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요람, 안전한가?

권력형 성폭력을 낳는 문화예술 교육 현장의 문제들

  2016년 #예술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으로 문화예술계의 성폭력·성희롱이 공론화된 지 5년이 흘렀다. 피해자들의 발화는 2018년 미투 운동으로 이어져 문화예술계의 성 불평등 실태를 거침없이 드러냈다. 당시 봇물 터뜨리듯 ‘MeToo’를 외친 성폭력·성희롱 피해자 중 많은 이들은 예비 예술인, 즉 향후 직업 예술인이 되기 위해 교육받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예비 예술인을 향한 권력형 성폭력의 고리는 최근까지도 끈질기게 지속되고 있다. 2019년 6월에는 무용계 첫 미투 폭로가 나왔다. 유명 현대무용가 류 씨는 제자인 피해 여성을 자신의 연습실에서 수차례 성추행하고 강제 성관계를 시도한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2020년 ‘미술계 Y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 역시 예비 예술인이며, 같은 해 대학원생인 피해자의 문제제기로 수면 위로 떠오른 ‘서울대 음대 B교수, C교수 사건’도 그 연장선에 있다. 문화예술계의 연이은 성폭력 사건들은 예술 교육이 예비 예술인들에게 안전한 공간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와 같은 성폭력 사건을 문화예술계 또는 특정 예술 장르만의 문제로 환원할 순 없다. 권력형 성폭력은 사회 전반에 만연한 성차별적 문화에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하의 성폭력 사건을 관통하는 문화예술계의 고유한 맥락이 존재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예비 예술인에 대한 성폭력 문제는 ‘예술 선생님’들에게 주어진 공고한 권력과 긴밀히 맞닿아 있으며, 이 권력은 문화예술계의 특정한 구조와 교육 관행 속에서 대물림된다. 예비 예술인들의 고발이 사회를 흔든 지 5년째,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는 문화예술계의 구조적 문제를 살펴봤다.

집중된 권한, 기울어진 예술계

  문화예술계는 학생의 ‘여초(女超) 현상’이 두드러진다. 2018년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문화예술체육 관련 세부전공 중 언어문학·디자인·응용예술·미술조형·음악 전공의 졸업생 성별 분포에서 여성 비율이 남성보다 두 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예술대학 전임교원의 성비는 이와 대조적이다. 같은 해 교육부 교육개발원에서 발표한 ‘교육통계분석자료집 : 고등교육통계편’에서 예체능 계열 대학의 전임교원 비율은 남성 64%, 여성 36%로 집계됐다. 즉 예술교육자의 성비엔 교육을 받는 당사자인 학생의 성비가 반영되지 않는다.

  예비 예술인과 예술교육자 사이의 성비 차이는 소수의 유력 인사에게 여러 권한이 집중되는 구조와 맞물려 성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좁은 예술계에선 예술인이 교육직·관리직·심사직을 겸임하는 경우가 잦은데, 이때 직권을 독점하는 유력 인사는 남성이 압도적이다.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박선영 팀장은 “문화예술계는 전반적으로 여성 인력 비율이 남성보다 높은 분야인데 정작 유명 예술인들, 문화예술 관련 교수와 심사위원, 행정 관료는 남성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들어 “성별로 위계가 갈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2019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문화체육관광분야 성인지 현황 조사 분석 연구’에 의하면 문화예술계 고위직 여성 비율은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14.3%, 공공기관 21.0%, 협회 및 단체 26.6%로 현저히 낮다.

