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어른과 어린이라는 비대칭적 관계는 어린이문학을 교훈주의에 빠뜨리기 쉽다. 김지은 평론가는 “과거에는 어린이문학에서조차 ‘어른들이 보기에 착한 아이들’이 나오는 작품이 많았다”며 어린이문학의 성인 중심적 관점을 지적했다. 故 권정생 작가의 『강아지똥』이 교과서에 수록될 당시 제목이 동심에 맞지 않고 비교육적이라는 이유로 『퇴비』로 바뀐 것이 성인 중심적 관점의 대표적인 사례다. 원종찬 위원은 “어린이가 천사라고 믿는 어른들의 ‘동심천사주의’는 어린이에게 수동적인 ‘착한 어린이상’을 주입하려는 교훈주의와 단단히 결합해왔다”고 설명했다.
어린이 독자가 현실에서 고민하는 문제와 어린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있는 그대로 반영해 감각적으로 다루는 것이 어린이문학의 아동성이자 문학성이다. 오늘날 어린이문학은 어린이들이 책을 즐기는 가운데 삶의 진실을 맛보는 미적 체험을 돕기를 추구한다.
어린이문학과 교육의 교차로, 인권 감수성
어린이책의 잠재력은 어린이의 미적 경험과 지적 성장에 그치지 않는다. 어린이문학은 독자가 인권과 다양성에 관심을 갖고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김지은 평론가는 “성장 중인, 미래의 사람들인 어린이 독자들을 위해 세계의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 변화를 빠르게 수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린이문학은 소재나 주제의식을 통해 어린이 독자에게 양질의 인권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장르라는 설명이다.
인권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어린이책의 인권 감수성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지난해 ‘아동문학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을 수상한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 『구름빵』이 대표적인 예다. 백 작가는 <네이버 디자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책에서) 캐릭터를 설정할 때 성별이나 나이에 따른 고정관념을 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모든 걸 다 모호하게 했다’고 밝혔다. 아이들에게 사회의 왜곡된 통념을 전달하지 않으려 주의한다는 것이다. 영유아 그림책을 포함해 청소년문학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어린이문학계 전반에는 성평등과 다문화, 장애 등 소수자 주제의 작품들이 늘고 있다.
예리한 인권 감수성을 갖춘 작품들은 소비자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어린이 교육 콘텐츠를 큐레이션하는 단체 ‘딱따구리’가 성평등 그림책을 엄선해 소개하는 서비스를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딱따구리 유지은 대표는 “(최근) 밀레니얼 세대 양육자들은 책이 가진 가치나 ‘책육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며 어린이문학 큐레이션과 같은 소비 가이드의 수요가 높다고 설명했다. 딱따구리가 선정하는 책은 어린이문학 중에서도 그림책이다, 딱따구리 김이슬 콘텐츠 디렉터는 “어린이들이 어릴 때 가장 처음, 그리고 가장 많이 접하는 게 그림책”이라며 “어린 시절에 봤던 것들이 무의식적으로 기억에 더 강렬하게 저장된다”고 말했다. 그림책이 어린이들의 인식 형성에 중요하다는 얘기다.
어린이문학은 무엇이 혐오이고 차별인지 알아채는 능력을 길러줄 수 있다. 딱따구리는 등장인물의 설정·묘사·대사가 성차별적이진 않은지, 여성 주인공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지, 남성 주인공의 설정이 일차원적이진 않은지, 성평등 주제 이외에 함께 다루고 있는 주제가 흥미로운지 등을 고려해 그림책을 고른다. 특히 딱따구리는 그림책의 아동성과 문학성이 훼손되지 않은,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인권 소재를 다룬 책을 선정한다. 유지은 대표는 “만약 인권 감수성의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더라도 어린이들이 보기에 재밌고 가치가 있다 싶으면 우선 선정한 뒤 워크북이나 양육자 가이드로 보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딱따구리는 워크북을 제작할 때도 등장인물의 인종과 체형을 다양하게 설정하고 성중립적인 외형을 갖추도록 하고 있다.

‘문학이 세상을 직접 바꾸지는 못해도,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충일 아동문학평론가가 계간 『어린이와 문학』 2021년 봄호에 기고한 글의 한 대목이다. 어린이책이 성평등·다문화·장애 등에 대한 어린이의 인권 감수성을 키워줘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어린이문학의 역할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다양한 어린이가 시민으로 존중되는 사회
출판계의 불황과 어린이 인구의 감소에도 어린이책 산업은 규모가 커지고 있다. 김지은 평론가는 “어린이책은 한 사람의 ‘첫 책’이자 그가 읽는 ‘평생의 책’이란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고, 번역하기도 수월하다”며 “특히 그림책은 우리나라 출판산업의 수출 분야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종찬 위원도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즐기는 어린이문학의 걸작은 영화나 애니메이션, 연극, 뮤지컬, 게임 등 매체변환을 통한 문화콘텐츠로서도 개척의 여지가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어린이문학이 가진 잠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어린이문학은 어린이라는 존재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어린이의 다양한 삶의 모습과 욕망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만 아동성과 문학성을 갖춘 어린이문학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문학과 관련된 분야에 종사하는 많은 전문가와 연구자들이 어린이를 동료 시민으로 존중하는 문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최윤정 대표는 “어린이책을 통한 인권교육이 한창 이뤄지고 있는 데 비해 현실의 어른들은 여전히 어린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장애아동문학은 어린이를 주체적이고 독립된 시민으로 존중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한 분야다. 서울시립대학교 박성애 교수(교양교육부)는 지난해 『아동청소년문학연구』에 기고한 한 논문에서 ‘(장애아동문학에서는) 성인작가가 아동독자에게 장애아동은 변함없이 선하다고 가르치고 아동독자에게 그들(장애아동)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바꿀 것을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서사는 장애아동의 주체적 욕구를 지울 뿐만 아니라 장애아동을 비장애 아동독자의 교화를 위한 수단으로 만든다는 문제가 있다.
어린이문학의 건강한 활성화를 위해 원종찬 위원은 “대학에서 아동문학을 전공할 수 있게끔 교수 충원과 교과과정 개편 등 제도적인 뒷받침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이문학의 학문적 계승을 위한 후속세대 양성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최윤정 대표 역시 “사범대 학생들이 아동청소년 문학작품을 읽었으면 한다”면서 “현실의 어린이와 청소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좋은 교사가 되는 데 도움이 되고, 어린이를 위한 책읽기 교육에 대비하는 길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어린이의 삶은 사회의 주변부에 위치한다. 여전히 우리 곁에는 어른이 듣기에 시끄럽다는 이유로 ‘노키즈존’에 입장할 수 없는 어린이들이 있고, 어른이 보기에 착한 행동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유분방한 욕망을 발산할 수 없는 어린이들이 있다. 존재감이 작은 어린이를 사회가 주목하고 환영할 때 비로소 어린이문학은 꽃필 수 있다. 어린이를 위한, 성장 중인 사람 모두를 위한 어린이문학에 많은 관심과 응원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