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혼란을 껴안고

레니 에이브러햄슨 감독의 《룸》(2015)
‘룸’에 갇힌 7년, 조이와 잭은 서로의 유일한 살아갈 이유다. ©영화 《룸》 공식 스틸컷

본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싱크대와 욕조, 변기와 낡은 침대로 어둑하게 둘러싸인 방에서 다섯 번째 생일을 맞은 잭은 엄마 조이와 함께 생일케이크를 만든다. 잭은 밤마다 찾아오는 미지의 존재 닉이 자신의 생일선물을 사올까 들떠 있지만, 그런 잭을 바라보는 조이의 표정은 복잡하다. 3.7평의 한 칸짜리 방에서 태어난 잭은 이곳 ‘룸’을 한 번도 벗어나 본 적 없다. 죽은 척 카펫에 몸을 둘둘 말고 트럭 짐칸에 실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룸 밖의 룸

  엄마 조이와 단둘이 사는 작은 ‘룸’이 문자 그대로 세상의 전부라 믿고 있는 다섯 살 잭의 시점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7년 전 고등학생이던 조이는 길을 걷다가 낯선 남성에게 납치됐다. 안에선 문을 열 수 없게 설계된 창고에 갇혀 지속적으로 성폭행당했고 잭을 임신, 출산했다. 갇혀 지낸 지 7년째, 스물네 살이 된 조이는 잭과 탈출 계획을 세운다. 우연히 마주친 마을 주민의 친절과 현명한 경찰관의 도움이 겹치며 두 사람은 극적으로 구출된다.

‘룸’에 갇힌 7년, 조이와 잭은 서로의 유일한 살아갈 이유다. ©영화 《룸》 공식 스틸컷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탈출까지의 이야기는 절반에 해당한다. 영화의 나머지 절반은 탈출 이후에 그들이 어떻게 룸 밖의 세계에 적응하는지를 공들여 보여준다. 탈출을 위해 트럭 짐칸에 몸을 실은 잭은 얼굴 위로 펼쳐지는 환한 햇살에 혼란스러워한다. 경찰에게 구출된 조이와 잭이 배분받는 공간은 커다란 유리창으로 흰 채광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병실이다. 병원을 떠나 도착한 집 앞에선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가 둘을 맞이한다. 조이와 잭은 조각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전부였던 ‘룸’에서 나오자마자 쏟아지는 빛을 감당하도록 요구받는다.

  좁고 캄캄한 룸과 대비되는 바깥세상의 풍경은 모자가 ‘룸’ 밖으로 탈출하면 곧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제 피해자의 삶에는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같은 막연한 결말만 남아있을 거라고.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무리 조이가 끔찍한 생활을 버텨내며 아이까지 키워낸 강인한 사람이라 해도, 그를 옭아매는 고난은 탈출 이후에도 계속된다.

  조이는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이었다. 실종된 자신을 애타게 보고파 한 가족이 있고 유복한 환경의 집이 있다. 이는 조이가 적응하는 데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토록 그리워한 룸 밖의 세상은 더 이상 조이가 알던 익숙한 세계가 아니다. 조이가 실종된 후 양친은 이혼했고, 조이의 귀가를 환영하려 가족들이 어색하게 식탁에 모인 식사시간은 삐걱거린다. 조이와 잭이 머무르는 집은 사람들의 소란스런 관심으로 에워싸인다. 자신과 똑같은 고등학생이던 친구들이 그가 없는 7년 동안 저마다의 삶을 쌓았을 거라는 생각에 조이는 박탈감을 느낀다. 달라진 세계가, 과도하게 따라오는 관심이, 잃어버린 세월에 대한 분노가 조이를 갉아먹는다. 분노는 주위 사람들에게 향해, 조이는 양친과 잭에게 화를 분출한다. 자기가 사라져도 잘 살고 있었던 듯한 가까운 이들에게 느끼는 거리감은 조이로 하여금 ‘나 혼자 헤쳐나가야 한다’는 믿음을 굳히게 만든다.

