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자에 맞춰 모델처럼 포즈를 취한다. 직각으로 천천히 세우던 팔을 순식간에 뒤로 젖힌다. 손가락을 현란하게 움직이며 앉은 채로 걷는다. 귀를 울리는 큰 비트소리와 함께 바닥에 누워 다리를 위로 들어올린다. 관중들의 추임새가 무대를 가득 채우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보깅 댄스의 한 장면이다.
보깅(Vogueing)이라는 이름은 패션잡지 ‘보그(Vogue)’에서 왔다. ‘보그’ 모델의 포즈를 재현한 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깅엔 “모델같은 춤”이라는 의미 이상의 특별한 가치가 있다.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무대와 형식이 계속해서 변화하는 동안에도 한결같이 유지된 보깅의 핵심은 ‘나다움의 표현’이다. 보깅의 역사와 세 댄서들의 이야기를 통해 보깅이 표현하는 나다움의 빛깔에 대해 알아봤다.
억압받는 이들의 파티장에서 출발하다
보깅의 시작은 볼룸문화와 함께한다. 볼룸문화란 유색인종 성소수자들이 볼룸(ballroom), 즉 무도회장에 모여 자신을 뽐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독특한 문화다. 볼룸문화의 시작을 담은 다큐 ‘파리는 불타고 있다’의 첫 대사는 당시 억압받던 유색인종 성소수자들의 처우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볼에 참여하던 사람은 과거를 회상하며 “아버지가 제게 하시던 말씀이 기억나네요. ‘넌 이미 아웃이야. 흑인이고 게이 남성이기 때문이지. 넌 고생 좀 할 거다’”라고 말한다. 그는 “볼에 오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보통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어요. 먹지도 못하고 굶주린 채로 볼에 오기도 해요. 돌아갈 집이 없어 부두에서 자기도 하죠”라고 덧붙였다.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 것에 더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들키면 일자리에서 해고되는 것은 물론이고 길거리에서 무분별한 폭력을 당하는 일도 빈번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차별과 폭력에 노출된 유색인종 성소수자들이 일상에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자기표현에 대한 억눌린 욕망은 볼에서 폭발했다. ‘파리는 불타고 있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저희에겐 볼이 세상의 전부예요”라고 말한다. 최해준 댄서에 따르면 볼은 이들에게 “무엇을 해도 문제가 될 게 없는, 나 자체를 그냥 인정받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공간이었다.
모두가 자신을 마음껏 표현하는 것은 다채로운 볼룸문화의 정신이 됐다. 초기 볼룸문화는 ‘지정성별에서 벗어나는 사회적 방식으로 자신을 꾸미는 행위’인 ‘드랙’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이후 1960년대 뉴욕에서부터 볼룸문화에 드랙 외의 다양한 문화요소가 도입되면서 볼룸문화의 외연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최 댄서는 “모든 사람들이 드랙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볼룸문화의 카테고리가 늘어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 중 ‘퍼포먼스’ 카테고리에서 보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보깅은 볼에서 두 명이 함께 춤을 추며 실력을 겨루는 댄스 배틀의 형태로 출발했다. 한 명이 춤을 추다 멈추면 상대가 이어서 춤추는 대부분의 댄스 배틀과 달리, 보깅의 댄스 배틀은 두 명이 처음부터 끝까지 동시에 춤을 추는 형식이다.
배틀에서 겨루는 두 댄서는 각각 자신이 속한 ‘하우스’를 대표한다. 하우스는 차별로 인해 갈 곳을 잃은 성소수자들이 함께 생활하는 대안가족공동체에서 출발한 것으로, ‘마더’ 혹은 ‘파더’라고 불리는 사람이 공동체를 이끄는 역할을 맡는다. 이렇게 구성된 각 하우스는 볼룸에서 다른 하우스와 경쟁하며 내부 연대를 강화한다. 하우스에서의 밀접한 유대관계는 나다움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기반으로, 자유롭게 춤을 출 수 있는 든든한 배경이 된다.
독자적 댄스장르로 거듭나다
볼룸문화의 퍼포먼스 카테고리에서 출발한 보깅은 1960년대 뉴욕 할렘의 게이 언더그라운드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서서히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그러면서 보깅은 ‘올드웨이’, ‘뉴웨이’, ‘보그펨’ 등 다양한 종류로 분화되기도 했다. 김유정 댄서에 의하면, 초기의 올드웨이 보깅이 “단순한 포즈나 깔끔한 라인을 중요시”하는 반면, 뉴웨이 보깅은 올드웨이가 변화한 형태로 “기하학적 포즈를 빠른 속도로 연결하기 때문에 보다 높은 유연성을 요구”한다. 이후 1990년대에 나타난 보그펨 보깅은 골반을 흔들며 걷거나 손을 현란하게 움직이는 동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바닥에 누워서 하는 퍼포먼스를 필수적으로 포함한다.



