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법

자살 유족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
▲자살 유족들이 모임에서 만든 작품 ⓒ서울시자살예방센터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고의적 자해(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는 13,799명으로, 하루 평균 37.8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란 통계에 대한 우려는 있지만 익숙해진 나머지, 통계가 담고 있는 문제의 무게는 느껴지지 않는 듯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한 명의 자살 사망자가 생기면 5~10명의 자살 유족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한국의 경우 일 년에 최소 6만 명이 넘는 자살 유족이 생기는 셈이다. 하지만 이들은 터놓고 이야기할 곳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자살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이 달갑지 않은 탓이다. 

  ‘서울시자살예방센터’에서는 자살 유족을 대상으로 자조모임을 운영하고 있으며, ‘중앙심리부검센터’는 자살 유족과의 면담을 통해 이뤄지는 심리부검을 진행한다. 서울시자살예방센터 이연화 유족지원팀장과 중앙심리부검센터 유혜림 면담운영팀장을 만나 자살 유족 전반과 자살 유족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대해 물었다.

자살 유족의 이야기를 듣는 일

– 서울시자살예방센터 이연화 유족지원팀장 

Q. 자살 유족은 사별 이후에 어떤 감정을 느끼나.

  자살 유족들은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것에 큰 죄책감을 느낀다. ‘그 때 전화를 받았더라면, 힘들어보였는데 밥 한 끼 먹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까’ 같은 후회들이다. 사별 이후에 감정적 어려움도 호소하지만 심리적인 부분이 두통, 면역력 저하 등 신체적으로 오는 경우도 많다. 사별 이후의 감정적, 신체적, 인지적, 행동적 반응을 애도 반응이라고 한다. 

Q. 한국은 죽음과 자살에 대해 개방적으로 얘기하기 힘든 사회인 것 같다. 주변 사람이나 사회의 분위기로 인해 자살 유족들이 겪는 어려움은 없나.

  사회적으로 자살에 대한 언급을 피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유족분들도 이에 대해서 얘기를 하기 쉽지 않다. 고인이 자살로 사망한 건데, 그렇게 얘기하지 못하고 주변에는 ‘심장마비다’, ‘사고가 났다’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고, 사망했단 사실 자체를 언급하지 않는 분들도 있다. 실제로 주변에서 소식을 듣고 “죽음을 막을 순 없었냐”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런 비난은 자살 유족들이 갖고 있는 죄책감을 강화시킨다. 사별 초기에는 유족들을 지지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시간이 흐른 뒤 “여전히 힘드냐”는 식의 말을 들으면 상처를 많이 받는다.

▲자살 유족들이 모임에서 만든 작품 ⓒ서울시자살예방센터

Q. 자조모임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

  서울시자살예방센터에서는 ‘자작나무’란 자조모임을 비롯해 자살 유족을 대상으로 여러 모임과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사별 대상별로 자조모임을 나눠 했으면 좋겠다는 자살 유족들의 의견이 있었다. 자작나무에서는 형제자매, 배우자, 부모 모임 등으로 자조모임을 나눠 진행 중이다. 사별 이후 상황이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사별 대상에 따라 유족들이 느끼는 다른 점들이 있기 때문에 모임을 구분하게 됐다. 

  자조모임이기 때문에 유족들이 모임을 이끌어나가는 역할을 도맡는다. 자조모임은 한 달에 한 번씩 진행되며, 유족 중 한 분이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정도 모임을 진행한다. 모임 주제에 대해서도 연초에 모인 유족이 직접 결정한다. 고인에 대한 이야기, 유족에 대한 이야기 등 고인과 애도에 관련된 주제도 있지만 여행, 명절 등 일상적인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일상적인 얘기를 하면 자조모임의 주제와 동떨어진 느낌이 들지만 결과적으로 고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여러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나가고 있다.

Q. 자살 유족들이 자조모임을 하고 느낀 점이나 변화가 있는지 궁금하다.

  유족들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분들이기 때문에 모임에 한 번 참여한다고 해서 감기처럼 상처가 낫는 것은 아니다. 참여한 지 오래된 분들은 10년 이상인 경우도 있다. 고인에 대해 편하게 얘기하기 어려운 유족들이 자조모임에서는 다른 곳에서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일상을 살아가다가도 이 모임에서만큼은 고인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에  답답함을 해소하는 듯하다. 유족들이 “우리는 같은 배에 탔다, 눈빛만 봐도 알겠다”고 이야기하는데, 같은 어려움을 겪은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많이 위로가 되는 것 같다.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구나. 저 사람은 그 상황에서도 살아가는구나. 나도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 

Q. 한국 사회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유족분들이 자살 유족을 위한 사회 서비스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사회의 인식 개선과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처음 모임을 시작했을 땐 참여하는 분들이 한두 명이거나 아무도 없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서비스들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분들도 많고, 자신에게 이런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자살 유족분들은 사별 후에 내가 잘 먹고 잘 자는 것, 잘 지내는 것 자체에도 죄책감을 느낀다. ‘고인은 죽었는데, 내가 잘 지내서 뭐하나’란 생각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용하셔도 된다. 이런 서비스가 있고 이용해도 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오랫동안 지속돼온 분위기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렵더라도 인식이 바뀌길 바란다.