  성별화된 위계구조에서 예비 예술인은 가장 취약한 지위에 놓인다. 예비 예술인들에게 ‘선생님’이란 가르치는 사람일 뿐 아니라 그 분야에서의 직권과 명망을 바탕으로 강력한 권위를 보유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성문화예술연합 이성미 대표는 “기성 예술인이 여러 직분을 동시에 점하면서 예술전공생 등 예비 예술인에 대한 영향력이 커진다”고 말했다. 이어 이 대표는 “전체 예술인 중 예비 예술인에 대한 성폭력이 가장 많고 이들에 대한 불공정과 부당행위도 많다”며 예비 예술인이 약자의 위치에 내몰려 있음을 강조했다. 지도층에 형성된 남성 연대도 ‘선생님’들의 권력을 뒷받침한다. 박선영 팀장은 “(문화예술계) 고위직 남성들끼리의 카르텔이 존재한다”며 이것이 예비 예술인에 대한 성폭력을 묵인하고 2차 피해를 발생시키는 배경이 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이 대표는 “성폭력이 일어나는 기본적인 원인은 문화예술계의 성차별적 구조에 있다”고 말했다.

닫힌 공간에 군림하는 제왕적 스승

  ‘예술 선생님’들의 권력은 도제식 교육 관행 속에서 더욱 굳어진다. 음악, 무용, 미술, 문학 등 대다수의 예술 교육은 도제식으로 이뤄진다. 도제식 교육은 중세 유럽에서 수공예 기술자를 양성하기 위해 실시된 ‘도제 제도’에서 유래한 것으로, 장인과 도제, 즉 전문가와 학습자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기술을 전수하는 교육 형태다. 가르침과 배움은 공식화·체계화된 교육과정에 근거하기보다 교육자-학습자 사이의 의사소통,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관행 등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교육의 방식과 내용을 결정하는 데는 그 분야의 ‘장인’으로서 능력과 경력을 인정받은 스승의 재량이 주요하게 작용한다. 도제식 교육은 일대일의 세밀한 지도를 가능케 해 예술 교육의 효과를 높인다고 알려져 있다. 문단계, 음악계, 미술계, 무용계, 연극계 등에서 개인 교습 또는 소규모 집단 교습의 형태를 취하는 이유다.

  도제식 교육이 주로 이뤄지는 사적 공간에선 스승의 권한이 과도하게 커져 폭력적 지도가 용인될 수 있다는 위험이 존재한다. 클래식악기를 전공하는 고등학생 A씨는 다년간 두 명의 선생님에게 개인 레슨을 받아왔다. 그 중 한 선생님은 A씨에게 “기분을 맞춰드려야 하는 무서운 분”이다. 무난하게 실기 지도를 하다가도 가끔 모독 수준의 지적을 퍼부어 A씨를 주눅 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A씨는 “(레슨 중) 폭언을 듣고 멘탈이 흔들리면 최소 일주일은 생활이 안 되고, 다음에 다시 그 곡을 연주할 때 트라우마가 올라온다”고 말했다. 레슨 초기엔 야단맞을 때만 선생님이 무섭게 느껴졌지만 폭언을 듣는 일이 잦아지다 보니 상시 선생님의 눈치를 보게 됐다.

  교육 공간의 폐쇄성이 권위주의적 문화를 답습하는 빌미로 악용되면서 문제가 생긴다. 무용인희망연대 오롯 위드유(오롯)의 천샘 활동가는 “도제식 교육이 모두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교육 문화에 제동을 걸 수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제자를 위축시키며 고압적으로 지도하는 문화엔 성폭력의 불씨가 내재해 있다. 천 활동가는 “문화예술계 대부분의 도제식 교육이 밀실 형태의 개인연습실 또는 개인작업실에서 이뤄지는데, 이 공간은 선생님들로부터 가해지는 성폭력의 사각지대가 된다”고 말했다.