이렇듯 탄탄한 분류체계를 갖출 정도로 성장한 보깅은 하나의 스트릿댄스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스트릿댄스가 된 보깅은 한국 댄서들을 매료시켜, 볼룸문화의 일부라기보다 하나의 댄스 장르로 한국에 도입됐다. 김란 댄서는 “새로운 것을 갈망하고 있던 (한국의) 댄서들에게 보깅은 너무나 신선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0년대 초반까지도 한국은 보깅 불모지에 가까웠다. 한국 보깅의 초창기를 겪어낸 김유정 댄서와 김란 댄서는 “처음엔 보깅을 배울 수 있는 곳조차 없었다”고 회상했다. 김유정 댄서는 “왁킹부터 비보잉까지 다양한 춤을 배우며 나만의 색깔을 찾아가다보니 보깅을 만나게 됐지만, 보깅 댄스팀은 물론 보깅을 위한 음악마저 찾기 힘든 상황에서 혼자 영상을 보며 따라하는 게 전부였다”고 말했다. 김란 댄서 역시 “춤을 추다가 보깅이라는 장르를 발견하고 관심을 갖게 됐지만 유튜브를 보고 연습을 하는 게 다였다”고 말했다.
보깅 불모지인 한국에서 보깅을 배우기 위해선 해외 댄서들과의 교류가 절실했다. 당시 전 세계 보깅 씬은 뉴욕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기에 한국 댄서들에겐 해외 경험이 더욱 중요했다. 그러던 중 2017년 아치 버넷 등의 해외 댄서들이 한국에서 개최한 보깅 워크샵은 단비 같은 기회였다. 이 워크샵에 참여했던 김란 댄서는 “한국에서 보깅을 조금씩 연습하던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기에 모두 열정이 넘쳤다”며 “이를 느낀 아치 버넷 선생님도 원래 시간보다 수업을 두 시간씩 더 하셨다”고 말했다.
이후 한국 보깅 댄서들이 하나 둘 해외 볼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물론 초기엔 이방인으로서의 소외감을 맛보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볼인 뉴욕의 라텍스 볼에 참여했던 김유정 댄서는 “그땐 동양인이 라텍스 볼에 참가하는 일이 많지 않아서 여기 있는 사람들은 날 어떻게 볼까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참가했다. 우주에 버려진 것처럼 막막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유명한 메이저 하우스들이 볼을 주도하고 있었기에, 하우스에 속하지 못한 댄서는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 라텍스 볼에 참여한 최해준 댄서 역시 “영상으로만 보다가 직접 가보니 ‘이렇게 큰 세계가 있구나’ 싶어 위화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런 경험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댄서들은 보깅을 살아 숨쉬게 하는 다양한 정체성의 사람들을 마주했다. 김유정 댄서는 “라텍스 볼에 참가하기 위해 거의 한 달 간 뉴욕에 체류하면서 세계적인 보깅 댄서들의 레슨도 듣고 다양한 사람과 교류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김란 댄서는 “라텍스 볼 전날에 보깅 수업을 들으러 갔다가 어떤 흑인 남성 댄서를 만났는데, 알고 보니 FTM 트랜스젠더였다”며, 볼에서 교류하다보면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수많은 정체성이 존재함을 깨닫게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렇게 댄서들은 보깅 기술뿐만 아니라 보깅을 지탱하는 다양한 빛깔의 정체성들을 몸소 만나며 한국에서 보깅을 꽃피울 준비를 했다.
