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이 아닌 인정이 필요한 사람들

직업재활시설 밖에서 발달장애인이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동양란을 관리하는 순서가 담긴 플라워사업팀 매뉴얼. 베어베터에선 직무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매뉴얼이 작업장 벽에 부착되며 책자로도 배포된다. ⓒ베어베터

  발달장애인에게 주어진 일자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지금, 직업재활시설은 보호가 가능한 환경에서 이들에게 노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터로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 그러나 직업재활시설의 목적이 온전히 실현되는 때는 시설 내 발달장애인이 훈련을 마치고 시설 밖으로 나오는 순간이다. 직업재활시설의 본질은 직업훈련을 마치고 사회로 나아가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제41조는 직업재활시설의 목표를 장기적인 직업훈련을 통해 직업적응훈련시설에서 보호작업장, 나아가 근로사업장, 최종적으로는 일반노동시장으로 옮겨가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그렇다면 시설 밖의 세상에서 발달장애인에게 주어진 일자리는 과연 얼마나 있을까.

사회와 분리된 발달장애인의 일터

  직업재활시설은 ‘일반기업 고용’의 발판 역할을 하는 ‘보호고용’ 시설이다. 발달장애인 노동자들은 일반기업에 적응 가능한 수준이 될 때까지 직업재활시설에서 사회적응훈련과 직업훈련을 받는다. 직업재활시설에 있는 발달장애인 노동자의 대부분은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보수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 이들이 수급비에 의존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길은 시설에서 나와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주는 일반기업으로 옮기는 길뿐이다. 

  그러나 직업재활시설의 이상과 현실 사이엔 거대한 간극이 존재한다. 실제로 직업재활시설에서 훈련을 거쳐 일반노동시장 편입에 성공한 발달장애인 노동자는 거의 없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변재원 정책국장은 “직업재활시설에서 일반사업체로의 전이율이 굉장히 낮다”며 직업재활시설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역시 2014년 한국에 ‘공개 노동시장으로의 진입을 준비하지 않으려는 보호작업장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우려와 함께 보호작업장 폐쇄를 권고한 바 있다.

  발달장애인 노동자들이 보호고용에 머무르게 되는 배경에는 수익 창출의 압박에 시달리는 직업재활시설의 어려움이 자리한다. 직업재활시설 안에는 일상생활조차 어려운 최중증 발달장애인을 포함해 직업능력이 상이한 발달장애인들이 공존한다. 돌봄과 직업훈련을 동시에 제공하는 직업재활시설의 복지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직업재활시설 내 장애인 노동자의 임금과 훈련수당에 어떠한 지원도 제공하지 않는다. 직업재활시설은 이를 충당하기 위해 수익 창출에 매달린다. 일반기업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물건을 구매할 업체를 수주하려면 장애인 노동자들이 업체가 요구하는 물량을 정해진 시간 안에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노동시장으로 전이가 가능한 정도의 숙련된 사람을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은 시설의 생산과 운영에 치명적이다. 변재원 정책국장은 “직업재활시설이 발달장애인 노동자들을 전이시키는 것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직업재활시설에서 일반기업으로의 전이가 어려운 더 본질적인 이유는 발달장애인 노동자를 바라보는 기업들의 냉담한 시선에 있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발달장애인에게 주어진 일자리는 다른 장애유형에 비해서도 적은 편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2019년 장애인통계’에 따르면, 2019년 장애인 전체의 고용률은 34.9%인데 반해 발달장애로 분류되는 지적·자폐장애인의 고용률은 각각 20%대에 그쳤다. 안양시장애인보호작업장 이형묵 시설장은 “내부에서 전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지만, ‘발달장애인은 전문성과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사회적 편견이 가장 큰 장애물”이라며 전이가 이뤄지기 위해선 발달장애인을 수용하는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을 고용하는 일반기업을 찾아보기 힘든 우리 사회에서 발달장애인 노동자는 훈련을 통해 직업능력을 충분히 갖추더라도 직업재활시설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변재원 정책국장은 “사회통합의 인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직업재활시설이 도입되다보니, 본래 목적과는 다르게 (직업재활시설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분리하는 격리공간이 돼버렸다”고 지적한다. 많은 발달장애인 노동자들에게 직업재활시설이 임시적 직업훈련기관이 아닌 최종 종착지가 돼버린 현실은 격리고용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커리어플러스센터’ 성희선 센터장은 “근로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최중증 발달장애인에겐 보호고용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직업재활시설이 모든 발달장애인의 유일한 선택지가 돼선 안 된다”며 일반노동시장에서 발달장애인 일자리 창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발달장애인의 노동권이 보장되려면

