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버멘쉬들에게 전하는 단순한 진심

남서울미술관 『단순한 진심: 51 Lives 』展
「르쌍띠망-효」 ⓒ남서울미술관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심을 증명하기란 매우 어렵다. 가시적인 증명을 높이 평가하는 시대에서, 어쩌면 진심은 환영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심이 표현되는 몇 안 되는 순간은 마음을 깊이 울린다. 박유아 작가의 초상 프로젝트『단순한 진심: 51 Lives』전은 가족주의의 틀에 갇히지 않고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단순한 진심’에 주목한다. 전시는 오는 4월 11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가족’이라는 이름 안의 의무와 역할 뒤집기

  박유아는 오랫동안 가족이라는 주제에 주목해왔다. 이번 전시 역시 가족을 주제로 한 작품들로 구성됐다. 1층에는 박 작가의 현재 프로젝트가, 2층에는 그의 과거 작품들이 전시돼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그의 작품 세계를 만나보자.

「르쌍띠망-효」 ⓒ남서울미술관

  2층에는 박유아가 2010년대 초반에 작업한 「르쌍띠망-효」와 「뮤직박스」 연작이 있다. 「르쌍띠망-효」는 퍼포먼스와 설치가 결합된 작품이다. 퍼포먼스에서 박유아는 거울로 된 식탁에 생고기를 올려두고 한 가족의 식사 자리를 연출한다. 식탁 주변에는 작가 본인의 부모와 형제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박유아는 인주를 바른 얼굴로 초상화들과 대화해보려 하지만 소통은 이뤄지지 않는다. 주위에 설치된 거울이 같은 이미지를 투영하고 반사해, 박유아는 마치 영원히 나갈 수 없는 거울의 방에 갇힌 듯하다. 껍데기뿐인 식사의 소통 불가능성이 극에 달한 순간 박유아는 생고기를 찢으며 거울을 깬다. 퍼포먼스의 현장은 이번 전시에 그대로 재현된다. 생고기를 찢고 거울을 깨는 퍼포먼스는 각각 생고기를 해체하는 영상 작품 「미트」와 바닥에 흩어져있는 거울 파편으로 대체됐다.

  박유아가 거울을 깰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효라는 전통적 관념이 작가를 ‘르쌍띠망’에 휩싸인 인간으로 만들어서다. 르쌍띠망은 인간이 자신의 유한한 사랑으로 신의 무한한 사랑을 갚을 수 없다고 느낄 때 생기는 부채의식이다. 니체는 르쌍띠망이 자책과 원한으로 인간을 나약하고 솔직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박유아는 르쌍띠망을 부모-자식 관계에 대입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고 자식이 그 사랑을 갚아나가는 효 관념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부모에 대한 부채의식 속에서 느끼는 복잡한 르쌍띠망이 퍼포먼스의 식사 자리로 표현되고, 그 모습이 거울에 투영된다. 르쌍띠망이 극에 달하자 박유아는 식탁에 차려진 생고기를 찢고 자신이 비친 거울을 깬다. 

「뮤직박스」 연작 중 「Mr. & Mrs. Koh Ⅰ」 ⓒ남서울미술관

  「르쌍띠망-효」가 부모-자식 관계 속의 의무를 뒤집는다면, 「뮤직박스」는 부부 관계에 내재된 역할에 의문을 제기한다. 「뮤직박스」는 얼굴을 하얗게 지운 부부의 초상화 연작이다. 얼굴이 지워진 초상화에는 여성과 남성의 복장과 자세 등 그들의 사회적 역할을 드러내는 요소만이 남는다. 작품은 사랑으로 이어진 관계가 사회 제도에 묶이는 순간 각자의 정체성이 사라진 역할놀이에 불과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단순한 진심,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듣기

  「르쌍띠망-효」와 「뮤직박스」 연작은 의무와 역할을 중심으로 한 가족 관념을 비틀고 부순다. 해체된 가족주의의 빈자리에는 무엇을 채울 수 있을까. 1층에서 만날 수 있는 박유아의 최신작 「위버멘쉬」 연작은 의무와 역할의 대안으로 ‘단순한 진심’을 제안한다. 

「위버멘쉬」 연작 중 「73/74 SDN」. 위버멘쉬 연작에서 제목은 출생연도/입양연도와 입양 국가 약자로 구성된다. ⓒ남서울미술관

  「위버멘쉬」 연작은 한국 해외입양인 50명을 그린 초상화 프로젝트다. 「뮤직박스」와 달리 「위버멘쉬」는 모델들의 얼굴을 지우지 않았다. 오히려 머리카락 한 올과 눈가의 주름, 얼굴의 미세한 골격과 입술의 갈라짐까지 자세히 묘사한다. 「뮤직박스」 속 정체성은 사라진 채 사회적 역할만 남은 부부와 반대로 「위버멘쉬」 속 주인공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찾아간다. 효 관념에 얽힌 혈연관계와 거리가 다소 먼 해외입양인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 속에서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위버멘쉬」 연작 중 「52/59 US」 ⓒ남서울미술관
「위버멘쉬」 연작 중 「60/60 US」 ⓒ남서울미술관

  전시장에서는 해외입양인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사이드 바이 사이드」가 상영된다. 한국 해외입양인 100명을 인터뷰한 「사이드 바이 사이드」는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듣는 행위야말로 단순한 진심을 표현하는 방법임을 보여준다. 출생과 입양연도를 알리는 자막이 뜨고 나면 한 사람이 카메라를 바라보며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말을 멈추고 골똘히 고민하기도 한다. 편집 없이 담긴 모두의 이야기 속에 제작자의 의도는 드러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는 해외입양인을 향해 단편적인 동정을 보내지도 않는다. 그저 단순한 진심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뿐이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초인들에게 전하는 공명

  「사이드 바이 사이드」에 출연한 100인은 해외입양이라는 경험을 공유하면서도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 다양한 서사를 가진다. 이들 100명이 생물학적 부모에게 갖는 감정은 각각 상이하다. 결혼과 이별, 자녀 양육 등 삶의 경험으로 생물학적 부모에 대한 감정이 달라지기도 한다. 한국에 대한 인식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을 한국인으로 여기기도 하고, 한국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기도 한다. 박유아는 해외입양인들의 다채로운 서사를 초상화의 배경색을 달리해 연출했다.

  연작의 제목이 「위버멘쉬」인 이유는 무엇일까. 니체는 자신이 선택한 적 없는 삶의 조건까지 포용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온 사람들을 초인이라는 뜻의 ‘위버멘쉬’라고 불렀다. 해외입양인들은 해외입양이라는 조건에 자신의 방식으로 대응해온 위버멘쉬다. 그래서 박유아는 한국이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해외입양을 시행한다는 사실을 환기하면서도 해외입양인을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위버멘쉬」 연작 중 「84/88 ASTRL」 ⓒ남서울미술관

  박유아는 「사이드 바이 사이드」의 출연자 중 절반인 50명과 눈을 마주치며 그들의 그림을 그렸다. 박유아의 초상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단순한 진심이 눈앞에 나타나는 몇 안 되는 순간을 제공한다. 50점의 초상화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의무나 역할에 얽매일 필요 없이, 그저 눈을 마주치며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단순한 진심을 표현하자고 말한다.

  박유아는 해외입양인 50명에 본인 한 명을 더해 『단순한 진심: 51 Lives』라는 전시 제목을 내걸었다. 초상화를 그리며 해외입양인들의 삶에 공명한 까닭이다. 만약 당신도 전시를 통해 단순한 진심을 목도한다면, 박유아와 더불어 당신 역시 50명의 다채로운 삶에 무게를 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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