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미래를 잇는 우리의 계보, 여성국극

공고한 젠더규범을 흔들고 부수고 확장하는 예술들
▲1958년 ‘별하나’의 포스터 ©영희야 놀자

  둥둥 음악이 울리며 성춘향과 이몽룡이 상봉한다. 야속하고 반가운 몽룡을 껴안고 춘향이 운다. 몽룡이 키스한다. ‘춘향가’의 익숙한 한 장면이다. 두 배우 모두 여성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익숙하고 ‘평범’하다. 춘향과 몽룡뿐 아니라 변사또부터 군졸1까지, 배우는 전원 여성이다. 판소리, 춤, 연기가 어우러진 이 무대의 정체는 여성국극. 해방기 한국에 돌풍을 일으켰던 이 여성들의 역사와 지금 여기 페미니스트 예술가들에 의해 소환, 확장되는 여성국극의 계보를 살펴봤다.

▲1958년 ‘별하나’의 포스터 ©영희야 놀자

해방기 한국을 울리고 웃긴 여성들

  여성국극은 여성 배우들이 여성·남성 배역을 모두 소화하는 국악연극이다. 1940년대 해방기에 출현해 195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했다. 시초는 1948년 국악원의 남성중심적 문화에 반발하며 여성 국악인들끼리 조직한 ‘여성국악동호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무영탑’, ‘별하나’,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같은 공연을 올리며 선풍적 인기를 누렸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 피난 가서도 관객을 한가득 불러모으며 공연을 열 정도였다. 이제는 할머니가 된 팬들은 다큐멘터리 ‘왕자가 된 소녀들’(2012)에서 “국극단에서 돈을 가마니로 긁어 모았다”, “여성국극이라고 하면 정말 사람들이 미어터질 듯이 온다”고 회상한다.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여성국극을 관람하고 있다. ©영화 ‘왕자가 된 소녀들’ 캡쳐

  특히 남역 주연을 맡은 배우들은 “왕자가 사라진 이 시대의 왕자”*가 돼 인기와 명성을 거머쥐었다. 배우들은 ‘왕자가 된 소녀들’에서 “(팬레터가) 다 혈서였다”며 당시를 떠올린다. 그중 1950년대 남역 주연을 도맡았던 故조금앵 배우는 그와 결혼사진을 찍고 싶다는 한 팬의 부탁으로 신랑 역을 맡아 가상 결혼식까지 올린 적이 있다. 예식장을 운영하는 다른 팬이 장소를 빌려주고 단원들이 들러리를 서서 찍은 결혼사진을 그는 고이 간직해왔다.

  1950년대에 여성 배우를 대상으로 이토록 엄청난 팬덤이 존재했다는 건 놀랍다. 인기의 저력은 무엇일까. 김지혜의 ‘여성국극의 역사, 다시보기와 재현’에 따르면 여성국극의 인기는 ‘두 여성이 사랑하는 남녀를 연기한다는 점’과 ‘남녀 주인공의 매력’에 토대했다. 영롱한 무대미술, 음악과 춤 속에서 동성 배우들이 이성애 로맨스를 펼쳐내는 공연장은 여성과 남성의 경계, 이성애와 동성애의 구분을 헝클며 환상 공간을 직조한다. 여성 관객들은 남역 배우가 만들어내는 용맹하고 낭만적인 인물들과 자주 사랑에 빠졌다. 해방 이후 과도기, ‘뭐든 될 수 있는’ 여성 배우들을 보며 관객들은 자신감을 얻고 해방감을 느꼈다. 오로지 여성들만으로 거대한 무대를 빚는다는 혁신적 발상은 ‘여성성’과 ‘남성성’을 설정하고 역할을 엄격히 구분했던 가부장 질서를 보란 듯이 허물었다.

▲故조금앵 배우와 팬의 가상 결혼식 사진 ©영화 ‘왕자가 된 소녀들’ 캡쳐

  한 시대에 돌풍을 일으켰던 여성국극이 스러지게 된 과정은 시대적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1960년대부터 영화와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문화예술 플랫폼이 격변하면서 전통 공연예술계는 급속히 세를 잃기 시작했다. 허나 ‘시대 탓’이란 설명 이면에는 가부장제의 훼방이 가려져 있다. 60년대에 위기에 처한 공연예술은 여성국극뿐만이 아니었지만, 창극을 비롯한 여타 예술 분야는 국가적 지원을 받아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애국심을 고취하고자 전통문화 제정사업을 벌인 박정희 정권 하에서 어떤 예술은 ‘문화재’로 지정되며 전통을 지켜나간 반면 어떤 예술은 삭제됐다. 국극을 기형적이고 수준 낮은 ‘여자들끼리의 사이비 예술’이라 폄하하는 문화계 인사들의 목소리가 언론을 장악하며 여성국극은 정치적으로 배제됐다.