한국 보깅과 볼룸문화의 새로운 도전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보깅 댄서들은 서로 교류하며 보깅의 핵심인 ‘나다움’을 긍정하고 표현하는 법을 체득해 나간다. 이는 한국 댄서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김란 댄서는 “처음에 보깅은 그냥 댄스에 불과했지만, 경험이 쌓일수록 보깅은 나다움을 표현하는 하나의 애티튜드임을 깨닫게 됐다”며, “보깅을 통해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 각자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시야가 넓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란 댄서는 “원래 움츠러드는 성격이었는데, 보깅을 하면서 그런 습관이 많이 사라졌다. 대신 나 자신을 더 사랑하고 표현하게 됐다”며 “보깅을 만나면서 변화된 내 모습이나 지금 느끼는 감정들 그 자체가 ‘나다운’ 것이라곤 느낀다”고 덧붙였다. 김유정 댄서 역시 “보깅을 하는 데 어떤 조건이 정해져있는 것은 아니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자신감 있게 표현하면 그게 아름다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모든 경험을 한국에서 공유하기 위해 댄서들은 여러 사람들을 모아 하우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김유정, 김란, 최해준 댄서는 현재 각기 다른 하우스의 마더를 맡고 있다. 세 댄서는 하우스 안의 끈끈한 유대관계로부터 큰 힘을 얻는다고 입을 모았다. 최해준 댄서는 “하우스의 구성원들은 서로에게 삶을 같이 하는 동반자가 돼준다”고 말했다. 김란 댄서는 “한 하우스의 마더로서, 하우스 안에 있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친구들과 함께하면서 행복하고 든든한 기분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김유정 댄서 역시 “하우스는 단순한 댄스팀이 아니라 인간적인 교류를 하는 또 하나의 가족이다. 진짜 자식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 마더로서 책임감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하우스 구성원 간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통해 나다움을 표현할 정서적 기반을 마련했다면, 이제는 나다운 몸짓을 표현할 무대가 필요했다. 2017년 열린 국내 첫 볼 행사를 시작으로 2019년엔 폭발적으로 많은 볼이 개최됐다. 한국의 볼룸문화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세 댄서들은 “한국의 볼은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볼은 보깅을 즐기는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자극을 주고받는 장으로서, 한국 보깅이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김란 댄서는 “한국에선 처음에 스트릿 댄서들이 주로 보깅을 접하고 추다가, 볼이 열리면서 성소수자 커뮤니티에도 오픈이 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열린 ‘허 볼(Her ball)’엔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허 볼’에 참여했던 김유정 댄서는 “볼룸문화를 제대로 겪어보면서 댄서들도 많은 충격과 영감을 받았다. 성소수자들이 억압받는 현실과 달리, 볼에선 누가 무엇을 하더라도 모두가 열광해준다는 게 감동이었다”고 회상하며 “심사를 하면서도 냉정하게 댄서들을 평가하기보단 같이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하우스와 볼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보깅은 이제 주류 대중문화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특히 작년부턴 케이팝과의 협업이 활발하다. 청하의 ‘Stay Tonight’ 안무나 엠넷 예능프로그램 ‘퀸덤’ 무대에 보깅이 활용되면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세 댄서는 보깅의 새로운 도전을 적극적으로 이끌어왔다. 김유정 댄서는 “케이팝과의 협업은 모두가 노력해서 얻어낸 것”이라며 “방송가 쪽에서 보깅에 먼저 관심을 가졌다기보단, 우리들이 의도하고 노력한 결과”라며 뿌듯함을 내비쳤다. 최해준 댄서는 최근에도 케이팝 그룹을 위한 보깅 안무를 만들고 있다고 귀띔하면서 “케이팝과의 협업을 계기로 사람들의 시선이 더 열리고, 보깅을 통해 볼룸이라는 큰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나다운’ 보깅 댄서들이 그리는 미래
숨가쁘게 달려온 한국 보깅은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보깅을 통해 발견한 ‘나다움’을 토대로 세 댄서는 자신만의 특색 있는 답변을 들려줬다.
김란 댄서는 “보깅으로 최대한 많은 것을 표현하는 작품 활동을 하고 싶다”며, “최근에는 인어공주나 빛과 자연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만들었는데, 앞으로도 내가 상상하는 다양한 것들을 담아내고 한국적인 걸 표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유정 댄서는 “아티스트로서, 마더로서, 한국 볼룸 씬의 리더로서, 다른 댄서들을 위한 길을 닦아주고 싶다”며 보깅을 대중에게 알리고 보깅 이론을 정리하는 작업을 해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한국 보깅을 이끌어가는 김 댄서의 사명감은 댄서를 위한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댄서들이 안정적인 수입을 유지하며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코레오 댄스 엔터테인먼트’의 최고운영책임자를 맡고 있는 김 댄서는 “노래나 그림에 비해 안무는 저작권이 거의 보장되지 않아 수입원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춤을 추는 사람들은 한 가지 직업만 갖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고 지적하며, “댄서의 역할을 확대하고, 춤을 추면서도 생활을 영위할 돈을 벌 수 있도록 하게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최해준 댄서는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한국 볼에 보다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강조했다. 최 댄서는 “지금 우리나라에선 아웃팅의 공포가 심하기 때문에 볼에 참여하지 못하는 성소수자가 많다”며 아쉬워했다. 이어 최 댄서는 “성소수자가 대부분인 뉴욕의 볼처럼, 우리나라 볼에도 성소수자가 더 많이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소망을 밝혔다. 물론 볼은 성소수자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지만 성소수자들이 더 당당하게 참여해 자신의 색깔을 펼치길 바란다는 것이다.
세 댄서 각자의 나다움을 담은 포부는 보깅이 나아갈 길과 동시에 우리 사회의 새로움 꿈을 보여준다. 고정관념 없이 모두가 나다움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은 어떨까. 너와 나의 몸짓은 모두 아름답다.