  발달장애인이 낮은 인건비의 격리고용에서 벗어나 양질의 일자리를 확보하기 위해선 노동의 가치를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변재원 정책국장은 “우리 사회에서 ‘생산성 신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발달장애인에게 충분한 노동기회가 보장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생산성 신화’란 사회의 보편적 생산성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열등한 존재로 규정하는 문화를 일컫는다. 노동을 생산성의 관점에서만 평가한다면 비장애인에 비해 노동의 효율이 떨어지는 발달장애인은 노동할 자격을 박탈당하게 된다. 

  노동은 인간으로서 지니는 기본적 권리 중 하나다.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32조 1항이 이를 뒷받침한다. 능력과 속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노동할 자격과 권리를 지닌다. ‘피플퍼스트서울센터’ 송효정 사무국장은 “발달장애인이 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인정되지 않아 이들의 노동이 평가절하당하고 있다”며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평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발달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정당한 노동으로 보장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적 기업 베어베터는 발달장애인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정당한 노동”으로 만들어 약 240명의 발달장애인을 고용하고 있다. 베어베터에서는 인쇄, 플라워, 제과, 배송 등 모든 업무가 촘촘한 분업으로 진행된다. 예를 들어 인쇄 업무에서는 한 명이 인쇄기계에 종이를 넣고 기계를 작동시킨 다음 다른 한 명은 출력된 인쇄물의 내용과 개수가 정확한지 확인하고, 또 다른 한 명이 인쇄물을 포장하는 식이다. 작업장 곳곳에는 일하는 순서와 방법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놓은 매뉴얼이 사진과 함께 부착돼 있다. 베어베터 이진희 대표는 “어떤 사업이든 발달장애인에 맞춰 일을 쉽게 만드는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동양란을 관리하는 순서가 담긴 플라워사업팀 매뉴얼. 베어베터에선 직무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매뉴얼이 작업장 벽에 부착되며 책자로도 배포된다. ⓒ베어베터

  발달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단순노동을 하는 생산직에 국한되지 않는다. 송효정 사무국장은 “몸을 쓰기 어려운 중증 발달장애인에게도 노동의 기회가 보장되기 위해선 발달장애인 노동의 개념이 확장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올해 서울시에서 최중증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진 공공일자리는 다양한 분야에서 발달장애인의 일자리가 마련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공공일자리 참여자는 ▲장애인 권익옹호 ▲문화예술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 업무를 수행한다. 

  발달장애인이 할 수 있는 형태의 노동을 보장하는 것만큼 발달장애인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의 관계는 직장생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형묵 시설장은 “주위에서 발달장애인의 고유성을 ‘다름’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저 ‘이상하다’고 취급할 경우 발달장애인 근로자는 직장 내 부적응, 외로움 등으로 힘들어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실제로 안양시장애인보호작업장에서 일반기업으로 전이한 발달장애인 중 일부는 회사 내 관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시설로 돌아오기도 했다. 