  게다가 여러 배우들이 결혼과 출산으로 하나둘씩 국극단을 그만두게 되고, 국극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다큐멘터리 속, 결혼과 출산을 강요받아 국극을 떠나야 했다고 말하는 배우들의 쓸쓸한 표정에서 왕자와 장군의 위풍당당함은 자취를 감춘다. 그 자리에 비치는 건, 국극이라는 환상 공간에서 끌려나와 ‘정상적’ 삶의 궤도에 욱여넣어졌던 여성들의 체념이다.

지금, 여기로 소환된 여성국극

  1960년대 이후 전승자가 없어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던 여성국극은 10여 년 전부터 새로운 예술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여성국극을 본격적으로 재조명해온 미술작가 정은영은 여성이 남성을 연기한다는 점, 그리고 여성들만의 ‘프로페셔널’ 집단이 존재했다는 점에 매료돼 2008년부터 현재까지 ‘여성국극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작업을 진행해왔다. 여자대학 93학번으로 94년도에 태동한 학내 페미니스트 운동을 곁에서 지켜본 정은영 작가는 “여성들만의 조직으로 직업적이고 경제적인 성취를 했던 ‘과거의’ 사례가 있었다는 것은 저처럼 여대를 나오고, 여성주의적 언어로 예술 창작을 해나가려는 이들에겐 충격적인 존재의 역사였다”며 “여성의 남성 연기가 그 성공을 이끈 주된 요소였다는 것도 매우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다”고 말한다.

▲정은영, ⟪뜻밖의 응답⟫ 단채널 비디오, HDV, 스테레오, 7분 53초, 2010 ©정은영

  정은영 작가가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여성국극이라는 예술에서 ‘젠더 수행’이 드러나는 방식과 그 결과가 자아내는 정치적 효과였다. 비디오 아트 《분장의 시간》과 《뜻밖의 응답》은 원로 남역 배우들이 본격적인 무대로 진입하기 이전, 남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포착한다. 《분장의 시간》엔 할머니가 된 배우들이 극을 준비하며 분장하는 과정이, 《뜻밖의 응답》엔 배우의 리허설 장면이 촘촘히 담겨있다. 여기서 배우는 표정과 목소리, 몸짓과 시선을 동원해 완벽에 가까운 ‘이상적 남성’을 한 겹 한 겹 정교하게 구성해간다. 작품들은 분장과 연기로 ‘남자보다 더 남자답게’ 변모하는 배우들을 관찰하며 ‘생물학적’ 남성만이 남성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공고한 통념에 물음을 제기한다. 

  연구를 지속하면서 정은영 작가의 관심의 초점은 여성국극의 계보를 상상하는 것으로 옮겨간다. 그 일환으로 여성국극 배우와 동시대 퀴어공연 예술가들의 퍼포먼스를 교차하는 작업들을 제시한다. 비디오 설치 작품 《섬광, 잔상, 속도와 소음의 공연》은 2세대 국극 배우 이등우(이옥천), 트랜스젠더 전자음악가 키라라, 레즈비언 배우 이리, 장애여성극단 ‘춤추는 허리’의 연출가이자 배우 서지원, 드랙킹 아장맨의 퍼포먼스를 나란히, 교차해서 보여준다. 이들의 퍼포먼스는 음악과 춤, 연기라는 언어로 우리가 딛고 있는 세계의 논리를 교란하고 고여버린 역사들에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여성국극과 닮았다. 국극이 “퀴어-페미니스트 예술가로서 나 자신의 뿌리를 상상하게 해주는 역사적 사건”이기도 하다는 정 작가의 말에서 우리는 동시대를 사는 우리가 여성국극과 어떻게 맞닿을 수 있는지 확인한다.

