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의 지옥’에 맞선 사람들

추적단 불꽃의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2020)

  모든 일은 두 기자 지망생의 취업 준비에서 시작됐다. N번방의 민낯은 그렇게 세상에 드러났다. 추적단 불꽃은 가해의 악함이 아니라 사람들의 무관심이 그 방을 키웠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는 성착취 방 취재의 전말을 밝히며 불과 단이 젠더 폭력을 실감하게 했던 일상의 불안감을, 사건의 피해자들이 상처를 회복하기 위한 방향에 대한 고민을 전한다. 

  기자 지망생이던 불과 단은 “취업에 도움이 될만한 수상 스펙”을 위해 탐사 르포 취재물 공모전에 참가하고자 N번방 취재를 시작했다. 뚜껑을 열어본 N번방의 실체는 사소하지 않았다. N번방에 접속한 추적단은 미성년자에 대한 성착취 영상이 유포되고 지인의 사진을 합성한 ‘지인능욕’ 사진이 공유되는 잔혹한 실상을 목도했다. 이들은 이 범죄가 사람의 손끝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관찰자로서 거리를 두고 취재하기엔 사안이 심각했다. 잠입취재로 증거를 채집하면서 N번방의 내밀한 실체로 나아가는 한편, 경찰과의 공조로 가해자들의 신상정보를 추적하며 범인들을 한 명씩 잡아냈다. 사건을 마주하는 과정 자체가 불꽃에겐 고통이었지만,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왜 하필 ‘디지털 성착취’였을까. 두 기자가 N번방을 파헤치도록 이끈 것은 일상에서 느꼈던 불안과 분노의 감정이었다. N번방에 대한 두려움의 감정은 젠더 폭력이 가져오는 일상의 불안과 다르지 않았다. 불꽃은 학교에서, 일터에서, 집에서 느낀 불안과 분노의 기억을 책을 통해 전달한다. 개인적 경험의 이야기들로 신상이 드러날 위험을 감수한 결정이었다. 그 이유를 묻자 불꽃은 “불안감이 이 시대를 살아온 여성들이 함께 겪은 문제라는 것을 밝히는 동시에 왜 불안해해야 하는지 질문하는 연대의 장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불꽃의 용기는 열매를 맺었다. 불과 단이라는 두 개인의 고백은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불안을 하나의 실에 꿰어냈다. 이 시대를 살아온 여성들은 불과 단의 발화를 통해 ‘우리’를 발견하고, ‘우리’로서 연대하게 됐다.

  책 말미에서 불꽃은 피해자를 잊지 않고 보호할 것을, 그리고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지 않을 것을 강조한다. 최종 목표는 피해자들이 일상으로 건강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누구도 피해자들의 기억을 말끔히 지워낼 순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있다. 성착취 ‘생존자’들의 목소리에 오롯이 귀 기울이는 것이 피해자들에게 보낼 수 있는 최소한의 도움이지 않을까.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두 평범한 대학생이 거대한 성착취 산업의 실체를 밝혀낸 과정의 기록이면서 N번방의 씨앗을 뿌리고 키워낸 평범한 일상 속 젠더 폭력에 대한 성찰이다. 불꽃은 우리의 일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게 한다. 우리는 모두 추적단 불꽃에게 더없이 큰 빚을 지고 있고, 앞으로도 지게 될 것이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전 기사

어제의 고통이 오늘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다음 기사

안전한 사회는 아직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