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된 동물들에게 띄우는 편지

수의과대학 ‘수혼제’

  제사를 이끄는 제주(祭主)가 비석 앞에서 무릎을 꿇고 향을 피운다. 술을 가득 채운 술잔은 향 위에서 세 번 원을 그린다. 제주가 두 번 절을 하고 제문을 읽는다. 참석자들은 경건하게 분향과 묵념을 한다. 흰 국화와 향. 보통의 제사처럼 보이지만, 제사상에는 사람을 위한 음식이 아닌 동물들을 위한 사료, 곡식, 당근이 올라와 있다. 희생된 동물들을 위로하는 수혼제(獸魂祭)다. 

  “자연의 일부분으로 살고 죽는 것은 대자연의 순리지만, 실험동물로서의 운명으로 당신의 고귀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니 그 고마움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늦가을 햇볕이 유독 따갑던 11월의 어느 날, 수의과대학 수혼비(獸魂碑) 앞에서 수혼제가 열렸다. 수혼제는 수의과대학에서 실험동물들에 대한 위로를 표하는 행사다. 이날 학생들은 생명을 살리는 수의학도로서 다른 생명을 위해 희생된 동물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했다. 실험동물 중에서도 많은 수가 희생되는 개, 고양이, 닭, 토끼, 쥐, 제브라피쉬를 위한 음식이 제사상에 올랐다.

  원래 수혼제는 매년 봄 치러졌지만, 2020년엔 코로나19 확산으로 미뤄지다 늦가을에 진행됐다. 많은 인원이 모이는 것을 막기 위해 수의과대학 학생들에겐 화상회의 줌(zoom)으로 중계됐다. 제주를 맡은 수의과대학 이진성(수의학 17) 전 학생회장은 “이번 수혼제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병행해 진행돼서 (본래의) 마음은 줄어들지 않았겠지만 작게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진행을 맡은 수의과대학 이기명(수의학 17) 전 부학생회장은 “본과생이 되고 실습을 많이 진행하게 되면서 (수혼제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게 됐다”며 “그저 보여주기식의 형식적 행사가 아닌 진심을 담아 실험동물들을 위로하고 그 희생을 어떻게 하면 줄일지 고민하게 되는 행사”라고 말했다.

  수혼제가 진행되는 수혼비에는 다음과 같은 시구절이 쓰여 있다. ‘어찌 생명이 가엽지 않은가? 선한 죽음을 피할 수가 없구나.’ 수의과대학 학생들은 수혼비 앞에서 동물들의 죽음을 당연히 여기지 않기 위해 더 많은 생명을 살리는 수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당연하지 않은 죽음’이란 말처럼 떠나보낸 생명의 무게는 가늠할 수 없다. 그러나 그 희생은 자취를 남긴다. 이 흔적을 돌아보며 사람의 역할을 되새긴다면, 생명을 살리려는 마음은 빛을 잃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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