▲정은영, ⟪섬광, 잔상, 속도와 소음의 공연⟫, 오디오비주얼 설치, FullHD, 5.1서라운드 사운드, 27분 36초, 2019 ©김경호 촬영, 정은영 제공

  여성국극은 어떻게 퀴어 공연으로 해석될 수 있을까. 정은영 작가는 무엇보다 성별 이분법을 흔들고 부수는 ‘젠더 수행’으로서의 연기가 여성국극만의 독자적인 형식을 구성했다는 점을 꼽는다. “‘퀴어성’이나 ‘퀴어화하기(queering)’ 의 가장 중요한 예술적 가능성은 전통을 향한 도전”이라는 정 작가는 여성국극이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정해놓은 기존 창극의 획일적 룰을 깨고 규범적인 인식론을 비트는 실천이라는 점에서 퀴어하다고 말한다.

  퀴어성은 여성국극이 당시 만들어가던 독특한 미적 취향에서도 나타난다. 정은영 작가에 따르면 국극은 “전통적인 듯하지만 어긋나기를 반복하고, 고급예술인 척하지만 하위문화의 대중적 취향을 쫓기도” 하며 당시의 미학적 질서에서 이탈하는 반항아 같은 존재였다. 국극은 조금은 요란하고 과장된 요소들을 자유롭게 가져다쓰고, 순수예술이 고집하던 근엄한 양식을 차용했다가도 보란 듯이 부순다. 다양한 경계들을 뒤섞고 넘나들고 헷갈리게 만드는 속성은 소위 ‘퀴어’라는 경멸 섞인 이름을 전복적으로 전유해 자긍심의 단어로 바꿔놓는 태도와 닮아있다. 

  이에 더해 정은영 작가는 당대의 소수자집단이 여성국극을 향유하며 공동체의 결속과 유대를 누렸다고 말한다.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에서 언제나 훈육의 대상이거나 타자로 남겨졌던 여학생, 가정주부, 성소수자, ‘양공주’에게 국극은 팬덤이라는 공동체를 경험하고 동성애적 욕망을 용인하는 해방적 공간, 여성에게 가정이 아닌 장소를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정치적 공간이었다.

확장하는 계보학

  여성국극을 호명하는 정은영 작가의 프로젝트는 결실을 거두고 있다. ‘퀴어 계보학’을 상상해보자는 그의 제안은, 여성국극이 동시대 퀴어-페미니스트들의 관심을 끌면서 현실화되고 있다.

  친구에게 논문 한 편을 건네받으며 여성국극의 존재를 알게 됐다는 서이레 작가는 여성국극이 “여성으로 이뤄진 공간이라는 점”에 매료돼 그림작가 나몬 작가와 함께 여성국극을 다루는 웹툰 《정년이》를 기획했다. 현재 네이버웹툰에서 연재 중인 《정년이》는 1950년대, “돈을 가마니로 벌”고 싶어 여성국극단에 들어가는 주인공 정년이를 중심으로 국극단원들의 고뇌와 성장, 사랑을 그린다. 좀더 넓은 스펙트럼의 여성인물을 다뤄보고 싶었다는 서 작가는 여성국극이 그에 걸맞은 힘을 가진 소재였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년이》는 흥미진진한 서사의 파도 속에서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뿐히 허문다. 극중 정년이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여성국극단에 대담하게 문을 박차고 들어가지만, 첫 무대 ‘춘향전’에서 방자 역할을 맡게 되자 시름한다. 여자인 자신이 남역을 현실감 있게 보여낼 수 있을까 걱정하는 정년이에게 그의 멘토 고 사장은 ‘남자됨과 여자됨이 가소롭다’는 조언을 건넨다. 

▲여자인 자신이 방자를 현실감 있게 보여낼 수 있을까 걱정하는 정년이에게 고 사장은 자신의 과거사를 들려주며 ‘남자됨과 여자됨이 가소롭다’는 조언을 건넨다. ©네이버웹툰 ⟪정년이⟫ 17화 캡쳐
▲고 사장의 조언을 이해하게 된 정년이는 자신만의 멋들어진 방자를 만들어낸다. ©네이버웹툰 ⟪정년이⟫ 20화 캡쳐

  서이레 작가는 “성별은 절대 넘을 수 없는 불변고유의 성질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겉모습만 바꿔도 손쉽게 성별 구분을 가로지를 수 있다”며 성별 이분법의 허구성을 지적했다. “국극의 ‘젠더무법자’다운 면모가 좋았다”는 서 작가는 “여성국극다운 상상력이 우리를 조금 더 자유롭게 만들어주리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로 《정년이》가 계승하는 국극의 계보는 ‘용기’다. 여성국극은 전쟁 직후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 문화콘텐츠였다. “많은 여성들이 여성국극을 보면서, 또 무대 위에 서면서 즐거움을 느꼈고, 이 즐거움이 삶을 살아갈 용기가 됐던 것 같다”는 서이레 작가는 “《정년이》와 《정년이》 속 여성국극 역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보고 나면 힘을 얻는 이야기가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전했다.

