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남짓의 시간을 저널에서 보냈건만 아직도 좋은 기사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평기자들이 한 땀 한 땀 꿰어낸 기사들을 검토하다 보면 ‘내가 뭐라고’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첫 원고답게 서툴고 정리가 안 된 부분은 있지만, 그럼에도 모든 글에는 나보다 몇 배는 이 주제에 대해 고민했을 기자들의 흔적이 담겨있다. 나는 그 흔적을 파괴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내가 공들인 글에 말 없이 빨간 줄이 난무하는 건 속상한 일이라는 걸 나 역시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 흔적을 파괴하지 않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내가 선택한 가장 좋은 방법은 글을 쓴 기자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었다. 글의 모든 표현과 문장 하나하나에는 기자의 의도가 담겨있다. 그 의도가 뭔지 궁금해하지 않은 채 내 멋대로 수정한다면 아차, 싶은 순간이 온다. 그렇기에 반드시 더 묻고 더 들어야 한다. 글을 완성하기 위해 기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차츰 우리가 조금은 나아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번 특집에서 우리가 취했던 방법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기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당사자가 아닌 우리가 아무리 생각해도 절대 가닿지 못할 영역이 존재했다. 당사자분들을 하루 빨리 마주해 여쭙고 싶었다. 일찌감치 우리는 취재에 나섰다. 예상했던 대로 한 분 한 분 만날 때마다 새로운 걸 알 수 있었다. 


  발달장애의 층위와 양상이 너무나도 다양한 만큼 모든 분들의 목소리가 같을 수는 없었다. 이 이야기들을 어떻게 한데 묶을 수 있을까. 최대한 그 분들의 목소리를 왜곡하고 평가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 하에 이번 특집이 완성됐다.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던 분들이 이 특집을 어떻게 읽으실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분들도, 우리도 공통적으로 느꼈던 생각은 있었다. 결국 이 모든 건 무관심과 회피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엄연히 있는 존재를 없는 존재로 생각하고, 보려고 하지 않는 마음은 발달장애인의 노동에 있어 큰 걸림돌이다. 그러한 무관심과 회피는 곧 발달장애인을 멋대로 재단하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존재 자체를 보려고 하지 않는 것, 혹은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단편적으로 파악하고 그 특성을 발달장애인의 전체로 환원하는 것이 그렇다. 그 특성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발달장애인 역시, 누구든 그렇듯이 오랫동안 마주하는 순간 단편적인 특성이 합쳐져 하나의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나는 그 마주함을 이번에 만난 모든 분에게서 보았다. 


  나는 이 마주하는 마음가짐을 ‘당면하는 마음’이라고 부르고 싶다. 더 좋은 기사를 쓰려는 마음, 그리고 누군가를 인격체로 대하려는 마음. 목적은 다르지만 그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더 모르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상대를 마주해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도 누군가보다 모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신과 내가, 피하지 않고 기꺼이 당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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