  서울시자살예방센터에서는 자조모임 외에도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유족과 자작나무, 애도와 변화, 회복, 고인을 추억하는 총 4회기로 1년에 4번 운영되는 교육 프로그램이나 자살 유족들이 원하는 주제에 대한 특강, 체험이나 관람 등의 외부활동이 전부 자살 유족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한 사람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 중앙심리부검센터 유혜림 면담운영팀장

▲심리부검이 진행되는 상담실 ⓒ중앙심리부검센터

Q. 심리부검은 익숙한 개념은 아니다. 심리부검은 무엇인가.

  심리부검은 고인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조사방법이다. 질문이나 조사 내용이 효용성을 입증할 수 있도록 ‘한국식 심리부검 면담지’라는 구조화된 면담지가 있다. 고인 한 명당 두 명의 유족이 면담에 참여 가능한데, 가족 한 명이 포함되면 다른 한 명은 친구나 직장 동료가 참여하기도 한다. 

  면담은 크게 유족에 대한 질문과 고인에 대한 질문으로 나뉜다. 사별 후의 심리적 변화나 수면장애, 복합 애도에 대한 점검 등 유족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들은 후 고인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간다. 고인의 직장 생활과 사망 당시 상황, 어떻게 사망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물어보고 사망 직전의 경제적인 부분, 대인관계, 직장생활, 가족관계, 연인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서 위험 요소를 찾아본다. 평균 3시간 정도의 일회 상담으로 진행되고 있다.

Q. 심리부검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심리부검은 유족이나 가까운 지인과 면담을 진행하며 자살로 사망한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쳐 사망에 이르게 됐는지 알아보는 것인데, 법률적 용도와 보건학적 용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중앙심리부검센터에서는 자살 유족과의 상담을 바탕으로 하는 보건학적 목적의 심리부검을 진행한다. 

  심리부검의 성공적인 사례로 핀란드를 들 수 있다. 핀란드는 1990년대 자살률이 10만 명 당 30명에 이를 만큼 20세기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였다. 높은 자살률을 해결하기 위해 1986년부터 1996년까지 ‘국가자살예방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1987년 4월부터 1988년 3월까지 1년간 발생한 1397건의 자살 사망에 대한 심리부검을 전수 조사하고 사망 원인을 분석했다. 분석한 자살 원인을 기반으로 예방 정책을 만들었는데, 1990년대 초반 10만 명 당 30.2명이던 자살자 수가 2015년 14.2명으로 절반이 넘게 감소했다. 한국에서도 자살률 감소를 목적으로 심리부검을 도입해 2014년부터 국가적으로 시행 중이다. 

Q. 심리부검을 통해 알게 된 자살 사망자의 경향성이 있는지

  자살을 암시하는 신호를 경계 신호라고 한다. 자살 사망자의 90% 이상이 사망 전에 어떻게든 자살 의도를 표출한다. 불면 등의 수면상태 변화, 갑작스런 우울이나 무기력감 등의 감정상태 변화, 외모를 잘 신경 쓰던 사람이 신경 쓰지 않는다거나 몸이 아프다고 한다거나 식사를 잘 못하는 등의 경고신호를 보인다. 그런 부분들에 있어서 언어적, 행동적 변화가 있었는지 심리부검을 통해 확인한다. 

  심리부검을 하면 자살로 이어진 경로들을 살펴보게 되는데, 경로가 상당히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기간에 걸친 원인들도 있고 단기적인 사건의 영향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평균 사망 시까지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한 가지 사건으로 특정할 수는 없으며, 시간차를 두고 결정적 원인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대다수는 삶의 어려움이 반복되면서 자살을 선택하는데, 그 사이에 자살 사망자를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수도 있다. 심리부검은 경계 신호를 모색하고 자살 가능성을 줄이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심리부검 면담에 참여한 유족에게 드리는 ‘마음의 구급상자’ 물품 패키지 ⓒ중앙심리부검센터

Q. 자살 유족은 심리부검의 결과에 대해서 알 수 있나.

  분석 결과를 도출하는 법적인 면담과 달리 중앙심리부검센터의 심리부검은 유족의 면담만을 가지고 진행하는 주관적인 정보로, 사망의 정확한 원인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자살 유족들도 고인의 사망 원인을 알고 싶다고 면담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유족들에겐 면담을 통해 고인의 삶을 정리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노출 치료의 효과가 있다. 고인의 사망 이후 겪은 어려움을 바탕으로 어떤 것이 필요한지, 실질적으로 유족에게 필요한 것들도 알려드린다. 면담 이후에 자살예방센터와 연결해드리기도 하고, 도울 방법에 대한 지침을 만든다. 다른 유족들을 돕기를 원하는 자살 유족들이 많아 관련된 교육 또한 진행하고 있다.

Q. 자살 유족을 대하는 이들에게 당부할 점이 있다면

  2019년 중앙심리부검센터에서 세계 자살유족의 날을 기념해 자살 유족에게 ‘위로가 되는 말, 상처가 되는 말’이 무엇인지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위로가 되는 말은 ‘많이 힘들었겠다’와 ‘네 잘못이 아니야’, ‘힘들면 실컷 울어도 돼’, ‘고인도 네가 잘 지내기를 바랄 거야’, ‘무슨 말을 한들 위로가 될 수 있을까’로 나타났다. 상처가 되는 말로는 ‘불효자다, 나약하게 자랐나 보네’ 등 고인에 대한 험담, ‘이제 그만 잊어라’, ‘너는 고인이 그렇게 될 때까지 뭐했어?’, ‘왜 그랬대?’, ‘이제 괜찮을 때도 됐잖아’로 꼽혔다. 기본적으로 ‘내 책임이다’라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유족들의 얘기를 충분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을 덜어줄 수 있다. 면담에 오는 분들도 용기를 내서 신청하셨지만 막상 고인에 대해 얘기를 할 때는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얘기해도 괜찮고, 그것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란 태도가 자살 유족 분들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하지 않은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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