  여성국극의 또다른 계보는 드랙킹 퍼포머들의 예리한 몸짓을 경유해 뻗어간다. ‘드랙’은 의상과 분장, 연기와 몸짓으로 특정 젠더를 모방함으로써, ‘여자는 여자다운, 남자는 남자다운 행동을 해야 한다’는 사회규범들에 저항을 표현하는 정치예술이다. 드랙킹 공연에서 참가자들은 광기 들린 예술가 남성, 가부장적인 남성, 잔약한 남성 등 특정한 캐릭터를 설정하고 무대 위에서 재현한다. 이로써 고정적인 정체성으로서의 ‘남성성’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보여준다. 

  2019년 12월에 열린 제3회 드랙킹 콘테스트는 새로운 변주를 시도했다. 드랙에 여성국극을 접목해 《드랙x여성국극 ‘춘향전’》을 선보인 것이다. 드랙킹 콘테스트를 기획해온 드랙 퍼포머 아장맨은 드랙과 비슷한 형태의 예술을 공부하다가 여성국극의 존재를 접했다. 그는 “(국극에게) 첫눈에 끌렸다”며 “(국극이) 여성주의적 움직임이었다는 걸 알게 되고서 더욱 마음이 갔고, 흐름이 끊겨 아쉽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2019년 제3회 드랙킹 콘테스트 ⟪드랙x여성국극⟫ 포스터 ©올헤일

  《드랙x여성국극》은 단순히 과거의 예술장르를 전승하는 형태를 넘어 더 다채로운 공간을 상상한다. 이를 위해 드랙쇼에서 성별을 교란시키기 위해 등장하는 ‘립싱크’를 응용했고, 드랙과 여성국극 화장을 적절히 섞은 메이크업, 여성과 퀴어를 섞은 팀을 꾸려 여성의 범주를 넓혔다. 여성국극을 원전 그대로 가져가지 않은 이유는, 여성은 이미 생물학적 성별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드랙킹 기획단이 재해석한 춘향전은 좀더 퀴어하고 파워풀하다. 기획단은 춘향전의 이성애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서사를 비트는 데 주력했다. 여성혐오 코드와 이성애 프레임을 걷어낸 빈 공간은 페미니즘적으로 재탄생한다. 

  아장맨에게 드랙은 어떤 의미일까. 그는 유두 해방이 포함된 드랙 퍼포먼스를 통해 “내 신체는 바뀌지 않아도 무대에 오르는 순간 나를 바라보는 관객 본인들의 시선이 바뀐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데서 드랙의 힘과 재미를 느꼈다. 사회적으로 남성의 상의 탈의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반면 여성의 유두 노출은 공연음란죄로 범죄화된다. 어떤 몸은 ‘음란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동일한 몸이 다른 젠더 정체성을 연기할 때 시선이 정반대로 변한다는 모순이, 바로 드랙이 공략하는 지점이다. 아장맨은 드랙을 통해 “성별이란 수행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강조한다.

  드랙과 여성국극은 출발한 시대도 토대한 문화도 다르지만 놀라울 만큼 맞닿아 있다. 드랙과 여성국극의 주인공은 화려한 분장으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아 자신들의 말에 주의를 집중시킨다. 그리고 그 말이 당기는 화살의 끝은 가부장제를 향한다. 아장맨은 무엇보다 드랙과 여성국극이 “가부장제를 향한 공격이라는 점”에서 연결돼 있다고 강조한다. 어떤 ‘남성’보다도 우아하게 ‘남성성’을 수행하는 여성들을 보며 대중은 성별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임을 자각한다. 드랙과 여성국극의 무대 안팎에서 움직이는 몸들은 기존의 젠더 규범에 포섭되지 않는 새로운 주체를 그려낸다.

  정은영 작가의 작업, 웹툰 《정년이》, 드랙 퍼포먼스 《드랙x여성국극》과 같은 작업들은 여성국극을 과거 모습 그대로 재건하거나 원형을 복원하기를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대신 여성국극이 표방하는 젠더 전복성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형태로 전이를 시도한다. 지금 여기의 페미니스트 예술가들은 과거를 길어올려 현재에 소환하며 더 많은 색깔을 상상하고 느슨한 계보를 뻗어나가고 있다.

*네이버웹툰 《정년이》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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