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정신 없이 보내고 있던 6월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통해 오늘 저녁 뉴스에 B교수 사건이 공론화 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음악대학 내의 비대면강의와 등록금 등 다양한 이슈로 인해 지쳐있던 나로서는 정말 멍해지는 이야기였다. 지난 해 서문과 A교수 사건 당시 동조 단식을 한 적이 있고, A교수의 파면을 요구하는 전체학생총회의 기획단도 했고, 사회학과 H교수 사건에도 연서명을 했던 기억이 있지만 이런 일이 음악대학 내에서도 일어날 것이라 생각해보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고 곰곰 생각해보니, 당황한 것이 오히려 우스웠다. 당장 그 전날에만 해도 SNS에서 예술계 내 성폭력 사건들과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인권침해 사례들을 읽었는데, 우리 음악대학 내에서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 어리석었다. 나와 같은 공동체 내의 사람이 오랜 시간 그런 일들에 노출되어 고통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우울감과 좌절감이 몰려왔다. 사건의 공론화 이후 가해를 증언하고자 하는 증인들이 나타나고, 목격담을 하나 둘 들으며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막막한 마음이 컸다.
대학 내의 권력형 성폭력과 인권침해는 교수가 학생에 대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예술계 내에서 이러한 교수의 직위는 더욱 강화된다. 정량적일 수 없는 음악 분야에서 교수의 평가는 절대적이다. 진로, 다음 학위, 이후 교강사 채용까지도 선배 음악가들의 평가는 음악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B교수가 피해자의 신고를 두고 ‘자신에게는 스크래치겠지만 피해자는 인생을 걸어야 할 것이다.’라는 말을 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 사건을 바라본 음악대학생들은 모두 이러한 B교수의 발언이 한 치의 과장도 없는 말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꼈을 것이다.
음악대학 내에서 일어난 이런 일에 음악대학 학생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보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선 이 사건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알도록 사건을 알리고, 학교에 책임있는 해결을 요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음악대학 학생회는 ‘B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게 되었다. 참 막막했다. 가해 사실이 공론화되었다 하더라도 음악계에서 막강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B교수의 징계를 요구하는 단체에 들어오는 것은 음대생으로서 너무나도 부담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단체 모집 첫날 10명 이상의 사람이 모였다. 첫 회의 날에는 시험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정을 지나서까지도 열띤 논의가 이어졌다. 우리의 이야기는, 그것이 B교수 한 명의 일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일이었고 친구들의 일이라는 데에서 시작했다. 그날 우리는, 다루기로 한 안건들에 앞서 우리 스스로가 겪었던 수많은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 공론화된 사건들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대부분 가해를 겪었지만 두려움에 발화하지 못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경험을 되돌아보고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번 B교수 사건이 단순히 B교수의 파면 뿐 아니라 음악대학의 분위기를 바꾸고 우리 스스로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B특위는 사건을 알리는 카드뉴스를 발간하고, 많은 연대 단위들을 찾으며 기자회견과 기획들을 진행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나 스스로도 연서명에 참여하고 동조단식을 한 적이 있지만, 연대의 힘을 절절히 느낀 날들이었다. 임기 초, ‘공동체’라는 생각으로 가맹했던 단위들이 보여준 강한 연대와, 다른 단과대 학생회들의 지지, 연석회의에서의 안건 가결, 학우 분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진심으로 다가왔다. 우리의 사건에 함께 분노해주고 싸워주는 사람들의 마음이 놀라웠고, 든든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함께 하며 사건 대응을 진행하던 어느 날, 새로운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바로 C교수의 성폭력 가해 사건이었다. 아직 인권센터의 조사도 진행되지 않았고, 기소 의견이 나온 지 10개월이 된 C교수 사건을 처음 보자, 아무런 판단이 서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혼란 속에서, 연속해서 공론화된 교수 사건들이 우리 학생사회가 다함께 대응해야 하는 일이라는 점에 더 많은 동력을 얻기 위해 ‘음대 내 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특위는 총학생회로 이관되었고, 우리는 두 명의 교수 사건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제는 정말로, 연속해서 터진 이런 일들이 단순히 산발적으로 일어난 단일한 사건이라고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종종 자조적으로, ‘이렇게 된 거 싹 다 터졌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교수들의 가해 사실이 공론화될 때마다 막막한 마음은 감출 수 없지만, 이 모든 사건들을 뉴스에서 보고 있다는 것은 점차 피해자들이 발화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여전히 교수와 학생 간의 관계는 비대칭적이고, 때때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듯한 기분이 들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교수의 가해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확신도 들지 않지만, 우리의 한 걸음 한 걸음으로 서울대와 세상은 변화해가고 있다.
나는 2017년에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이후 매년 다른 교수들의 가해 사실을 접하고 있다. 이제는 변화했으면 좋겠다. 교수님들께서 스스로를 한번 돌아보셨으면 좋겠고, 우리 모두도 스스로의 경험을 반추해보았으면 좋겠다. 대학 내의 권력 구조를 영영 해결할 수는 없더라도, 우리의 발화와 연대를 통해 더 이상 마냥 참고 지내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서울대학교는 우리의 간절한 외침에 조속하고 책임있는 해결로 응답했으면 좋겠다. 두려움에 학업을 지속하지 못하고, 고통에 학교를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학교가 우리의 학문의 요람으로 남아 우리를 보호해주었으면 좋겠고, 우리는 안전한 교육환경을 보장받았으면 좋겠다.
코로나19로 인한 수많은 현안들이 존재하고 등교도 못하고 있다 보니, 아쉽게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B교수와 C교수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느끼기 어렵다. 우리 학교 내에서 공론화된 교수 사건들은 우리 선배들이 겪었던 일이고, 우리가 겪는 일이고, 우리 후배가 겪을 일들이라는 점에서 모든 학우 분들의 강한 지지와 연대로 이어진다. 학우 분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연대를 꼭 부탁드리며, 함께 하는 특위원들에게 사랑을 전한다.
김서정 (기악 17)
피아노를 전공합니다. 제21대 음악대학 학생회장이고, 음대 내 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