  다섯 살 때부터 십여 년 동안 한국무용을 배운 B씨도 레슨 선생님의 심한 폭언으로 인격을 침해받는 경험을 했다. B씨 생각에 일부 선생님의 전횡이 지속되는 것은 “무용계엔 대체 가능한 선생님이 없는 데다 몇몇 선생님이 무용단 단장 등을 역임하고 있어서, 폭력적으로 지도하는 사람을 강사 자리에서 자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B씨는 명문대와 유명 무용단 등 정형화된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견고한 인맥과 연차를 갖춘 선생님들에게 이런 권위가 주어진다고 말했다. A씨 역시 “음악계가 좁고 서로서로 다 알기 때문에 선생님을 바꾸면 좋지 못한 소문에 휘말릴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A씨와 B씨의 증언은 ‘선생님’이 오랜 경력에서 비롯한 사회적 자원을 토대로 제자에게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홍예원 활동가는 “(예비 예술인들에겐) 선생님과 그 공간이 자기 세계의 전부일 것”이라고 말했다. 홍 활동가는 이를 예술 활동을 위한 정보와 기회의 분배 문제로 파악했다. “예비 예술인들에겐 정보와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화예술의 특성상 성과에 대한 평가가 정성적이기 때문에 예비 예술인이 공식적으로 예술계에 진입하려면 인맥이 결정적인 조건 중 하나다. 따라서 아직 이를 갖추지 못한 예비 예술인은 풍부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한 선생님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강사의 권한이 절대적인 환경에선 교육과 통제 사이의 구별이 모호해 지도가 학생에 대한 과도한 통제로 변질되기 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김서정 전 학생회장은 “도제식 교육의 선을 아무도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현악기 전공 선생님이 학생에게 ‘현에 머리카락이 낄 수 있으니까 머리 묶어라’라고 지시하는 일이 ‘뭘 입어라’, ‘뭘 먹어라’ 등 학생의 생활에 대한 통제 행위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라고 말했다. 이는 음악계뿐만 아니라 강사의 지도 범위와 경계가 엄밀히 책정되지 않은 모든 예술 교육 공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지난해 ‘음대 B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현 ‘음대특위’)에서 발행한 ‘음악인 자가진단 : 당신이 겪은 위계질서 테스트’ 카드뉴스 ⓒ음대특위 인스타그램

  지도라는 미명하에 추행이 정당화되기도 한다. 김서정 씨는 “실기 지도를 하다보면 (신체적) 터치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걸 어디까지 용인해야 하는지 합의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바로 이 모호함을 이용해 유대감 표현을 빙자한 신체 접촉이 이뤄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는 미술, 무용, 클래식음악 등 어린 연령대에 시작하는 예술 분야의 경우 성장기의 성인지감수성에 혼란을 초래한다는 위험을 내포한다. 이성미 대표는 “대회에서 상을 받아오면 (선생님이 학생을) 무릎에 앉혀놓고 칭찬해준다든지 하는 일이 많은데, 어린 나이엔 이 행위가 칭찬의 방법인 것처럼 입력돼버린다”고 말했다. 추행을 지도 과정 상의 칭찬으로 교묘히 포장하는 행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위태롭기에 지켜져야 하는 이들