  한 직장에서 발달장애인 노동자의 안정적인 근무가 지속되려면 발달장애인과 다른 사원들 간의 관계 조정을 돕는 인력 지원이 필요하다. 송효정 사무국장은 “발달장애인은 돌봄과 노동이 맞물려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이를 인정하고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발달장애인과 함께 일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근무현장에서 의사소통과 정보접근을 보조하는 지원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송 사무국장은 “지금까지 물리적 사회접근이 어려운 신체장애인을 위한 활동지원에 비해 발달장애인을 위한 활동지원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다”며 지원인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실태를 지적했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인력지원은 일터 내에서 발달장애인이 직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직업훈련기관 ‘커리어플러스센터’가 모든 발달장애인 노동자에게 지원하는 잡코치(직무교사)와 근로지원인이 그 예시다. 직업재활시설이 아닌 실제 기업현장의 훈련기간 동안 발달장애인은 현장적응을 돕는 잡코치와 함께 출근해 직무를 배운다. 훈련 후 발달장애인 노동자가 정식으로 채용될 경우 근로지원인이 투입돼 혹시나 있을 발달장애인 노동자의 예기치 못한 행동에 대비한다. 올해는 총 21명의 발달장애인 노동자가 현장훈련을 마치고 신세계, 이마트, 아름다운가게 등에 취업해 근무 중이다. 

▲2019년 7월 현장훈련을 마치고 롭스에 채용돼 현재까지 근무 중인 발달장애인 직원 ⓒ커리어플러스센터

  그러나 인력지원이 이뤄진다고 해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 개개인이 발달장애인 노동자를 편견 없이 동등하게 대하려는 자세를 전혀 갖추지 않는다면 발달장애인의 직장 내 적응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베어베터에서 발달장애인 직원의 정서관리를 담당하는 이도영 매니저는 직원들이 면담에서 ‘사람들이 자꾸 쳐다봤다’, ‘욕을 했다’는 내용을 주로 토로하는 등 외부의 시선에 민감하다고 설명한다. 인력지원인은 의사소통이 정확하게 이뤄지도록 도울 수 있을 뿐, 발달장애인이 온몸으로 느끼는 편견어린 시선이나 차별적 대우를 막아주진 못한다. 이형묵 시설장은 “궁극적으론 발달장애인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한 사람으로 대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다르더라도 동등한 사회 구성원이기에

  대다수의 성인 발달장애인이 가족의 부양에 의존하는 우리 사회에서 노동은 발달장애인이 경제적 자립을 이룰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동시에 발달장애인 단체 관계자들은 노동이 발달장애인에게 단순한 생계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노동이라는 적극적인 사회참여활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소속감과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동안 발달장애인에게 사회적 참여 기회는 제한적으로 주어졌다. 사회적 기업 꿈더하기의 정현주 과장은 “중증 발달장애인은 학교를 졸업하는 스무 살이 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갈 곳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2018년 서울연구원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약 1만 5천명의 발달장애인 응답자 중 39.9%가 낮에 아무런 사회활동 없이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답했다. 사회와 단절된 발달장애인은 대부분 가정이라는 매우 좁은 영역 안에서만 관계를 형성한다. 송효정 사무국장은 “발달장애인은 비장애인이 당연하게 습득한 사회적 경험들을 누릴 공간이 없었다”며 직장은 발달장애인이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일터에서 다양한 사람들과의 사회적 관계를 경험하면서 발달장애인에게 변화가 생기기도 한다. ‘성미산좋은날협동조합’ 최성욱 운영위원장은 “처음에는 직원들이 다른 사람들과 말도 전혀 안 하고 개인주의적인 면모가 컸다”며 소통에 서툴렀던 직원들의 모습을 회상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 성미산좋은날협동조합의 직원들은 돌아가면서 다 함께 나눠 먹을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를 사오고, 사온 사람에게 고마움을 직접 표현한다.

  하나의 직장에 소속돼 정당한 대가를 받으며 일을 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행위는 사회의 일원이라는 소속감과 자존감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이진희 대표는 “한 명의 성인으로서, 그리고 사회인으로서 사회에 기여한다는 보람과 뿌듯함을 크게 느끼는 것 같다”고 말한다. 성미산좋은날협동조합에선 발달장애인 직원들의 요구로 모든 사원들에게 직책과 이름이 적힌 명함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스스로 번 돈으로 경제생활을 누리고, 노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발달장애인의 욕구는 그동안 사회에서 등한시돼왔다. 발달장애인은 ‘생산성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규정돼 노동시장에서 오랫동안 일할 권리를 박탈당했다. 누구나 능력과 잘할 수 있는 것이 다르지만 일을 할 권리는 모두에게 주어져야 한다. 발달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시혜와 동정이 아니라, ‘다름’에 대한 인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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