고등학생 시절의 사진앨범을 보던 조이는 “이 친구들 다 뭐할까? ⋯ 그냥 별 일 없이 살았을 거야”라고 말하다 울고 만다. ©영화 《룸》 캡쳐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에서 조이는 낯설 만큼 다르다. ‘룸’ 안에서, 폭력적인 닉으로부터 잭을 보호하던 조이는 잭이 언제나 기댈 수 있는 강인한 존재였지만 ‘룸’ 밖에서 조이는 평범하게 연약한 존재였음이 드러난다. 그는 자신에게 ‘피해자’라는 낙인이 붙는 것이 두려워 이를 부정하려 안간힘 쓰면서, 자신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고 싶어한다. 구출 직후 입원했을 당시 의사가 조이와 잭에게 제안한 정신건강 케어를 자꾸만 미루고 거절했던 건 이런 초조함의 발로다. 잭과 자신의 삶이 ‘비정상’이었다고 부정당하기 싫어 곤두세운 가시는 도리어 조이가 얼마나 정상성을 향한 강박에 몸을 죄었는지 보여준다. 조이는 하루빨리 자신을 정상 궤도에 되돌려놓고 싶어하며 온갖 인터뷰에 응하지만, 피해자를 검열하고 어머니로서의 자질을 묻는 언론은 오히려 조이를 질식시킨다. 룸 안에서 잭을 양육한 것을 두고 “어째서 잭이 태어났을 때 바로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냐”며 비난하는 질문들이 화살처럼 쏟아진다. 그가 ‘룸’에 갇혀 어떻게 잭을 혼자 낳고 길렀는지 전혀 모르는 이들에 의해 조이의 7년간의 분투는 평가와 재단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인터뷰가 끝난 뒤 조이는 자살을 기도한다.

  룸 밖 세계와의 충돌에서 오는 혼란은 이토록 조이의 존재를 흔든다. 반면 바깥세상이 완전히 처음인 잭은 어린이의 유연함으로 조금씩 세계에 적응해간다. 조이가 자살 기도 이후 가족과 떨어져 요양지로 떠나게 되자, 잭은 자신의 힘샘이라 생각하던 머리카락을 잘라 엄마에게 보내준다. 조이에게 도착한 잭의 머리카락은 ‘난 언제나 엄마 곁에 있다’고 속삭이며 힘과 위안을 준다. 잭의 단단한 사랑을 받으며 조이는 ‘룸’의 흔적을 극복한다. 조이가 요양지에서 돌아온 뒤, 둘은 함께 ‘룸’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간다. 밖에서 바라본 ‘룸’은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할 것 같은 허름한 창고일 뿐이다. 성벽 같던 철문이 열려 빛이 가득 채워진 ‘룸’ 안에서 잭은 주문처럼 속삭인다. “여긴 더 이상 룸이 아니야, 문이 열렸으니까.” 이제 둘은 문을 열고 ‘룸’을 똑바로 응시한다. 나지막이 작별인사를 발음한다.

조이에게 보내주기 위해 자신의 힘샘이라 생각한 긴 머리카락을 자르는 잭 ©영화 《룸》 공식 스틸컷

폭력을 무해하게 그리는 법

  《룸》이 성범죄 소재를 서사화하는 방식은 새롭다. 영화는 범죄 장면을 복원하지도, 피해자가 폭력을 당하며 고통받는 모습을 묘사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혹은 그리하여 다른 어떤 범죄 영화보다 피해자를 대변하는 힘을 갖는다. 선정적인 묘사 없이도 범죄의 잔혹성을 드러내고, 범죄사실이 아닌 피해자의 회복과 치유에 시선을 집중시키기 때문이다. 이로써 《룸》은 누구도 해하지 않으면서 폭력을 재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한다. 동시에 가해자의 검거가 피해의 끝이 아님을, 피해자는 가해자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무심코 던지는 편견 어린 시선에 의해서도 신음해왔음을 조용하게 일깨운다. 우리는 조이와 잭을 통해 아픔을 응시하고 딛어낼 용기를, 타인들과 무해한 관계를 맺는 방법과 필요를 자각한다. ‘룸’으로부터 성장하는 것은 조이와 잭 둘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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