  권위주의적 교육 환경에서 예비 예술인을 성폭력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마땅치 못한 실정이다. 20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이 대표발의한 ‘예술인의 지위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예술인권리보장법)’은 예술인의 권리에 대한 문제의식을 반영한 최초의 법안이다. 이는 표현의 자유와 노동권 등 폐쇄적인 문화예술계에서 침해되기 쉬운 예술가의 권익을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해 ‘예술인들의 기본법’이라 불리기도 한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은 2019년 6월 발의된 후 이듬해 5월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본회의에서 수정안이 보류됐으며, 21대 국회에서 내용 일부가 수정된 채 다시 발의됐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의 배경은 2016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미투 운동이다. 특히 미투 운동이 드러낸 문화예술계 성 불평등 문제에 대응해 성평등에 기초한 안전한 창작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법안의 취지 중 하나로, 이에 따라 성희롱·성폭력의 금지와 처벌을 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위해 예술인권리보장법에선 침해 행위가 발생했을 경우의 시정 및 구제 조치를 명시하고 이를 전담하는 예술인 권리보장위원회 및 예술인 성희롱·성폭력피해구제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21대 발의안의 문제는 20대 국회에서 법사위 검토 당시 삭제된 핵심적 요소가 보완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 재발의됐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법안의 ‘예술인’ 규정에서 예비 예술인이 제외되며 법으로 권리를 보장받는 대상의 범위가 대폭 축소됐다. 20대 국회 발의안의 제2조 제2호에 명시됐던 예술인 정의는 ▲예술 활동을 업으로 하는 사람 ▲예술 활동을 위한 교육·훈련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단체(예술교육기관) 또는 예술인으로부터 예술 활동을 업으로 하기 위하여 교육·훈련 등을 받았거나 받는 사람 ▲예술 활동을 위하여 스스로 훈련하는 사람으로서 창작물의 발표 또는 실연활동의 기회를 찾는 사람이다. 이 중 첫 번째는 직업 예술인, 두 번째와 세 번째 항목이 예비 예술인에 대한 법률적 설명에 해당한다. 21대 발의안에선 두 번째와 세 번째 항목을 삭제하고 예술인을 ‘예술 활동을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으로 규정했다. 예비 예술인은 예술 교육·훈련을 받고 있음을 증명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문화예술계 현장의 의견은 다르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예비 예술인을 포섭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박선영 팀장은 예비 예술인이라는 개념이 법적 용어로서 모호한 것은 맞지만 예술인권리보장법의 본질적인 취지를 위해서라면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예술인들 중에서도 불안정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법”이라고 설명하며 예비 예술인이 가장 취약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법적 보호가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미 대표 역시 “만약 예술인복지법처럼 국가예산을 창작 활동에 지원해주는 성격의 법이라면 범위를 명확하게 설정해야 하지만, 권리 침해에 대한 것은 문제가 다르다”는 점을 짚으며 “예비 예술인을 포섭하지 못하면 이 법은 무용지물”이라고 단언했다.

  문화예술기획 이오공감의 이동민 대표는 예비 예술인을 권력형 성폭력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다른 법적 안전망이 부재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권력형 성폭력에 대응할 수 있는 법률인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은 직장 내 성추행에 대한 처벌 및 규제조치를 제시하고 있어서 예비 예술인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기엔 부족하다. 이 대표는 “성폭력처벌법은 고용계약 관계에 의한 직장 내 사안만을 다루기에 학생 신분을 포함하지 못한다”며, 주로 학생이나 무직인 예비 예술인들의 피해가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사각지대라기에도 넓은 수준”이라고 덧붙이며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이를 메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동민 대표는 이어 미성년자인 학생까지 예비 예술인으로 포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술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교육받는 과정 자체가 굉장한 위계 덩어리인데, 그 속에 처한 학생들 입장에선 위계를 뚫고 부당함을 이야기할 수 있는 통로가 전무하다”고 말했다. 특히 예술중·고등학교의 경우 폭력적 지도 행태를 견제하는 공식적 책임 소재가 교육청에 있어 이것이 문화예술계의 일로 인식되지 않는 난점이 존재한다. 이성미 대표는 “문체부가 예술중·고등학교는 교육청의 영역이라며 학교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주체적으로 나서서 관리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미성년자 시절부터 교육을 받으며 예술인에 준하는 활동을 영위하는 예비 예술인을 보호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

  예비 예술인의 지위를 법적으로 명징하게 증명하기 어렵다는 법사위의 판단에도 반론이 나온다. 이성미 대표는 “아직 데뷔하지 않았더라도 교습비 송금 내역이나 각종 대회 응모 기록을 증빙하면 되므로 법 규정상 무리가 아니”라고 말했다. 기성 예술인들 입장에서 해당 예술 분야를 전공으로 삼고 전문적 교육·훈련에 임하는 것과 단순히 취미로 교습을 받는 것이 서로 명확히 구분되는데, 국회에선 이런 현장의 입장을 제대로 수렴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화예술계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예술 교육 환경을 공적 틀 안으로 끌고 들어와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이성미 대표는 “예비 예술인은 정립되지 않아도 직업 예술인 개념은 경계 지을 수 있으므로 선생님의 위치에 있는 예술인들과 교육 공간들을 제도권 안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학원의 경우 학원법에 따라 철저한 등록을 권고함으로써 교육부의 통제 범위 안에 둘 수 있다. 김서정 씨는 이에 동반되는 대학의 역할을 강조하며, 예술대학이 계절학기 수업 개설 등을 통해 개인 레슨의 공백을 메우고 레슨 강사의 권한을 견제할 방책을 마련하는 것을 제안했다.

▲(위) 2020년 1월 8일 현대무용가 류 씨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의 1심 공판 당일 무용계 연대인들 ⓒ오롯 (아래) 2020년 8월 6일 음대 B, C 교수 사건 관련 예술계 연대 기자회견 ⓒ권민재 사진기자

  발생한 성폭력에 대한 사후조치에 대해서도 많은 쟁점이 쌓여 있다. 현재는 형사법상 처벌이나 조직 내 징계를 통해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 이후에 가해자에게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논의된 바가 없다. 오롯 권이은정 활동가는 무용계 류 씨 사건 당시 무용계가 외쳤던 ‘가해자를 위한 무대는 없다’는 구호를 언급하며 “서울대 B, C교수 등 가해교수가 징계를 받은 후에도 다른 활동 무대나 교육기관에 임용돼 같은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싸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2018년 제자를 성추행한 의혹을 받고 ‘작가의 길로 되돌아가겠다’며 학교에 사직서를 제출한 전 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가 1년 만에 전시회를 열어 학생들의 반발을 샀던 것과 같은 사례가 더는 반복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홍예원 활동가는 “(가해자가) 사법절차를 거치면 끝인지, 충분한 실형은 어느 수준인지, 가해자는 사회에 복귀할 기회가 아예 없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거의 없으므로 면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이 논의 과정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를 견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궁극적인 목표는 피해자가 자신의 활동 영역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홍예원 활동가는 “가해자 처벌에만 집중하기보다 피해자가 사건 이후에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을 이으며, “피해자 구제란 피해자가 건강하게 예술 활동을 지속하게 하는 것이며, 그것이 그(피해자)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선 공동체적 연대가 절실하다. 천샘 활동가는 “문화예술계의 경우 성폭력이 발생하면 피해자와 가해자의 주변인들부터 자신은 직접적 관계가 없는 제3자라며 ‘중립’의 위치에서 철저히 침묵하는 침묵의 파이가 더 큰데, 그 파이보다 이를 함께 극복하고자 하는 연대의 파이가 커져야 한다”고 말했다. 천 활동가는 이어 “성폭력 관련 기관과 문화예술 현장, 예술교육기관 등 여러 주체가 공조해서 압박할 수 있는 연대체를 확고히 다져야 한다”며 성폭력 피해에 ‘침묵하지 않는’ 연대의 힘을 강조했다.

  2016년 이후 피해자들의 고발과 연대로 문화예술계의 자장은 분명히 변화하고 있지만, 갈 길은 멀다. 예비 예술인에 대한 성폭력을 뿌리 뽑기 위해선 문화예술계의 성차별적 위계구조를 쇄신하려는 근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정량적 차원에서 교육자와 고위직 성비를 맞춰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 교육으로 예술 ‘선생님’들의 성인지감수성을 함양하고 예비 예술인에게도 권리의식을 고취하는 것 등 다양한 시도가 시급하다. 폭력의 그림자는 권위주의의 틈새로 솟아나 지금도 예비 예술인에 드리워져 있다. 안전한 예술 교육 환경을 향한 사회 전체의 연대와 혁신 의지가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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